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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종합운동장의 올림픽 주경기장을 아파트로?

조한

1984년 9월 29일자 「경향신문」 에 실린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개장시 광경

방치된 거대한 기념비, 잠실종합운동장

런던올림픽이 한창이다.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 숨소리 하나, 땀 하나에 우리도 같이 움직이고, 숨 쉬고, 땀을 흘리며, 그들과 함께 기뻐하며, 때로는 아쉬워하기도 한다. 우리가 올림픽에 진정 감동하는 이유는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고 국위를 선양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피와 땀과 꿈과 노력을 공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에게도 그런 올림픽이 있었다. 바로 1988년 서울올림픽이다. 당시 개막식에서 파란 운동장을 혼자 가로지르던 굴렁쇠 소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잠실의 올림픽 주경기장은 24년 전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아련한 신전이나 성지로만 존재한다. 올림픽 이후 주경기장은 1년 중 300일 이상 비어있음에도 유지 관리 명목으로 지난 10년 동안 1,000억 원 이상이 소요되었다. 현재는 올림픽대로 옆에 방치된 거대 기념비일 뿐이다. 서울올림픽 이후에도 주경기장은 국가대표 축구 경기와 국내 프로축구 경기를 통해 나름 축구의 전당으로서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2002년 한 · 일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 전용경기장인 서울 월드컵경기장에 모든 축구 경기를 빼앗기면서 올림픽 주경기장은 경기장으로서의 생명력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또한 2002년 월드컵 4강의 감동이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감동을 완전히 대체해 버리면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물론 이후에 올림픽 주경기장을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축구와 야구 겸용 경기장으로 활용해보자는 주장도 있었고, 2008년부터 2010년에는 서울시가 이곳을 ‘서울디자인올림픽’의 장소로 활용하면서 문화 공간으로서의 변화도 시도되었다. 하지만 그 역할마저 동대문디자인 플라자로 옮겨간 요즈음, 올림픽 주경기장은 다시 버려졌다고 할 수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며 동시에 역동적인 강남의 요지에 위치한 올림픽 주경기장이 이렇게 방치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근대 사회에서 체육을 통해 국가관을 고취시키기 위해 태어난 종합운동장이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그 생명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욕구는 건축적으로 보다 전문화된 스포츠 경기장은 물론, 동시에 여러 가지 문화적 행위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요구하고 있는데, 종합운동장은 더이상 우리에게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만약 종합경기장으로서 올림픽 주경기장이 현대 사회에 맞는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하지 못한다면, 90년 역사가 송두리째 말소되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의 안타까운 전철을 답습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우려를 부추기듯 최근에는 부동산 관련 뉴스에서 잠실종합운동장을 추정 시가 16조 원의 강남 노른자위 땅이라고 지칭하며 각종 개발 방향을 타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잠실종합운동장에 관광호텔을 비롯한 대규모 복합 멀티타운 건축이 예상된다는 보도도 내보낸다. 만약 건축계가 주도적으로 대안을 찾지 않는다면 자본의 논리에 의해 또 다른 우리의 소중한 건축 문화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올림픽 주경기장에 새로운 생명 불어넣기?

잠실종합운동장의 활성화에 고민하던 정부는 최근 규제 계획을 검토하여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만으로도 스포츠 시설 내에 자유롭게 수익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분히 복합문화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는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모델로 한 규제 완화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월드컵경기장들 중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는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수익은 매년 100억 원에 이른다. 이러한 성공담이 가능한 것은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월드컵 이후를 염두에 두고 입지 및 공간 구성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입지적인 측면에서 서울 월드컵경기장은 경의선 사이에 위치하고 지하철이 경기장을 통하며, 인접 주거 단지의 보행거리에 위치하는 등 다중적인 교통 인프라와 효과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공간적인 측면도 영화관과 대형 마트 등 수익 시설이 경기장 스탠드 하부 공간에 수용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서울 월드컵경기장은 단순한 체육시설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지역 주민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잠실종합운동장은 서울 월드컵경기장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관리 주체가 다르다. 잠실종합운동장은 ‘서울특별시 체육시설관리소’ 에서 관리하는 반면, 서울 월드컵경기장은 어린이대공원과 청계천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 이 관리한다. 만약 잠실종합운동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성화하고 싶다면, 서울시설공단이나 별도의 전문 단체가 관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음은 사용 주체가 다르다. 올림픽 주경기장은 이곳을 연고로 하는 프로팀이 없다.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성공은 2002년 한 ·일 월드컵의 열기를 K리그 최고의 인기 팀인 FC서울이 잘 이어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입지 조건이 다르다. 겉보기에는 올림픽대로 및 지하철 2호선과 인접한 잠실종합운동장의 입지 조건이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입지 조건과 유사해 보일지 모르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했던 지역에 들어가 성공적으로 주변 지역을 활성화시킨 서울 월드컵경기장과 달리, 잠실종합운동장 주변은 다양한 문화 및 상업시설로 이미 활성화되어 있다. 서쪽엔 대형 멀티플렉스와 아쿠아리움이 있는 코엑스몰과 코엑스 컨벤션센터, 호텔과 백화점이 이미 포진하고 있고, 동쪽엔 또 다른 대표 복합문화시설인 롯데월드가 있다. 특히 제2롯데월드가 2015년 완공인 마당에 복합문화상업시설로서 잠실종합운동장이 과연 사업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바로 올림픽 주경기장의 형태에 있다. 가운데 거대한 녹지(?)가 있는 타원 모양의 중정형 구조물과 360도 조망이 확보된 공간은 아파트로서 최적의 형태와 입지 조건이다. 환상적인 중앙 녹지와 한강 조망은 우리가 기대하는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아니던가. 따지고 보면, 프로 스포츠 구단을 유치하고자 하는 것도, 종합운동장을 복합문화상업시설로 바꾸자는 것도 소비자를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다시 끌어들이기 위함인데 아파트로 전용한다면 소비자를 아예 올림픽 주경기장에 상주하게 할 수 있다. 생활과 소비를 결합한 이러한 방식은 이미 수많은 주상복합에서 성공적으로 검증된 방식이기도 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찬찬히 올림픽 주경기장의 공간을 살펴보자.

올림픽 주경기장의 공간적 매력 중 하나는 거의 40미터 높이의 거대한 기둥 80개가 만들어내는 타원형의 우아한 공간이다. 수려한 곡선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기둥과 기둥 사이를 걸어가면서 변화하는 주변 경관을 바라보노라면 아름다운 서울을 주제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바로 그 공간에 주거 유닛을 삽입하자는 것이다. 특히 기둥 간 거리가 약 10미터인 점도 주거 평면 구성에 용이한데, 개략 100제곱미터 (약 30평)의 2BR 유닛으로 가정하면 3개 층에 240세대, 4개 층에 320세대, 5개 층에 400세대가 가능하다. 50제곱미터(약 15평)의 1BR로 가정하면 그 배가 가능해진다. 물론 기존 구조를 리모델링하고자 한다면 정밀한 구조 진단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오피스나 쇼핑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단위 면적 당 사용 인원이 적은 점도 주거 공간이 지닌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공공공간인 올림픽 주경기장을 대표적 사유공간인 아파트로 전용하는 것에 당연히 반발할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는 단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단 주거 형태를 의미할 뿐이며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공공성의 측면에서 서민을 위한 장기임대아파트로, 문화예술 복지차원에서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공간으로, 엘리트 스포츠에서 소외된 체육인들을 위한 교육 및 주거 공간으로,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을 위한 유스호스텔로 활용하는 것 모두 가능하다.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필수적이다. 기존 공간을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문화만능주의나, 쇼핑몰 같은 속칭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상업만능주의를 탈피해야만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이 기회에 오히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오명을 건축계가 긍정적으로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과거에 집착하며 폐허 속에 버려두는 것은 올바른 ‘기념’의 방법이 아니다. 같이 움직여 호흡하고 땀 흘리며,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그런 곳이 진정한 기념비적 건축이다.


조한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잠실종합운동장의 올림픽 주경기장을 아파트로?

분량4,180자 / 8분 / 도판 1장

발행일2012년 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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