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세포
바래
분량4,625자 / 9분 / 도판 41장
발행일2019년 3월 28일
유형작업설명
“6만 평을 자유롭게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주 건물 10동의 위치는 물론 도로도 확정되어 있어 전시회를 위해서 어떻게 이것을 마스터플랜에 수정하느냐, 즉 박람회 분위기 가미만을 요구했기 때문에 큰 고충으로 어려운 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 그 과정과 성과」, 『공간』 24호(1968년 10월)
내일을 위한 번영의 광장
1968년 9월 9일 한국 최초의 국제 박람회인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가 ‘내일을 위한 번영의 광장’이란 테마로 베일을 벗었다. 42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17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는 대성황을 이룬 박람회장은 첨단 문물의 전시장인 동시에 권위주의 정권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파하는 정치적 공간이기도 했다. 국가주도 산업화를 통한 압축적 근대화를 추구하던 정부로서는 국제 박람회야말로 그들이 내걸었던 장밋빛 미래를 국내외에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의 건축가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6523평에 달하는 구로2공단 대지 위에 세워진 열 개 동의 공장 건물들을 활용해 박람회장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었다. 애초 당국은 이미 조성된 공단 건물에 박람회 분위기만 적당히 가미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건축가들은 쇠파이프와 캔버스를 주재료로 당대의 하이테크 공법들을 적용한 입구 · 안내소 · 야외 무대 등을 설치함으로써 한국 최고 건축집단의 기술력을 과시했다. 창문 없이 무표정했던 공단 건물 벽면은 새로이 들어서는 임시 구조물들과의 조화를 위해 화려한 컬러의 다이아몬드 형태로 변신했고, 이와 비슷한 패턴을 적용해 주판알을 연상시키는 외형의 심볼타워를 세우면서 볼거리와 디자인적 통일성을 동시에 꾀하기도 했다.


공사 중인 구로 한국무역박람회 심볼타워, 1968 / 자료 제공: KTV 
철제 프레임으로 공사 중인 구로 한국무역박람회 입구홀, 1968 / 자료 제공: KTV

사막의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박람회 이후 3개 단지까지 확장한 구로공단은 유례없는 속도로 진행된 압축고도성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공돌이, 공순이로 불린 노동자들의 척박한 삶이 존재했다.
이촌향도 바람을 타면서 이미 1970년대 말 10만여 명에 달했던 구로공단 사람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뿐 아니라 만성적인 주거 문제에 시달렸다. 배후 주거지였던 가리봉동에서는 공단의 성장과 맞물린 급격한 인구 증가로 말미암아 주거 시설을 기형적으로 쪼개서 만든 ‘벌집’이 탄생했다. 대부분의 방 면적이 10m² 이하로, 한 사람이 겨우 머물 만한 크기에 6 – 7명이 생활하며 아침저녁으로 교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근대화의 역군으로 복무한 노동자들은 ‘내일을 위한 번영의 광장’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을 함께 꾸었다.
세월이 흘러 쇠락한 공단을 대상으로 정부는 1997년 ‘구로단지 첨단화 계획’을 발표하며 기존의 노동집약적 업종을 지식산업 · 정보통신산업 · 패션 디자인 · 벤처 등으로 재편했고, 2000년 말에는 이름까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꾸게 된다. 2010년이 지나자 공단 자리에는 새로이 지어진 아파트형 공장이 100곳을 넘어섰고 비제조업 노동자가 9만 명 가깝게 증가했다. 이후 구로 · 가산 · 금천의 이니셜을 딴 ‘G밸리’로 변모하면서 1970 – 1980년대 압축고도성장을 상징하던 구로공단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한편 이런 급격한 변화 속에서 놀랍게도 벌집은 살아남았는데, 농촌에서 상경한 노동자들 대신 코리안 드림을 찾아 국경을 넘어온 조선족과 제3세계 다국적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여전히 임시적인 삶의 터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구로 한국무역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1968 / 자료 제공: 국가기록원 
구로 한국무역박람회 풍선 이벤트, 1968 / 자료 제공: KTV

꿈 세포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욕망은 인간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든다. 이는 구로로 몰려드는 저임금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 모두 개인의 꿈을 좇아 어디론가 이동하는 경제적 난민이지 않을까? 만일 인간이 꿈을 꾸며 계속 이동하는 특정 인자를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다면, 이를 ‘꿈 세포’(Dream Cells)라 할 수 있겠다.
〈꿈 세포〉는 1968년 한국종합기술개발 공사에서 계획한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를 시작으로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인 벌집, 테크노밸리,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도시재생 사업과 앞으로의 전망까지 구로 지역이 시대별로 변모하는 양태를 살펴본다. 현실의 반영이라는 사실주의 원칙하에서, 과거 아방가르드적인 건축가와 권위주의 정권이 함께 내세웠던 가상의 총체성(idea of totality)을 위해 억압돼야 했던 개인들의 꿈과 이주의 이야기를 구체적인 목소리로 담아낸다. 이러한 인간적인 연민과 더불어 사회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게 5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더욱 요구되는 건축가의 역할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과거 무역박람회장의 파빌리온이 근대적 삶의 화려함을 한껏 뽐내던 ‘빛의 건축’이었던 반면, 이번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파빌리온은 ‘어둠을 드러내는 건축’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꿈 세포〉는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영상 설치작업으로 새하얀 실들이 엉켜 있는 직물로 만들어진 벌집구조 형태를 띤다. 이는 구로공단 시절 해외수출을 견인했던 직물산업의 실이 더 이상 씨실 – 날실로 엮이는 것이 아닌, 기계 압착으로 앞뒤 순서를 분간하기 힘든 재료로써 우리의 지난 역사를 상징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파빌리온은 한국관 전면에 강하게 존재하지만 그동안 전시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2층의 반 원통형 공간에 관심을 두고 이를 드러내며, 이른바 ‘파빌리온 속 파빌리온’(pavilion within the Korean pavilion) 전략을 취한다. 즉 기존 건물에 의지함으로써 비로소 자기완결서을 회복하게 되는 상보적 성격의 상보적 성격의 ‘장소적응형 인스톨레이션’(site-adaptive installation)이다. 한국관 2층 거울벽면의 반사 효과는 허구와 실재를 넘나드는 것을 돕고, 리서치를 통해 축적된 구로의 역사적 사건들은 내부 표면에, 꿈을 꾸는 듯한 얼굴 표정은 외부 표면에 보일 듯 말 듯 새겨지면서 몽환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관객 참여가 가능하도록 고안된 가변형 구조체는 커튼처럼 여닫는 움직임으로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며 내외부의 경계를 적절히 매개한다.
즉 구로에 얽힌 개인들의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담긴 파빌리온에 공감각적 이미지 환경을 연출함으로써,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들에게도 국가와 개인의 꿈을 잠시나마 대면할 수 있는 압축적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꿈 세포〉를 베니스의 한국관이라는 맥락에서 떼어내 좀 더 확장된 의미의 건축 실천 영역으로 가져오면, 탈발전국가 · 탈국민국가 시대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시민공간(civic space)으로서 ‘가변형 파빌리온’의 가능성을 모색했다고도 할 수 있다. 거기다 무역박람회의 임시 건축물처럼 금세 사라지기보다는 여행용 가방 크기로 압축되어 이동 및 재조립이 가능하니, 필요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재탄생되며 그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번 귀국전에서 재설치되는 〈꿈 세포〉는 낮고 어두운 천장이라는 전시장 조건에 대응해, 벽면이 아닌 천장의 거울 반사효과를 통해 ‘장소적응형 인스톨레이션’의 성격을 이어나간다. 이는 구로 연표를 담고 있던 1층의 커튼 구조물과 프로젝션 영상이 맺히는 2층 스크린 구조물로 분리되며, 모형이나 드로잉, 책과 같은 전통적 건축 전시 매체들이 해체된 맥락적 단서들의 형식으로 전시장에자리하게 된다. 무엇보다 한국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국내 관람객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이기에, 각기 다른 속도를 내포하는 시간성이 점철된 이미지 환경에서 보다 주체적으로 관람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부디 본 작업이 쉼 없이 움직이는 이주민의 삶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사는 문화가 자리하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바래(BARE)
전진홍, 최윤희에 의해 서울에서 설립된 건축 스튜디오이다.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도시 속 시간과 환경에 조응하는 리서치 기반의 건축 작업을 2014년부터 지속해오고 있다. 전진홍은 영국건축협회건축학교(AA스쿨) 졸업 후 네덜란드의 건축사사무소 OMA와 공간그룹에서 실무를 쌓았다. 최윤희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와 AA스쿨 졸업 후 윌킨슨아이어, 제이슨브루지스 스튜디오 등에서 공공 예술 및 건축 프로젝트를 이끌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로 있다. 건축 스튜디오 바래는 ‘아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 공모전에서 수상했으며(2015),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6’의 최종 후보군으로 선정된 바 있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새로운 유라시아〉(2015) 키네틱파빌리온 설치 및 전시에 참여했다. 2017년에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 초대되어, 세운상가 일대의 새로운 재활용 네트워크를 조명한 영상 작업 〈루핑시티〉를 선보였다.
꿈 세포
분량4,625자 / 9분 / 도판 41장
발행일2019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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