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CC의 산책로를 거닐며 시민 공간을 꿈꾸다
최춘웅
분량4,765자 / 10분 / 도판 6장
발행일2019년 3월 28일
유형비평
형식 따위에는 관심도 없을 법한 뻔뻔한 표정으로 갈색 나팔바지와 깃 넓은 빨간 셔츠를 풀어헤쳐 입던 여느 때와 달리 얌전하게 차려 입은 정장 옷깃 위에 큰 꽃을 달고 단상에 올라 누군가 대신 써둔 듯한 개회사를 열심히 읽고 있는 김수근의 모습은, 그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KECC,이하 기공)의 2대 사장이던 1968년 10월 ‘고속도로건설기술심포지움’이라는 공식 행사를 기록한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아직 30대 후반이던 젊은 김수근이 기공의 사장으로 부임한 것은 1968년 4월이었으나, 그는 이미 1966년부터 기공 내에 설립된 도시계획부에 자신과 함께 일했던 윤승중 이하 젊은 건축가들을 모두 불러모았고, 사실상 설립부터 기공의 최고 책임자 역할을 담당했다. 김수근 팀과 기공의 어색한 공생은 1969년 그가 인간환경연구소를 만들며 독립할 때까지 3년 동안 지속됐고, 그 숨 가빴던 3년간 김수근 팀이 만들어낸 다수의 설계도와 보고서들은 한국 현대건축의 초기에 활동을 시작한 젊은 건축가들의 야심 찬 실험들이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에는 국가 또는 통치자를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한 주인공 라파엘의 경고가 나오는데, 그 말이 당시 김수근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인 듯하다. 라파엘은 “봉사(service)와 종속(servitude)은 단지 한 음절 차이”라는 이유로 왕자 밑에서 일하기를 거부했다. 반면, ‘한국의 로렌조’로 불린 김수근은 박정희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적극적으로 국가를 위해 일했다. 김수근이 박정희 정권에 종속돼 일한 게 발전국가를 통해 가난을 극복하려는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이념이나 정치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가리고 오로지 자신의 작품을 실현하려던 예술적 혼이 부른 이기심 때문이었는지는 우리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어느 쪽이든 당시 김수근 팀이 꿈꾸던 건축과 도시설계 개념들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발전국가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그린 아방가르드적 환상의 구현에 국가 후원이 반드시 필요했다는 모순적 상황을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보다 시급한 것은 그들이 남긴 잊혀진 자료들의 수집과 분류, 그리고 분석을 통해 부족한 역사적 담론의 근거를 서둘러 정립하는 일이겠다.

그 시대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오늘까지도 편견과 이념, 또는 연민의 굴레에 갇혀 건설적인 비평 담론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의 1960년대는 4 · 19혁명의 정신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꿈을 가득 품고 시작됐으나, 5 · 16쿠데타와 제3공화국의 출범으로 인해 문화적 개방과 개인의 자유를 열망한 젊은이들의 꿈은 곧 좌절되고 말았다. 그 뒤 20여 년에 걸쳐 한국의 지도자들은 냉전 구도 속에서 정치적 억압을 정당화했고, 경제개발이라는 집단의 목표 아래 개인의 자유의지를 희생시켰다. 전세계가 비틀스의 〈레볼루션〉을 따라 부르던 시절, 서구의 젊은이들이 유토피아의 실현을 꿈꾸며 평화와 혁명을 부르짖을 때, 한국의 젊은이들은 디스토피아 속에서 침묵해야 했다.
그 시대를 관통한 이들 중 일부는 군부독재 시기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고자 했고,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자 역사를 왜곡하기도 했다. 집단의 기억 대신 개인의 추억들이 역사를 대체하기도 했다. 특히 그 시대에 관련된 건축적 역사는 소수 개인의 기억에 의해 변질되거나 과장된 소설과 같은 서사인 경우가 많다. 동시대 한국 건축의 역사적 근원을 살피기 위해 그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자료들을 추적하다 보면, 1세대와 2세대의 업적을 기록한 자료가 부재하거나 파편적인 기록만이 부유하고 있음을 목격한다. 초기 한국 건축가들의 작업에 대한 비평적 평가의 부재는 현재 한국 건축가들이 겪는 역사적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졌고, 빈약한 정체성은 한국의 건축이 독창적인 미래를 꿈꿀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됐다.


어려운 현실을 견디며 현재를 살아가려면 미래에 대한 꿈과 환상에 의지해야 한다. 특히 1960년대 한국의 건축가들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환상을 통해 당시의 혼란스럽고 어두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쳤고, 가까운 미래를 위해 그들의 현재를 기꺼이 희생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한국 건축가들이 폐허가 된 도시 위에 유토피아를 세우고자 야심 차게 내놓은 그림과 글을 다시 재조명하고 그 뒤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밝히는 노력을 통해 그들의 잊혀진 영혼을 다시 깨운다면, 미래에 대한 꿈이 사라진 듯한 오늘의 건축가들도 다시 한번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겠다.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들이 현재 꿈꾸는 도시와 저택들은 결국 미래에 실현될 도시와 저택들의 표본이 되기에, 꿈이 더 관대할수록 미래는 더 유익하게 될 것이다.”
김수근 팀이 기공을 통해 생산한 유토피아적 사업들은 한국 건축에서 잊혀진 유토피아의 담론을 다시 세우기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 김수근이 기공의 제2대 사장으로 부임하며 남긴 거창한 연설문을 보면 그들의 존재적 가치가 현실보다 유토피아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대가 우리들의 기술공사로 하여금 세계문명을 위한 기술혁명의 선두에 나서서 새 세기를 향한 기수가 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각하게 인간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우리들의 시대를 위하여 우리의 기술은 인간환경창조라는 대명제와 함께 해결하여야 할 많은 과제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김수근 팀이 진행한 원남로 – 퇴계로 개발계획에서 특히 세운상가의 공중데크와 여의도 마스터플랜의 입체도시 계획에는, 그들이 꿈꾼 미래의 모습에서 보행 전용 산책로, 또는 광장이라는 한 가지 구체적 요소가 반복해서 나타난다. 가난하고 번잡한 길거리의 현실로부터 순간이동을 통해 벗어난 듯한 공중데크는 세운상가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며 여가를 누리는 미래의 거리 모습은 곧 다가올 부유한 미래의 상징이었다. 김수근이 더 긴밀히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중간 보고서 단계의 여의도개발 마스터플랜은 사실상 세운상가를 여섯 번 반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건축적 어휘와 스케일이 비슷한데, 여의도 계획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중데크였고, 세운상가와 달리 중앙에 큰 광장을 형성하며 여의도라는 이상적인 미래도시의 중심에 자유로운 보행 공간, 또는 시민 공간을 두었다.

그들은 시민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있게 살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도시를 꿈꿨고, 개인의 자유가 도시를 통해 표현되기를 원했다. 보행데크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토지의 소유권과 사용권을 분리하는 토지공개념을 제안했고, 단순한 택지 조성이 아닌 시민의 공간을 구성하는 도시계획을 시도한 것도 기공의 업적이었다. 여의도개발 마스터플랜 보고서는 일반 시민들에게 도시에 대한 근본적인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을 주장했다. “시민은 도시설계에 참여할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며 이와 같은 그들의 권리로 인하여 새로운 도시 생활을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전위적 작가들은 도시의 공간들이 억압과 감시의 수단으로부터 자유와 개방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미래의 변화를 이끌어낼 능력을 갖추고 있다. 도시 속에 온전한 시민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사회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50년 전 기공의 젊은 건축가들은 이미 이해했고, “항상 평범한 시민의 입장으로 돌아가 시민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감지”하며 “모든 사고와 인식은 시민을 향한 애정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우리의 시도, 추구는 시민을 위한 창조적 봉사자의 입장으로 귀납하는 것”임을 주장했다. 그들의 꿈이 언젠가 실현되려면, 오늘의 건축인들도 다시 한번 “새 세기를 향한 기수”의 역할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어진 건물들과 기념비들을 주로 다루는 일반적인 역사와 달리 유토피아의 역사는 실현되지 않았으나 새로운 세상을 향한 변화의 원동력이 된, 꿈과 욕망을 담은 글과 그림의 역사다. 1960년대 한국의 건축가들이 맡은 역할은 모든 국민들에게 관대한 꿈을 선사하는 것이었고, 기공의 김수근 팀이 그려낸 미래의 모습들은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보다 희망과 꿈을 최대한 키우기 위한 수단이었다. 우리가 그들의 그림과 글을 단순히 정치적 프로파간다 또는 터무니없는 공상과학소설쯤으로 해석하는 대신 탁월한 유토피아적 과제로 바라볼 때, 그들이 남긴 희미한 꿈의 잿더미 속에서 잊혀진 미래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최춘웅
서울에서 활동 중인 건축가이자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부교수다. 역사적 건축물의 재활용, 도시재생 그리고 건축의 영역을 독립된 문화 행위이자 지식 생산 분야로 확장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광주비엔날레(2008) · 서울미디어아트 비엔날레(2010) · 아시아 문화전당 등에서 전시 공간을 디자인했고, 아트선재 · 문화역 서울284 · 일민미술관 · 국립현대미술관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대표 설계작으로 점촌중학교, 꿈마루, 매일유업 중앙연구소, 라쿠치나 남산, 상하농원 등이 있다.
KECC의 산책로를 거닐며 시민 공간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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