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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고 시끄러운 1960년대 후반의 서울: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2018 한국관

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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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공동감독을 맡은 이본 파렐(Yvonne Farrell)과 셸리 맥나마라(Shelley McNamara)는 관대함과 인류애, 두 가지를 건축의 핵심과제로 규정하면서 ‘Free Space’(자유공간)라는 주제를 발표했다. ‘자유공간’을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기회와 민주화의 장이 되는 불확정적 도시 공간으로 정의한 두 사람은, 공적 공간 – 사적 공간의 교차와 공간의 공유를 통해 집단의 정치적 잠재력을 일깨우며, 사람과 장소 사이에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건축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이에 71명의 건축가와 63개의 각 국가관은 ‘자유공간’에 대해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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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은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Spectres of the State Avant-garde)이라는 주제로 1960년대 후반의 한국 건축을 다시 보았다. ‘유토피아’와 ‘아방가르드’ 개념을 통해 시민 공간이 부재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도시와 건축의 유산을 파헤침으로써 건축의 보편적 가치이자 당위적 요구로 제시된 자유공간에 답하고자 했다. ‘자유공간’이라는 가치중립적인 주제를 비판적 입장에서 바라보며, 국가개발체제에 의해 시작된 한국과 아시아의 도시와 건축이 당면한 문제, 즉 공공영역이 실종된 역사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시민적 능력과 공공영역의 복원을 고민하고자 했다. 반세기 전 대다수의 건축 프로젝트는 오늘날과는 달리 국가가 주요 클라이언트였고, 그만큼 이상적이고 정치적이었다. 다른 국가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영국만 하더라도 대부분 건축 사업이 공공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특정 시기 한국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KECC, 이하 기공)라는 국영 엔지니어링 회사가 거의 모든 국가 프로젝트를 전담했다는 것이다.

건축가 김수근은 그곳의 실권자(2대 사장)로 산업화와 근대화 시기 ‘국가 만들기’(nation-building)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 시절 그의 작업은 지금 봐도 꽤나 이상적이고 정치적이다. 개인 커리어 측면에서도 다른 어느 시기보다 과감했고 규모가 컸다. 박정희 개발체제는 김수근 팀을 통해 개발 이데올로기를 대단히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싶었고, 김수근과 약관의 건축가들은 그런 국가를 경유해 건축적 이상을 실험할 수 있었다. 1960년대 후반, 한국 건축사에서 유난히 도드라지는 한 시기가 그렇게 열렸다. 우리는 기공의 일련의 작업을 ‘국가 아방가르드’(state avant-garde)라는 형용모순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경제 · 문화적으로 1960년대 후반은 박정희의 강력한 계획경제 드라이브로 조금씩 국가재정 지표와 국민들의 형편이 나아지고, 대규모 도시개발을 통한 국가 정체성이 만들어지던 시기다. 동시에 서구 기술의 도입, 도시의 발달과 도시 감수성의 태동, 윤리적 태도의 변화와 이에 따른 가치관과 생활 방식의 변화가 일어났고, 문화적으로도 서구의 ‘전위’ 개념이 수용되고 우리의 방식으로 실험되기 시작했다. 요컨대 1960년대 후반은 자유와 민주주의, 풍요와 개발의 욕망이 드라마틱하게 충돌하던 때다. 김수근은 이런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건축 이념을 구축하려고 했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2018(이하 한국관2018) 기획팀은 산업화 초기 김수근과 김수근 팀의 생각 —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건축 이념 — 의 족적을 추적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온갖 불협화음이 이 시기에 뿌리를 두고 있고, 현재 우리들 역시 1960년대의 화두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그 시대가 오늘에 전하는 메시지를 발견하고자 한 이유다. 그러나 한국 현대건축사에서 50년 전 기공의 작업들은 개발독재의 부산물로 치부되거나 ‘건축가의 (실패한) 유토피아적 상상력’쯤으로 간단히 재단됐다. 이들의 작업은 제대로 연구되지 못한 채 기억의 파편으로만 남았다. 한국의 예술과 인문학은 1960년대에 처음으로 고유한 몸짓을 찾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했지만, 그 몸짓과 이야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거나 잊히거나 낡아버렸다. 이 가운데 한국 현대건축의 신화적 기원과 파우스트의 거래 사이를 오가는 그들의 작업은 오늘날까지 유령처럼 출몰하고 있다. 한국관2018은 이 유령과의 대면을 통해 한국 현대건축사의 맹점을 조명하고, 나아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곪고 있는 1960년대 후반 개발체제의 모순과 갈등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를 바탕으로 탈발전국가, 탈국민국가 시대의 새로운 정신과 시민적 공간을 국가 – 아방가르드의 유산과 폐허 위에서 찾아볼 것을 제안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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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에서 김수근 팀은 경부고속도로 기본계획, 소양감댐 기본계획, 포항제철 입지선정과 같은 대형 국토개발 프로젝트와 여의도 종합개발계획, 남대문시장 도시계획, 종로3가 재개발,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본관 설계 등과 같은 도시 · 건축 프로젝트, 그리고 제1회 국제무역박람회와 오사카 엑스포70 한국관 같은 박람회장 건축 등을 진행했다. 대부분 20 – 30대 초반의 젊은 건축가들로 이뤄진 김수근 팀은 다양한 도시문제와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경험하면서, 건축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진지를 구축하고자 했다.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미래적인 건축을 추구한 이들의 작업은 동시대 서구의 급진적 건축 실험과 유사하게 몽상적이었다. 동시에 군사 – 테크노크라트 조직에서 진행하는 개발계획에 걸맞게 현실적이었다. 권위주의 정권을 경유해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려고 한 만큼 그들의 작업은 이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이었다. 인구 자료, 도시 지표, 자동차 통계 등 작업에 쓰인 실증적 자료들은 그 토대였다. 비록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지만, 김수근 팀의 도시계획은 서울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겼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수근 팀의 작업이 갖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그들이 주도한 도시 건축의 대표작 가운데 ‘여의도 마스터플랜’ ‘세운상가’ ‘엑스포70 한국관’과 ‘제1회 국제무역박람회’(1969년)를 선정했다. ‘여의도 마스터플랜’은 기능적 토지이용, 입체적 공간 이용, 위계적 도로망, 녹지와 공원의 확보 등 모더니즘 건축의 이상을 담은 계획이다. 그러나 김수근이 기공을 떠난 후, 기존 계획안이 기술관료적 해법과 교차하고 타협하면서 여의도는 군사 퍼레이드를 위한 극장과 주거 · 사무공간이 뒤엉킨 무미건조한 장소가 됐다. ‘세운상가’는 소개(疏開)도로에 형성된 슬럼과 사창가를 정리하기 위한 외과수술적 도심 재개발의 상징이다. 낙후된 도시문제를 복합용도 건축이라는 입체적 해법으로 해결하려는 건축적 모더니즘의 실험이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세운상가는 준공 이후 50년간 그 일대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 세운상가는 다시금 개발의 열풍에 휩싸여 있다. 주변 지역까지 포함하는 재건축을 위해 철거가 진행 중이다.) ‘오사카 엑스포70 한국관’은 탈근대건축을 위한 시도와 그에 대치되는 산업화, 건축가 · 예술가가 그리고자 하는 미래와 국가가 강요한 전통 사이에서 표류한 국제적 이벤트이다. ‘제1회 국제무역박람회’는 ‘내일을 위한 번영의 광장’이라는 주제로 경제 발전을 과시하고 풍요를 약속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박람회의 가설 구조물이 사라진 뒤 이곳은 오랫동안 저임금 노동자들의 척박한 삶터가 됐고, 현재는 조선족이 다수인 중국식 집거지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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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는 1960년대 후반 한국기술개발공사의 작업을 근간으로 한 상상된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국가주도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한 김수근 팀의 잊혀진 역사를 기록하고, 오늘의 시점에서 재해석을 시도하고자 젊은 건축가와 예술가 일곱 명(팀)에게 새로운 작업을 의뢰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도시건축 계획의 유전자를 보다 면밀하게 재조명하고, 건축가와 국가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예술적 실천의 단초가 되기를 바랐다.

건축가 최춘웅은 여의도 마스터플랜이라는 ‘이상 도시’의 잔해에서 발견한 새로운 자유공간의 가능성을 〈미래의 부검〉을 통해 전했다. 그는 김수근 팀이 구상한 시민 공간 — 여의도 양끝(시청과 국회의사당)을 잇는 공중데크 등 — 에 대한 재해석을 바탕으로 미래의 자유공간을 형상화했다. 김성우(N.E.E.D)는 주변과의 지속적인 관계 맺기를 통해 전면 재개발을 견제하는 거대 구조물 세운상가의 새로운 역할을 〈급진적 변화의 도시〉를 통해 조명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세운상가가 그 일대에 새롭게 불어닥친 개발의 압력을 제어하면서 공공성을 담보하는 방파제로써 계속 기능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설계회사(강현석 + 김건호)의 작품 〈빌딩 스테이트〉는 오사카 엑스포70 한국관을 근거로 다양한 배경의 개인들이 함께 사는 한국의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보여준다. 엑스포70을 준비하면서 척박한 현재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미래학 세미나’를 이끌고, 현상학적 ‘해프닝’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 했던 김수근의 고민을 새로운 방식으로 복원·복기한 작품이다. 바래(정진홍 + 최윤희)는 ‘제1회 국제무역박람회’를 매개로 엄혹한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밀려나 비가시적인 존재로 남은 저임금 이주 노동자들의 공간과 삶을 추적한 〈꿈 세포〉를 선보였다. 산업화와 산업단지의 빛나는 미래와 그 이면의 짙은 그림자인 공단 배후지(대림동과 가리봉동) 이주민들의 삶이 담긴 조형물을 통해 21세기 산업 공간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서현석의 〈환상도시〉는 구현되지 않은 ‘자유공간으로서의 서울’을 극적 장치로 삼아 1960 – 1970년대 근대화의 궤적을 추적한 작품이다. 약관의 건축가들에 의해 진행된 여의도 개발계획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려는 시도를 통해 건축과 정치의 관계를 관객에게 묻는다. 이 밖에 식민지배와 이념 갈등의 여파로 반 토막 난 국가에서 태어나 10대에 이미 혁명과 독재를 경험하고 대학에 입학한 여성 화자 정태순을 통해 서울이 어떤 곳인지를 묻는 정지돈의 단편소설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1960년대 기공의 네 개 프로젝트에서 오늘날의 시선으로 다시 발견할 수 있는 참조점들을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기법을 통해 이미지를 재구성한 김경태의 〈참조점〉이 다른 건축가들의 작업과 함께 전시됐다. 이와 함께 한국관에서는 반세기의 역사를 잇는 상징적 이벤트로, 기공의 일원이었던 건축가 김원과 소설가 정지돈이 1968년과 2018년에 쓴 각자의 에세이와 소설을 낭독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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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전은 50년 전 한국 건축과 건축가에 대한 아카이브와 오늘 작가들의 재해석 작업으로 구성됐다. 1960년대 후반, ‘밥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긴 우리는 유토피아적 도시와 건축을 상상했다. 놀랍게도 그 미완의 계획안 속에는 ‘자유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 반면 역설적인 맥락에서 오늘날 도시와 건축 문제의 뿌리에는 김수근으로 상징되는 한국 근대건축 초기 세력의 반동이 촉매로서 섞여 있다. 이 전시는 이런 유토피아를 위한 실패한 시도를 발굴하고, 오늘날의 건축가 ·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 한국 현대건축사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은 시대와 주제를 재조명함으로써 이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고자 했다. 나아가 개발체제의 프로젝트와 건축가들의 유토피아적 열망을 함께 다룸으로써 한국 건축이 직면했던 복합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를 촉발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로 양분된 시대 인식을 극복하고자 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잊힌 과거의 유산을 상상력의 출발점으로 삼아 혁명적 도시 공간이 무엇인지 부서진 아방가르드의 잔해 속에서 찾고자 했다. ‘자유공간’을 상상한다는 것은, 도시 공간의 현재에 욕망을 투사하는 데서 멈추는 게 아니라, 그곳에 숨겨진 미래의 가능성을 함께 읽어내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상임이사로 『건축신문』을 발간하고, 건축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원’ ‘원맨원북’ 등의 포럼 시리즈와 〈협력적 주거 공동체〉(2014), 〈파빌리온씨〉(2015), 〈뉴 셸터스: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2016) 등의 건축 전시를 기획했다. 『월간 미술』 『인서울매거진』 『공간』에서 예술 건축 관련 저널리스트로 일하면서 〈페차쿠차 나잇 서울〉(2007 – 2008), 〈테드 × 서울〉(2008 – 2009)의 큐레이터로 활동한 바 있다.

뜨겁고 시끄러운 1960년대 후반의 서울: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2018 한국관

분량5,938자 / 12분 / 도판 2장

발행일2019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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