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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협동조합의 필요충분조건

기노채, 신철영, 전은호, 김란수, 박성태

주택협동조합이 새로운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거론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퇴보 이후의 삶에 대한 새로운 전망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망을 회복하여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주택협동조합에 대한 기초적이면서도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신철영, 기노채, 전은호, 김란수 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기노채 주택건설협동조합 준비모임 대표

신철영 아이쿱생협 클러스터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전은호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연구원

김란수 마을건축협동조합 감사

진행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사무국장 


지금, 왜 협동조합인가?

박성태 첫 번째 질문은 ‘왜’에서 출발하려고 합니다. 왜 지금 이 시점에 우리사회에서 협동조합이 부각되고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까요?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이지만, 우선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대두되고 관련 기본법이 만들어진 배경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신철영 큰 배경은 2008년 이후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도 협동조합이 튼튼하게 버티고 있는 곳들은 의외로 잘 견뎠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 정책 담당자들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또 하나는 UN이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정하고 각 나라에 널리 홍보하면서 법규 등의 기틀 마련을 권고한 것도 배경입니다. 한편 국내에서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 분야에 관련된 사람들이 협동조합 기본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절묘하게 만나서 협동조합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습니다. 2011년 말에 법을 통과시키고, 2012년 12월부터 발효된 것이지요. 그전에는 농업협동조합법, 신용협동조합법 등 총 8개 분야에 대한 협동조합 특별법에 의해서만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었어요. 지금의 협동조합 기본법은 일단 특별법의 영역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가능하도록 적용됩니다. 법적 조항도 완화되어 ‘5인 이상’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크게 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나눠집니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사회적 기업이 협동조합화 된 것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반 협동조합은 신고를 하면 법인격이 부여되고, 사회적 협동조합의 경우 정부 인가를 받아야 합니다.

전은호 일반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말하기 이전에 당장 내 삶이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그 정도가 심각해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시장경제 속에서는 채워지지 않던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향수나 갈급함이 생겨났고 그 대안으로 협동조합이 이슈화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체에 대한 정확한 인지는 뒤로 하더라도 대안이 될 수 있을만한 것이라면 잡아보겠다는 심정이 협동조합의 이슈화와 기본법 제정의 심리적 배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제도를 만든 취지와는 별개로 시기적으로는 적절한 타이밍에 나왔다고 봅니다.

김란수 일반 시민들이 협동조합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 채 쉽게 접근하고 협동조합을 시도하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협동조합은 구성원들의 사고와 삶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등 일반 기업과는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좌담에 참여한 패널들. 오른쪽부터 사회적기업개발센터 기획연구원 전은호, 주택건설협동조합 준비모임 대표 기노채, 아이쿱생협 클러스터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신철영, 마을건축협동조합 감사 김란수

우리 사회에서 협동조합의 흐름과 정체성

박성태 협동조합으로 스스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단위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주택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이 뭉치면 국가나 자본의 움직임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협동조합이 그동안 국가에 의해 주도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앞으로 독립적인 협동조합을 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하며, 실현가능한 범위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이 됩니다.

신철영 1960~1970년대에 특히 신용협동조합을 조직하는 열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부자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이 신용협동조합을 했는데, 처음에 조직할 때 조합원들은 하루 2시간씩 닷새 동안 교육을 받았고, 임원들은 사흘을 더 교육했더라고요. 그 당시에 고리채, 장려 쌀 같은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는데 이것을 신용협동조합으로 극복해 나갔어요. 5.16 군사 쿠테타 이후에 정부가 고리채 정리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기도 했고, 실질적으로 자기 토대를 가지고 나오는 것도 성공했어요. 그런데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를 거치면서 정부가 통제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농협 지부장을 중앙에서 임명한다든지 하면서 협동조합의 기운이 줄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생협이 늦게 시작했어요. 그전에도 조금씩 있다가 명멸해 갔지만 1986년 ‘한살림’이 시작한 것이 현재 생협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생협도 초기에는 고전했지만, 요즘 와서 전국의 생협을 다 모으면 연매출액이 6,000~7,000억 원이 되고 조합원도 50만 명 정도 된다고 하니까,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게 됐죠. 그런데 지금 고민은 옛날에 있다가 자주성을 잃어버린 기존 협동조합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입니다.

주택협동조합이란 무엇이고 왜 주택협동조합인가?

박성태 이제 주택협동조합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주거문제가 심각할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협동조합이라는 말 자체가 가진 매력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왜 주택협동조합이냐’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지만, 그럼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먼저 개괄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구체적인 사례나 논의들로 수렴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기노채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주거문제를 심화시킨 가장 큰 주체는 정부였습니다. 정부는 주택공급정책을 주거복지실현을 위해서가 아닌 거시경기 조절수단으로 활용했죠.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부동산정책에 편승해 자본이득을 축적하여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전 세계적 경제위기와 부동산 가격의 폭락이 진행되면서 주택시장 환경이 바뀌었어요. 정부가 개발환경을 제공하고 대형 주택건설업체가 주도하는 대규모 아파트건설 사업이 아파트 값 하락으로 인해 사업성이 급격히 악화되어 개발추진력이 급격히 소멸된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의 대형 주택건설업체 주도의 대규모 개발방식의 대안으로 소비자 참여와 주도에 의한 소규모 주택개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전은호 부동산을 집이라고 인식하지만 거기에는 땅과 건물이라는 명확한 두 개의 요소가 있거든요. 그런데 건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가상각되기 때문에 결국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땅의 가치가 오른다는 것입니다. 개인들이 부동산을 소유하고 그 가치를 사유화하는 과정에서 사회 전체가 가치를 교환해 낼 경제적 여력이 되면 사용하고 수익을 얻고 처분하는 과정이 원활해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수준을 넘어선 가치의 교환이 상당기간 지속되어 과부하가 왔고, 외부의 경제위기 상황이 닥치자, 토지의 가치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상황이 온 것입니다.

주택협동조합은 우리가 공동으로 토지의 가치, 때론 집과 토지의 가치를 감당해보자는 거예요. 공동이 그 가치를 공유한다는 의미 자체는 좋지만, 여기에서도 우려해야 할 것은, 만약 ‘사유화가 확대된 공유’에 목적을 둔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주택협동조합을 기존의 주택,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의 대안으로서 접근한다면, 토지 가치를 함께 저장하고 순환하는 토지가치공유의 시스템화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커뮤니티의 회복

박성태 그렇다면 유럽에는 공공임대주택이나 임대주택이 아니어도 정부에서 임대료를 규제하는 강력한 주택보급 정책이 있는데, 주택협동조합은 이것들과 어떻게 구별됩니까? 상호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주택협동조합은 다양한 층위가 있다고 했는데, 아주 형편이 어려운 경우 오히려 공공임대주택이 더 낫지 않나요?

신철영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공공임대주택은 사람이 모이면 요구를 할까봐 자치회 구성 등을 사실상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어요. 공공임대주택에서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관리하면 지금보다 만족도 높고 문제도 훨씬 줄어들 텐데요. 그리고 주민들이 주체가 되면 공동의 노력으로 비용도 줄일 수 있는데, 지금은 완전히 객체화된 상태죠. 더구나 공동임대주택 입주자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신체나, 정신적으로 힘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임대주택의 입주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면 하루아침에 나아질 수는 없지만, 그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봅니다.

김란수 임대주택 관리를 위해 서울시나 운영주체가 자금을 부담하고 있는데, 입주자들에게 임대주택을 직접 관리하도록 하는 것은 적자를 입주민에게 떠넘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즉, 임대관리형으로 주택협동조합을 만들고, 현재와 같거나 조금 적은 수준에서 임대료를 지불하고, 이를 기반으로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거죠. 그러려면 협동조합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여야 합니다.

기노채 주택협동조합을 주택공급의 새로운 유형 또는 주택구입비용 절감이라는 측면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택협동조합은 좋은 주택과 좋은 커뮤니티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측면에서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공공이 협동조합주택을 공급할 때 주택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하고 또한 가능한 기존의 커뮤니티를 크게 손상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발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택 공급과 더불어, 단지 내 상가 운영권과 아파트관리 기능을 주택협동조합이 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잘 정착, 작동된다면 마을기업이 활성화되고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나면서 거주자의 주택만족도와 행복감은 크게 높아질 겁니다.

주택협동조합식 개발과정의 공동체적 가치: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전은호 우리가 주택협동조합을 얘기할 때 ‘어떻게 주택을 공급하느냐’는 측면의 건설협동조합이 있을 수 있고, 주택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의 측면에서 관리형 협동조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택의 소유 측면에서 함께 소유하는 협동조합, 일부는 외부에서 지원을 받는 대신 조합원의 이익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제한자산 협동조합주택Limited Equity Cooperatives 등 다양한 유형이 있습니다. 이런 유형들을 고려하면서 협동조합을 만들어야 합니다.

신철영 지금은 소위 전문가들이 다 지어놓으면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잖아요. 진짜로 협동조합이 활성화 되면 집을 짓는 단계에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각 의견들을 수용하면서 설계하면 훨씬 달라질 거예요.

기노채 주택협동조합 방식의 개발은 철저히 주민조합원의 자율적 참여와 공공의 지원하에 개발을 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 강북지역 불량주거지 개선을 한다고 합시다. 이 지역은 주변 자연환경과 교통여건이 좋아 토지가격은 3.3m2 당 2,000만 원을 호가합니다. 이곳의 33m2의 작은 대지의 부실한 불법 판자집에는 할머니가 폐지수집을 하며 살고 있고, 그 옆집에는 66m2 작은 대지에 주인집과 셋집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이보다 더 큰 대지를 포함한 다양한 주택에 주인과 셋집이 섞여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각 대지의 단독개발은 불가능합니다. 건축법에는 대지의 최소면적 규정, 사선제한 규정 등 다양한 제한 규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지주와 세입자를 모두 포함하여 주택협동조합을 가입합니다. 그리고 주택협동조합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개발방향과 사업성 검토를 진행합니다. 이때 지주는 토지가격을 호가보다 낮은 3.3m2 당 1,500만 원 정도에 주택을 필요로 하는 세입자에게 판매합니다. 33m2의 작은 대지의 지주인 할머니의 경우 토지의 절반을 7,500만 원에 팔고, 이중 5,000만 원을 33m2의 주택건설에 사용합니다 (용적률 200% 기준). 그러면 할머니는 새집을 가지면서 2,500만 원이라는 돈을 얻고 세입자는 시세보다 적은 돈으로 주택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정부는 사회간접시설과 건설비 지원, 단지 내 복지시설 제공 등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개발이익은 주민들이 함께 나누어가지게 되고 공동체는 더욱 굳건해지고 개발과정에서의 피해도 최소화됩니다. 물론 개별주택을 공유공간, 복지공간을 잘 연계하여 계획하면 더 큰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사업의 진행과정에는 주택협동조합의 전문가가 저렴한 비용으로 자문을 해주고요.

박성태 원칙적으로 주택의 소유권은 협동조합이 갖고 조합원이 지분을 갖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노채 네. 원래는 그러한 유형이 전형적인 관리형 주택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굳이 그걸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중요한 건 소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커뮤니티의 가치예요. 즉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어울리고 협동조합 정신을 바르게 구현하는 것이 보다 중요해요.

김란수 ICA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의 주택협동조합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주택을 개인이 소유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와 주택협동조합과는 엄밀히 구분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개인이 주택을 소유한 단체보다는 공동체가 주택이나 토지의 소유권을 갖고 공유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소유권을 갖고 있어도 시장에서 주택의 거주권은 사고 팔 수 있습니다. 차후에는 이와 같은 구조도 우리나라 주택시장에서 만들어 질 수 있다고 봅니다.

협동조합 준비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지점

신철영 협동조합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렇게 6명이 모여서 협동조합을 만든다고 합시다. 이때 개인별로 등기하고, 어떤 사람이 사정이 있어서 급히 팔고 나가게 되면 기존 조합원과 뜻이 맞지 않는 사람도 들어올 수 있는데, 그럼 공동체가 깨져요. 그것 때문에 공동으로 소유하고 지분을 같게 하더라도 연합회를 통해서 안전장치를 만들면 좋죠. 시장가격에 맞게 줘서 바로 내보내고 한두 달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런 안전장치만 만들 수 있으면 개인 지분 소유로 해도 별 문제가 없어요. 결국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느냐가 문제일 거예요.

김란수 협동조합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주택협동조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어 함께 거주하고 커뮤니티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기노채 또 주택협동조합은 조합원들에게 조합의 형태와 사업 진행의 구체적인 원칙 제시보다는 해당 커뮤니티가 추구하는 정신을 알려 주는 게 중요합니다. 협동조합의 7대 원칙, 즉 자발성과 개방성, 민주적 관리, 경제적 참여, 자율과 독립, 교육훈련 및 홍보, 조합간 협동 및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와 같은 기본원칙을 말이죠.

신철영 전에 우리나라도 문동환 목사 같은 사람들이 월급 타면 다 내놓는 식의, 공동체성이 매우 높은 단계의 공동체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보통 사람한테 이렇게 하라면 절대 못합니다. 각자 생활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밥을 같이 먹는 것, 이런 것이 공동체예요.

김란수 방금 말씀하신 공동체 중심의 주거운동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예로 복음자리공동체(가난한 사람들의 마을공동체로서 시흥시 신천리 일대의 서울지역 철거민들의 집단이주 정착지임)의 한독주택을 들 수 있습니다. 이곳은 난곡, 당산, 문래, 시흥, 봉천 등의 철거예정지의 철거민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곳으로 입주예정자들은 매주 교육을 받았습니다. 1977년 주택건설촉진법이 제정되어 서둘러 주택을 건설하면서 공사과정에서 문제점이 발생했지만, 이후 마을회관은 주민들이 직접 건설하는 등 공동체성을 강화했습니다. 주택협동조합은 한독주택의 사례와 같은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접근하여 공동체성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주택협동조합의 고유성

박성태 주택협동조합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해봤는데요, ‘주택’이기에 갖는 특수성은 없나요?

김란수 물론 주택이라는 상품은 일반 재화와 비교하여 매우 고가이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예는 2011년에 발행된 ICA의 보고서에서도 나타납니다. 각 분야별 협동조합의 수익에서 주택은 1% 미만으로 매우 적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농업·산업, 은행업, 소매업이 각각 28%, 26%, 21%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전은호 주택은 특수한 상황에 있습니다. 공동체성에 기반해서 공간을 소비하는 측면과 부동산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측면이 함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체성이라는 가치지향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기존에 주택을 팔면서 발생하는 이익들을 주택협동조합에서는 어떻게 처리할지가 중요해요. 나중에 시장가격으로 팔아서 분배하는 규정을 만들 수 있고 또 살면서 내부적으로 순환시킬 수도 있어요. 부동산을 사용하는 가치를 조금씩 내어 기금을 만들어서 커뮤니티를 위해 사용하자는 방식으로, 함께 살면서 토지가치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죠. 다른 협동조합에서 그 가치를 조합원들끼리 나눠 가지듯이 협동조합에서는 그 가치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결정하느냐에 따라 특성이 달라지는 특수성이 있다고 볼 수 있죠.

김란수 2010년에 발표된 연구논문을 보면 주택협동조합 비율이 스웨덴은 18%, 인도는 10%, 미국은 1% 미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각 나라의 정치·경제적 성향이 주택협동조합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적 사회주의 국가인 인도는 주택협동조합을 정부에 예속시키면서 정부의 강요로 성장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웨덴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스웨덴은 주택협동조합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협동조합의 틀 속에서 강한 연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과 같이 시범사업도 적극적으로 하면서, 협동조합에 대한 제도적 지원체계를 갖춘다면 협동조합주택 비율이 5%까지 성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20~30년 안에 협동조합주택이 5%만 차지하게 된다고 해도 굉장한 발전이라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주택협동조합의 비관적인 측면은?

박성태 지금까지 주택협동조합에 대해 낙관적인 이야기만 나눴는데, 비관적이고 우려되는 측면도 있을 텐데요.

신철영 구성원들이 공동의 가치와 목표를 공유할 땐 괜찮은데 그게 깨지면 문제가 되겠죠. 1970년대에 발전하던 협동조합이 이름만 남고 정체성이 상실되어 문제라고 했는데 주택협동조합도 처음 설정한 공동 목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느냐가 중요합니다. 지속가능한 협동조합들이 많이 생겨서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면 다른 사람들도 이런 방식의 삶을 알게 될 거고 관심도 가질 거예요. 초기에 신협이 그랬듯이 교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택협동조합은 처음부터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상정하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있으면 적절한 땅이 나왔을 때 다른 조합에서 모은 돈을 먼저 건축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겁니다. 이런 식이면 작은 단위들끼리 모여서 할 수 없는 걸 품앗이로 할 수가 있어요. 또 이게 잘 되면 기존 은행에 주택부금을 넣은 사람에게 주택협동조합에 오면 몇 년간 넣은 것으로 똑같이 인정해주고요. 얼마나 오래 참여했고, 액수가 얼마인지 종합평가해서 우선순위로 지원해주는 것이죠. 이 정도까지 간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봐요.

전은호 주택협동조합을 협동조합의 원칙을 가지고 만들더라도 모인 사람들이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본다면, 그 조합을 어떻게 컨트롤할지가 어렵게 됩니다. 이것을 컨트롤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 또는 자유롭게 두었을 때 오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철영 그건 제도 정비를 할 때 해야죠, 이걸 막 풀어서는 부작용이 클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 제도를 잘못 만드는 바람에 부동산 투기로 변질되는 걸 많이 경험했으니까요.

전은호 신협, 농협 같은 협동조합의 경우도 금융사업만 보자면 일반 은행과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한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측면의 기우죠. 취지가 좋았는데도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주택협동조합도 그렇게 흘러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는 겁니다.

신철영 제도 개선할 때 부작용은 없는지 잘 따져봐야죠.

기노채 섣부른 법안 개정은 오히려 투기세력만 도와줄 수 있으니 정말로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주택협동조합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부족에 의한 여러 한계와 문제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2012년 10월 서울시 시범사업인 가양동 협동조합형 임대주택 입주자 설명회를 사업으로 오해한 주민들이 방해한 사례를 보면 주택협동조합에 대한 대중의 지식이 매우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택협동조합의 올바른 개념과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한편 협동조합주택 공급 이후의 주택가격 문제도 따져봐야 합니다.

신철영 친환경주택, 생태주택 같은 게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해요. 제일 큰 게 에너지 문제예요. 에너지를 어떻게 함께 쓰고 각자의 비용도 줄일 것이냐의 문제들도 논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설계하는 사람들이나 시공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해요. 이렇게 해서 기존 주택문제에 더해 새로운 가치까지 추구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노채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건설회사는 원가를 낮춰 이익을 키우는 건설이익의 극대화에 맞춰 집을 건설합니다. 최소 규정만 맞으면 에너지 효율에는 큰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주택협동조합은 조합원 본인이 살 집이기 때문에 건설비용 뿐만이 아니라 일정 기간의 유지·보수 비용을 더한 생애비용을 낮추는 데 더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박성태 주택협동조합을 하면 일반 건설사와 품질이 같으면서도 비용이 낮아질 수 있는 건가요?

기노채 똑같은 품질이 아니라 더 고급을 만들어 비슷한 가격에 공급하는 겁니다. 이탈리아의 무리Murri 주택협동조합이 공급하는 주택도 가격이 일반 건설업체가 공급하는 것보다 오히려 좀 더 비싸거나 비슷하지만 품질은 훨씬 좋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향후 생애비용이 낮은 주택 그리고 친환경 자재로 건강한 집을 짓는 것이죠. 일반 개발회사와 건설회사가 가져가는 개발이익이나 마케팅 코스트(판매비용, 부동산 수수료, 분양수수료)를 주택의 품질향상을 위해 쓰기 때문입니다.

신철영 조금씩 이야기는 다르지만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일반에 비해 5~8% 더 든다고 해요. 표준화, 규격화된 건축자재를 생산하고 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에너지를 어떻게 쓰고 또 지역사회 일자리와 연관을 맺을 것이냐도 생각할 수 있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잘 사는 것뿐 아니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중요하고요.

공생을 위한 연대와 협동을 위한 제안들

박성태 끝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정리해 주신다면요.

김란수 우리나라 상황에는 무엇보다 협동조합 관련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런던의 코인스트리트 주택협동조합Coin Street Housing Co-operative를 보면 입주자에게 최소한의 사전교육을 실시합니다. 이들은 주택조합의 입주자로서의 책임과 주택관리 능력 및 커뮤니티 의식을 키우기 위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수강결과가 좋으면 관리위원회가 입주를 결정하고, 임원이나 활동가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도 협동조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공동체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육 이외에도 정부의 지원이나 정책도 함께 해야 합니다. 현재보다 더 많은 교육지원이 이루어져야 주택협동조합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협동조합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테니까요.

신철영 다른 턱은 몰라도 초기 교육의 문턱만큼은 높여야 합니다. 일확천금을 꿈꾼다든지 엄청난 유토피아가 될 거라는 환상은 갖지 않도록요. 들어오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인식을 공유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초기에는 지원을 기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서울시가 나서서 해주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성과들을 공무원과 주민, 관련 전문가들이 증명하고 일반 시민들이 확인해가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성급한 습성을 오히려 협동조합하는 사람들이 억제해줘야 합니다. 천천히 가더라도 확실히 요구해가면 서울시도 지속가능하게 볼 거예요.

기노채 주택협동조합의 업무진행 방식은 기존의 주거운동 시민단체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요.

첫째, 시민단체는 주거문제에 대해 정부에 무엇인가를 요구하거나 반대하는데 반해, 조합은 조합원 스스로가 이를 해결합니다. 물론 정부에게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무언가를 요구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추진세력은 소비자 자신이에요. 둘째, 주택협동조합은 주택의 공급과 개발과정에서 누군가의 희생이나 양보를 전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 말씀드린 개발사례와 같이 가능한 구성원 전체가 이익을 볼 수 있는 창의적 개발방식을 전제로 한다는 점입니다. 셋째, 주택협동조합은 정부와의 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협력과 역할 분담을 통해 주거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정부에는 국민의 입장에서 일하는 우수한 공무원이 많아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면 큰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넷째, 소수 전문가 운동이 아니라 대중의 자발성을 전제로 한 운동이라는 점입니다. 다양한 주거운동의 경험을 잘 활용하여 새로운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은호 우리사회에서 주택, 부동산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이 있어요. 저희 앞 세대가 부동산을 통해서 후세대들에게 남겨준 부담이 너무 큽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이런 상황을 만든 선배들은 미안하게 생각해야 하고, 이런 상황을 겪는 우리들은 다음 세대들이 이런 상황을 겪지 않게 해야 할 책임이 있어요. 지금 우리가 대안으로서 논의하는 주택협동조합이 그러한 역할까지 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잘못한 것을 바로 세우기 위해 커뮤니티 기반의 조직들이 역량을 갖춰야 하고, 정부는 이런 지역기반의 사회적 경제 조직들에게 기회를 열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공동체가 토지를 함께 공유해서 지역발전의 이익을 커뮤니티 내에서 저장하고 순환해가는 공동체토지신탁 같은 유형의 조직이 의미가 있죠. 다양한 마을공동체 사업들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해 나갈 수 있도록 공간의 공유모델인 주택협동조합이 좋은 사회경제적 ‘터’가 되어서 신뢰와 연대 그리고 호혜성이 발현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가 잘 조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성태 우리사회 대부분의 문제들이 부동산과 밀접한데, 이런 문제가 공정하게 함께 힘을 모으고자 하는 주택협동조합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주택협동조합의 필요충분조건

분량12,944자 / 26분 / 도판 1장

발행일2013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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