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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명’을 위한 도시연구사무소의 실험; ‘Economic, Love, Camp’ 프로젝트

김진주

도시연구사무소는 도시라는 거주환경 안에서 예술가들이 수행하는 조사와 연구 영역의 방법론과 시각화를 하는 것에 있어 조금은 다른 가능성을 실험해 보고자 기획됐다. 첫 연구주제는 바로 도시 안에서의 경제적인Economic, 사랑Love, 그리고 계속해서 떠돌 수밖에 없는 주거환경Camp이다.

회화작가와 만화가로 구성된 작가 콜렉티브 ‘기는풍경’과 함께 연구한 풍경 중에 하나인 서울 홍제천변은 개발의 속도가 느슨하게 덧입혀지고 더뎌진 까닭에 변화된 거주공간의 지층을 선명하게 목격할 수 있는 동네이다. 이곳에는 소위 말하는 ‘집장사’가 지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틈을 15층쯤 되는 아파트가 비집고 뚫고 나와 하나의 융합체를 이루며 천변을 둘러싸고 있다. 아무리 집이 저렇게 많이 지어져 있더라도 내 집 마련은 어렵고, 사람들은 거처를 찾아 떠돌거나, 혹은 더 넓고 좋은 집으로 가기 위해 잠깐 거쳐 가기 마련이다. 때문에 생존에 더 좋은 조건을 갖춘 환경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되거나, 사유보다는 행동습성이 우선인 상황이 쓸쓸한 개척자나 사냥꾼의 야영지camp를 연상케 한다. 이 야영지의 강가에는 공원화된 근린시설이 랜드마크 마냥 거대한 교각과 운동하는 시민들 몸뚱이 사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낙후된 동네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생활환경의 개선을 향해 내달린다.

강을 따라 도심으로 들어선다. 도시 이곳저곳이 야영 중이다. 동료와 일터를 지키려는 해고자들의 텐트, 금융자본으로부터 노동의 가치를 지키려는 파업자들의 텐트, 탈북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활동가와 종교인들의 텐트, 지방 특산물을 홍보하고 판매하러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올라온 생산자들의 텐트, 상수원의 유기농 밭을 지키는 농부들의 텐트, 도심 오토캠핑장으로 피서 나온 가족들의 텐트, 그리고 서울역 앞 노숙자들의 자작 텐트 등. 이 텐트들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생긴다. 고민하는 머릿속에 바람 좀 쐬어 주고자 다시 도시 밖으로 나선다. IMF 이후에도,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대놓고 엄포를 놓는 2012년, 지금도 계속해서 전국에는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던 땅에 100퍼센트 아파트촌이 만들어지고 있다. 재개발로 인해 밀려난 기존 거주민 문제나 잠식당하는 도시의 완충지대에 대한 우려는 기본으로 하고, 새로운 아파트에 들어오는 입주민들이 평생 그곳에 살리라 짐작하기 어렵다. 대다수는 이사를 하기도 전에 빠르면 바로 다음 해, 오래 걸려도 십 년이 채 못돼 어느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할지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도시의 야영지는 탄생을 멈추지 않고 있다.

왜 도시는 야영지를 증식하는가? 왜 보금자리를 정하지 못하고 선망 혹은 투기만을 거듭해야 하나? 왜 다른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쫓아가며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나? 왜 가족이나 세대 재생산에 관한 생각이 다른 이의 정착권을 박탈하게 되나? 왜 이처럼 국가, 사회, 공공의 범주 안에서 다 같이 나누며 살기란 어렵나? 증폭되는 ‘왜’ 뒤에 타인과의 관계를 금전적, 물리적, 상징적 자본으로 가늠하는, 다시 말해 사랑이라 말해지는 것과 경제적인 것이 결합된 그 무엇이 자리한다. 하지만 정작 이 질문들은 선물이 사랑의 부재를 증명하듯이, 그 영합의 구체적인 모습이나 사랑 혹은 경제적인 것에 대해 밝혀진 바 없음을 더 강렬히 드러낸다.

고전적인 경제이론부터 유럽에서 건너온 88만원 세대 명명까지, 모기지론부터 러시앤캐시까지, 고전적 아나키즘 이론인 상호부조론으로부터 재능기부 열풍까지, 중세의 길드guild부터 한국형 대형 개신교 커뮤니티까지, 종교와 노동운동이 결합했던 초기 협동조합부터 UN이 지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 와 제도적 장치 마련을 타고 붐업된 사회협동조합까지 이론과 형태의 스펙트럼은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일상을 관통하는 경제적인 것과 사랑의 영합은 불명확한 그 어떤 것으로 남는다. 이 사이에 존재하는 주체들의 관계 가운데 나약함과 두려움을 뛰어넘는 가장 위대한 힘인 사랑도,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거나 집안 살림을 관리한다는 것에서 출발한 경제도, 사랑하는 연인들이 하룻밤을 서로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내던짐으로 보냈을 야영지도 오용되고 말았다. 이 오용을 파괴할 그 무엇을 찾을 수는 없을까? 논리학이나 전자회로에서처럼 ‘Not’을 그 앞에 붙인다고 화살표의 진행방향이 뒤집어지지 않는 상황이더라도, 방법을 찾아 경제적인 것을, 사랑을, 살아가는 공간을 재발명하는 것이 작가들이 하는 일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예술가가 수행하는 조사연구의 ‘다른 가능성’ 이라는 본 연구소의 존립근거를 이와 같은 ‘재발명’에서 찾는다.

재발명의 양태들은 제한 없이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시에서 채집해 온 하나의 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작가가 연구의 한 방법으로 이 돌을 냉장고에 넣었더니 물기 묻은 건조해 보였던 도시의 파편은 부서지고 깨지며 아파할 줄 아는 살덩어리처럼 보인다. 다시, 작가는 주변의 힘을 빌려 네모난 방 안에서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긴다. 땀 흘리는 여럿이 모인 누군가의 사무실은 상호부조와 호혜의 간극을 넘나드는 현장이 된다. 다시, 작가는 아무도 모르게 건물에 남겨진 자생적 양식들을 추적한다. 성냥갑 같았던 집들 사이에도 틈이 생긴다. 다시, 작가는 낮은 자세로 해체된 가벽으로 만든 가설물에, 야영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켓에, 기어 다닐 수 있는 바닥에 사랑과 경제가 결합된 체감이론을 받아쓴다. 이 임시의 방과 벽이 개인소득, 국가경제, 국부, 기부, 호혜, 상호부조 등의 쟁점들이 발화되는 야영장이 된다.

9월 중 서울의 한 공간에서 이 작가 연구원들의 연구결과를 모은 야영장을 본격적으로 선보인다. 도시공간을 공감하고 아파할 줄 아는 하나의 몸이라고 본다면, 이렇게 모인 작가들도 연구라는 방법론을 통해 도시라는 장소에 빗대어 만들어진 ‘하나의 몸’이다. 일시적인 작가 공동체의 모습은 한 몸으로 살아가는 공동주거와 마찬가지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지평 위에 있는 경제적인 것, 사랑, 사는 공간 등이 본디 정치, 믿음, 신앙, 정의, 아름다움 등과 같이 모두를 생각하는 공통의 그 무엇이었음을 재발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진주

작가

‘재발명’을 위한 도시연구사무소의 실험; ‘Economic, Love, Camp’ 프로젝트

분량3,031자 / 6분 / 도판 1장

발행일2012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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