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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 보드 현장 이야기

최상웅

정림건축문화재단은 해비타트, 해외 집짓기 프로그램등을 통해 건축을 통한 사회봉사를 실현하고 있다.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을 위한 지역 환경 개선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앞장서는 건축가 및 단체를 후원했다. 그 일환으로 지속가능한 건축과 교육을 실천하는 건축가 단체인 옐로우 보드 Yellow Board 의 라오스 붕파오 마을 어린이 도서관 프로젝트를 후원했다.

완공된 ‘라오스 어린이 도서관’ / 사진: 남궁선

나무 구하기

라오스에서 쉽게 나무를 구할 수 없어서 도착 3주째가 되어서야 겨우 원하는 나무를 구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디자인한 어린이 도서관 건물은 중목구조 시스템으로 설계된 것으로서 나무가 주재료였기 때문에 팀원들 모두가 초조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무를 주재료로 디자인된 건물을 벽돌이나 콘크리트로 설계 변경을 할 수는 없었다. 먼 땅 라오스에 어린이 도서관을 짓겠다고 찾아온 젊은건축가들에게 현지에 계시는 한국 분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다.

옐로우 보드의 건축은 현지의 재료를 이용하여 현지의 기술력으로 현지인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프로세스였지만, 라오스 주민들에게는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많이 사용하지 않는 나무를 주재료로 선택해서 설계했던 점이 가장 아쉬웠다.

기초공사

12월 27일 우리가 처음 공사 현장에 도착했을 때 기초 공사는 거의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디자인 초기 단계에서 기존 마을 회관과 연계된 도서관 건물의 자리는 우리가 설계한 배치도와 전혀 다른 위치에 터 파기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리모델링으로 마을 회관을 오피스로 사용하려던 계획 또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결국, 라오스에 도착한 첫날부터 우리 팀은 거의 패닉상태로 현장을 답사했다.

한국에서 오랜 시간 진행된 디자인과 배치에 대한 고민들은 무시되고, 라오스 현장의 상황은 터 파기를 하고 다시 수정하는 지루하고 고된 작업들의 연속이었다.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 하고 새로운 땅에 기초를 세워 작지만 쓰임새가 있는 건물들로 만들겠다는 우리들의 바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우기가 되면 30cm 이상 물에 잠기는 사이트에서 기초공사는 너무나 중요한 공정이었으며, 이 공정이 끝나야 다음 공정인 철물 접합 작업으로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정확한 수평과 수직 그리고 1m 이상의 높이를 확보해야 하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 중요한 작업을 그 누구도 쉽게 판단하고 시공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땅 위에서 건물의 기초를 시작한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라오스의 진흙 바닥 위에서 기초를 만들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 기초공사 방법을 때문에 고민하면서 보내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우연히 건물 앞에 쓰러져 있는 길이 1m의 콘크리트 배수관을 보게 되었다. 마치 부석사의 일주문 주초처럼 단단해 보였던 그 콘크리트 배수관은 내부가 비어 있지만 철물을 이용하고 다시 콘크리트로 채워서 기초기둥처럼 사용한다면 이번 공사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흙 바닥을 1m 이상 파고 그 안에 콘크리트로 거대한 바위를 만들고, 그 바위 위에 콘크리트 관을 세울 수만 있다면 구조적으로 전혀 문제가 안 될 기초공사라는 것에 모든 팀원들이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고 그 계획은 실현이 되어 콘크리트 배수관을 이용한 기초공사 작업을 라오스에서 실현시킨 최초의 건축가들이 되었다.

라오스 붕파오 마을의 어린이들 / 사진: 남궁선

프레임공사

우여곡절 끝에 기초공사를 마무리하고 건물의 뼈대를 완성하는 프레임 공사를 시작했다. 프레임 공사는 바닥과 벽체 그리고 지붕을 하나로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공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변형된 사각형 형태의 나무 프레임을 하나로 연결하는 작업은 보기에는 분명 쉬워 보였지만, 실제로 시공되는 과정에서 나무들의 상태가 좋지 않아 튼튼한 형태의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끌과 망치를 들고 나무를 가공하는 일은 단국대 대학생들로 구성된 지원 팀과 함께 진행했고, 전체 프레임을 기초 위에 올리는 작업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직접 들어서 고정시켰다. 28개의 기초 위에 나무 프레임이 올라가고 나서야 비로소 전체 공정의 절반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나무가 도착해서 기초공사를 마무리하고 프레임을 올리는 데 2주 정도 소요되었는데 실제로는 대단히 빠른 공사 진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무가 도착하는 시간이 너무 늦어 늦은 밤까지 공사를 진행하기도 했고, 주말도 없는 작업장에서 하나 둘씩 지쳐가는 힘든 시간들이었다. 도서관의 내부공간에서 천장을 바라볼 때 건물 내부의 나무 프레임이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단단히 지어졌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위안을 삼고 다음 공정을 진행했다.

지붕공사

건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디자인 요소는 지붕이었다. 아무리 기초를 잘 만들고 프레임 공사를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지붕의 형태와 재료가 도서관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이 될 거라는 것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또는 우리와 함께한 분들의 판단착오로 지금까지 모든 노력들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원래의 디자인은 함석판과 합판을 이용하는 것이지만, 현지의 사정을 고려하여 너와기와 지붕으로 최종적으로 만들기로 합의했다. 너와기와는 현지 답사를 통해 알아본 재료인데 모던하고 새로운 건물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유용한 재료라 판단되었기에 모두가 시공에 합의했다. 그런데 사정상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으로 최종적으로 바뀌었을 때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지에 도착해서 수많은 디자인 변경을 하고 늦은 시간까지 공사를 하는 고되고 힘든 시간들의 결과물이 너무나도 창피스러웠다. 축사나 마을 창고에 쓰이는 슬레이트 재료를 선택한다는 것은 결국 이 건물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라오스의 어린이들에게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를 선물할 수 없다는 큰 아쉬움도 남는다. 마을 주민들이 지붕공사를 시공하는 내내 팀원들은 아쉬움과 한탄으로 공사의 남은 일주일을 보냈다.

벽면공사

나무구조에서 하방, 중방, 상방 그리고 지붕공사는 중요한 공정 중 하나이다. 그 이유는 벽면공사를 진행하기 전에 건물전체를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주는 작업이 중방, 상방작업이기 때문이다. 중방과 상방을 위한 재료를 만드는 공정은 나무구조로 된 이 건물의 구조적 안전과 연관된 중요한 작업이었다. 물론 이 과정도 쉽지 않았다. 도서관의 모듈과 현지 라오스에 생산되는 창문틀의 크기가 일치하지 않았다. 불가피하게 가공을 하고 중방, 상방을 작업하기로 목수님과 상의하고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또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다. 우리가 생각하는 구조적 방식과 마을주민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달랐던 것이다. 마을주민들은 비싸게 구입한 창문 틀을 자르는 것을 반대했으며 우리의 의견보다 그들의 방식으로 건물을 완성하길 부탁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얀색 나무 마감재료로 벽면이 마감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분명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건물을 구조보강 없이 마감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문제가 생길 거라 단언했다.

비록 우리가 디자인해서 시공을 했을지라도 기초부터 벽면공사까지 많은 부분들이 우리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의지들로 이번 프로젝트가 마감되었다. 첫 해외봉사 프로젝트라는 무거운 임무, 직장을 다니고 있으면서도 오랜 시간 공사를 위해 라오스로 가야 하는 시간적인 부담감을 가지고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실패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물론, 한번에 성공할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현지의 상황도 우리의 상황도 매끄럽게 흘러가지 못했던 점이 가장 아쉽다. 젊은건축가인 우리에게 라오스에서의 경험은 건축에 대한 넓은 시각을 갖게 하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작용할 것이다. 만약 다시 기회가 온다면 이번 라오스 어린이 도서관 프로젝트를 계기로 다시 한번 모두가 공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


최상웅

옐로우 보드 리더

옐로우 보드 현장 이야기

분량3,811자 / 7분 / 도판 2장

발행일2012년 4월 9일

유형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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