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vol05-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목단행성길치길

종말론은 되풀이 된다. 우리가 그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금방 종말이 오진 않겠지만, 그만큼 그것은 세상을 끝내고 싶어 한다. 예술은 종말의 징후들을 직시하면서 종말론을 밀쳐낸다. 그것은 일종의 힘이다.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무의식적 사투다. 육체는 그걸 매일 한다. 길치痴에게도 길이 있다. 헤매도, 그가 가는 것이 그의 길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원칙적으로 거기에는 모종의 평등이 있다. 우리가 그래도 ‘한 예술’ 해보겠다는 것은 그것이 방법이자 목적으로서 세계에 균형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위로’를 해준다기보다는 ‘시야’를 터준다. …(중략)… 나는 그림의 주술성을 믿는다. 그걸 믿는 마음을 믿는다. 모란은 부귀와 명예, 부귀와 영화의 상징인 꽃이다. 이 꽃은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자본주의의 ‘꽃’이다. 부귀와 영화는 언제나 비교급이다. 그것은 우리의 결여, 존재 자체의 결여를 뜻한다. 일생의 아주 짧은 순간, 이를테면 열렬히 사랑하는 그런 순간, ‘의심암귀’가 사라진 그 순간은 자체로 충족되어, 부귀도 영화도 ‘그 빛’을 잃는다. 심지어, 격하면 그 순금의 시간에 죽고 싶어 하고-죽기도 한다. 예술, 내 경우에는 미술, 그중에서도 그림은 비교급으로만 가능한 부귀와 영화를 절대적인 부귀와 영화로 바꿔치기 하고 싶은 터무니없는 기획 속에 있다. 존재의 전이. 이건 가당찮은 욕망이지만, 사랑의 격렬하고 고요한 균형이 없다면, 우리는 살 수 없다. 그러니까 모든 우리는 그런 원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 꿈의 발화점으로서의 예술. 지속적이진 않겠지만, 단속斷續적으로는 ‘순금의 시간이 흔전만전’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은 불안할 정도로 잘 산다. 목단牧丹행성은 더 ‘잘 먹고 잘살아보자’는 강박에 대한 우화이자 신경증적인 한눈팔기이다. 결핍과 우울은 부귀영화에 몰두해 있는 시대의 내면 풍경이다. 그래도 그건 가끔 유머러스하기도 하다. … (중략)… 예술의 주술은, 되풀이해서 실재를 만들어 내는 마음의 기술인 것 같다. 몸이 하는 기도인 것 같다.

황세준, <노스텔지어>, 캔버스 위에 유채, 160×260cm, 2012, 전시 «목단행성»(2013) 중에서 / © 황세준
황세준, <경성의 낮달>, 캔버스 위에 유채, 130×97cm, 2012, 전시 «목단행성»(2013) 중에서 / © 황세준

황세준

목단행성길치길

분량1,138자 / 2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3월 20일

유형포토에세이

태그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