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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머티브

고영성, 이성범

우연한 기회에 독립

고영성 솔토건축에서 실무를 시작했고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대형설계사로 옮겼지만 큰 규모의 회사가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프로젝트를 받아서 독립하게 됐다. 처음에는 인테리어부터 직접 시공까지 다양한 일을 했다. 현장에서 시공할 때 기능공 옆에 붙어 지내다 보니 사무실에 앉아있을 때보다 실무를 많이 익힐 수 있었다.

그렇게 몸으로 부딪치며 혼자 작업하던 차에 우연히 제주도 프로젝트가 하나 들어왔다. 돌집을 고쳐 스테이로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젊은 대표님들이 운영하는 가구 회사 카레 클린트(Kaare Klint)와 숙박 회사 토리코티지(TORi Cottage)가 공동으로 추진했고, 내가 건축 부분에 협력했다. 그 프로젝트가 성공하면서 점차 일이 늘어났고 회사가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쯤 학교 선후배 사이로 가끔 연락하던 이성범 소장을 자주 만나게 됐고, 2016년 이 소장이 함께 일하게 되었다.

이성범 나는 공간건축 2009년 신입사원이었고,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경기도청사 같은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하는 부서에서 굵직한 일을 많이 했다. 그러다 회사가 기울자 큰 회사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기에서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품질관리팀(QC팀, 실시설계 관리)의 친한 동료에게 물어가며 채워 나갔다. 그런데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하고 바로 아틀리에로 옮겼다. 아틀리에 두 군데를 거치며 소장급이 되었고, 그 단계에 고 소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합치게 되었다. 같이 일한 지는 이제 5년 정도 되었다.

실무 경험

존중받으며 재밌게 일하는 법

고영성 나는 실무를 통해 재밌게 일하는 법을 배웠다. 조남호 소장님의 인품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훌륭하시다. 앞으로 내가 소장이 되면 그런 마음가짐과 태도로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리고 어떤 프로젝트를 해야, 어떤 식으로 일을 해야 건축가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지를 많이 보고 배웠다. 작업방식에서는 목구조 활용법을 많이 보고 배웠다. 지금 작업할 때에도 그때 배운 걸 종종 쓴다. 목구조를 전혀 모르는 분들 보다는 활용 범위가 넓다.

두 번의 아틀리에 셋업 과정

이성범 큰 회사가 좋았던 점은 사람을 많이 알았다는 것이다. 내가 공간건축에 다닐 때만 해도 인원이 700~800명 정도였다. 게다가 나는 신입 사원 회장을 맡아서 다양한 부서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았다. 업무적으로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들을 담당하면서 프로젝트의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고, 큰 규모의 프로젝트 운영 방식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게 좋았다.

작은 회사로 옮기기가 쉽진 않았다. 큰 회사의 시스템과 작은 회사의 시스템은 명확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내가 거친 두 아틀리에는 막 시작하는 단계였다. 처음에 사무 공간을 같이 고르고, 사무소의 방향성도 같이 만들고, 모든 것을 셋업하는 과정을 두 번 겪었다.

그러면서 느낀 점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근무 여건이 가장 문제였다. 설계 집단은 대부분 박봉에, 야근이 기본이다. 아무래도 노동집약적인 직업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효율적으로 일할 방법은 분명히 있는데, 이전 사무소들은 그런 부분에 무관심했다. 그래서 내가 만약 사무소를 운영하게 된다면 열악한 근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정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도 직원 복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 근무 여건에 대해 항상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갖춰진 상태에서의 작업 효율과 결과는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의 결과물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런 점을 신경 써야만 회사 운영 관리도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과거의 경험으로 배웠다.

작업 방식

주택: 공감의 접점 찾기

이성범 우리는 건축주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가 마련한 설문지에 답을 작성해오도록 숙제를 준다. 궁극적으로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를 묻는 것인데, 집에서 어떤 행위를 하고 싶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싶은지를 다시 생각하고, 그 집에 함께 살 가족이 함께 이야기하도록 유도한다. 어떤 분들은 스케치로 답했고, 수필을 쓴 분도 있었다. 답변을 보다 보면 우리 생각과 접점이 있다. 때론 답변으로부터 어떤 심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면 그런 부분을 건축주와 집중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집의 이상향과 우리의 이상향을 같이 맞춰간다.

스테이: 재미와 상징 추구

고영성 주택이 아닌 다른 유형에서는 좀 더 재미를 추구한다. 스테이는 주택과 굉장히 비슷해 보이지만 성격이 전혀 다르다. 보다 상징적으로 디자인하는 편이다. 그 주변에 없는 것들을 찾아내 시도하고, 공간을 재미있게 풀어보려고 노력한다. 더 과감해도 되고, 더 자유롭지만, 한편으론 조심스럽다. 사업성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범 스테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는 계약 후 초기 사업 분석을 한다. 예를 들어 정해진 대지와 예산이 있다면, 이 지역에서는 20대 혹은 30대를 타겟으로 삼고, 몇 개의 동, 어느 정도 평형에 어떤 실로 구성해야 잘 될 것이라는 분석을 기반으로 설계안을 꾸려간다.

때로는 업무 범위가 대상지 선정까지 확장되기도 한다. 의뢰인이 여러 개의 후보지 중에 어디가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면 입지 조건 분석을 대략 해드린다. 이런 과정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결과에 자신 있다. 이 자신감은 좋은 건축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으로부터 온다. 요즘에는 아무리 대지 조건이 나쁘고 경관이 좋지 않더라도 건축 공간이 좋으면 예약이 꽉 찬다. 결국 공간에 집중해야 한다. 단순히 멋진 조형을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형과 내부 실과의 관계, 그리고 재료와의 적절한 조화 안에서 건물을 설계한다. 멀리서 보면 개념이 눈에 띄고 내부로 들어가면 디테일이 보일 수 있게끔 만들려고 노력한다.

고영성 스테이를 찾는 20~30대의 취향은 의외로 스펙트럼이 넓다. 자기가 겪어보지 못한 과거의 낭만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뉴트로 스타일을 찾는 한편 럭셔리한 공간을 좋아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늘 고민하는 것은 특정한 이미지의, 인스타그래머블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신경 써야 할 것인가, 아니면 공간 그 자체에 집중할 것인가다. 이러한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다.

이성범 하지만 건축 공간에는 영속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간 자체의 매력을 살리는 것에 집중하고, 인테리어 디자인에 트렌드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며, 스타일링까지도 모두 맡아서 진행한다. 대부분 건축가가 가구나 소품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건축 공간과 어우러지는 인테리어 요소를 갖추어 하나의 완결된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가 진행한 스테이는 실제 예약률이 다 높다. 이처럼 성공한 사례를 보고 찾아온 분들에겐 설계비를 많이 받을 수 있다. 사업성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젝트이고, 우리의 선례가 수익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스테이는 여러 측면에서 재밌게 하는 작업 중 하나다.

삼달오름과 월든하우스, 따뜻한 공간

이성범 대표작이라 생각하는 첫 작업은 제주에 있는 삼달오름이라는 스테이다. 두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번째 작업은 곡성에 있는 단독주택 월든하우스다. 월든하우스는 단층의 건물이고 삼달오름은 단층이지만 실이 하나 올라와 있다.

고영성 둘 다 실내 공간에 따뜻한 느낌이 있다. 스테이라고 해서 세련되기만 하고 딱 떨어지는 설계만 하는 건 아니다. 위치나 지역에 따라서 지향하는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때그때 그 땅이 갖는 힘을 반영한다.

제주 삼달오름

지향점

가볍거나 진지하거나

고영성 우리는 프로젝트에 따라 매우 가볍거나, 대단히 진지하거나 둘 중 하나다. 양극단을 가로지르는 특성은 우리가 설계한 건축물뿐만 아니라 건축을 대하는 자세에도 드러난다. 땅집사향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요앞건축의 류인근 소장이 “밖에서 만날 때는 두 분이 굉장히 재미있고 가벼워 보이는데, 발표 내용을 들어보면 진지하고, 정색하면서 말한다”고 평했다. 우리의 이중적인 모습을 짚어준 것인데, 건축을 논할 때 가볍고 재미있게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실전에 돌입했을 때에는 둘 다 진중하다. 사실 일에 있어서의 고뇌는 사람들이 모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공개된 자리에서 우리가 진지한 태도로 건축적인 이야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낯설어하는 듯하다. 건축 자체가 가볍거나 대충할 수는 없는 일이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우리 안에 전혀 다른 두 단어가 공존하는 것 같다.

친근한 건축

이성범 우리는 건축을 쉽게 이야기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함으로써 나름대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 아카데믹한 방식의 접근이나 현학적인 어휘는 건축계 내부에서 논의할 때 쓰면 된다. 우리의 유튜브 채널은 일반인과 이제 막 건축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에게 건축이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는 분야라는 걸 알리고, 그들이 건축에 쉽게 다가오도록 이끌기 위한 도구다. 그래서 거기에서는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고 최대한 쉽게 풀어내고 있다. 또한 이런 노력을 함으로써 건축가는 건물을 짓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제안해주고, 좋은 집을 만들어줄 수 있는 친숙한 존재이자 전문가라는 이미지를 심고 싶다.

고영성 건축주와의 미팅에서 쉽게 설명한다고 했는데, 상대방이 가끔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끼리는 익숙하게 쓰는 용어인데 보통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렵고 낯선 말이 많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우리가 취한 방법은 공간에서 하는 행위를 상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공감대가 형성된다.

준비 중인 유튜브 콘텐츠 중에 우리가 했던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도 있다. 이때에도 마찬가지로 직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바꾸어 전달하려 한다. TV나 유튜브와 같은 영상 매체를 활용할 때는 자기 지식을 뽐낼 것이 아니라, 소개하는 건물에 실제로 사는 사람들, 혹은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 대해 진심 어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다.

언제나 새로운 접근법, 매번 다른 결과물

고영성 우리는 특정한 스타일을 추구하진 않는다. 때에 따라서, 지역과 대지 조건에 따라서, 또는 건축주의 상황에 따라서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려 하고, 결과물은 매번 달라질 수 있다.

이성범 우리는 건축주마다, 땅마다 특성이 다 다르듯이, 작업의 이미지나 거기에 들어가는 공간의 성격도 다 다른 게 맞다고 생각한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달라지는 조건에 맞춰가며 대응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게 우리의 정체성일 수도 있다.

어떤 건축가는 자신만의 디자인 어휘를 쓰거나 특정한 패턴을 써서 건물을 딱 보면 그의 작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강박감이 없다. 그런 걸 원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작업에 일관성을 유지하는 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프로젝트에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며 작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고영성 땅도, 건축주도 다 다른데 어떻게 비슷한 건축을 설계할 수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재료의 다양성

고영성 우리는 JYA나 요앞건축, 조한준 소장 등 또래 건축가와 꽤 교류하는 편이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설계할 때 고민하는 내용이 대부분 비슷한 것 같다. 사용할 수 있는 재료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니, 주어진 예산 안에서 어떻게 변주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경우가 다수다. ‘건축가들이 재료를 공동 개발하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고 한다면, 결국 그 그룹이 설계한 건물의 인상이 비슷해진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할 때 우리가 들인 노력을 100% 인정받아야 하는데, 재료 개발이라 하더라도 공동으로 진행한다면 크레딧을 나눠 갖게 된다. 무언가를 공유하기 시작하면 가치가 반감된다.

이성범 디자인은 독창성을 기반으로 하는데 그걸 공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어떤 재료를 개발하거나 선택해 적용하는 그 자체로 건축가의 실력, 노하우, 안목을 보여주는 기준이 될 수 있다.

건축하고 싶은 여건 만들기

이성범 최근에 고민을 많이 하는 것 중 하나가 사무실의 존속이다. 건축가는 영업이 가능한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늘 클라이언트를 기다린다. 그러므로 사무실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첫 번째 방법은 스테이를 직접 운영하는 방식이다. 우리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자신 있다.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그걸 유지관리 할 수 있는 업체에 위탁 운영을 하고 우리는 브랜드의 가치를 키워갈 것이다. 지금 첫 프로젝트의 토지를 구매하는 단계다. 그렇게 함으로써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그로부터 사무실에서 필요한 운영 관리비, 급여를 충당할 수 있게끔 할 것이다.

그리고 사무실 운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프로젝트 유형은 현상설계, 개인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 대기업 일 등이다. 현상설계는 아직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지만 큰 금액대의 프로젝트들을 장기간동안 진행하며 안정적인 수익원이 창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일이기 때문에 꼭 해야 한다. 한편, 대기업 일이나 개인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는 의뢰가 있다. 각 분야의 일들을 지속해서 수주하고 유지 관리가 가능하다고 하면 프로젝트 하나가 흐지부지되더라도 전체 운영에는 무리가 가지 않는 기반을 다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계획이 있어야 뿌리를 탄탄하게 내려 건축을 계속할 수 있다.

고영성 전체 프로젝트 수뿐만 아니라 업무 분배에도 신경 쓰고 있다. 저연차에게는 현장 지원, 계획 등 2개 프로젝트를, (부)팀장급 고연차에게는 3개 정도를 맡긴다. 만약 배당 받은 업무가 과해서 힘들면 우리에게 빨리 이야기하고, 피드백 달라고 얘기한다. 그래야 바로 조정할 수 있다.

이성범 실무는 담당자가 온전히 처리하되, 소장은 일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분배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고영성 인원이 조금씩 늘어나다 보니 직원 처우에 더욱 신경쓰게 된다. 비슷한 규모의 다른 사무실들보다는 급여를 더 많이 주고, 휴가 등 근로조건을 규정에 따라 지킬 수 있도록 하나씩 차근차근 바꿔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추가해서 직원들이 대형설계사의 복지만큼, 또는 그 이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 그래서 다 같이 행복하게 건축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다.

이성범 그러려면 설계비를 많이 받아야 한다.

고영성 우리는 직원들에게도 늘 “설계비 많이 받아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나중에 독립해도 직원들에게 너희가 경험한 이상으로 잘해줄 수 있고 여러 가지 혜택을 줄 수 있다. 그래야 후배들이 건축하고 싶어한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성범 그래서 우리는 설계비나 운영에 관련된 부분을 구성원에게 다 공개한다. 직원들도 앞으로 일을 지속하려면 세세한 내용까지 다 알아야 하고, 대가와 비용에 대한 감을 잡아야 그들도 대우받으면서 설계할 수 있다. 그걸 숨기고 소장들끼리만 이야기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여담으로, 우리는 일정 기간에 한번씩 설계비를 올린다. 그 과정에서 회사 사정이 매우 힘들었던 적이 몇 번 있다. 지금이야 사무소에 일이 많아 보이지만, 반년 이상 일이 끊긴 적도 있고, 카드론 받아서 직원 급여 드리고, 그러다가 ‘설계비를 좀 내릴까’하는 유혹에 휩쓸릴 뻔 했다. 하지만 그 고비를 견디고 우리의 기준을 고수하니까 시장 가격이 형성되었다. 이런 과정은 결코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는다. 기준을 만들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가 버텨내야 후배들의 작업 여건과 설계비 기준이 동반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산과 건물 수준의 상관관계

고영성 예전에는 우리를 찾아오는 건축주 대부분이 비용 등 여러 가지 조건에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 팍팍한 조건 안에서도 조금씩 개선해나가니까 건축주도 점점 달라지고 바뀌었다. 지금은 뭔가를 시도해볼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분들이 온다. 그런 부분은 예전에 비해 나아졌다.

이성범 일을 거듭해 보니 예산이 빠듯한 프로젝트는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이 생겼다. 초기에는 적은 비용이라도 맞춰가며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계를 느꼈다. 우리가 추구하는 공간이나 조형성까지는 구현해내더라도 결국 품질이 떨어졌다. 하자가 빈번히 발생하는 등 유지에 문제가 생겼고, 적절한 기능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완성도 높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공사 금액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래서 지금은 건축주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금액대를 말한다. 설계에 임할 때도 최대 면적에 혈안이 되기보다는 면적을 조금 줄이더라도 집의 전체적인 퀄리티를 올리자는 제언을 하고 그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하니까 프로젝트 질이 상대적으로 좋아지고, 또 그 결과물을 보고 디자인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찾는다. 그렇게 선순환이 되고 있다.

고영성 그렇지만 딜레마를 느끼기도 한다. 우리의 기준에 따르면 돈이 없는 사람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최상의 옵션을 고를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의 인건비와 선택권을 보장하는 규모의 예산이 있다면 건축가에게 의뢰해 더 나은 조건의 공간을 누릴 여지가 있을 텐데, 우리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거절한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싹 틔울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계속 기존의 입장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재능 기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손해가 나지 않는 범위에서 적은 예산의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지 고민이 있다. 하지만 너무 이상을 좇다 보면 사무실 운영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1년에 한두 개, 많으면 두세 개 정도만 그런 성격의 일을 하고, 그 외에는 우리도, 건축주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는 식으로 균형을 잡아가려 한다.


시장 변화: 리노베이션

이성범 요즘 신축 프로젝트보다 리노베이션 프로젝트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리노베이션 작업 문의가 많이 늘었고, 이런 세태를 반영한 M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다큐플렉스 – 빈집살래’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최근 건축 설계 시장 변화의 일면일 수도 있다.

신축 프로젝트도 주변의 자연경관이나 도시적인 맥락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리노베이션은 기존 주택과 도시 조직의 관계를 이어 받아 새 집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주변 환경과의 문제를 보다 실제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빈집 리노베이션 현장에서 절실하게 느낀 부분은 도시재개발이 무산된 지역이나 도시재생지구에는 도시 기반 시설, 특히 소방 설비가 절대적으로 미비하다는 것이다. 많은 건물이 밀집된 공간인데 그런 것들을 확충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생을 거론한다면 일의 순서가 뒤바뀐 것 아닐까. 도시 기반을 먼저 닦은 뒤 건물 재생이 이뤄져야만 하고,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병행되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관에서 복잡한 제도와 행정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건축 설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시장 변화에 따라 기존 건축물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재생산해 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 것이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여력의 문제

고영성 건축가의 사회적인 역할은 중요하고 그에 대해 논하자면 끝도 없다. 하지만 그것만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건축가들이 많진 않다. 우리만 해도 어느 정도 사무실이 돌아가니까 공공의 가치에 주목하는 프로젝트나 도시재생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력이 되지 않는 건축가들이 더 많고,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그런 일에 관심을 두지 못한다. 이런 부분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오히려 역으로 건축가들에게 공공 (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의무적인 짐을 지워주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좋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어느 시나 지자체에서 도시재생을 계획한다면, 건축가 풀을 활용하되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괜찮을 것 같다.

우리가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재생하는 것은 결국 삶의 재생, 사람이 사는 장소의 재생이다. 그러니까 그런 내용을 기획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건축가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MBC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는 기간이 아주 짧아서 많은 건축가가 거절했다. 우리도 처음에는 힘들 것 같다고 거절했었지만, 마음을 바꾼 이유 중 하나가 이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을 끌어들여야 하는 상업적 성격의 재생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살게 될 공간을 재생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통해서 건축가의 참여를 통한 삶의 재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인터뷰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

고영성은 한양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솔토건축사사무소와 디자인연구소이엑스에이 소장을 거쳐 포머티브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이성범은 한양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를 거쳐 포머티브건축사무소 공동대표로 합류했다. 주요 작업으로는 곡성 월든하우스, 제주 스테이 삼달오름, 원주시 로톤다, 강릉시 지안이네 등이 있다.


  • 개소 연도: 2014년
  • 주로 활동하는 도시: 서울, 제주
  • 현재 인원: 10인 (소장 2, 직원 7, 인턴 1)
  • 프로젝트 수주 비율
    (현황) 민간 신축 65%, 민간 증개축 20%, 도시재생 5%, 공공 증개축 5%, 전시참여 5%
    (희망) 민간 신축 40%, 민간 증개축 20%, 도시재생 10%, 공공 신축 15%, 공공 증개축 5%, 전시참여 10%
  • http://formativearchitects.com

포머티브

분량10,416자 / 21분 / 도판 7장

발행일2021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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