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적 담합과 주제 의식의 부족
김일현
분량5,930자 / 10분 / 도판 4장
발행일2012년 9월 18일
유형비평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이 시작부터 심각한 비판을 받고 있다. 한 국가관이 명확한 메시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대형 건축 설계 사무소의 홍보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김일현 교수가 논란이 시작될 때 보내온 것이다.
몇 년 후, 아니 몇 달 후에 누군가가 2012년을 회상한다면 무엇을 기억할까. 자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4대강이나 녹조현상 혹은 1994년 이후 최악의 폭염을 떠올릴까?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은 런던올림픽이나 유로2012를? 아니면 티아라 왕따 사태나 싸이의 ‘강남스타일’ 을 생각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아마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실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마치 토끼가 영원히 거북이를 넘어서지 못할 듯한 긴박함에 비례하는 무료함으로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에게, 몇 년 전을 혹은 몇 달이 지난 일을 회상할 만한 여유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며칠 전에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하기가 어려우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몇 달 후에 2012년의 제13회 베니스 비엔날레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논쟁을 기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군가에게 2년 전 비엔날레의 주제를 기억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당혹스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기억하면 좋겠지만 못한다고 해서 심각한 문제는 없으니까. 오히려 문제로 지적할만한 것은 현재 제기된 일련의 현상에 내재된 본질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찻잔 속의 바람처럼 간만에 ‘논쟁의 무풍지대’인 우리 건축계에 산발적인 논의가 베니스 비엔날레를 둘러싸고 진행되었다. 일단 왜 논쟁의 무풍지대였는지를 살펴보자. 그동안 건축계는 계속 이어진 신도시의 건설, 공공기관의 이전, 지자체의 공모전과 PF, BTL 등의 민간사업으로 인해 매우 유리한 상황을 보내왔다. 1970년대의 강남개발부터 40여 년간 지속되었던 호황은, 국외로는 비우량주택 담보대출에서 비롯된 위기 그리고 국내로는 뉴타운 사업의 철폐라는 실질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사건으로 종료되었다. 건설 중심으로 수익을 올렸던 지난 전 세계의 토건수익 구조는 금융권의 가세로 터질 듯 부풀다가 이제 그 실태를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드러내고 있다.
미국도 스페인도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수익사업의 주기 아래 방향 없이 질주하는 속도의 건축은 소멸되고 있는 현재와 다르지 않다. 건설계에서의 비슷한 양상은 이미 수십 년간 일상화되었다. 건설이나 건축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이렇게 비대해진 사업에서 각자의 파이 조각을 위해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특정한 프로젝트에 정성을 쏟거나 차후에 완결된 건축물이 지역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기대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상황에서 이전에 마르크스 Karl Marx가 논한 바와 같이 노동의 분화는 단지 건축물에 그치지 않고 이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정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장소에 대한 섬세함이 없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신도시를 외국에 수출하는 것을 애국으로 생각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이다. 프루이트 이고Pruitt Igoe와 같은 속물적 계획안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겠지만, 결국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파이는 먹어 치운 이후일 테고, 과거를 돌아볼 여유는 이 경우에도 부재할 테니 말이다.
하필이면 왜 베니스에서 주택 한 채의 면적도 안 되는 작은 전시관의 내용을 둘러싸고 이러한 논의가 벌어졌는가. 이는 우리의 고질적인 ‘외국에서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묘한 정서 때문이 아닐까. 이 역시 앞서 사례로 든 신도시 그리고 외국의 수출도시와 동일한 사고방식에 위치한다. 물론 문화도 산업이며 대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문화는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재화財貨가 아니다. 더군다나 자주성과 자족성이 부재하다면 심각하게 그 근원적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기자간담회에서 커미셔너는 이번 기회를 통해 “분열된 건축계가 통합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구조에 대해 모두가 볼멘소리를 했지만 각자 보장된 이득을 얻어왔기 때문에 이를 고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비엔날레에 대형 설계사무소를 참가시킴으로써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문제를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 다른 커미셔너의 공약은 “한국의 총체적인 역동성을 재현하겠다”는 것이었다. 과연 비엔날레라는 자리가 그러한 논제를 공유할 만한 적합한 장소일까?
불행하게도 앞서 말한 논의의 부제, 대외적 인정에 대한 갈망은 또 다른 몇 가지의 문제와 공통분모를 갖는데 이는 ‘정기간행물’과 ‘교육’이다. 전자에서 지적할 수 있는 문제로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겨냥하며 국내의 이슈와 작품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꼽을 수 있고, 후자의 경우 국적불명의 인증제도로 이미 열악한 건축교육을 더욱 획일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어느 지식인은 “나는 한 번도 교육을 받으면서 나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 바가 없다”고 말했다. 보다시피 산업, 문화, 교육에 편재한 이러한 현상은 보다 심층적인 대안의 제시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가시화된 문제, 즉 대형 설계사무소와 아틀리에 간의 갈등을 살펴보자. 지금까지 양자는 거의 교차할 부분이 없는 상태로 공존해왔다. 건설이라는 생태계에서 대형 설계사무소는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비대해진 몸집으로 우위를 누리면서 거의 담합과 독점에 가까운 이익을 누려왔다. 반면에 아틀리에는 간헐적인 현상설계를 제외하면 자영업과 비슷하게 인맥에 의해 주어지는 작은 계획안들을 실현해왔다.
최근에 건설업의 위기로 중간지대가 형성되었고, 대형 설계사무소가 소규모 프로젝트까지도 수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비엔날레라는 문화적 행사에 홍보적인 내용으로 참여하기에 이른 것이다.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아틀리에는 그동안 대형 설계사무소를 ‘업자’들로 무시해왔지만, 이들이 건축가협회 임원진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를 통해 문화분야에 자신의 입지를 주장하면서 참아왔던 불편함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양자 모두 글로벌한 상황에서 이렇다 할만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고학력의 유능한 졸업생들이 건축을 하더라도 정작 건축가라고 부르기 어려운 이들로 만드는 대형 설계사무소나 작가주의를 논하면서 저임금과 임금체납을 반복하는 아틀리에 양자에게 이번 논쟁들을 계기로 급변하는 상황과 한국적인 현실에 대해 심층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지역성은 초토화되고 서울을 중심으로 획일화되는 상황에서 상호작용성, 친환경성, 장소성, 감각의 구축, 감촉성, 직조와 상상, 환유와 회상, 느림과 재편 등의 공허한 수사학은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진정성을 전달하기에 역부족이다.
제13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1.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11년 9월 22일 제13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로 대전대학교 건축학과 김병윤 교수를 선정했다. 제13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총감독은 영국의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임명되었고, 건축전의 전시 주제를 ≪공통의 토대Common Ground≫로 정했다. 비엔날레는 주제전과 국가전으로 구성되며 주제전은 주최 측에서 건축가를 선정하여 초청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국가전은 주제전의 전시와 유기적으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전시 주제를 설정하고 각 국가의 커미셔너를 통 하여 해당 국가의 건축가와 건축문화를 알리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 전에는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영국), 자하 하디드Zaha Hadid(이라크) 등이 참여하고 우리나라는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가 초청되었다. 한국관의 전시 주제는 ≪건축을 걷다Walk in Architecture≫로, ‘상호작용성’, ‘친 환경성’, ‘장소의 기억’, ‘감각의 구축’, ‘섬세함과 감촉성’이라는 하부 주제를 가진다.
2.
2012년 7월 18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김병윤 커미셔너를 주축으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 에서 한국관 참가작가, 전시방향, 작품 소개를 하는 기자간담회를 마련했다. 공식적인 참가 작가 발표에 앞서 건축계에서는 작가선정과 관련하여 논란이 확산되어오고 있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이 세계 건축계의 흐름과 방향을 진단할 수 있는 자리로 건축계 구성원들이 공통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관은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건축가가 아닌 턴키 등 건축계의 폐단을 조장하는 대형 건축 설계사무소의 임원들이 국가관의 대표 건축가가 된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참가작가는 총 8명으로 신진건축가 4명 김현수(이소우 건축), 윤창기(경암건축), 박진택(Jtparchitecture), 오영욱(oddaa), 대형 건축사무소 대표 4명 김태만(해안건축 대표), 박승홍(디엠피건축 대표), 이상림(공간건축 대표), 한종률(삼우건축 부사장)이다.
참가작가의 선정은 전시 주제에 대한 이해와 해석 역량을 존중하여 커미셔너에게 일임해왔으나, 이번에는 공모방식을 통했다. 문제는 공모에 앞서 사실상 전시의 세부적인 구성과 이해가 커미셔너보다 공모에 참여한 건축가의 해석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병윤 커미셔너는 참가작가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선정과 관련해서 어떤 의혹도 없다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답했다. 그러나 주제와의 개연성 여부를 관객에게 작품으로 설득하지 못한다면 일각에서 품고 있는 의구심을 풀기는 어려워 보인다.
3.
제13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8월 29일부터 11월 25일까지 베니스의 카스텔로 공원과 아르세날레나 전시장에서 열린다. 한국관은 참가건축가들이 ‘건축을 걷다’라는 주제 아래 자신의 작품과 작품을 둘러싼 스토리를 영상으로 제작해 이를 상영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이토 토요Ito Toyo가 큐레이팅한 일본관은 ≪architecture. possible here? home-for- all≫이라는 주제로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건축의 역할을 묻는다. 일본관은 이번 건축전에 서 베스트 파빌리온 상을 수여했다. 독일관은 ≪Reduce, Reuse, Recycle≫을 통해 건축에 대한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접근을 제시했다.


김일현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
속물적 담합과 주제 의식의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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