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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건축주와 현실 건축가의 동상이몽

양수인 × 정소익

건축을 잘 아는 건축주를 만난 건축가와 건축가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건축주. 이들은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보다 쉽게 집을 지었을까, 아니 그 반대였을까? 지난 가을 남해에 완공한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 <소솔집> 의 건축주 정소익과 건축가 양수인의 긴 수다를 정리했다.


양수인 Lifethings 삶것. 양수인의 작업은 도시와 건축, 공공예술과 손바닥만한 전자기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을 넘나든다.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번째 공공예술프로젝트 작가로 선정되어 청계광장에 <있잖아요>라는 2평짜리 시민자유발언대를 선보였으며, 현재 국내에서 7,000평 규모의 복합문화시설 건축설계와 미국 산호세 시청의 발주로 대규모 공공예술 설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소익 도시매개프로젝트. 정소익은 서울, 뉴욕, 밀라노 등지에서 건축, 실내건축 및 도시설계 프로젝트들을 수행하였다. 최근에는 도시재생을 주제로 하는 지역 연구, 거버넌스/마을만들기 프로젝트, 전시 큐레이팅, 공공예술, 그리고 건축/도시 교육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슬로우라이프 slow life를 실천함과 동시에 건축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 <소솔집>을 경상남도 남해군에 건축했다. 


양수인 저와 정소익 소장은 같이 건축을 공부했지만 그것을 다루고 관여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를 갖고 있어요. 각자가 생각하는 건축에 대한 믿음과 불신에서부터 시작해,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근본적이고 큰 이야기를 하다보면 두 사람이 갖는 입장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소솔집>을 짓는 과정 중에도 분명 그런 것들이 많이 반영되었을 겁니다. 정 소장께서, “나는 이제 디자인 같은 거 안 할 거야” 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이유는 디자인을 열심히 하더라도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그보다 위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생각의 배경에 대해서 여쭙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정소익 말씀하신 대로 양수인 소장과는 생각의 온도 차가 있어요. 제가 알기로 양 소장은 어렸을 때부터 건축가가 꿈이었고 디자인을 중시했지만, 제 경우에 디자인은 취미였던 것 같아요. 제 성향이 좀 더 사회적인, 공동작업에 더 흥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 졸업 이후 무엇을 해야 하나, 건축을 할까 말까 하는 고민으로 많이 헤맸고, 그 고민은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까지 이어졌어요. 실제 박사 과정에 가보니 내용은 건축, 보존, 도시디자인이 결합하여 나중에 그중 한 가지를 고르는 시스템이었는데, 공부를 하다보니 저랑 도시디자인이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특히 정책이나 거버넌스와 같은 사회적이고, 디자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교차점을 가지면서 액션플랜action plan이 들어가고 철학이 드러나는 것들이요. 그림만 예쁘게 그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질문하던 중에 또 다른 길을 발견하게 된 거죠. 학위를 받고 나서는 거버넌스, 프로그래밍, 교육, 공공예술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양 소장에게 더 이상 디자인하지 않겠다고 말을 한 것 같아요.

사람마다 방법이 다르겠죠. 같은 주제를 가지고 누군가는 디자인으로 풀려 하고, 누군가는 정책만을 가지고 하려 할 테니. 저처럼 디자인이 들어가되 그것에 정책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양수인 연역법과 귀납법적 사고를 하는 사람의 차이인 것 같아요. 저는 사무실 이름을 지을 때부터 그랬지만, 건물을 짓는 것, 휴대전화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것, 정책을 만드는 것 모두가 디자인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해야 이 업계가 발전할 수 있다고도 보고요. 재미있게도 어떻게 보면 정 소장과 제 생각이 동일한 것이지만, 다시 보면 한 명은 모든 것이 디자인이고 그것을 더 넓혀 나가겠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 명은 디자인만으로는 안 되니까 더 넓혀나가겠다고 하기 때문에 전혀 달라요. 흥미로운 것은 <소솔집> 건축 과정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극명하게 드러나거든요. 한 사람은 건축주, 다른 한 사람은 건축가의 입장이었지만, 능동적으로 디자인하는 사람과 먼발치에서 디자인을 보는 사람을 구분하자면 갑과 을이 뒤바뀌는데, 그런 것들이 재미있는 요소인 것 같아요.

정소익 다 친한 선후배들이지만, 친한 것과 여러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생각할 때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무엇이 주제인가’ 를 생각하는 면에서는 서로가 잘 맞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면에서 저에게도 여러 가지로 행운이었고요. 고집부리지 않고 해달라는 것 다 해주고.

양수인 저는 건축이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소익 제 사무실 이름이 ‘도시매개프로젝트’인데, 저는 <소솔집>을 매개로 도시적이고 건축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었어요. 양 소장과 제가 공유한 생각은 있는데 저는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 으로 이 집을 짓고 싶었어요. 하나의 플랫폼이나 미디어로서 (제가 항상 이야기하던) 소모적인 삶이 아닌 천천히 줄여가는 것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양 소장이 잘 이해해주었어요. 만약 건축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결과는 분명 달랐을 것 같아요.

양 소장이 설계를 맡아서 진행했고, 저는 (굳이 이야기하자면) ‘빨간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죠. 양 소장이 구조나 모양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저는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인테리어와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어요.

<소솔집>의 전경 / 사진: 신경섭

양수인 주방 쪽으로 가면 빨간펜이 정말 많았어요.

정소익 어떻게 보면 까다롭고 짜증나는 건축주일 수 있는데, 잘 진행해 주셨어요.

양수인 ‘제로 에너지 하우스’를 생각한 근본적인 이유를 다시 여쭤볼게요.

정소익 제가 밀라노에 있을 때 석유 값이 배럴 당 100불 이상으로 막 오를 때가 있었거든요. 당시 트럭기사들이 3일 정도 파업을 했어요. 그러고 나니 밀라노 시내에 신선한 먹을거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예요. 처음에는 막연하게 ‘우편물이 안 들어오겠구나’ 정도였는데 그게 아닌 거예요. 슈퍼마켓에 신선한 음식은 하나도 없고 깡통만 남고, 식당들이 문을 닫고… 그 시간을 회복하는 데 1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이 시스템이 너무 취약하다. 내가 여기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되겠구나.’ 그래서 독립적인 시스템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저는 100% 도시 사람이지만 귀농을 꿈꾸기 시작했어요. 귀농이 하나의 방법일 거라 생각한 거죠. 그래서 내가 집을 지으면 기존의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주도는 제외했어요. 좋은 곳이지만 수영으로는 갈 수 없고,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잖아요.

양수인 처음에는 ‘제로 에너지’가 아니라 “한전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구체적으로 그 방법을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넷제로Net-Zero 에너지 하우스를 조사했는데 관련 학회의 연구논문을 보면,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를 위해서 필요한 요건들이 제시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친환경적이거나 에너지 효율적인 집을 지으려면 단열이 중요한데, 100% 가운데 단열이 30~40%를 차지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죠. 그런데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의식변화인데 그게 15%를 차지해요. 가령 여름에 에어컨으로 추워서 긴팔 입고, 겨울엔 난방으로 집안에서 반팔 입으려는 사람이라면 절대 살 수 없다는 거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이 이야기를 정 소장께도 드렸고요.

정소익 네, 저는 에어컨을 달 생각이 없어요. 태양광이 비싼 거 저도 다 알고, 사람들도 딴죽을 걸어요. 심지어 건축하는 사람들도 효율 안 나온다고 다 뭐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여름엔 덥게 살고 겨울엔 춥게 사는 거지, 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었어요.

양수인 그래서 <소솔집>의 창을 만들 때 서로 맞바람이 칠 수 있는 구조를 생각했어요. 단열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단열재, 옥상정원의 40cm 흙, 뒤의 벽이 중요했는데, 모양도 중요하니 의외로 복잡하더라고요. 사실 웬만한 집은 외단열을 많이 해도 어딘가는 내단열이 조금씩 섞이기 마련이거든요.

<소솔집>의 입단면

정소익 단열 마감할 때 고민이 많으셨죠.

양수인 외장재는 제 사비를 털어서 할 정도였어요. 코팅업자, 시공사 사장님과 같이 모여 의논도 많이 했고요. 콘크리트-스티로폼-코팅으로 마감을 해야만 단열층이 하나도 안 깨지고 완벽하게 감쌌다고 할 수 있고 그래야만 열 손실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워터파크에서 쓰는 고무 재질의 코팅을 하기로 했는데 해놓고 보니까 샘플로 보던 것보다 너무나 민감한 재료였던 거예요. 방수는 되지만 미관상 문제가 있는 재료라 조금만 틈이 있어도 그걸 메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그대로 드러내는 재료였던 거죠.

정소익 그래서 이건 안 되겠다고 했었죠.

양수인 그래서 그걸 커버할 방법으로 코팅을 한 번 더 했죠. 아무도 안 해본 것을 꼭 해보자고 했을 때 생각했던 것이 코팅을 이용한 단열이었기 때문에 다른 것은 안전하게 하려고 노력했죠. 그리고 보통은 지붕이나 패널을 씌우잖아요. 그러면 못질이 필요한데 쌓은 단열재를 파내고 나무로 작업을 다시 해야 해요. 나무도 단열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어딘가는 단열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해질 수가 없죠. 그게 싫어서 그 위에 뭔가를 뿌려서 마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소익 중간에 다른 재료도 보여주셨는데 원래의 아이디어가 좋아서 그대로 하자고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나네요. 완벽하게 다 감싸는 아이디어가 좋았어요.

양수인 설계를 위해 조사하면서 본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 중에는 진짜 전력을 하나도 안 끌어 쓰는 것도 있고, 끌어 쓰기는 하지만 잉여발전이 있으면 거꾸로 보내서 결국 값으로 따지면 연료비가 0원 혹은 0원 이하인 집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한전에 반드시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전자는 불가능해요. 그래서 가장 적절한 것은 넷제로 가운데에서도 1년에 전기료가 0원이 나오는 방법만이 가능하고 제일 좋겠더라고요. 오랫동안 풍력이나 지열도 고민해보고 친한 아티스트와 협력해서 DIY로 에너지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하다가, 결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증명이 된 태양열, 태양광이 가장 좋겠다고 판단했죠. 이 집은 무엇보다도 정 소장의 명분이 가장 중요하니까 첫 달에는 전기료가 많이 나오더라도 1~2년이 지나면 분명히 제로 에너지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집에 오면 여분으로 켜져 있는 조명만 보여도 명분을 위한 실천이 어려워질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에게도 이런 영향을 주는데 하물며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어떻겠어요.

정소익 다른 건축주에게도 권하고 싶은지,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가 앞으로 주거생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양수인 만약 제가 집을 짓는다면 <소솔집>처럼 제로 에너지 하우스를 짓는 방향으로 노력을 할 것 같은데, 다음 건축주가 관심이 없다면 권유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그 건축주도 나름의 살아온 철학과 입장에 근거해서 원하는 것이 있을 거예요. 그런 것이 먼저 충족되고 나서 물어볼 수는 있겠죠. 원하는 것만 해주는 것은 업자이고, 원하는 것을 해주되 그 안에 건축가의 색깔이 있다면 작가의 성향이 크죠. 하지만 다 안 해주고 건축가 색깔만 있는 것은 나쁜 것 같아요. 물론 추천을 할 수 있죠. 저는 근본적으로 건축이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해요. 집을 짓는 과정에서 정 소장의 어머님께서 직접 그려주신 스케치가 있어요. 어머니 나름의 설계와 평면도에요. 그 스케치를 가지고 어머니와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 과정이 매우 좋았어요. 왜 B&B 방 두 개를 본채 옆에 그려 오셨는지 파악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러면서 무엇이 왜 필요한지를 훨씬 더 잘 알 수 있겠더라고요. 그려 오신 스케치를 반으로 접어서 B&B 방을 지하에 두면 그려주신 것과 똑같다고 이야기하면서 설득도 쉽게 할 수 있었고요. 굉장히 구체적인 제약조건과 요구사항이 많았기 때문에 작업하기도 훨씬 편하고 좋았어요.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는 한국에서는 아직 시작 단계이니 잘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한 번도 안 해본 것이면서 독특한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하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예산을 많이 들이지 않기 위해 제가 잘 하는 재료 범위 안에서 안전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서 콘크리트를 썼고요. 그래서 감리도 철저히 할 수 있었고요.

정소익 같이 건축 공부를 한 사람이 건축주였기 때문에 양 소장이 어려운 점도 있었을 거예요.

양수인 업에 따라 구분을 하기보단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 상식적이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줄 줄 알면 좋고요.

초반에 예산 때문에 조금 혼돈스러웠어요. 처음에는 30~40평 정도를 생각하고 디자인을 했잖아요. 그런데 진행을 하다 보니 필요한 것이 계속 추가되는데, 그렇게 하면 정해진 예산을 초과하니까 안 된다고 말했었죠. 그래도 괜찮으니 요구한 것을 모두 그려보라고 하셔서 60평이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내심 예산 안에서 가능할까 우려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하다 보니 70평이 되었어요. 정해진 예산이 있는데 왜 계속해서 공간을 늘리려고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정소익 제일 처음 이야기했던 숫자들은 막연한 것들이었어요. 예를 들어서 어머니가 그리신 스케치 대로 하면 거의 100평 가까이 되거든요. 거기에서 줄이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지키다보니 예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더 늘리지 않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어요. 모든 요구를 단 1초도 생각 안 하고 단호하게 거절한 적도 많아요. 창문도 비용을 좀 더 들이면 지금 한 것보다 좋은 브랜드로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어요. 작은 것들을 하나씩 늘리다보면 끝이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제 입장에서 봤을 때 추가된 예산은 거의 없는 편이에요.

양수인 <소솔집>을 찾는 사람들과 가꾸어나가겠다고 하셔서 조경을 생략했기 때문에 거기에서도 예산이 절감됐어요. 1층 B&B 앞에 바비큐를 할 수 있는 현관 바닥을 타일로 더 그럴 듯하게 꾸밀 수 있었지만, 시멘트로 마감하는 것도 상관없다고 하셨고요. 선택과 집중을 하면 가능한 이야기가 되는 거죠.

정 소장은 저와 의견 조율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어떤 것이었고 건축하는 과정에서 어디에 신경을 많이 쓰셨나요?

정소익 아까 창문틀과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제가 물질적인 것에 그렇게 집착하는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분명 신경을 쓰는 것들이 있어요. 저는 인테리어 실무를 오래 해서인지 디테일에 굉장히 신경이 많이 쓰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전혀 문제되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지만 제 눈에는 그런 것들이 보이니까요. 가령 창문의 선이 맞아야 한다거나 그런 거죠.

양수인 아, 그러고 보니 바다가 보이는 창이 원래 하려던 것과 다르게 저렴한 것으로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가운데 바bar가 있어야 했어요. 저는 그게 싫어도 어느 정도 포기하려고 했는데, 정 소장은 절대 안 된다고 했었죠. 사실 업계에서 보기에는 살짝 큰 거였고, 정 소장이 보기에는 너무 옹색한 거죠. 왜 그러셨던 거예요?

정소익 가운데 선이 있는 걸 죽어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양수인 저는 미학적으로 굉장히 관대하거든요. 사실 지금에서야 이야기하지만 불편했던 것 중에 하나가 그런 작은 것에 집착하실 때였어요. 그럴 때마다 동의를 구하시는 표현 중 “디자인이 그런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그런 게 중요해”라고 하셨는데 저에게는 그런 것들이 디자이너로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큰 아이디어만 충족되면 선이 있건, 바가 있건 중요하지 않아요. 성실성과 완성도의 문제에 있는 디테일은 중요한데 그거 외에, 제 경우는 디테일에 집착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싫어하거든요. 그것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디자인이라는 미명 하에 별로 가치가 없음에도 집착하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정소익 그게 선이 있어서 싫다는 것보다는 정확히 말하면, 선이 있어서 바깥 풍경이 반으로 잘리는 것이 싫었던 거예요. 그렇게 몇 번을 우겼더니 양 소장이 답을 찾아오셨어요.

양수인 이 집을 처음에 생각하실 때 가장 첫 번째로 염두에 두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정소익 먼저 지속 가능하고, 과하지 않고, 소박하며, 주변을 해치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런 것을 꿈꾸었던 거죠. 두 번째는 위층, 아래층을 효율적으로 쓰는 활용도였어요. 원래 이 집 모양이 박스 형태였잖아요. 그런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도 집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프로그램들을 생각하다보니 구체적으로 또 바뀐 것 같아요.

양수인 여러 사람이 써야 하는 면에서 가변성도 추가할 수 있어요. 제 표현으로 말씀드리면, <소솔집>은 ‘상식적인 건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산이나 집의 퍼포먼스나 여러 면에서요. 건축학교 워크숍을 해야 하니 본인의 침실을 별도로 마련하기 보다, 그냥 위에 올려달라고 하셨거든요.

정소익 어린이 건축교육을 하고자 했을 때에도 아이들에게 디자인 교육을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집, 공간, 도시처럼 우리가 사는 곳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 즉, ‘실제 스케일에서 구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봤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하는 작업들은 도시디자인의 스펙트럼에서 최종 결과물 쪽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점에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전시를 하고 교육을 하고, 커뮤니티와 작업을 하는 모든 것이 마스터플랜의 그림을 그리는 제일 ‘시작점’에 있는 것이고, 그와 관련해서 이 집도 하나의 실천이고요. 제가 시작점에 있다면 양 소장은 끝은 맺는 쪽에 있다고 생각해요.

양수인 그렇네요.

정소익 처음부터 의견의 차이가 있고 그래야 건축가와 건축주로서 대립각이 나올 것 같은데 그런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양수인 그런데 방금 하신 말씀들을 생각해 보니, 저는 나중에 뭔가를 하기 위해서 먼저 씨앗을 뿌리는 스타일은 아닌가봐요. 지금 꽃을 피워야 마음에 드나봐요. 교육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저는 학생이 대학원 3학년이라면 그 시간에 걸맞은 꽃을 피우기 위한 교육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정 소장님과 제가 큰 갈등은 없었지만, 자세히 보면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지고 있는 듯 해요.

정소익 <소솔집>을 짓는 과정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건축을 하려고 땅을 파다보니 건축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환경파괴적인 거예요. 집 주변에 있는 고사리들을 다 죽여가면서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짓는 게 무서운 일이더라고요.

양수인 저도 그 부분에서 건축이 가진 근본적인 딜레마를 느껴요. 제 친구들이랑 하는 이야기가, 건축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환경을 생각하는 일을 할 수가 없는 업계라는 거예요.

요즘은 건축보다 공공예술에 대해 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워낙 그 분야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상징성, 조형성이 무엇이고 거기에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거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참여적 공공예술을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이유에는 즉각적인 반응이 있어서예요. 제일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는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의 <7천 그루의 떡갈나무> 퍼포먼스였어요. 즉각적으로 이해도 되고 나무를 심음으로써 얻는 이익도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관객과 작품과의 유대감을 만드는 데에 예술성과 조형성이 가장 주요한 요인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소익 수잔 레이시Suzanne Lacy와 안양에서 같이 작업을 했는데, 다른 작가들과 확연하게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작업에서의 강도와 밀도였습니다. 참여를 통해 유의미를 만드는 포맷은 다른 작가들과 같지만 수잔 레이시는 작업을 만드는 진폭이 훨씬 크더라고요. 프로그램에의 집중도가 월등히 높아요. 미술에서 다른 분야로 확장을 해서 뭔가를 하려고 하고, 결과적으로는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그 지반을 흔드는 것만이 공공예술에서 오랫동안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양수인 제가 최근에 정한 4가지의 지표 중 하나가 ‘개인적인 것을 만들자’인데요. 무엇이 되었건 간에 특히 불특정 다수를 위한 공공예술은 작가의 이야기로만 만들어지면 절대 안 되는 거 같아요. 내가 무엇을 하건 그 과정에 참여를 하게 된다면 내 이야기, 나만의 경험으로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5살 난 딸을 데리고 산책 나온 엄마가 딸과 함께 참여할 수 있고, 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곳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이건 <있잖아요>를 통해서 얻은 경험이에요.


양수인 소장은 <소솔집>의 공사 전 과정을 블로그 sosoljip.blogspot.com에 기록했다. / 사진: 신경섭

<소솔집>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대벽리에 다락 포함 70평 규모로 태양열난방과 태양광발전 설비, 보조용 화목보일러를 포함하여 평당 430만 원의 시공비용으로 완공되었다. 건축주 공간, 부모님 공간, B&B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건물의 주공간은 부모님의 생활공간으로 침실, 거실, 주방 및 식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역적 특성인 다랭이논의 흔적이 바다를 향해 남아있는 대지조건을 활용하였으며 두 건물의 남쪽 지붕 경사는 연간 태양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평균 각도로 기울어 있다. 지붕에는 3KW 태양광 발전 설비와 난방을 위한 태양광 집열관이 설치되어 있다. 비상용 보조 보일러도 화목보일러를 사용해 화석연료 사용을 자제했다.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열효과가 단연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소솔집>에는 외부에 단열재를 부착한 외단열시스템을 사용했다. <소솔집>의 구조체는 20cm 두께의 단열재로 둘러싸여 있다.

  • 시공사: 임현철 (채헌건축)
  • 구조: 박병순 (터구조)
  • 전기: 한길엔지니어링
  • 설비: 주성MEC

개념 건축주와 현실 건축가의 동상이몽

분량10,702자 / 20분 / 도판 4장

발행일2012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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