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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

김경도

건축가로서의 매력

김경도 대학교 3학년 때 설계스튜디오 선생님이 허서구 교수님이었다. 졸업할 즈음 교수님께서 “취직했니? 갈 데 없으면 그냥 우리 사무실로 와라” 말씀하셨고, 그렇게 첫 사무소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3년 4개월 정도 일했는데, 함께 일했던 김재경 한양대학교 교수가 유학 준비를 하며 내게도 유학을 떠나라고 계속 권했고, 나도 마음을 굳힌 뒤 유학 준비를 해서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ETH)으로 갔다. 어학연수 1년을 포함해 3년 정도 공부하다가 여러 사정으로 졸업하지 않고 2011년에 귀국한 뒤 바로 사무소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학생일 때부터 교수님께서는 줄곧 “건축 실력보다 자신이 가진 매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건축가로서의 매력은 곧 실력이기도 하고, 상대를 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설계를 할 때는 늘 최선을 다하고, 클라이언트를 대할 때도 최대한 존중한다. 그리고 교수님께선 항상 “이미 해본 디자인을 다른 장소에 복제할 생각하지 마라”고 하셨다. 그 영향으로 “전문 분야가 무엇이냐”는 클라이언트 질문에 항상 “처음 해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말씀드린다. 지금까지 협소주택, 고급주택, 근린생활시설, 오피스, 문화비축기지나 대선제분 같은 재생 프로젝트 등 여러 유형의 작업을 많이 해봤지만,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것을 제일, 잘 해보고 싶다고 대답한다.

독립

김경도 처음 설계했던 작업은 경상남도 진주에 지은 근린생활시설 건물이었다. 스위스에 있을 때 대학 동기가 “아버지 건물 설계를 맡아줄 수 있겠니?”하고 연락을 해왔다. 유학 도중에 생긴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겸사겸사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귀국했다. 그 일을 하다 보니 연이어 새 프로젝트가 생겼고, 국내에 자리잡게 되었다. 처음에는 백상진 소장이 하고 있던 사무실에 합류했고, 사무실 이름을 ‘정건축’에서 ‘RoA’로 바꿨다. 그리고 3년 전 분리를 하여 백 소장과 따로 또 같이 작업을 하고 있다.

대표작: 대선제분 프로젝트

건축자산의 가치를 돌아본 계기

김경도 대표작을 고르는 기준이 준공작이 아니라면, 현 시점에서 대표작은 대선제분 영등포공장이다.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주최한 <건축자산의 새로운 시선> 포럼에서 “대선제분 영등포공장 프로젝트가 어떠한 방식으로 공공에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이곳이 활발히 운영돼서 큰 수익을 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건축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주체가 기업이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건축자산을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부동산의 환금성에 가치를 둔다. 그러므로 이 프로젝트가 여러 측면에서 기업 가치를 높이는 선례가 되어서 다른 기업도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건축자산을 문화 공간으로 바꾸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게, “뚝섬 레미콘 공장을 문화 공간으로 만들자”라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야말로 공공에 기여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한창 진행중인 대선제분 영등포공장을 대표작이라 소개했지만, 앞으로 맡게 될 작업, 또 그 다음 작업이 대표작이 되도록 계속 노력하며 발전하고 싶다.

대선제분 영등포공장 내부 / 사진: 노경

산업유산을 바라보는 시선

김경도 20세기 산업유산은 지어질 당시에 건축가의 독특한 아이디어나 프로그램 해석을 바탕으로 설계된 건물이 아니다. 오로지 용도와 기능에 맞게 설계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최근 리노베이션 대상이 되고 있는 석유 비축 기지, 밀가루 공장 등은 특별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경우다. 석유 비축 기지가 생긴 이유는 오일 쇼크 때문이었고, 밀가루 공장은 먹고 사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들은 당대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저장해두는 장소였으나 건축사적으로는 의미가 적었다.

그런데 산업에 기반한 경제 논리가 절대적 가치였던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이제는 문화의 가치에도 눈을 떴다. 그러면서 산업유산 공간을 다시 살펴보고, 여기에 동시대 사람에게 낯섦, 새로움을 줄 수 있는 시설이라는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부 산업유산이 문화 비축 기지나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 30년 뒤에는 공동주택이 리노베이션의 좋은 재료로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그걸 어떻게 바꿔내는가는 그 시대 건축가에게 달려있다.

주어진 조건에 맞는 새로운 발상

김경도 문화비축기지, 대선제분 영등포공장, 그리고 몇 번의 공모전들로 인하여 사무실의 방향이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치우친 것처럼 보여지는 것 같다. 하지만 특정 분야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도시재생 분야에서 문화비축기지 프로젝트를 하며 많이 성장했고, 그 덕분에 대선제분 프로젝트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문화비축기지에서 배운 것을 대선제분 작업에 접목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선제분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덕분에 앞으로 비슷한 성격의 일이 들어올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비슷한 유형의 프로젝트를 다시 맡게 되었을 때, 이전 경험을 의도적으로 반영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보다는 주어진 조건에 맞춰서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방식을 지향한다. 그러다 보면 분명히 지금 작업과 나중에 할 작업 사이에 맥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전 작업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당인리 문화공간 조성 설계공모 출품 패널
잠실종합운동장 리노베이션 설계공모 출품 패널
광주대표도서관 설계공모 출품 패널

구상하는 조직의 모습

각자 다른 개성을 지닌 건축가 집단이기를

김경도 건축가 집단이고 싶다. RoA의 R이 갖는 의미를 설명할 때, 요즘은 “R로 시작하는 단어의 수가 가장 많다”고 하는데, 사무실을 시작할 때는 리좀(Rhizome)의 R이었다. 리좀은 철학 용어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원래 뜻인 ‘뿌리줄기 식물’을 끌어왔다. 뿌리줄기 식물처럼 하나로 연결된 집단이지만 각자의 활동도 꾸려 나가는 조직을 구상했고, 건축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고 표현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 전문가로서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새롭게 접근하고 배우고 성장해야 하고, 끊임없이 변화했으면 한다.

개소 이후 10년 가까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가장 좋은 그림은 지금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면허를 따고 독립해서 각자 팀을 이루고 언젠가 같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5년에서 10년 안에는 이런 생각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된다. 나는 독립을 권장하는 편이다. 첫 직원부터 세번째 직원까지는 뽑을 때 “5년 이상 데리고 있을 생각 없으니 유학을 가든 사무소를 차리든 독립해서 너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고 냉정하게 말했었다. 그 말은 솔직히 후회가 된다. 그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사무실에서 너무나 잘해주고 있다.

협업, 대형 프로젝트에 도전하기 위한 전략

김경도 문화비축기지 프로젝트 이후에도 계속 당인리 화력발전소, 잠실종합운동장, 광주대표도서관 등 규모가 큰 현상설계에 도전했다. 그때마다 동년배 젊은 건축가들이 “왜 큰 프로젝트를 하려고 해? 당선돼도 조직이 커지고, 사무실을 유연하게 운영하기 어려워지는데?”와 같은 질문 세례와 함께 여러 조언을 해주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큰 프로젝트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동년배 사이에 만연해 있음을 알게 됐다.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 결국 떨어진다 하더라도 선배 건축가들과 겨뤄볼 수 있는 기회다. 그러므로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위해 우리가 조직을 키우게 되면, 커진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난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뿌리줄기 식물처럼 10인 이하 규모의 사무실이 여럿 모이는 구조를 만들어 4팀이 모이면 40명의 조직, 7~8팀이 모이면 70~80명의 조직과 경쟁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고 싶다.

대선제분 영등포공장 현장 내에 있는 RoA 현장사무실 외부 전경

앞세대의 역할

김경도 앞세대란 책임질 수 있는, 혹은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소장으로서 실무를 진행하다 보면 불합리한 부분이 많고, 전문가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친다. 그런 측면에서 앞세대에 서운한 한편, 우리 직원들이 볼 때는 나 또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입장이다. 돌이켜보면 스스로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시장 변화: 소규모 신축 수요 증가

김경도 최근 설계 시장은 소규모 아틀리에, 젊은 건축가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경기 악화와도 관련이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아파트 위주의 공동주택이 대량 공급되었고, 공동주택을 전문적으로 설계하는 회사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단독주택 설계를 의뢰하는 젊은 건축주가 많아졌고, 덩달아 내 또래 젊은 건축가들의 개소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단독주택 등 소규모 건축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정말 긍정적인 시장변화라고 생각한다. 나의 체감으로는 이 시장은 수요가 꾸준히 있다. 다만 최근 부동산 규제 등으로 다주택 소유 관련 법규가 강화되며 단독주택 설계 수요가 일부 줄었다. 대신 용도가 변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택 용도가 없는, 상가 임대 목적의 소규모 근린생활시설이 늘었다. 주택을 여럿 소유하고 있다가 이번에 처분하고 그 비용으로 땅을 사서 상가를 세우겠다고 의뢰한 분들이 꽤 있다. 신축도, 리모델링도 많다.

아이디어 제안,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김경도 말과 행동이 앞서기 전에 건축가 개인의 성장이 우선되어야 한다. 건축가가 실력을 키워 점차 더 나은, 더 좋은 건물을 짓게 된다면, 건물 스스로 사회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건축은 당연히 공공재고, 그로 인한 사회적 역할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사회에 순기능을 할 수 있는 건물을 지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건축가가 사회적 발언이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건축가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행동한다면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변화는 단순히 건축법을 개정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건축의 질, 문화, 어쩌면 사회 전반적인 틀까지도 바꿀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한편 사회에서 건축가에게 어떤 문제 상황에 대한 해법을 묻는다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근본적인 가치를 반영한 최선의 방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건축가에게 포스트 코로나 대비에 대한 질문이 많은데, 여기에 발코니나 중정 공간을 해법으로 제시한 답변이 많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법은 결국 거리 두는 방식에 대한 제안이기 때문에 아쉽다. 우리가 공간을 구성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온 것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래서 건축이 이런 사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다른 접근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곤 한다.

예를 들면 전염병이 확산되면 학교가 문을 닫고, 공공시설도 일부 기간 문을 닫는다. 그런데 그럴 것이 아니라 건축 분야에서 공공건축물을 치료시설, 요양시설 등 긴급 시설로 전용할 수 있도록 돕는 간단한 장치를 제안해야 한다. 특히 학교는 병원과 상당히 유사한 구조다. 그러므로 건축가들이 설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면 새로운 대처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와 유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지금처럼 이렇게 거리 두기만을 강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물론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거리 두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 아쉽다.

실무 교육의 맹점

김경도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들에게 ‘왜 이건 학교에서 안 가르쳐 줬지?’, ‘배운 것과 실무는 전혀 다르네?’와 같은 불만이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런데 나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여기는 입장이다.

실무는 학교에서 가르칠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없다. 실무에 해당하는 행정, 법이 시시각각 바뀌기 때문이다. 지금 3년 차인 친구가 1년 차 시절 했던 프로젝트와 유사한 프로젝트를 하는데도 법규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실무는 결국 이런 것들을 어떻게 적용하고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다. 상황 별로 유연하게 사고하는 방법은 이미 설계 수업을 통해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학생일 때도 그랬다.

학교에서 실무에는 A 다음에 B고 B 다음에 C라는 과정이 있다는 식으로 가르쳐줘서도 안 되고, 가르쳐줄 필요도 없다. A 다음에 갑자기 C가 올 수도, D가 올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지금의 건축 교육은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한다. 건축적 수준은 논외다. 교육 방식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인터뷰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RoA Architects

RoA의 김경도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후, 스위스취리히연방공과대학(ETH)에서 수학했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RoA Architects의 대표이며 한양대학교 건축학부의 겸임교수로 출강 중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문화비축기지, AU 타워, 광화문 공(共)터 등이 있으며, 현재 대선제분 영등포공장 리노베이션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 개소 연도: 2011년
  • 주로 활동하는 도시: 서울
  • 현재 인원: 9명
  • 프로젝트 수주 비율
    (현황) 민간과 공공(현상설계, 참여작 모두 포함) 75% : 25% / 신축과 리노베이션 78% : 22%
    (희망) 민간과 공공(현상설계, 당선작 기준) 80% : 20% / 신축과 리노베이션 80% : 20%
  • http://roa.kr

RoA

분량6,524자 / 13분 / 도판 5장

발행일2021년 7월 2일

유형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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