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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이 남긴 것

임진영

균열된 토대 위에서의 건축

건축전시는 이미 지어진 건축물을 가져올 수도 없고 이를 그대로 재현할 수도 없다. 베니스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인 파올로 바라타 Paolo Baratta가 2008년에 지적했듯, 오로지 도면과 모형, 그리고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건축의 프로세스와 개념을 전달할 뿐이다. 작품을 통해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이를 세상에 직접적으로 던져내는 비엔날레 미술전과 달리, 비엔날레 건축전은 언제나 건축에 대한 아이디어, 건물을 짓는 행위, 실제 건물에 대해 간접적인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렇다면 일종의 재현일 뿐인 전시가 우리에게 왜 필요할까.

건축전시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가장 큰 규모이기도 한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을 통해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닐 것이다. 건축적인 사색과 사고를 촉진해 확장하고 공유하는 것, 어쩌면 베니스비엔날레는 그동안 짓는 것에 몰두해온 건축 행위를 잠시 돌아보고 그 의미를 함께 이야기하며 성찰할 수 있는 드문 반성의 기회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2008년 아론 베츠키Aaron Betsky의 『저기, 건설 너머의 건축Out there, Architecture Beyond Building』이나 2010년 세지마 가즈요Sejima Kazuyo의 『건축 안에서 만나다People Meet in Architecture』가 그랬듯,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은 언제나 사회적 의미를 고찰하는 주제를 제시해왔다. 그럼에도 유독 올해의 비엔날레 건축 주제가 부각되는 이유는 스타건축가의 이름으로 대변되던 지난 10년의 기념비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명확한 균열이 생겼으며, 스타건축가로 대변되는 건축가의 역할에 대한 한계와 위기가 강하게 제기되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에 의해 초대된 스타건축가가 “도시 개발의 한복판에서 선풍적인 오브젝트를 만드는 사이, 도시나 개별적인 삶의 조직에는 어떤 것도 하지 않았음을 주목하고 건축과 시민사회 사이의 균열을 바로잡는 것”(파올로 바라타) 이야말로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이다. 총감독 데이비드 치퍼필드 David Chipperfield가 제시한 주제 《공통의 토대 Common Ground》 역시 “지속성, 콘텍스트 그리고 기억에 관심을 두고 그 영향력과 기대를 나누며, 전문가와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명백한 이해의 결여를 다루고자”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도시는 건축가뿐만 아니라 시민과 이해관계자, 건설 종사자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질 뿐 아니라 그 공동의 기반을 회복할 때에 비로소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비엔날레의 타이포그래프는 베니스의 골목마다 표시된 표지판과 같은 서체로 표현되었다. 매회 주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 중 하나였던 타이포그래프의 강렬한 개성을 드러내는 대신에, 도시의 일상을 대변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엔날레의 입구는 여느 골목길의 한 방향으로 들어가는 듯 평범한 인상을 준다. 전시의 시작 역시 베니스 곳곳에 놓인 작은 광장의 공동우물을 놓아, 우리가 공유하는 공동의 영역을 은유한다. 여러 국가관의 흥미로운 제안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주제를 일관되고 집요하게 제안하는 것은 역시 주제관의 몫이다. 주로 영국과 스위스 건축가로 포진된 주제관의 전시는 이 ‘공통의 토대’에서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주제관의 첫인상을 주는 것은 주제관 곳곳에 배치된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의 사진이다. 1978년부터 2010년까지 여러 도시의 거리 풍경을 담담하게 담은 이 작품에는 즉물적인 건물로 채워진 거리가 가득하다. 특히 고층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평양과 서울의 풍경은 전혀 다른 체제에 놓인 한 민족의 다른 듯 닮은 모습을 보여주며 전시장의 한 면을 채우고 있다. 거리의 풍경은 익명성을 담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가장 보편적인 도시의 풍경임을 깨닫게 된다.

익명의 거리 풍경을 지나 어둡고 거대한 홀로 들어서면 노만 포스터Norman Foster가 기획한 <게이트 웨이Gateway>가 펼쳐진다. 건축 역사에 등장했던 모든 건축가, 디자이너, 조경가와 구조디자이너의 이름이 도면처럼 흐르며 끝없이 도시를 확장하듯 만들어내고 그 위로는 공공공간의 다양한 풍경과 사건이 펼쳐진다. 이름이 만들어내는 것은 선과 면으로 된 도시지만, 정작 그 공간에서는 시위, 재난을 피해 모인 피신처, 종교공간, 휴식과 정치공간 등 공공공간의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며, 분노, 불안, 신앙과 평화, 재미와 축제의 열정 같은 다양한 감정을 분출해낸다. 희로애락이 분출되는 공공공간과 건축가의 이름으로 바닥과 기둥을 타고 그려내는 도시의 지도는 서로 분리되어 개입할 수 없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영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도시 공간에 대한 이 이중적인 표현은 아마도 우리 도시의 현실이면서 건축가의 한계를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협력의 과정에서부터 현대건축을 이해하는 일

올해 비엔날레의 태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작업과 구조디자이너의 리서치들일 것이다. 유독 스타건축가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형태적인 구조물을 설치한 자하 하디드는 파라매트릭parametric 디자인 연구에 기초한 주름진 금속패널을 이용해 장력구조로 아룸나무Arum를 연상케 하는 구조물 <Arum>을 현장에 설치했다. 그러나 자하 하디드의 유려한 곡면과 주름 잡힌 셸 구조물 Pleated Shell Structures과 함께 전시된 것은 펠릭스 칸델라Felix Candela, 하인즈 이슬러 Heinz Isler, 필립 블록Philippe Block과 같은 구조디자이너 및 엔지니어의 리서치들이다. 이를 통해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개개인의 창조로 여겨지는 많은 작업이 실은 집단적인 리서치의 역사적인 계보에 기초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거장으로 대변되던 건축가 상相 에서 사회, 사용자, 시공자, 구조설계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관계에 놓인 건축가의 역할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것이다. 형태 이면의 구조 실험, 연구와 역사적 맥락을 함께 보았을 때 비로소 현대건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가능해진다.

자하 하디드와 패트릭 슈마허, <Arum> / ©임진영

무엇보다 주제관에서 강렬한 전시는 바로 헤르조그 드 뮈론Herzog & de Meuron의 <엘프필하모니 콘서트홀Elbe Philharmonic Hall> 이다. 2003년 당선으로 설계를 시작해 잦은 설계 변경 요구와 그에 따른 기하급수적인 예산 상승, 여러 차례에 걸친 완공 일정의 연기, 결국 2011년 건축주인 함부르크시와 시공사의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되며 다시 2014년 완공을 목표로 제기되기까지, 하나의 건물이 지어지는 10여 년의 과정은 거대한 홀의 양면을 가득 채운 신문지면을 통해 생생하게 중계된다. 하나의 공공건축물을 기록해내고 이를 시민과 공유하는 독일 사회의 교양이 부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대중매체인 신문을 통해 중계되는 과정은 사회 각 분야와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건축을 보여준다. 정치, 예술, 건설 분야의 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팽팽한 힘겨루기 사이에 놓여있는 것이다. 완공작의 사진과 도면을 중심으로 건축가의 개념과 프로세스, 기술적인 혁신만을 이야기하던 건축물 이면에는 사회의 모든 분야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작동하고 있는 건축 행위가 있는 것이다.

공통의 토대 위에 그리는 도시

이 같은 시선은 노먼 포스터의 홍콩 상하이은행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도 볼 수 있다. 하이테크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이 건축물에 노만 포스터는 유리로 덮여 도시의 흐름을 잇는 공공공간을 만들어냈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이 공간에는 일요일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홍콩에 살고 있는 필리핀 가정부들이 고향에 돈을 부치기 위해 찾는 상하이은행은 그들이 교류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장소가 된 것이다. 일요일이 되면 필리핀 가정부들은 상하이은행의 지하공간과 아트리움을 점유하며 하루 종일 놀이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며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하고, 박스로 만든 임시 공간이 되면서 그들의 영토가 된다. 쉴 곳이 없는 그들에게 이 은행의 공공공간은 일요일마다 일시적인 공통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도시계획에 완벽하게 개입하지 않는 방식과는 반대로 도시 계획에 더 큰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도 있다.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 주도한 <피라네시 변주The Piranesi Variations>는 우리 도시에 결핍된 건축적인 상상을 통해 더 풍요로운 도시를 제안한다. 피터 아이젠만의 주도로 아이젠만 아키텍츠, 제프리 킵니스와 오하이오대학 학생들, 예일대학 학생들, 그리고 벨기에 건축집단 도그마 등의 네 팀이 참여한 <피라네시 변주>는 1762년의 피라네시의 캄포 마르지오Campo Marzio에 응답하는 제안이다. 예일대학 학생들은 먼저 로마를 고전주의의 원형으로 삼아 로마 건축 기념물을 상상으로 재복원한 캄포 마르지오를 도시 모형으로 재현하고, 여기에 아이젠만 아키텍츠는 고대 로마의 도시 공간을 일부 지워내고 현대적인 도시 계획을 끼워 넣음으로써 로마와 현대 사이에 공간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가 공존하게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오하이오 대학생들이 참여해 만들어낸 도시 <다이어그램의 필드A Field of Diagrams>로, 이것은 각각 다양한 꿈의 형상을 가진 아이콘으로 구성된다. 이는 현대건축을 위한 일종의 도덕극을 통해 고대 로마의 열정, 도착, 스펙터클을 되살려내는 제안이지만, 여러 상징물로 채운 도시 공간이 가진 초현실적인 생동감은 건조한 도시 환경에 결핍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하다.

피터 아이젠만이 주도하고 예일대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The Piranesi Variations> 중 <The Project of Campo Marzio> / ⓒ임진영

여기에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다윗의 탑 The Tower of David>에 대한 기록인 <토르 다비드The Torre David>는 방치된 수직타워를 점유하며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자발적인 수직 도시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공동체를 주목하며 여러 질문을 던진다. 건축가가 개입하지 않은 자발적인 도시 건설, 공동의 협력으로 만들어낸 공동체, 건축가의 사회적 개입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이 프로젝트야말로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건축 사회에 던지는 질문에 가장 근접한 사례일 것이다.

<The Torre David>, 2012 / ⓒ임진영

우리 건축계의 ‘공통의 토대’는 어디에

지난 11월 25일 막을 내린 2012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은 기존의 어느 때보다 도발적이고 예민한 주제를 던진 전시임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그들만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재해석하고 끊임없이 역사적인 맥락을 재생산하는 과정이 과연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시아의 거대한 도시들이 당면한 무차별 개발과 부동산 거품 문제, 사회적 건축 행위에 대한 가능성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땅콩주택으로 대변되는 집에 대한 열망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공공건축에 대해 높아진 시민들의 관심, 갈수록 떨어지는 대형건축물의 공간 퀄리티, 구조적인 리서치를 무시한 형태의 과용이 난무하는 와중에, ‘과연 좋은 건축물은 무엇인가’ 를 두고 우리는 충분히 숙고했을까. 어쩌면 서양 건축 담론의 한계가 이야기되는 지금이 자신만의 관점과 시각을 가지고 우리 도시와 사회에 관한 연구를 펼쳐낼 수 있는 적기인지도 모른다. 올해 한국관의 실망스러운 전시나 그에 대비되는 일본관의 약진도 자신의 도시와 사회를 통찰하는 시각의 존재 여부에 있을 것이다. 비엔날레의 의미는 우리의 도시와 사회, 건축 행위를 돌아보고 성찰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임진영

건축전문 기자

2012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이 남긴 것

분량5,745자 / 12분 / 도판 3장

발행일2012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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