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신청사에 대한 난상 토론
김광수, 임근준
분량13,860자 / 25분 / 도판 1장
발행일2012년 9월 18일
유형좌담
서울시 신청사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들도 가세하여 부정적 의견의 진폭이 만만치 않다. 한국 건축계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그러나 표피적인 인상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좀 더 깊이 있는 논의를 이끌어내고자 건축가 김광수, 미술 · 디자인평론가 임근준(ak이정우)과 함께 직설적이고 편파적인 난상 토론의 자리를 마련했다. 사전에 서울시 신청사 답사와 건축가 유걸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건축가 유걸의 건축
박성태 서울시 신청사에 대해 이야기 할 것들이 많지만, 오늘의 주요 방향은 1) 건축가 유걸의 건축언어와 미학적 수준, 2) 서울시 신청사가 보여준 건축적 성과와 한계, 3) 서울시 신청사의 미래, 즉 이미 우리에게 던져진 이 공을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입니다. 특히 이야기 가운데 신청사를 이야기하면서 건축뿐만 아니라 도시 맥락에서 다양한 담론들을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먼저, 서울시 신청사의 건축적, 도시적 맥락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간략하게 이야기하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어려울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두 분의 기본 입장을 미리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김광수 건축가로서 유걸 선생의 태도 중 좋은 점은 용감함이죠. 공공프로젝트임에도 본인이 중요하다고 감 잡은 것으로 일단 지르고 본다는 느낌(?). 도시문맥과 디테일, 활용성 등 여러 가지로 희생을 감수하고서도 그 감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을 보면 말이죠. 신청사의 경우 주변 컨텍스트가 매우 복잡한데, 이에 대해 일일이 대응한다거나 윤리적 태도를 견지하며 애매하게 적정 해법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컨텍스트를 엄청나게 단순화시키고 미래지향적인 호소력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부정적인 측면은 그에 대한 반대급부이기도 합니다. 그 ‘지른 부분’이 정말 중요한 것이었는가. 그 분이 지향하는 미래는 무엇이며 과연 합당한 호소력을 주는가. 그러면 또 그 분이 보는 현실은 무엇인지 하는 것들인데요.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이 긍정과 부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사실 건축가 유걸을 쉽게 부정하거나 긍정하기에 어려운 부분도 이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임근준 1940년생인 유걸 선생은 이력은 일견 화려하지만, 분명 ‘주류’에서 빗겨난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에서 포스트모던 건축을 표방하고 실험했던 1950년대생 건축가들의 행방을 보면, 소위 ‘유학’ 후 귀국해서 몇몇 건축물을 만든 뒤 현장에서 사라졌는데요. 결국 그들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지방대 교수 자리를 얻는 수단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아무튼, 한국 건축계에서 1950년대생의 존재감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한국 건축계의 세대적 특수성 덕분에 건축가 유걸은 반사이득을 봤습니다. 그런 세대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유걸의 서울시 신청사 설계는, 전후 한국 건축계의 역사와 역량과 모순까지 하나로 집적하는 프로젝트로서 흥미진진한 풍경입니다. 건축을 민속지적으로 고찰한다고 하면, 서울시 신청사 건축 사업만큼 한국 건축의 전모를 고찰하고 논의하기에 좋은 예는 없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유걸의 신청사 건물을 개별 프로젝트로서 평가하고자 내적 자율성과 건축 방법론에 주목하게 되면, 역시 평가는 긍정을 향하기 어렵겠죠.
저 역시 건축가 유걸의 장점으로, 이른바 ‘말도 안 되는 구조’를 실현해내는 능력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축가의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가, 건축주에게 본인만의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해 그 망상의 구조를 실재의 공간에 물화시켜내는 것일 텐데요. 국내 건축가들은 대개 해외에서 배워온 방법론을 지역화하는 수준에 만족하는 몹쓸 경향을 뵈지만, 유걸 선생의 경우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신청사 또한, 본 캐릭터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작업으로만 보면, 세대 갈등의 구조에서 돌출한 인물인 유걸의 서울시 신청사 건물은, 꽤 흥미로운 지점을 갖는 거죠. 규모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건축으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장이라는 측면에서의 평가는 급격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죠.
서울시 신청사 건축 프로젝트가 당대의 건축 아젠다를 제시하는 공론장이라고 한다면, 이 건물은 새로운 시대로 향하는 관문이라기보다는 한 시대를 마감하는 무덤처럼 느껴집니다. 이정도 규모의 건축 프로젝트라면, 건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갱신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한국 건축계의 최대 역량이 집결된 신청사 건축 프로젝트에서, 1990년대 중 ·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막바지에 대두됐던 조사 · 연구 기반의 건축 방법론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계발 · 시험 · 적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무게를 실으면, 역시 유걸이 아니라 조민석이 신청사 건축에 최적/최선의 인물이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박성태 말씀하신 대로 신청사는 유걸 선생의 기존 작업들의 방법론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청사의 지리적 위치와 역사적 맥락, 사회적 역할, 도시와의 관계들 속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건축가 유걸의 건축은 무엇일까요.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걸까요.
김광수 포스트모더니즘이라기보다는 건축가 유걸과 유걸의 건축 모두 포스트모던한 현상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분은 어떤 범주에 넣기 어려운 분이라고 봅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으셨음에도 독특하게 ‘무학의 정신(?)’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데, 작품이나 그분이 살아오신 삶에도 그런 면이 많아 보여요.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김수근 선생 밑에서도 일했지만 엘리트적 건축이라고 볼 수도 없고 어떤 담론을 바탕으로 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미국으로 가신 것도, 한국의 집단주의 정서나 계보문화, 소통의 불투명성 등에 아주 심한 염증을 느낀 것으로 알아요. 사회가 한 개인의 삶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대단한 반감을 가지고 계셨던 것으로 압니다. 실무도 주로 콜로라도에서 하셨으니 미국의 주류에서도 벗어나셨고, 생계유지도 사무소에 들어가 얌전하게 경험을 쌓기보다는 목수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고요. 거기에서 건축가 유걸의 건축적 사고와 근성이 나오고,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과 건축가로서의 욕망, 사회적 비전이 섞이면서 범주화하기 힘든 캐릭터가 되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임근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아닌데,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닮았다’고나 할까? (웃음) 포스트모더니즘의 키워드는 ‘전유專有, appropriation’입니다. 쉽게 말하면, 모더니스트의 역사적 방법론이 물러선 자리를, 지역에서 추출한 데이터로 메워 넣는 게 포스트모던의 방법론인 것이죠. 유걸 선생은 전유를 정치적으로 실천한 적은 없지만, 그의 건물은 이유불문하고 유명 포스트모더니즘 건물을 닮았습니다. 한국의 대표적 현대미술가 가운데 한 명인 김홍석은, 전유를 정치적으로 실천해온 작가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전유작가가 아니라고 우기죠. 그는 “한국 현대미술의 최대 특징은 서구에 유학 가서 ‘첨단’ 을 학습하고 그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내 작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닮게 만드는 것assimilation’이다”라고 주장합니다. ‘현대미술스럽게’ 만드는 것이라는, 자신의 최대 약점을 최대 강점으로 전치시키는 괴이한 논리인데, 이런 논리를 한국 건축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모던 건축이건, 포스트모던 건축이건, 김수근 선생 이후 한국 건축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새로운 담론이 제시하는 건축의 외형에 ‘동화assimilation’ 하는 일이었을 뿐인 것이죠. 자, 그렇다면 유걸은 어떤가요? 김광수 선생이 ‘개인주의’라고 표현하셨만, 그것도 서구적 개인주의라기보다는 한국 특유의 개인주의, 즉 식민기 일본인들이 ‘불령선인不逞鮮人[ふていせんじん, 후테이센진]’ 이라고 표현했던 바로 그 제멋대로의 정신에 가깝습니다.
유걸의 활동 연보를 보면, 돌출하는 개인이 도드라집니다. 사회가 제시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탈주노선을 찾은 한국 전후세대 소수자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고 할까요? 유걸 건축의 미덕도 돌출하는 개인이 확보해낸 새로운 판단 유예의 공간을 실물로 제시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1990년대에 완공된 대표작들을 처음 봤을 땐 당혹스러웠는데, 나중에 보니 자신의 콘셉트를 관철시키기 위해 부수적 디테일은 과감하게 희생시켜버린 결과더군요.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실현해내는 걸 보면, 분명 그에겐 남다른 매력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걸 합리적 언어로 묘사할 방법이 없으니, 건축 잡지들에선 자꾸 포스트모더니즘 이야기를 한 거죠.
박성태 유걸 선생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끊임없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있잖아요.
김광수 동년배 건축가들과 비교했을 때 드물게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오랫동안 실무를 한 것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주는 크레딧이 매우 컸죠.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 그 연배에 서울대 졸업하고 미국에서 실무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한 것은 매우 드문 상황이니 건축주에게 주는 인상도 강하고요. 그럼에도 엘리트주의를 내세우지 않고 목수 같은 이미지가 있거든요. 한국 돌아와서도 처음엔 목조주택들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2×4’ 공법을 직접 목수를 가르쳐가며 선구적으로 시도하기도 했고요. 말하자면 당시 활동하던 엘리트 오피스 건축가(?)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부분은 지금도 유걸 선생에게서 느낄 수 있는 대단히 큰 매력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분의 건축은 대체로 일반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꿈’이 잘 드러납니다. 대중에게 아주 호소력 있고 강한 이미지를 제공합니다.
박성태 그가 실내의 거대공간을 통해 자신의 건축을 설명하는 것도 일반인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김광수 거대공간과 유리라는 재료가 주는 개방성과 투명성은 그 분의 건축에 항상 등장합니다. 사실 한국 사람들도 평소 고밀화된 도시에 살다보니 대공간을 꿈꾸잖아요. 유걸 선생의 건축은 공간의 스케일 뿐만 아니라 공간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과대망상적 차원이 느껴지는데 이것이 일반 한국인의 꿈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계속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꿈은 현실의 다른 차원이잖아요? 그 다른 차원은 유걸 건축의 경우 ‘실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서울시 신청사
박성태 그럼 본격적으로 서울시 신청사 이야기를 시작해보죠. 신청사를 하나의 캐릭터에 비유한다면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김광수 ‘나이를 거꾸로 먹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인물도 건물도요. 흔히 말하는 ‘성숙’을 거부하는 느낌. 실제 그분을 만나면 매우 차분하시고 조리 있으세요. 설득력도 매우 강하고요.
임근준 랜드마크에 대한 욕망으로 정치적 야심을 간접 표현한 오세훈 전 시장이 뒤에 있었다는 점 때문에, 천진난만함을 열쇠말로 삼기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적당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욕망을 먹고 자라는 얼굴 없는 유령 캐릭터 ‘가오나시かおなし’가 떠오릅니다. 그러니까, 서울시 신청사는 한국인의 욕망을 하나로 뭉친 거대한 풍선처럼 보인다는 말인데요. 징후적으로는 흥미롭지만, 문제는 그런 구조를 물화시켜서 오랜 세월 건물로 사용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건축이 메타 차원의 발언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건축가의 경우라면,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딜레마가 결국 실용성입니다. 유걸은 파도치는 유리 파사드를 통해 자신만의 유토피아 공간을 만들었는데 하나의 명쾌한 질문이고 해답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제3국의 사람으로서 공개경쟁공모의 심사 자리에 앉아 조민석의 안과 유걸의 안을 선택지로 마주하게 됐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유걸의 안을 뽑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고요? 조민석의 건축 방법론엔 예측 가능한 측면이 강하게 존재합니다. 방법론상으로도 렘 콜하스Rem Koolhaas 제자 군단들의 성향에서 아직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고요. 하지만, 유걸의 건축은 어디 다른데서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워낙 이상하게 독특하기 때문에 재미있습니다. 심지어 어쨌거나 한국적이고.
김광수 김기덕의 영화 같은.
임근준 그렇죠. 우리에게는 리얼리즘이었으나 저들에게는 판타지인. (웃음) 아무튼, 유걸 선생의 디자인은 50년, 100년 뒤에 봐도 흥미로울 겁니다. 후세도 “도대체 이건 뭐지?” 하지 않을까요? 이 괴물을 평생 안고 살게 된, 오늘의 서울 시민들은 뭐라고 평가할 지 궁금합니다. 전문가들의 생각과 달리, 의외로 긍정 여론이 나오는 건 아닐까요?
김광수 캐릭터가 강하기 때문에 관이나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점이 많죠.
임근준 유걸 선생의 캐릭터와 건물이 서로 매우 닮았다는 점은 강점으로 작용할 겁니다. 사람과 건물이 따로 노는 경우가 특히 아시아에 흔한데, 유걸 선생의 건축은 그렇지 않습니다. 방법론도 대단히 간단명료합니다. 프리젠테이션 스토리라인에 맞춰 ‘파워포인트 건축’을 만드는, ‘예상한 것 이상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복잡다단한 조사 연구 기반의 방법론에 비하면, 너무 쉽지요.
신청사 외관에 대해
박성태 외관에 대해 ‘과잉이다’, ‘어울리지 않는다’, ‘익숙해질 수 없다’는 많은 사람들의 비난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두 분은 건물의 외관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임근준 처음 설계안을 봤을 때, 파도치는 유리 파사드나 내부의 이중구조가 과연 구현 가능한가 하고 우려했습니다. 일단 파사드는 그래도 한국 건축 엔지니어링의 기술로 최선의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싶고 유걸의 원안을 90 퍼센트 이상 구현해냈다고 봅니다. 물론, 원안이 아름다운지, 장소에 걸맞으냐 하고 물으면 대답들이 엇갈리겠죠. 아름답지는 않지만, 아무튼 유걸 선생이 구 시청사에 대립각을 세우며 단순명쾌한 발언을 한 셈이니까, 건축가로서는 제 몫의 일을 했다고 봅니다. 원안의 조형적 약점이라면 결국 시점view point의 문제인데, 유걸 선생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만 신경을 쓰느라 보행자의 시점에서 본 파사드를 숙고하지는 못한 듯합니다. 광장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건물의 윗면이 직선이어서 출렁이는 파사드는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결국 이게 다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쓰는 포토제닉한 랜드마크용 건축의 문제입니다. 서울시 신청사 디자인에 그런 일련의 경향을 비평적으로 고찰한 흔적이 없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박성태 상징성은 있다고 보시나요?
임근준 건축에서 장소특정성을 이야기하고, 도시 조직의 맥락성을 이어받았음을 강조하고, 또 지역의 특성에 기반을 둔 새로운 버내큘러 건축이라는 1990년대 이래의 유행이,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90년대 중반 이래 많은 건축가들이 하버드의 렘 콜하스의 뒤를 이어 수집과 조사 연구로 얻은 특정 건축 데이터를 유형학적으로 과대평가해 상상 이상의 매스를 도출하는 동시에, 그렇게 고찰한 도시 조직 맥락에 특정성을 부여해 실물 건축에 합리적인 인터페이스를 부여하는 방법론을 구사해왔습니다. 헌데, 그렇게 해서 정말로 지역의 맥락에 적확히 부합하는 건물이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보면 작가의 방법론, 사용자의 필요, 지역의 역사성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물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유걸 선생은 아예 부채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유걸의 디자인이 역사적 맥락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건, 그리 효과적인 비평은 아닙니다. 그는 역사적 맥락에 순응하지 않는 답을 내놨고, 결국 여러 맥락과 힘이 팽팽히 대치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덕수궁이나 구 시청사의 맥락을 존중하는 척하는 디자인을 시도한 것보다는, 옛 역사와 새로운 역사가 대립하는 상황을 선택한 것이 오래 두고 봐도 더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성태 그렇다면 외관상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임근준 가장 중요한 ‘투명성’이 확보가 안됐습니다. 이것보다는 더 투명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전반적으로 파사드의 느낌이 무겁고 둔탁한데다, 반사율이 높아서 내부의 2중 구조가 도통 보이지가 않습니다. 냉난방 효율 문제 때문에 두꺼운 유리를 쓴 탓이겠지만, 지긋지긋한 유리구조체 건물의 정점을 찍었고, 이게 유행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또 달리 볼 수 있을 겁니다. 한국 건축계의 기술력으로 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실험해본 셈이니까, 나름 의의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김광수 이번 신청사는 구태의연한 관공서 디자인의 공식을 깨트려버린 상징적 측면이 확실히 있습니다. 상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청사 현상설계를 전후로 각종 턴키를 통해 지어진 관공서를 보면 신청사 또한 유걸 개인의 건축 현상이 아니라 한 시대가 유걸이라는 건축가를 호명한 매트릭스가 강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걸 ‘디자인+턴키 매트릭스’라고 해야 할지. 서로 만나지 말았어야 할 두 시대, 즉 디자인의 시대와 턴키의 시대가 만나서 ‘디자인을 턴키로 하는 시대’가 된 것인데, 그 과정은 알다시피 이상한 변칙들로 점철된 고통의 과정이었지요. 이런 맥락에서 신청사 건축의 전 과정 및 그 외관은 시대를 무척 우울하게 대변하는 게 있다고 봅니다. 유걸 선생이 용감하다하여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봅니다. 단지 대단히 단순화시켜서 해법을 찾는 것이라고 보는데, 구 시청사를 대하는 방식이 그래요. 건물 이면과 측면은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듯하지만, 하이라이즈 대신 로우라이즈로 간 건 광장이나 덕수궁뿐만 아니라 구 시청사를 대하는 하나의 해법이라고 봅니다. 구 시청사의 병풍, 즉 배경의 포지션을 취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새로운 배경을 광장에 드러내는 방식으로서 동측의 입면과 처마가 불룩 나온 것이라고 보고요.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미래지향성을 가장 강력하게 광장에 투사하는 해법으로 내부의 ‘꿈’ 공간을 드러내는 외피의 투명성에서 승부를 걸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투명성은 실시설계나 시공의 과정에서 확보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항이 ‘디자인 턴키 매트릭스’의 귀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청사의 도시적 맥락과 내부 구조
박성태 그럼 이제 신청사를 도시적 맥락으로 넓혀볼까요. 서울광장, 구 시청사, 덕수궁, 명동, 을지로, 종로 등 중심 중의 중심, 도시 안의 핵으로서의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요.
김광수 유걸 선생은 공공성에 대한 생각이 매우 많다고 봅니다. 개방성, 투명한 의사소통, 시민사회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고, 이와 함께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게 내부의 거대 오픈 스페이스, 유리의 투명성, 공공적 내부 프로그램이에요. 재미있는 건, 공공성을 건축적으로 구현하는 데 관심이 많으신데, 신기하게도 도시에 대해서는 언급이 별로 없고 건축적으로도 외부공간에 제안되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에요.
임근준 장소성, 도시 맥락, 공공성은 과장된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이래 특히 탈식민주의, 지역이론 등이 나오면서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는데, 성과는 없이 공회전만 계속됐습니다. 그런 면에서 유걸 선생이 자신의 방식대로 밀어붙인 건, 오히려 다행이라고 봅니다. 원안대로 실현되지 않아서 아쉬운 점은, 입구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구 시청사를 통해서 신청사에 접근하는 동선이었는데, 보면, 길 양옆으로 지면을 뚫어 열린 공간(선큰)을 만들어 놨습니다. 구 시청사의 역사와 신청사의 역사를 대비시키는 장치였는데, 그런 동선 계획의 매력은 사라졌고요.
김광수 유걸 선생의 공공성은 미국의 공공성과 닮아 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아트리움 문화’일 수 있지요. 미국에는 도시적 담론이 별로 없고, 도시 성격을 잘 구현하면서 건축가 개인의 색깔로 표현해내는 경우도 별로 없어요. 오히려 프랭크 게리Frank Ghery처럼 난데없는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죠. 도시공공성 이데올로기에 주눅 드는 것 보다는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적 상황에서는 많은 의문이 듭니다.
박성태 내부와 오픈 스페이스의 만남과 동선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광수 유걸 선생의 건축에서 내외부의 경계는 완충이 없고 대체로 경계선이 분명합니다. 대신 투명한 유리가 내부로 시선의 관심을 끌지요. 그런데 신청사의 경우 현상설계안을 보면 광장의 띠가 내부에 연결되는 듯하고 그 띠 아이디어가 내부 업무공간을 조직하는 역할까지 하고 녹화까지 되면서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상층부로 연결되는 구성이어서 특이했습니다. 하지만 광장조성이 띠 아이디어로 되지 못하면서 내외부는 연속성 보다는 단절관계가 더 크게 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원안과 다른 유리의 불투명성으로 단절의 느낌이 더 큽니다. 전반적으로 유걸 선생의 몇몇 건축물을 보면, 미국의 쇼핑몰을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쇼핑몰의 경우 거대한 수직적 실내 오픈스페이스의 등장 그리고 에스컬레이터의 동선이나 움직임과 함께 스펙터클과 판타지를 경험하는 수직상승의 시나리오가 있잖아요. 그리고 내외부 경계가 만나는 부분에 있어서는 단절의 전략들이 취해지고, 일산의 ‘밀레니엄 커뮤니티센터’를 봐도 관중석과 스테이지, 수공간 등 실외에 있을 법한 것들이 모두 실내에 있고 에스컬레이터 동선을 통해서 이러한 것들이 경험됩니다.
임근준 ‘밀알 교회’ 등에서 나타나는 내부 공간의 동선이 도대체 어디서 연원하는지 알 수 없었는데, 말씀을 듣고서야 그간의 의문이 풀렸습니다. ‘쇼핑몰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내부의 열린 공간이 유걸 선생의 건축적 특징 가운데 하나라는 걸 처음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들의 동선 편의에 대해선 크게 고민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광수 유걸 선생은 시청의 뒷길이 별 의미 없다고 하셨지만, 이 지역이 큰 스케일에서 벌어지는 일 못지않게 작은 스케일로 벌어지는 일상이 대단히 많은 곳이란 말이에요. 다시 말해서 전면도 중요하지만 이면의 경계성도 대단히 중요한 공간이라고 봅니다. 이건 한국 도시의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이지요. 하지만 그런 도시적 스케일을 번거롭게 보시는 것도 있는 것 같네요.
임근준 뒷면은 생각도 안 한 건물이 되어버렸죠. 그래도 옆면은 내부 구조의 다이어그램이라고 좋게 해석해볼 수도 있겠지만, 뒷면은 비난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뒤에서 보면 마치 첨단 건물의 가면을 쓴 보통의 공무원 건물 같습니다. 어쩌면 그게 신청사 건축의 본질일지도 모르고.
박성태 사무공간과 다양한 공공공간이 섞여있는 내부 공간은 어떻게 보세요?
김광수 외부는 구시청사를 의식한 게 있지만, 내부는 정말 마음껏 해보겠다고 하신 거 같아요. 특히나 투명하니까 건축 의도를 전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 거고요. “설계를 할 때 사람들의 움직임을 느낀다, 본다, 보고 싶다, 예측한다, (건물이 다 지어지고 나면) 사람들이 어떻게 의도하지 않았던 움직임들을 보일지도 무척 기대된다”라고 말씀하시는 걸 봐도 움직임에 대해 고민이 무척 많으신 것 같아요. 본인을 안무가에 비교하기도 하고. 실외에 있을 법한 것들을 실내에 배치하고 분주한 움직임을 상상하고. 이건 일종의 인테리어 어바니즘interior urbanism인데, 그런 면에서는 유럽 도시건축 담론과 맥락이 닿는 것도 있겠지요. 유걸 선생의 건축은, 유선형적 취향이나 인테리어 어바니즘 같은 측면들이 현대 건축담론들과 맥락이 닿는 것 같으면서도 또 그건 아니다 싶은 묘한 매력을 풍기는 지점이 있어요. 외부에는 무관심하지만 내부에는 하나의 새로운 도시를 만들겠다, 내지는 내부에 모든 것이 있는 신천지 같은 것을 만들겠다는 생각 같은 것들. 그렇기 때문에 쇼핑몰 문화로 읽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쇼핑몰 공간은 또 아니고요. 그래서 이러한 건축을 하나의 양식화된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정말 포스트모던한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임근준 내부에 구축된 판단 유예의 공간이 논리적 공간이 아닌 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투명 플라스틱 개미집 느낌이 나는 건, 좀 안타깝습니다. 단지 건물에 들어가 일하게 될 공무원들의 불편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일반 시민들의 동선도 추후 사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면 수정 작업을 통해 조절할 필요가 있을 텐데, 공무원 조직에서 그런 추가 작업이 가능할까 의문입니다. 수직적 구조의 식물벽만 해도 나중에 억지 춘향으로 추가된 느낌입니다.
김광수 해석하기가 애매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는데, 이 건물의 설계는 로직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어요. 유걸 선생의 설계가 원래 로직이 강한 건 아니잖아요. 오픈 스페이스 디자인 보면 스트라이프가 있는데, 로비에 들어가면 스트라이프가 없고, 업무시설에 들어가면 스트라이프 논리로 조직이 되는데 스트라이프의 방향성과 상반되게 횡적으로는 아트리움이 들어가고 그 위에 다시 횡적으로 부유하는 세 개의 구름 같은 매스들과 수직동선들이 업무시설 매스들과 충돌하며 내부에 존재하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스케일감도 겉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경험되는 것이 매우 다른 거 같아요. 세 개로 나눈 부유하는 덩어리가 안에서 봤을 때는 의도와 다르게 스펙터클한 스케일감으로 잘 안 오네요. 그리고 시민영역의 과감한 의도에 비해서 업무시설 부분은 여전히 과거의 업무시설일 뿐이라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공공발주 업무시설이라 건축가가 자의적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을 텐데 이 두 상반된 공간이 가까이에서 대비되며 어색한 동거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박성태 마지막으로, 서울시 신청사가 어떤 역할을 감당하며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할까요?
김광수 인문학자들에게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흥미로운 자료를 제공한 거라고 봐요. 우리에게 ‘과연 시청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그것이지요. 사연 많은 근대화 과정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시민사회’에 대한 질문이 기껏 최근에 시작된 거죠. 그 지점에서 동시에 ‘대중주의’ 가 벌써 등장했습니다. 이 두 의식이 결합하면서 현재진행형으로 서 있는 것이 지금의 시청이라고 보는 면이 있습니다. 대중주의를 지향하다보니 여기서는 결국 업무시설 30퍼센트밖에 남지 않았고 그 외의 시설들(콘서트홀, 결혼식장, 지하공간의 시민을 위한 개방 공간 등)이 장악하다보니, 시청 사무실은 다른 곳에 새로 짓고, 신청사는 ‘시민청’으로 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기도 합니다. 시청이라는 것이 기능과 상징성이 함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기능이 죽고 시민의 공간이라는 상징성만 남으려고 하는 전도된 상황이 문제적 징후라고 봅니다. 결국 시청은 ‘대단한 것’이라는 의식으로 엄청난 시간과 비용과 별의별 과정을 겪어가며 지어졌고 반대로 시민 아니 대중이 당연히 주인이 되어야 한다며 시청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는 의식으로 업무공간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없는 건물이 된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대단한 시청을 짓기 위해서 절박하게 대단한 건축가를 요청해 놓고, 결국엔 그 건축가를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것. 대단한 디자인을 요청하며 그 과정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것. ‘대수롭다가도 어느 순간 대수롭지 않은’ 이 모순된 과잉의식이 문제라고 보고요. 이 모순을 두고두고 보여주는 역할을 신청사가 감당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임근준 장소가 갖는 의미 자체가 과거와 크게 다릅니다. 오히려 분산돼 운영되던 조직이 하나의 상징적인 중심 건물을 지으면 망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대표적인 게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라고 생각하는데요. 허황한 규모의 청사를 짓고, 파산 직전에 몰린 곳이 어디 한두 곳인가요? 한국의 중앙집권형 국가자본주의 시스템이 지방자치체를 도입하며 분산·결집된 뒤, 무엇인가를 의인화한 괴상한 형태의 랜드마크형 신청사 건물들이 들어섰습니다. 특색 있는 지역이 되겠다는 허황한 욕망과 무능과 부패가 한데 얽혀서, 곳곳에 애물단지 괴물이 들어섰습니다. 논란이 된 지방자치단체들의 신청사 건물들의 공통점은,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지방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품었을 때, 건축업자들의 도움에 의해 건축적 망상의 형태로 구현된 재앙이라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인화할 수 없는 정보를 그러모아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최신의 ‘모에 의인화’ 경향이 건축에서 드러났다는 점은 몹시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난립한 지자체 신청사들의 큰 형님 격이 되는 건물인 서울시 신청사가 소위 ‘쓰나미’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코믹하고 우울하지 않나요? 서울시의 신청사 건물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아니라, 하나의 장막, 최후의 막 내림이 아닐까요.

서울시 신청사에 대한 난상 토론
분량13,860자 / 25분 / 도판 1장
발행일2012년 9월 18일
유형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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