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vol03-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관계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홍보라 × 임국화

나의 상상력과 너의 지적 호기심이 만날 때
세계적인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은 전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를 담는다고 했던가. 홍보라, 현시원 두 사람이 기획해온 전시를 보면 그들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대상이 얼마나 다양한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그리고 지적이고 창의적인 공동체를 존중하며 만들어가는 이들의 전시는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큐레이팅이라는 것이 어떤 기쁨의 원천이 되는지 들어보았다.


홍보라 서강대에서 종교학과 신문방송학을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서 예술행정을 공부했다. 2002년부터 갤러리팩토리Gallery Factory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2 한국국제교류재단 북유럽국제교류전 ≪노르딕 데이: 일상 속의 북유럽디자인≫을 기획 · 진행하고 문화역 서울 284 ≪인생사용법≫에 참여했다. 이 외에도 다수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인터뷰 임국화 컨템포러리아트저널 편집자


임국화 갤러리 팩토리(이하 ‘팩토리’)는 ‘이러이러한 전시를 보게 될 것이다’라는 예측을 할 수 없는 공간인 것 같습니다. 항상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여러 활동을 하는 디렉터님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들이 팩토리의 전시와 활동에 반영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시를 기획하거나 공간을 운영할 때 어떤 관점 또는 입장을 지키려고 하시는지요.

홍보라 결과적으로 봤을 때 여러 가지 일을 한 것이지만 따로 떼어보면 그 자체가 흥미로웠던 일이었기 때문에 시작한 일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이라는 것을 계기로 나가서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를 경험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재미를 느끼는 것이 있다면, 반대로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지금의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빠지는 것입니다. 특히 시각예술에서 사용하는 특수 언어가 전부인줄로만 생각하게 될까하는 것이 두려워서 저는 자신의 언어에 빠지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디자인’이라고 했을 때 디자인이 갖는 형태적인 측면은 제게 주요 관심 대상은 아닙니다. 이건 미술의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아름다움은 아주 기본이지만 저의 경우에는 그 아름다움을 만드는 다이내믹에 관심을 두고 보는 편입니다. ‘왜 이것이 아름답다고 불리는지, 이것이 왜 의미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죠. 계속해서 회자되어 트렌드가 되고, 나아가서 그런 방향으로 사회가 움직이는 데에는 이유들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움직임이 우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레 그 뒤에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팩토리의 디렉터이자 큐레이터로서 어떤 사건이나 이슈 뒤에 있는 현상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미술의 언어나 디자인의 언어로 번역하여 보여주는 것이 제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임국화 전시 기획이나 워크숍 진행뿐만 아니라 잡지 『VERSUS』도 발행하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발행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홍보라 잡지 발행과 관련한 기획 및 준비는 2006년 말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책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작업 과정에 참여할 때와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맛보는 기쁨은 어떤 어려움이나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에너지인데요. 『VERSUS』 는 그런 즐거운 에너지들을 바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006년 즈음을 떠올려보면, 전시 공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시기였고 전시는 한시적으로밖에 기능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미술시장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고 커지면서 팩토리의 위치와 공간에 대한 질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시가 가진 한시적인 성향에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허무감을 굉장히 크게 느꼈습니다. 그런 생각들로 힘들어할 때 친구이자 동료이자 그리고 조언자로 같이 성장한 최승훈+ 박선민 디자이너와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일종의 책 같은 것을 만들면 그것이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때는 『VERSUS』 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습니다. 출판을 하게 되면서, 출판사와 전시 공간을 겸하고 있는 저희와 같은 조건을 가진 갤러리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독립잡지를 출판하면서 전시 공간을 운영하는 일본 갤러리 두 곳을 우연히 발견 또는 소개 받으면서, 이후 그들과 유연하게 파트너십을 맺어 전시와 세미나 등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그 세계가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매체를 갖는다는 것이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통해서 관계를 형성하고 동료들을 갖게 되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저는 『VERSUS』 처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일 할 때 전문분야를 바탕으로 나오는 ‘진지함’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제가 큰 그림을 보려고 한다면 그분들은 디테일, 그리고 진지함으로 순간을 대하거든요.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서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 자체가 너무나 즐거운 일입니다. 『VERSUS』 의 출판을 통해서 각자의 분야를 존중하면서 일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성장의 계기가 되었고 여러모로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VERSUS』 5호 표지 (2012. 8) 최승훈+박선민이 제안하고 동시에 아트디렉터를 맡았으며 편집디자인은 워크룸workroom의 디자이너 김형진이 맡았다. 편집자 김뉘연이 4호와 5호의 객원편집장으로 참여했다. / 사진 제공: 갤러리 팩토리

임국화 2003년 이용제 디자이너의 전시에서부터 최근의 김영나 디자이너까지 팩토리의 전시를 통해서 디자인 이슈들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팩토리에서는 여타 장르의 전시보다 디자인 관련 전시가 많이 열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홍보라 의도에 의해서 디자인 전시를 기획한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열렸던 전시들을 떠올려보면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계기가 생겨 전시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어떤 작가의 전시를 해야겠다 하고 생각하기까지는 그 당시에는 비록 의식하지 못했더라도 필히 어떤 이유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영역 뒤의 다이내믹’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디자인이 팩토리가 가진 언어라고 많은 분들이 생각합니다. 디자인 전시가 팩토리에서 많이 열렸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디자인 쪽에 아는 분들이 많이 있기도 했고, 솔직히 말해서 현대미술을 다루는 전시만 계속하다보면 전시 준비 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는데요. 특히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의 어려운 점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좀 더 용이하고 과정이 즐거운 편인 디자인 전시를 많이 하게 된 것일 수도 있겠죠. 이용제 디자이너의 ≪한글. 타이포그라피. 책.≫(2003) 전시를 할 때에는 뭘 해야 할지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였던 거 같습니다. 2003년만 하더라도 북바인딩에 대한 어떤 정보 같은 것이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북바인딩을 위한 도구가 아직 많이 구비가 되지 않았던 때라 명주실을 왁싱하는 등 대체 가능한 방식을 이용제 씨가 직접 찾아서 진행했죠. 남은 종이를 이용해 제본을 해보는 북바인딩 워크숍을 같이 진행했는데 반응이 꽤 좋아서 한동안 팩토리가 핸드메이드 워크숍 공간으로 알려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 후에 이용제 디자이너의 추천과 소개로 당시 스위스에서 유학 중인 박우혁 디자이너를 알게 되었고, ≪A Diary: Typographic Days≫(2004)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 박우혁 디자이너를 통해 주목할 만한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듀오를 소개받았는데 그분들이 슬기와 민입니다. 이후 슬기와 민과 ≪슬기와 민, 팩토리 공육공사이일 – 공육공오일삼≫(2006) 전시를 하게 되었고요. 김영나 디자이너의 ≪FOUND ABSTRACTS≫(2011) 전시의 경우도 그렇게 열리게 되었습니다. 굳이 전시라는 플랫폼을 필요로 하지 않는 디자인 분야에서 디자이너들이 전시를 하게 되는 데는 일종의 계기가 필요한데, 그런 때에 알 수 없는 우연으로 서로 만나게 되면 꽤 흥미로운 전시로 이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임국화 팩토리가 개관하기 이전부터 현재까지 어떤 이슈들에 주목해오셨나요?

홍보라 제가 2002년부터 갤러리를 시작했는데요. 그때도 다른 장르나 분야에 비해 팝아트에 관심이 덜했지만 최근에는 더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팝아트라고 말하기보다는 에둘러서 재미없을 만큼 지리하게 뭔가를 재현하거나 선언하는 그런 작품에 관심이 없어졌다고 하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개념적인 작품이 더 좋다는 것 보다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목적이 있는 작품이나 노동집약적인 작업에 대한 흥미가 줄게 된 거죠. 그러면서 작업을 보는 방식들이 바뀌게 된 것 같습니다.

한국은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1년 단위로 큰 방향을 정합니다. 미술 혹은 예술 커뮤니티 내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컨텍스트가 계속 바뀌는 것에 촉을 세우고 유연하게 움직이되 근본적인 부분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합니다. 재작년부터는 개인적으로 음식미학gastronomy에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음식미학과 관련한 전시와 연계된 워크숍 및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음식이라는 것이 일상과 예술에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매우 개념적인 작업을 위주로 하는 작가들, 즉 언어와 텍스트의 관계를 조망하는 작가들의 전시도 함께 시리즈로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간 많이 다루지 않았던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개념미술 작업들이 보여질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5월에 있었던 김온 작가의 ≪Surfaces of Listening≫(2012) 전시 그리고 올해 12월에 예정된 전소정 작가의 개인전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Surfaces of Listening≫ 전시 전경, 2012 / 사진: 갤러리 팩토리

임국화 『VERSUS』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고 전문분야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다이내믹한 분위기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최근 전시 기획의 경험을 바탕으로 큐레이터의 역할범주는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홍보라 저에게 큐레이션은 디렉팅의 역할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저는 전시 기획을 협소한 영역과 역할로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전시의 개념을 만들고, 공간에 어떤 방식으로 그 개념이 녹아들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그 예산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진지하게 고려합니다. 국고지원인지 기업지원인지에 따라 전시의 형식과 방식이 어느 정도 다르게 상정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전시를 만든다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말이 안 되는 일인 거죠. 예술행정을 전공한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고를 쓴다고 할 때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가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는 것이죠.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객원큐레이터를 맡아 기획한 북유럽디자인전시 ≪노르딕 데이≫(2012)를 진행하면서 그런 부분을 굉장히 많이 고려했습니다.

큐레이터, 디렉터의 역할 가운데 중요한 것은 큰 그림을 갖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연하게 문맥에 따라 변화해가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방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저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주제나 형식보다 각각의 전시에 맞는 프레임워크를 가장 먼저 만듭니다. 그래서 실제 어떤 작품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구체적 내용에서부터 어떤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홍보할까 하는 것까지 전시 기획 초기에 방향을 잡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서로서로 연결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일은 형태를 통해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 뒤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다양한 다이내믹을 생각해보고 그것을 전시라는 형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념으로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 중간 중간에 처음의 프레임워크 단계로 돌아가서 다시 확인하고 다시 또 한걸음씩 나아가는 방식으로 큐레이팅을 합니다. 큰 구조를 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유연하게 바꿔가면서 해야 즐겁게 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9월 13일부터 문화역 서울 284 에서 열릴 «인생사용법»전시에서도 역시 큰 프레임워크를 정하고 나머지는 열어두며 전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큰 전시의 제목이 ≪인생사용법≫이고 제가 기획자로 참여한 섹션의 전시 제목은 ≪우연한 공동체≫입니다. 이상적인 ‘공동체’라는 것을 상정하고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사물, 동물 간 보이지 않는 관계의 형성과 발전과 변이에 주목하는 전시입니다. 실제로 이 전시를 통해서 개인이나 개체 같은 작은 단위에 관심과 해답을 가진 전문가의 위치가 아니라 궁금한 사람으로서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방식이 저의 큐레이팅 방식인 것 같습니다.

임국화 마지막으로 올해 팩토리의 큰 토픽은 무엇인가요?

홍보라 그간 진행해온 전시와 아트컨설팅 외에 ‘팩토리 에디션’이라는 프로젝트를 올해부터 새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간이 중심을 이루는 전시라는 플랫폼을 벗어나서 팩토리가 아티스트들과 협업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결과물은 가구, 가방, 멀티프린트, 공간 설치 등 정말 다양한 형태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어떤 한 가지의 정의에 가두지 않고 더욱 자유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해서 궁극적으로는 팩토리가 공간이 아니라 개념이 되길 바래봅니다. 공간으로 운영이 되면 언제 없어질지 모르지만, 개념이 되면 새로운 단계로 확장 또는 전환 가능하다는 믿음이 생겼고 그래서 지금이 더욱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계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분량6,783자 / 14분 / 도판 2장

발행일2012년 9월 18일

유형인터뷰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