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 신선, 재미 그리고 시의적절한 것
현시원 × 이경희
분량6,929자 / 14분 / 도판 3장
발행일2012년 9월 18일
유형인터뷰
나의 상상력과 너의 지적 호기심이 만날 때
세계적인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은 전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를 담는다고 했던가. 홍보라, 현시원 두 사람이 기획해온 전시를 보면 그들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대상이 얼마나 다양한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그리고 지적이고 창의적인 공동체를 존중하며 만들어가는 이들의 전시는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큐레이팅이라는 것이 어떤 기쁨의 원천이 되는지 들어보았다.
현시원 《지휘부여 각성하라》, 《천수마트 2층》 등을 기획했고, 현재 <Closing Hours>와 <라이팅 밴드>, 작가 잭슨 홍의 개인전 등을 진행 및 준비 중이다. 시각 이미지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단행본 『디자인 극과 극』 (학고재, 2010)을 썼고 지금은 『너의 의미』(가제)를 쓰고 있다. 경향 『아티클』 , 「한겨레 21」 등에 전시와 그림에 관한 글을 연재한다. 사계절큐큐의 멤버이자 『워킹매거진』의 에디터이기도 하다.
인터뷰 이경희 정림건축문화재단
이경희 전시 기획 방식의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일반 전시에서부터 온라인의 글로 지은 미술관 (라이팅 밴드), 지면을 통한 전시 기획(워킹매거진), 다원예술(페스티벌 봄)까지. 이러한 가운데에도 본인만의 공통분모가 있나요, 아니면 정말 왕성한 호기심인가요.
현시원 주변 분들이 제게 호기심이 많다고는 해요. 질문도 많고요. (웃음) 하지만 저는 그렇게 다양하게 활동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학교 신문사에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던 시기에 비하면 졸업 후에는 관심사를 미술사와 큐레이터로 좁힌 거거든요. 제가 궁금한 것은 미술관에만 있는 미술이 아니라, 껌포장지, 아이스크림 모양과 같은 일상의 이미지들이 왜 그렇게 생겼는가 하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내가 관심 있는 미술이 ‘현실’ 과 가까울 때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재환 선생님 같은 고리타분하지 않고 장난기 있는 민중미술을 좋아하고 미술이란 말이 애매하긴 하지만 현대 ‘미술’이 어떻게 미술 이외의 다른 것들을 다룰 수 있느냐가 궁금했어요.
이경희 기획하신 전시들의 인상이 하나같이 신선하고 엉뚱하다가도, 막상 뚜껑을 열면 매우 시의적절하단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 전시 기획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현시원 경력은 그리 길진 않아요. 학보사 문화부 기자를 하니까 자연히 전시를 열심히 봤어요. 미술을 책으로 먼저 본 게 아니라 전시장에서 접한 거죠. 1999~2001 년에는 금호, 성곡, 선재 등에 재미있는 전시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좀 더 공부하고 싶었고요. 한번은 이영철 선생님이 쓴 글을 봤는데, 전시 기획이라는 것은 “제3의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거예요. 간지럽죠. (웃음)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전시 기획이라는 게 무얼까 진지하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대학원에서는 작가를 친구처럼 만나니까 좋았어요. 당시 남화연 작가의 드로잉이 너무 좋은데 보여줄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지면에 전시를 세우면 어떨까 했죠. 그렇게 『워킹매거진』 에 주변 친구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주제를 잡아서 신작을 선보인 것이 자연스럽게 기획으로 연결됐어요. 그리고 한겨레신문사의 주말 섹션도 3면을 채워야하는데 구성에 큰 제약이 없어서 역시 전시처럼 기획했어요. 한국의 교복 이미지, 광고 문구, 사람들이 선호하는 진행자 등 온갖 시각문화를 분석해봤어요. 꼭 미술이 아니어도요.
이경희 순서가 다르네요. 보통은 실기든 이론이든 학교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흐름을 읽고, 관객을 분석해서 테마를 잡아 기획하는데, 현 큐레이터님은 주변의 친구들을 세상에 보여주고 나눌 거리가 필요해서 『워킹매거진』 을 진행했던 거였어요. 출발이 작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시원 남화연 작가와는 5년 동안 매일 전화하다시피 했어요. 꼭 작업 이야기만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야기를 하니까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고 배운 것도 많아요. 살면서 짜증나는 일도 많고 전시 기획이 무엇인지 답답하다가도, 제가 관심 있는 작가들의 미래를 보고 싶기 때문에 전시를 기획하는 건 당연한 거 같아요.
이경희 요즘은 매우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큐레이팅을 합니다. 작가 스스로 기획과 작업의 경계를 오가기도 하고요.
현시원 주변에서 어려운 가운데도 다양한 시도들을 하는 걸 보면 좋더라고요. 전시가 좋아지는 큐레이터를 실제 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건 우리 모두가 같이 가난해지기 때문에 가능한 거 같아요. 갤러리의 미술은 재미가 없어지고, 미술이 순수 목적이 아닌 특정 목적이 된 사람만 하는 것 같고, 주변에 생활과 미술이 합체되는 작가들이 점점 느는 것도 갤러리의 간섭을 받기보다 자기 생각을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으니까,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아요.
이경희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분발하고자 하는 지점이 있으신가요.
현시원 우리나라가 이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매우 약한 건 분명해요. 해외의 문필가들은 그림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하는데 우리는 미술과 문학이 분리되어 얘기되거든요. 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수요가 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미지 리터러시라고 할까요. 미디어환경은 변하고 있는데도 이미지가 나와 시대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거든요. 그런 역할을 요즘의 큐레이터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재환 선생님이 서울을 다니면서 어디에 껌딱지가 많이 붙어있는지 보라는 거예요. 그런 동네는 회환이 많은 곳이라고. 저라면 할 수 있다고. (웃음) 전시라는 게 벽에 멋진 그림 거는 게 아니라 전시 자체가 또 다른 작업이 되어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고요.
이경희 선호하는 작가나 작품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사실 이 질문이 잘못된 게, 현 큐레이터님이 작품보다 사람에게 먼저 관심을 먼저 갖고 접근하는 거 같긴 하거든요. 그리고 전시의 결과물이나 작가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요.
현시원 최근에는 잭슨 홍 작가가 현실과 반응하는 그만의 언어가 흥미로워요. 디자인과 미술 사이에서 기생적으로 생겨난 작가인데, 세상을 보는 질문을 만들고 미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기 때문에 좋아요. 그는 디자인과를 나왔지만 예술가가 됐고, 말도 안 되는 사물을 만드는 걸 보면서, 도대체 기성품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진지하게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일상에서는 전시 기획이 아니면 진지하게 이야기 할 기회가 별로 없거든요.
이경희 작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더 좋다는 건가요? 대중을 너무 의식하다보면 가공이 들어가고 주석이 들어가고 하니까요.
현시원 그게 맞아요. 큐레이터가 조심스러운 게, 작가를 표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라벨을 만들어서 범주화하니까요.
이경희 최근 웹을 기반으로 한 <라이팅 밴드>라는 흥미로운 시도를 하셨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공통분모 없이 여러 필자가 글을 올립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러한 기획을 하게 됐나요.
현시원 《천수마트 2층》을 하면서 제가 기획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걸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페스티벌 봄을 통해서 무대에 올리는 게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운 거 같았어요. 시작은 혼자 보기 아까워서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박길종 씨의 도움으로 장치를 만들어 전시한 건데, 공연에서는 많은 이들이 한 공간에서 집중해서 보는 게 결과적으로는 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라이팅 밴드>는 아무도 무대 위에 올라가지 않고, 글 쓰는 일곱 명이 조용히 미술관에 갔다가 조용히 와서 자기가 본 것에 대해서 글 쓰는 것을 해보자 했어요.
글쓰기와 전시가 어떤 관계인지 저도 늘 궁금해요. <라이팅 밴드>도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나 말고 다른 이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궁금했거든요. 「한겨레」나 월간지에 글을 쓰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닌 게, 원고 마감 전에 해당 잡지의 다른 글을 읽어봐요. 포맷이 있거든요. 또 신문 칼럼 중 평소 잘 쓴다고 생각하는 글들을 참고로 각 매체 성격에 맞추거든요. 그런데 <라이팅 밴드>는 예시가 없어요. 같이 하는 다른 사람들도 나름의 스타일이 강하고요. 어떤 모티프를 잡든 그들 마음이거든요. 뒤샹처럼 쓰는 사람, 걸어가면서 빠른 호흡으로 쓰는 사람, 보도자료를 활용해 쓰는 사람 등.
동물원 가서 동물 보고 쓰라고 하는 게 열린 거 같지만 어떻게 보면 또 매우 한정적인 조건을 준 거거든요. 미술계에서는 글을 가지고 하는 시도가 아직은 부족해요. 제가 비판할 입장은 아니지만. 자유로운 글쓰기를 보여주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해보고 싶고요.
이경희 그럼 <라이팅 밴드>는 국립현대미술관에만 국한되어 곧 마무리되는 건가요?
현시원 이 프로젝트는 다른 공간에서 해야 더 재미있는 거 같아서, 당장 알리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하려고 생각 중이예요. 기획이 현시원이 아니라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진행하려고 했는데, 결국 뒤치다꺼리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해서 그렇게 된거예요. 아무튼 이번이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궁극적으로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좀 더 동등한 입장에서 해보고 싶어요.
이경희 기획자로서도 그렇고 작가나 공연 등에 관해 글 쓸 일이 많잖아요. 기획자로서 글을 쓰는 작업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를 갖나요.
현시원 말을 할 때도 ‘유레카’의 순간이 있지만, 글에서 그런 순간을 더 강렬하게 느껴요. 혼자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한겨레21」, 『아티클』지에도 마감을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에는 흥이 나진 않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쓰는 시 형식의 글을 쓸 때 제일 기분이 좋아요. 20대 초중반에는 왜 전시 기획을 해야 하고 미술을 전공해야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림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추상적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은 글이라는 게 전시를 위한 사고를 밑받침 해주고 좋은 출발점이 되는 거 같아요.
이경희 대표 직함은 독립 큐레이터잖아요. 그런데 실제 하는 활동들이 좋은 큐레이터가 되기 위한 건지, 아니면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큐레이터를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현시원 최종적으로 ‘큐레이터란 무엇인가’만을 염두에 두지는 않아요. 하지만 매우 구체적으로 재미있는 (‘재미’라는 표현이 애매하긴 한데요), 전시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요. 글쓰기는 짜릿하기도 하지만 너무 어려운 일이고요.
글쓰기의 모티브도 전시를 기획 하는 것처럼 이미지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좋기도 해요. 요새는 전시 기획을 잘 하고 싶단 생각이 들지만, 글쓰기가 이것보다 덜 소중한 건 아니예요. 50대에는 옷장사를 해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글을 잘 쓰려면 정말 재미있게 살거나, 슬프게 살거나 해야 하는 거 같아요. 저는 일단 상상이 아닌 눈으로 본 것을 기반으로 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거든요.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한다고 좋은 글이 써지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리듬감 있는 글이 나오려면 일단은 재미있게 살고 계속 변하는 ‘생활’이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지, 큐레이터로서 경험을 많이 쌓아서 글을 쓰고 싶은 건지는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생각을 표현하는데 있어 시각언어는 글에 비해 덜 설명해도 된다는 것에서 자유로움이 느껴져요.
이경희 기획자로서 작가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데, 관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때 포커스를 미술계와 관객 중 어디에 두나요?
현시원 전시는 10년, 20년이 지나도 후회되지 않게끔 작가와 기획자의 시각에 맞추는 편이예요. <라이팅 밴드>도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참여한 사람들(필자들)에게 맞추어 우리 안에서 어떻게 하면 쫀득쫀득한 화학반응이 일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요. 솔직히 관객은 주변의 소수만을 생각하고요.
《천수마트 2층》의 경우도 페스티벌 봄에서 한 것보다 작년 8월에 한 게 더 산뜻했어요. 그 때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반죽이 살아있었어요. 기획, 국립현대미술관의 도슨트, 곧 돌아가실 것 같은 화가 조성린 할아버지… 그때는 오히려 관객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게 페스티벌 봄에서 관객을 생각하면서 가공을 하니까 석회석처럼 굳은 느낌이더라고요. 할아버지를 더 오래 보고 그림을 연구할 수 있었던 점은 좋았지만요.

이경희 큐레이터라는 게 좋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 가운데 사람들의 사유의 폭을 넓히고 물질만능주의에서 획일화된 고인 생각에 자극을 주고 제동을 거는 역할이요.
현시원 전시가 왜 매력적인가, 왜 내가 이것을 계속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다른 생각들이 모여 있는 구조가 재미있는 거 같아요. 책만 해도 레이어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하지만 전시가 재미있는 게 여러 계열이 어긋나있어요. 계통이 없다고 할까요. <라이팅 밴드>만 해도 다 다른 사람이 모이고, 잭슨 홍은 계란판 가지고 작품이라 하고, 워크온워크는 홍대 지하철에서 전시를 하잖아요. 현대미술을 다 이해하는 사람은 아마 미치광이일 거에요. 자기 시각으로 보는 게 현대미술 같은데, 기획자는 ‘다른 종류의 사람도 있다’, ‘보이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다’, ‘다른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거 같아요. 작가들이 좋은 작업을 할 수 있게끔 맥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들이 신작을 많이 해야 시대가 기록되는 것 같고요. 그런 면에서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글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경희 직업군으로 봤을 때 전시기획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당장 해결방법을 내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떤 의의를 가지고 계속해서 전시기획을 할 수 있을까요.
현시원 돈이라는 게 왔다갔다 해요. 혹자는 돈이 있어야 좋은 작업이 나온다고하는데, 돈이 작품을 망치는 경우도 많거든요. 돈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기획도 분명 있어요. 자원봉사 전시기획은 아니지만, 저는 전시기획이 ‘연구행위’라고 생각해요. 눈 앞의 이익이 중요한 게 아닌 거죠. 그렇다고 예산의 제약에 수긍한다는 건 아니에요. 분명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전시가 나오기도 하고, 그러면서 폭이 넓어지기도 하거든요.
엉뚱, 신선, 재미 그리고 시의적절한 것
분량6,929자 / 14분 / 도판 3장
발행일2012년 9월 18일
유형인터뷰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