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v26-cover-emergingarchitects/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피그

이주한

실무 경험: 기획부터 조직 운영까지

이주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에 입사해 현상설계 전담부서에만 3년 반 정도 있었다. 한 달에 마감을 서너 개 할 때도 있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디자인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다 보니 ‘정예부대’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한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미 누군가가 모든 규정을 만들어 놨고, 난 정해진 틀안에서 주어진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손일 뿐인가?’ 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기획’에 대한 갈증이었던 것 같다. 현상설계가 기획 영역에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지는 누군가가 정해 놨고, 왜 거기에 해야 하는지 모른 채로 설계하고, 프로그램과 설계 방향도 다 정해져 있고, 나는 그 틀안에서 끼워 맞추기 식으로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대형설계사무소라서 더 그런 느낌이 심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형태나 이미지에 치중할 때가 많았다. ‘그렇다면 공공 프로젝트든 민간 프로젝트든 기획 단계의 일은 도대체 언제 누가 어디서 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기획이 건축의 시작이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하는 갈급이 점점 심해졌다. 3~4년 차쯤 되었을 때니 그런 생각을 할 시기가 오기도 했었다.

그때쯤 삼성물산이 자체 개발 사업을 해외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회사 운영 전략을 세우고, 기획 단계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내 엔지니어 풀에서 인력을 선발하고 사업 기획자, 투자자, 그리고 설계, 디자인하는 사람들을 모았다. 그렇게 팀을 만들어서 건물이나 도시의 기획 단계부터 시공, 운영까지 전 과정을 다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주변에서 거기에서 일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했고, 삼성물산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가서 보니 실제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력하는 일이 아주 많았다. 사업을 기획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어떤 논리로 일을 만들어가는지 배웠다. 그 과정에서 그걸 어떻게 건축적으로 번역할 수 있는지를 서로 협의했고, 엔지니어가 초반부터 같이 논의했다. 역동적으로, 즐겁게 일했다. 그렇게 한 3년 정도 지났을까, 회사 CEO가 바뀌었다. 그러자 “그렇게 일해서 실제로 성과 난 것도 없지 않나”, “원래 하던 것만 잘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점차 내가 속한 부서의 역할이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삼성물산이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를 인수했다. 나는 삼우설계 인수관리팀으로 가게 됐다. 그 팀에서는, 설계사무소가 어떠한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야 하고, 내부 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고, 그에 따른 사업은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지 등을 고민했고, 이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해 삼우설계와 논의하는 식의 일을 했다. 건축 설계 산업에 관한 고민을 해 볼 수 기회였고, 좋은 경험이었다. 한편으로는 잔인한 일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인수가 마무리된 뒤 삼성물산에 복귀해서도 삼우설계를 관리하는 일을 이어 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삼성물산의 사업전략을 수립하고 기획하는 부서로 옮길 것을 권유받았다. ‘내가 저기로 옮기면 아예 인생이 달라질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뜻밖의 독립

이주한 그즈음 우연히 아틀리에에서 일하던 친한 대학 동기 둘을 만났다. 이야기하다 보니까 다들 다니는 회사에 뭔가 불만들이 있었고, 다른 걸 할 수는 없는 건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한 친구에게 갑자기 프로젝트가 생겼다. 그 친구가 “이런 일이 생겼는데 이거 한번 해볼래?”하고 제안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셋이 개업하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나는 한 번도 내 설계사무소를 열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었다. 개소하기 직전까지도 ‘삼성물산 설계팀에 계속 있어야 하나? 그럼 해외 현장도 한 번 가야 할 텐데… 해외 현장이라면 사우디로 가게 되나? 아니면 사업기획부서로 옮겨서 새로운 일을 해야 하나, 유학을 가야하나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했었다.

밝은 다세대주택, 기획으로 풀어낸 작업

이주한 현시점의 대표작은 밝은 다세대주택이다. 일단은 큰 상을 받기도 했고, 해보고 싶었던 영역의 일을 실제로 해본 프로젝트다. 기획 단계, 설계 이전부터 해야 하는 것들, 그리고 설계를 하면서도 설계자로서 역할을 고정시키지 않은 채 조금 더 넓은 영역의 계획을 시도해봤다.

나는 건물만 예쁘게 설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의 태생이 사업성인데, 그걸 ‘저는 모르겠어요’라며 외면하는 것은 태만이고, ‘깨끗하게 지으면’, 혹은 ‘예쁘게 지으면’, ‘형태적으로 튀게 지으면 잘될 거예요’ 하는 것도 무책임하다. 임대를 목적으로 하는 집이니,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 주변 건물들은 다 ‘신축 프리미엄’을 내세웠다. 새 건물이니까 깨끗하고, 그러니 임대료를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주로 분양을 위한 집이어서 사업주 입장에서 분양해 팔면 끝이니 신축 자체를 장점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그건 바로 옆에 또 새 건물 생기면 6개월 만에도 사라지는 가치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사업주가 건물을 장기적으로 소유하면서 임대가 지속해서 잘 돼야 하는 집이다. 신축 프리미엄은 말이 안 됐다. 그래서 공간의 질을 더 높여 쾌적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놓는다면, 바로 옆에 ‘깨끗하기만 한’ 신축 주택이 생겨도 임대가 잘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 다세대주택에 살았던 적이 있다. 거기에서 겪은 일을 생각해보면, 건물 입구가 주차장 한가운데 있어서 차들 사이를 비집고 공동 현관으로 들어갔던 기억, 주말 새벽에 차 빼 달라고 전화 오면 내려가야 했던 기억, 집 내부는 항상 어둡고 환기도 잘 안 됐던 기억이 있다. 그런 것들로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세대 유형을 만들었다. 수익률 관련해서는 정확한 수치를 낼 순 없지만, 일단 임대가 잘 된다는 이야기를 근처 부동산을 통해 전해 듣고 있다. 사업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건축적으로 시도하고 실제로 구현해냈다는 데에 이 프로젝트의 의미가 있다.

밝은 다세대주택 전경 / 사진: 노경

구상하는 조직

조직에 맞는 프로젝트 수주

이주한 나는 피그건축이 소장 개인 작업실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방향이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나와는 맞는 않는 방식이라는 의미다. 여기가 팀원들에게 좋은 직장이 되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 구성원들이 손해 보거나 희생한다는 마음 없이 일하고, 또 자기가 한 일에 충분한 보상을 받고,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계속 같이 뭔가를 만들어가는 구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조직을 만들기 위해 사무실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과 시스템을 많이 고민한다.

그 해결법은 결국 지속적인 수주다. 요즘은 ‘어떻게 수주를 해야 잘 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사무실 현황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 규모의, 어떤 성격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좋을까?’와 같은 생각을 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게,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정한 대가를 받는 일을 맡는 것이 우선이다.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는 첫 번째 방법은 적은 투입으로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사무소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다른 시장, 즉 구조적으로 조금 더 나은 일을 찾아가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둘 다 하고 있다. 어느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다루기에 적정한 규모를 대략 산정하면 연면적 400~500평인데, 이 정도가 팀원들이 프로젝트를 무리 없이 수행하면서 회사도 운영할 수 있는 규모다. 앞으로 차차 늘려가는 것이 이상적일 것 같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맡는 것이 사무실 운영이나 생존 측면에서 유리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민간 시장에서는 사실상 큰 프로젝트의 기회가 적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공공 프로젝트를 찾아보게 되지만, 또 여기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순수하게 실력이나 계획안으로 경쟁하기에는 넘기 어려운 벽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런 것들을 뛰어넘는 실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웃음) 좌충우돌하며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만족하는 환경

이주한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있고, 그 안에서 구성원이 만족하면서 다닐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체 운영에 있어서 한두 사람에 의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연차가 쌓일수록 회사나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서 기대하는 바가 다 다를 것 같다. 언젠가 독립해서 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응원해줘야 할 것이다. 소장 입장에서는 한번 연을 맺은 직원과 오래 가는 것이 좋지만, 독립 자체를 나쁘게 보진 않는다. 그런 결심을 했다면 축하해주고,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도울 것이다. 또 누군가는 우리와 일을 계속 같이 하고 싶지만 더 나은 업무 조건과 환경을 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고려할 요소 중 첫 번째는 경제적인 보상일 것이고, 크레딧이나 명확한 업무 범위, 회사 안에서의 역할 등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는 만족도와 직결되는 문제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같이 맞춰 나갈 수 있게 열어 놓았다.

사무실 직급을 사원, 대리, 팀장으로 나눠 놨는데, 팀장이 될 때까지는 정해진 연차와 정해진 코스를 따라 가더라도, 팀장 이후부터는 연봉, 처우 등을 각자 협상해서 정리하는 것으로 원칙을 세웠다. 꾸준히 직원들과 이야기하고, 실정에 맞지 않거나 추가로 필요한 내용은 계속 업데이트를 한다. 여러 가지를 고려하며 우리에게 적절한 시스템과 운영 방법을 찾는 중이다.

프로젝트 운영 시스템

이주한 시스템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치 공장처럼 누가 들어오든 똑같은 결과물이 나오고, 그 체계에만 적응하면 자동으로 결과물이 나온다는 의미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아니다. 내가 시스템이라 표현하는 운영 방식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일하는 방식을 맞춰 나가는 것이다. 또, 이건 내 프로젝트, 저건 네 프로젝트라고 구분하지 않고 어떤 순간에는 한 프로젝트를 다 같이 하다가도 전담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업무 전환 과정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담당이 바뀌는 것도 서로 부담이 없도록 하고 싶다. 회사에서 돌아가는 모든 프로젝트는 우리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함께하는 분위기와 그렇게 일할 수 있는 체계를 찾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전체 프로젝트 현황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공유하려고 한다. 당연히 담당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정보를 받아들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 어떤 일이 돌아가고 있고, 이 프로젝트에는 어떠한 이슈가 있는지 등 업무 진행 상황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방식을 계속 찾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보가 공유되어야 따로 또 같이 일하는 방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기적인 회의도 하고 메일도 다 같이 공유하고 메신저상에서 돌아가는 일을 계속 기록하고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모든 업무 상황을 알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또 한편으로 사무실 안에서도 서로 “이 프로젝트에 이 업체랑 같이하는 거 어때?”, “이 제품 성능 잘 모르겠는데, 혹시 써본 사람?”과 같이 자유롭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완전히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다양한 레벨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 공유되고 섞여야 유연한 조직의 시스템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팀 내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방법들

데이터베이스 구축

이주한 개소 이후 가장 아쉬웠던 점은 우리의 데이터베이스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많이 경험해보지 않은 용도의 건물을 설계할 때, 관련 법규를 검토하긴 하지만 어떤 법규는 존재조차도 모른 채 담당 관청에 허가를 넣는 경우가 있다. 때론 공무원에게 배우기도 하고, 좌충우돌하며 찾아간다. 그런 과정이 재미있기도 하나, 결코 편하거나 쉽진 않다. 그리고 그걸 팀원에게 일일이 챙기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래서 특이하거나, 어렵게 정리해낸 사례가 등장하면 나중을 위해 정리만이라도 잘 해두자는 생각이다. 내부 문서 양식도 어느 정도 갖춰졌다. 관련 법규를 하나의 문서 파일에 다 옮겨 두고,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부분에 하이라이트를 한다. 법규의 체계, 즉 상위법, 하위법, 관련법 순으로 정리를 해나간다. 처음에는 부분 발췌하는 식으로 내용을 모았는데, 다음 프로젝트 법규 검토를 하다 보면 해당 법규의 다른 조항을 검토해야 해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더라. 그래서 이제는 차근차근 찾아보는 용도로 생각하고 프로젝트마다 관련 법규 전문을 정리한다.

지향점: 다양하게 넓게

이주한 다양한 종류, 다양한 범위의 일을 하고 싶다. 예를 들어 도시재생 일 중에는 실제 건축설계까지 이어지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 보고서로 끝나는 일도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도시계획 차원에서 건물 계획이나 마을 단위의 계획도 해보고 싶다. 또 학술연구용역, 건축기획 용역도 계속하면서 범위를 좀 넓히고, 건축 안에서도 다양한 일을 하고 싶다. 다양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가진 유일한 기술, 공간을 다루는 기술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주 내에 있다는 생각으로 접근한다.
현재 사무실 인원은 나까지 일곱 명인데, 보통 아틀리에가 하는 일의 범위보다 굉장히 넓은 폭으로 일을 하고 싶고, 그러려면 인력 구성이 조금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앞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조직을 최대한 빨리 만들고 싶다. 물론 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그럴 만한 여건이 되는가의 문제도 있다.


시장 변화: 소규모 신축 수요 증가

이주한 우리가 처음 개소한 2015년만 해도 젊은 건축가들이 많이 독립해 사무소를 열었다. 당시 경제 상황을 돌아보면, 그때부터 금리가 매우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동산에 돈이 많이 풀렸고, 민간 영역의 개인 건축주가 많이 생겼다. 우리도 이러한 시장 변화의 혜택을 받아 프로젝트를 여럿 했다. 작은 사무소, 젊은 건축가에게 차례가 올만큼 일이 넘쳤고, 덩달아 개인 건축주의 다세대주택 품질이 급격하게 올라갔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정부 정책이나 사회 분위기가 부동산을 압박하다 보니 개인들이 쉽게 “건물 지어볼까?”하는 마음을 먹기 힘들어진 것 같다. 자연히 일 자체가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때는 작은 집을 짓고 싶은 개인 건축주는 동네 집장사집을 찾아가거나, 아니면 ‘잘 지어보고 싶은데 누구에게 가야 하지?’, ‘젊은 건축가들 잘한다고 하는데 한번 같이해볼까?’ 고민하다가 막 시작한 젊은 건축가를 찾는 일이 꽤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경험이 쌓인 젊은 건축가 레퍼런스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러니 굳이 검증되지 않은 신생 사무실에 가기보다는 이런 프로젝트를 많이 다뤄본 곳과 손을 잡는 게 당연하다. 이미 건축가 풀이 형성된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팀에게는 더 가혹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2015~2016년에 우리가 헤쳐나갔던 방식이 2021년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은 각자가 또 다른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하고, 게다가 새롭게 시작하는 상황이라면 5년 전과는 다른 생존 방식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도 전략을 짜 놓고 그 방향으로 끌고 온 것은 아니지만, 생존에 관한 생각을 지속하다 보니까 이렇게 흘러온 것 같다.

기획, 도시계획 영역으로의 확장

이주한 우리는 공간을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걸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히고 싶다. 건물 설계 과정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계획 설계, 기본 설계, 실시 설계, 감리 등 단계가 나뉘어 있고 건축가 대부분은 이 영역 안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의 시작에는 기획이 있다. 나는 늘 기획에 관심이 있고, 재밌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건축가가 관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보니 다음 단계에서 문제가 벌어지는 것을 왕왕 본다. 요즘 들어 기획 단계에서도 건축가가 참여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생겨나고 있고, 우리 기술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확장될 여지도 있는 것 같다.

또한, 도시재생, 도시계획 등 분야에서도 처음에는 도시계획 분야 인력이 일을 주도했지만, 그것도 최종적으로는 건조 환경을 실제로 구축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까 공간을 만들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쪽에서도 일해보려 한다. 이처럼 우리 업무 영역을 건물 설계로 국한하지 않고, 넓히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건축의 사회적 역할? 설계!

이주한 결국 건물을 잘 만들어야 한다. 건물을 잘 만든다는 의미는 건물 내부 공간 조직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다. 형태도 물론 중요하고 경관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물 내부 공간의 구성, 배치, 프로그램은 결국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방식, 사회적인 여건을 반영한다. 밝은 다세대주택도 요즘 1~2인 가구의 임대 세대, 청년 주거 현실을 반영한다. 이처럼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건축이 하는 일이다. 그걸 잘하면 그게 민간이든 공공이든 상관없이 가장 큰 사회적인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건물이 현실과 맞지 않아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를테면 법적 용도가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용도와 맞지 않아서 의도치 않게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문제를 건축적으로 풀어내 건물을 잘 만드는 것이 건축가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임무이고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인터뷰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피그 건축사사무소

주요 작업은 밝은 다세대주택(2018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VT 하가이스케이프(2017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가 있고, 최근 성거 입장 다목적 체육관(2021), 중구 평생학습관(2020), 연천군 다목적복지센터(2020), 홍성복합문화창업공간(2020) 등의 설계공모에서 당선했습니다. 이주한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와 삼성물산에 근무했고, 2015년 피그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습니다. 대한민국 건축사이며, 서울시 공공건축가입니다.


  • 개소 연도: 2015
  • 현재 인원: 7인
  • 프로젝트 수주 비율
    (현황) 민간 신축 50%, 공공 신축 30%, 공공 리모델링 10%, 학술연구 5%, 도시재생 5%
    (희망) 민간 신축 30%, 공공 신축 30%, 민간 리모델링 10%, 공공 리모델링 10%, 학술연구 10%, 도시재생 10%
  • http://f-i-g.kr

피그

분량8,984자 / 18분 / 도판 6장

발행일2021년 6월 29일

유형인터뷰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