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책임을 통해 의식하는 도시에 사는 예술가의 삶
박은선 × 임국화
분량5,233자 / 10분 / 도판 1장
발행일2012년 4월 9일
유형인터뷰
예술가는 왜 도시로 나왔을까?
도시의 삶과 시스템을 무너뜨리기 보다는 구축하기를 제안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도시공간이 하나의 정치, 경제논리의 수단으로 이해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는 Listen to the City의 박은선, 그리고 미술관, 갤러리에서 회자되는 ‘공공’의 의미를 미술 밖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본 Work on Work의 박재용, 장혜진 기획자. 예술이라는 이름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지위와 수직적인 형태를 전복시키며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기록되지 않고 사라지기 직전인 문화와 역사를 직접 경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도시를 상상하는 예술가.
인터뷰 임국화 컨템포러리아트저널 편집자
임국화 예술가가 사회문제에 참여할 때, 현장에서 어떤 위치를 갖나요?
박은선 예술가가 무슨 특권이 있겠나? 도시의 담론이나 방향 같은 것을 건축가들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정도다. 그러니까 특별히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예술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유념하지도 않지만, 어떤 과정들을 분명히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리슨투더시티가 상상하는 예술이라는 것은 모더니즘에서 이상화된 예술, 예술가가 아니라 대중들의 모순들을 이기려고 만들었던 움직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리슨투더시티 안에서도 한두 사람의 힘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 작업하고, 사회의 모순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임국화 이벤트나 행사 중심의 문화예술계에서 4대강, 동대문운동장과 같이 동시대 이슈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관심을 드러낼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나요?
박은선 그건 끝내고 싶지 않아서 안 끝내는 것이 아니다. 4대강 현장에 가보면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는 보통 2~3년 동안 진행된다. 그런데 한두 달밖에 평가를 안 했다. 문화재지표조사에서도 수중지표조사는 안 했는데, 보통 1~2m의 수심 아래 문화재 같은 것들이 많이 숨겨져 있고 어떤 게 숨어있는지 전혀 모르는데 사업을 진행했다. 2월 10일에서야 불법이라는 게 판결이 났다. 그런데 왜 지금인가. MBC 파업 들어갔지, 정권 교체 바로 직전인 지금에서야 무슨 소용이 있나. 이미 강 전체가 완파되어 낙동강은 낙동’호’로 바뀌었다. 물이 흐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2급수였던 물이 현재 4급수 이하로 떨어졌다. 이렇게 심각한 파괴가 일어나고 있는데도 모든 과정에서 어떤 제제도 없었고, 4대강 공사를 하면서 22명의 노동자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문책당하지 않았다.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의 죽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국화 4대강을 통해 ‘지식인의 죽음’을 이야기했는데, 도시의 위기에 대해 경고를 해야 하는 사람들 역시 침묵하고 있지 않나요?
박은선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사회의 많은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창조력을 돈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된 것이다. 창조력을 문화산업의 콘텐츠로 가져가는 것이 사실은 아주 부자연스럽거나 잘못되었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빌바오를 포함한 몇몇 도시의 성공적 사례로 ‘브랜드 도시 만들기’가 유행이 되었다. 그런 브랜드 도시를 만들면서 원래 있었던 문화들이 많이 삭제되었고, 비이성적인 진행을 통해 도시의 모순들이 많이 드러났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도시성을 잃어버린 도시’ 라고 할 수 있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만든 여러 가지 층위들이 있는데, 재개발 때문에 도시의 다양한 층이 삭제된다. 전지자적 시점에서 도시를 만드는 과정 속에는 뭔가를 없애야만 세울 수 있는 잔인한 과정을 많이 거친다. 그런 것들이 만드는 부작용 같은 것들을 많이 목도하게 된다. 그 결과로서 두리반, 4대강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정리하는 건축사가도 없었고, 건축계에서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경우에도 한국 건축가가 선정되지 않았다는 것에만 조금 기분 나빠하고, 거기에 엄청난 양의 문화재가 매장되어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별로 발언이 없었다. 그런 것들이 사실은 이해가 좀 안 된다. 개인적으로 발언하신 분들이 계셨을지는 몰라도 공적인 자료들을 보면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 비율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아주 소수의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이것에 대해서 정리를 하거나 기록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구조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임국화 무조건적인 스타 건축가 모시기에 대한 열망은 새삼 놀랄 일도 아닙니다.
박은선 리슨투더시티가 중점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시기가 2007년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설계가 확정되었을 때이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경우는 긴 호흡으로 끝까지 봐야 한다. 스타 건축가의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 건축가들은 유럽 내에서 건축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새로 지을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동대문운동장 다시 디자인하기> 는 영국 리버풀에 있는 건축 전문 대학에 있는 친구들과 다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자하 하디드가 교수로 재직 중인 오스트리아의 앙거반테Angewante에서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에 관해 비공식 세미나를 진행했다. 스타 건축가들이 어떻게 도시의 패브릭을 깨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재미있게도 자하 하디드, 페트릭 슈마허Patrik Schumacher, 울프 프릭스Wolf D. Prix가 앙거반테의 교수인데 셋 다 한국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어떤 과정과 반응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모른다. 자하 하디드는 1년에 그 정도 사이즈의 건축을 두세 개씩 하는 사람이고, 동대문은 그 여러 개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에게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지만 우리에게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런 식으로 판을 형성해 주는 우리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임국화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서울투어>에서는 역사와 현재가 충돌하는 세 장소(청계천, 인왕산, 동대문)를 선정했다.
박은선 대형자본의 발달과 도시 개성의 연관성을 탐구하고, 도시의 개성은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탐구하고자 했던 작업이다. 사실 인터넷 때문에 정보가 많으니까, 많이 안다고 착각한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하다가 뭔가 실제를 많이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투어라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동묘랑 황학시장은 노점상이 제일 많았던 곳인데, 그 문화와 역사를 지우고 최고의 상권이 될 거라고 하면서 주상복합아파트 롯데캐슬을 지었다. 그러면서 지하에 코엑스와 같은 개념으로 ‘메가몰’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벌써 4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미분양된 점포가 대다수다. 청계천 투어의 경우에는 큰 건물들이 어떻게 기능을 못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고자 동선을 계획했다. 도시의 생태계를 깨뜨린 자리에 들어선 큰 건물들이 얼마나 쓸모 없는지를 보여주는, 안타깝지만 동시에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임국화 도시에 대한 담론을 다루는 또 다른 구성원인 건축가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은선 건축을 하는 분들이 도시에 많은 관심이 없고, 건축과 도시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낯설게 다가왔다. 현대건축에서 건축이 도시로 어떻게 확장되는가는 굉장히 중요한 이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이트site라는 것을 정해놓고, 아주 좁은 사이트에서만 건축을 생각하는 것 같다. 원하는 사이트에만 집중을 하고 그 사이트만 분석해서 아주 지엽적인 방식의 건축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하는 모든 분들이 문제를 알고, 각자 불만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수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건축계의 제도나 현실을 보면 신기하다. 그러면서 건축의 속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굉장히 질문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이런 것을 건축가가 아닌 사람이 아니면 이야기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작업의 질문방향 같은 것이 정해졌다. 현대 예술이 도시에서 생겼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은 파리 거리에서 모던 사회의 특징들을 발견했다. 모든 역사 자체가 정반합의 변증법으로 발생하는 것은 분명히 아닌데, 도시는 특히 더 그렇다. ‘건축하는 사람들이 다 나쁘고 보수적이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먹고사니즘’ 이라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발언하기 힘든 것도 있다. 그래서 예술가가 비건축적인 것들을 구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임국화 ‘스페이스 모래’는 앞으로 어떤 계획들을 가지고 있나요?
박은선 현재 4대강, 구체적으로는 내성천에 집중하고 있다. 내성천에서 공급되는 모래를 계속 퍼 올려야 하다보니 최소 수심인 6m라는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합수부에 보를 두 개 더 건설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 이미 공사의 초입에 들어가 있다. 그걸 계속 가시화하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새만금도 1심에서 이겼지만 공사한 걸 보면 내성천도 2심에서 이겼다고 방심했다가 되려 안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공간이지만 새로 생기는 보나 내성천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활동을 스페이스 모래에서 가질 계획이다.
임국화 건축에서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는 것의 중요성이 크다는 말이죠?
박은선 ‘리슨투더시티’라는 이름이 ‘도시를 듣는다’는 뜻을 가지듯이,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작업하고자 시작되었다. 우리는 도시공간이 하나의 수단이 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문제의식을 갖고자 한다. 건축마다 부여된 성격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서울의 건축물들이 어떤 공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사람들이 도시 안에서 충분하게 공공적으로 쓸 수 있는 소규모 공간들이 많이 필요하다. 모든 건물들이 공공성을 갖출 수는 없겠지만 만약 공공성을 지향하는 건물이라고 했을 때 프로그램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열려있는 공간만을 생각하기 쉽다. 자하 하디드를 비판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형태가 개방적이라고 해서 안에서 실행될 프로그램이 개방적인 것이 절대 아니다.
임국화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이 행동으로 실천되는 변화가 가장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박은선 우리가 정말 마음으로 문제의식을 갖는다면 몸이 움직이게 되기 마련이다. 마음으로 응원하는 사람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직접 보면 인터넷 뉴스 기사의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다. 여러 사람이 같이 작업하고, 사회의 모순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인 책임을 통해 의식하는 도시에 사는 예술가의 삶
분량5,233자 / 10분 / 도판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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