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디자인 교육, 날개를 펴다
안상수 × 승효상
분량10,146자 / 20분 / 도판 3장
발행일2013년 3월 20일
유형대담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파티PaTI가 올해 첫 수업을 시작했다. 한배곳, 더배곳에 각각 10명 안팎의 배우미(학생)들이 그 대상이다. 배우미들의 성향, 연령, 배경은 다양하다. 스승의 면면은 더욱 다채롭고 막강하다. 파티는 현재 디자인 대학 시스템이 갖는 한계와 디자인 교육의 목표를 다시 쓰고 있는 중이다. 왜 대안적인 건축·디자인 교육을 이야기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지, 파티를 꾸린 안상수 선생과 이후 대안 건축학교를 준비를 계획 중인 승효상 선생이 모여 생각을 나눴다.
안상수 디자이너 /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교장. 안상수는 시각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라퍼로서 한글꼴 안상수체, 이상체, 미르체, 마노체 등을 개발했다. 홍익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의 교장이다. 2007년에 독일 라이프치히 시 구텐베르크상을 수상했다.
승효상 건축가 / 이로재 대표. 승효상은 건축설계사무소 이로재의 대표이며 4·3그룹에 참여했다. 파주출판도시 건설 코디네이터,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을 지냈다. 주요 작품으로는 <수졸당>, <수백당>, <웰콤시티> 등이 있으며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했다.
창의, 창조와 괴리된 대학 교육
안상수 지금의 모든 교육은 대학이란 시스템에 흡수되어 있습니다. 대학이 아닌 곳에서의 교육은 거의 존재하지 않죠. 대학이 점점 더 커지면서 정교한 시스템 안에 갇히다보니, 국가가 만들어 놓은 창의 교육은 한계가 생기더라고요. 제도가 여기에 영향을 주었고요. 예를 들어, 성적에서 절대평가를 하고 싶어도 상대평가만 가능해서 A를 줄 수 있는 학생 수가 정해져 있죠. 그런 시스템에서 예외가 있을 수 없잖아요. 운영 자체가 기계화되었다고 할까요?
지금의 교육은 창의와 창조를 강조하고 미래를 외치면서도 방법은 그 말과 괴리되었어요. 거의 대부분이 인증시스템으로 바뀌고, 정확한 평가 잣대에 맞춰야 하게 때문에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을 뛰어난 것으로 생각하는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죠. 공대나 특정 분야는 그런 기준이 적합할지 모르지만 창의적 영역에까지 그렇게 경직된 방법으로 하는 건 문제예요. 지금의 교육은 아이들을 같은 라인에 몰아넣고 좋고 나쁨, 우와 열만 가릅니다. 대학들도 서열만 있지 교육 방법이나 이념이 다양하지 않습니다. 그것에 대해 돌아보지도 않고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현재 교육에 한계가 왔다고 봅니다. 성장 위주의 사회적 분위기가 외국의 교육 모델을 두고 그저 따라잡기에 급급했던 거죠. 그렇게 가는 기차를 멈출 수는 없으니 다른 길을 가고 싶은 사람은 기차에서 내려서 스스로 움직여야 했어요.
승효상 대학University의 본래 의미가 보편성universality을 전제로 가르치는 것인데 파티에서도 그런 부분을 가르치는지 궁금합니다. 학부 때부터 보통과 다른 대안교육을 하면 보편적 교육이 결핍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대학이라는 것은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하나의 사회이고 도시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지역에 머물다 보니
로컬리티만 알지 보편적 가치를 취득하기 힘들기 때문에 학부 때 그런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한데, 보편적 가치에 대한 경험 없이 개별 가치만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안상수 지금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유치원 때부터 과외를 해야 한다고 하죠. 일생을 다 대학을 위해서 소비해버려요. 결국 본인의 ‘적성’이 아니라 ‘성적’에 의해서 전공이나 대학을 결정해요. 그렇게 수능, 논술, 실기 등 입시에 관련된 모든 부분에 매진해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전쟁을 뚫고 살아남은 전사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도 그것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대학은 평가를 하고, 학생은 스펙 쌓기에 돌입해요. 대학이 ‘민주적’, ‘보편적’이라고는 하지만 그 실상을 보면 그렇지 않은 점이 많아요.
승효상 유럽에 있는 학교를 보면 대개 도시에 건축학과가 하나밖에 없어요. 베니스만 해도 건축학교 하나에 학생이 10,000명이나 됩니다. 베니스에서 건축으로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은 데도요. 하지만 그 학생들은 졸업해서 건축가 말고도, 패션디자이너나 영화감독 등 다양한 길을 가요. 대학원은 다른 문제지만 학부 과정의 건축학과가 학교마다 있을 필요는 없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실험 실습실이 필요 없고 강의실만 있으면 되니 건축학과를 만들기가 쉽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가 분리되어 있죠. 그렇다고 보편적 안목을 가르치거나, 전공에 깊이를 두지도 않는 것 같고요. 건축 교육의 스케일은 커졌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있는 상태예요. 건축가 수요가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꾸준히 학생만 양산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습니다. 대학의 자체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회가 그런 시스템을 요구하니까,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대학도 바뀌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지금 파티의 커리큘럼을 보면 전공과 대단히 직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일반 대학의 학부에서 하듯이 교양과정이나 전인적인 측면의 교육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성인으로서 보편적 안목을 키울 수 있어요.
안상수 인문이나 교양 교육은 네트워크를 통해 하려고 합니다. 철학이나 인문학은 ‘소운서원’이나 ‘다중지성의 정원’과 연결해서 하는데, 물론 그것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대학에서 세계문화사, 교양불어, 서양미술사 같은 걸 교양으로 가르치는데, 이런 걸 꼭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이를 테면, 파티의 제1호 교양과목은 ‘동의학’입니다. 내 몸의 기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의사에게 배우는 거예요. 지금의 교육은 손, 가슴, 몸을 잊어버리고, 심지어 이런 것들을 억압하기까지 해요. 공부 잘하는 명석한 사람들이 예술까지 잘한다는 생각으로 몰고 가고 있어요. 손과 머리는 같은 거라고들 합니다. 이 둘이 연결되어서 손을 잘 쓰면 창의력도 여기서 나오는 거죠. 위대한 건축가들을 보면 스케치가 다 좋잖아요. 손이 잘 훈련되면 다른 상상력이 생겨요. 그런 의미에서 교양의 정의도 생각해봐야 해요.
파주 속 파티, ‘우리가 멋 짓는 배곳’
승효상 파주는 위치상 괜찮나요?
안상수 파주는 천혜의 학교 터입니다. 사실 학교에 대한 생각은 오래 전에 했어요. 10년 전에 연구년을 마치고 페이퍼 한 장에 기획서를 만들어서 출판도시문화재단의 이기웅 이사장을 만났어요. 마음만 앞서고 뭘 모를 때니까 그 기획서를 내밀면서 ‘재단을 학교법인으로 바꾸시오’라고 하면서, 그러면 바로 여기로 오겠다고 했어요. 제가 그 재단의 창립 멤버인데 출판도시가 건설되고 보니 전체가 캠퍼스였어요. 그런데 거긴 일하는 곳이니까 낮엔 사람들이 다 들어가서 일하고, 주말엔 놀러 온 사람들로 반짝하고 말아요. 이런 곳에 학교가 들어서서 학생들이 돌아다니면 풍경이 확 달라집니다. 제가 먼저 시작했으니 승효상 선생이 오시는 것도 좋을 거예요. 하나보다 두 개가 되면 더 역동적으로 변하거든요.

승효상 출판도시문화재단 성격을 바꾸고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면 좋겠는데요.
안상수 학교 법인이 되면 모든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고, 대학원이나 대학으로 만들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사실 제도에 묶이는 거예요. 그 사이에서 조정을 잘 해야 해요. 어쩌면 파티 자체가 굉장한 실험일 수 있어요. 교육기관이기도 하지만 이것의 존재 자체가 발언이에요.
승효상 지역은 학교가 있어야 살아나요. 생산력도 생기고 지식들도 활발하게 뒤섞이니까요. 대학로도 죽어 있다가 학교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살아난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파주에 학교가 간 것도 아주 잘 된 일이에요.
어떤 학생들이 파티에 들어왔는지 궁금해집니다.
안상수 한배곳 (4년제, 학부과정에 상응)은 학생의 절반이 대안학교 출신이에요. 홈스쿨링을 한 아이도 있고요. 나머지 50%는 일반 고등학교나 예술고등학교를 다니다 오거나, 대학을 1년 정도 다니다 온 학생들 입니다. 더배곳 (2년제, 대학원 과정에 상응)의 경우는 외국에서 공부하거나 학부에서 다른 전공을 했거나 전문대를 졸업하고 3~4년 일을 하다 온 사람들이 들어왔어요. 더배곳에 들어올 배우미들을 볼 때 어떤 학위를 땄느냐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대개 이정도면 4년제 대학을 나온 것과 같다고 판단되면 됐어요. 30%가 4년제가 아닌 2년제 대학을 졸업했다거나 대학 중퇴하고 일하다 온 친구들이고요, 나머지는 정규 대학과정을 졸업했어요.
그런데 첫 수업으로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고 깜짝 놀랐어요. 실기를 안 한 아이들인데 너무 잘 하는 거예요. 보통 대학입시를 위해서는 몇 년이나 화실을 다니면서 실기 하는 데 시간을 쏟잖아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에 확신이 섰어요.
승효상 학생 수는 몇 명이죠?
안상수 전체 정원은 학부생 40명, 대학원생 20명으로 모두 60명이에요. 운영 문제가 앞으로 닥칠 텐데 특히 올해가 문제예요. 숨 좀 돌리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지 회의를 할 겁니다. 당장 5명만 더 뽑아도 나아지기 때문에 정원을 늘리는 경우도 생각 중입니다.
승효상 프로젝트를 한다든지 생산을 함께 해나가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안상수 그렇죠. 학교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올해는 2억을 벌어야 해요. 선생들이랑 학생이 같이 벌어야 해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창피한 것도 없어지고, 아쉬운 소리도 체면 차리지 않고 하게 되네요.
승효상 파티의 커리큘럼은 어떻게 되나요?
안상수 기본적으로 각 과목은 주 단위로 수업을 합니다. 매주 수요일은 인문 학습의 날이어서 네트워크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어요. 또 파티는 여행을 강조하는 학교입니다. 여행은 놀랄만한 교육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지금 학교들은 모듈러 형으로 되어 있어서 학기 내내 다른 과목도 수강해야 하니까 정규교과로 할 수가 없어요. 실제로 창의 교육에서 주 단위 수업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의 유연성마저도 파티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상의해서 결정합니다. 그 시간은 교장인 제가 담당합니다.
파티는 “우리가 멋 짓는 배곳”이에요. 영어로 하면 ‘designing school’이죠. 제가 해보니까 학교를 디자인 하는 것만큼 짜릿한 게 없더라고요. ‘학교가 내가 생각한대로 되네?’를 한번 느끼면 성취욕이 다른 국면으로 넘어갑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아이들의 눈빛도 달라져요.
지금까지 저는 무언가를 ‘원하는’ 애들이 아니라 그저 원래 똑똑한 애들만 가르쳐 왔어요. 그런 학생들은 이미 똑똑해서 제가 아니어도 되고, 또 그 애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시키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런데 파티 학생들은 다 스스로 원해서 온 거잖아요. 그래서 무언가를 던졌을 때 반응이 달라요. 하면서도 계속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대안 건축학교가 바람직할까
승효상 학교에서 학생들을 일찍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서울대 대학원에서 가르칠 때 절망했어요. 대학원이 모두 연구실 체제로 되어 있다 보니 연구실 과제가 우선이에요. 지도교수가 좌지우지하고 생명줄을 잡고 있으니까 프로젝트나 수업은 뒷전이었어요. 한예종의 경우엔 그나마 특별한 시스템에서 벗어난 학교라서 비교적 괜찮았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좋은 선생님은 실력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학생과 함께 해주는 선생님인데, 저는 그걸 뒤늦게 인식했고 좋은 선생님은 아니었죠. 그런데 한예종마저도 대안적인 학교는 아니에요. 조금 다를 뿐 똑같이 시스템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죠. 그런데 안상수 선생이 대안교육을 제안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안 건축학교는 제가 생각하던 교육이 가능하겠더라고요. 내가 있는 곳에 학생들이 있으면 되잖아요. 그럼 함께 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요. 그러면서 대안 건축 교육에 동의하게 됐어요. 또 스튜디오에서 실무만 하다보면 개인적으로 알고 싶은 게 많아요. 사실 그냥 찾아와서 배우게만 해달라는 아이들도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안상수 선생이 좋은 선례를 만들어 두시면 따라가면 되지 않나 생각하면서 건축학교를 준비하고 있는 단계죠.
국제적으로 보면 대안 건축학교가 꽤 있어요. 유럽의 건축 전시장 중 중요한 곳 중 하나인 베를린 에데스갤러리Aedes Gallery라는 곳이 있는데, 유명하지 않은 신진 건축가를 발굴해서 알리는 걸 기쁨으로 생각해요. 아이 웨이웨이 Ai Weiwei도 여기에서 유명해졌고 저도 전시한 적이 있어요. 크리스틴 파이라이스Kristin Feireiss 라는 네덜란드 건축가협회 의장도 역임한 사람이 조직한 건데, 4년 전에 ANCBAedes Network Campus Berlin라는 대안 건축학교를 만들었어요. 여러 지역의 건축가들이 학생들을 데려와서 연합으로 워크숍을 합니다. 격렬한 토론을 하고 과제를 안고 돌아가지요. 이런 곳과 연결하면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죠. 추후에 대안 건축학교를 한다면 그런 관계를 활용할 생각입니다.
안상수 그렇게 고구마 줄기처럼 서로 연결하는 거예요. 승효상 선생의 건축학교는 대학로에 있고, 파티는 파주에 있고, 또 다른 대안학교는 홍대 앞에 있으면서, 각자 자기 색깔과 시스템을 가지는 거죠. 다만 각 학교가 추구하는 것이 모두 같지는 않더라도 핵심만큼은 공유하고요. 이렇게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하면서 연대하는 거죠. 학생이나 선생들도 교류하고요. 어떤 건 둘이 같이 해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어요. 이렇게 하나 둘씩 늘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작은 단위들이 모여서 뻗어나가는 거예요. 기존 대학 시스템은 제국화, 거대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울타리 안에 다 끌어안아 그 안에 유니버스, 즉 우주를 만드는 것인데, 우리는 그게 아니라 퍼져있는 유니버스를 만들려는 겁니다. 사실 국내에서 대안적인 교육실험들은 인문교육이나 철학에서 먼저 시도했죠. 김정환 시인의 한국문학학교, 이정우 교수와 철학자들이 만든 철학아카데미 외에도 다중지성의 정원, 수유너머 등. 이것이야말로 시민대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기보다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면 그게 제일 바람직한 것이겠죠.
승효상 전체 사회를 위해서도 그런 형태가 바람직해요. 대학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하면, 대안학교는 특별한 가치를 추구해서 같이 살아나가는 거죠. 사회가 교육제도를 만들었지만, 교육제도는 다시 사회를 잉태하는데, 지금 교육만 믿고 계속 가다가는 파행적 사회로 가는 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을 거예요. 대안교육이 사회를 건전하게 만들 수 있는 균형추로서의 역할을 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현 제도에서 대안 건축학교가 갖는 과제
승효상 디자인도 결국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 자기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문제가 남아있어요. 그나마 디자인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라이센스가 없지만, 건축의 경우 국내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라이센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이 대안 건축학교를 만들려고 할 때 문제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대안 건축학교에서 학부과정을 만든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대학원 과정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또 대학원 과정이라 해도 기존 대학원에서 하듯 사회에서 활용할만한 학위를 주지도 못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느냐가 건축학교를 세우는 데 중요한 과제입니다.
안상수 건축은 그런 문제가 있겠네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10년 또는 20년 후의 삶이라는 건 지금 우리가 믿는 것과 다를 겁니다. 디자인의 역할도 달라질 거고요. 지금 대학은 대개 작가를 길러내는 데 비중을 두고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10년 후에 전시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명성도 얻는 디자이너가 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겁니다. 일터에서 착실하게 즐거움을 느끼며 일하는 것에 대해 가르치는 스승은 많지 않은 듯 합니다.
그런데 과연 10년 후에도 그럴까요? 경제 성장은 둔해지고 현재 우리가 선망하고 있는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고, 삶의 행복과 가치 기준도 달라질 겁니다. 디자인을 전공해도 식당 주인이나, 농부가 될 수 있어요. 베니스의 건축대학 졸업생들의 이야기처럼 다른 분야로 얼마든지 나가서 디자인을 바탕으로 일을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을 하게 되더라도 얻는 이점이 많습니다.
승효상 네. 결국 건축을 잘 가르친다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죠. 그것만으로도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장점으로 작용할 겁니다.
안상수 일자리를 얻는 데 있어 학위가 필요한 곳은 대학교수를 비롯해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이나 대기업에 들어가는 정도 아닐까요. 그런데 전체 인구 중에 그런 직업을 갖는 사람은 극소수일 겁니다.
모든 이들이 그 직업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제 소질에 맞고 지나친 욕망을 포기하면 달라질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거기에 매달리면 그걸 쟁취하는 순간까지 모든 게 고난이에요. 앞으로 삶의 가치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는 자기가 처한 위치에 따라 다 다릅니다. 젊은이들이 거기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했어요. 옛날엔 사람들이 악착같이 벌어서 집 한 칸 가지는 것을 비슷한 목표였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다릅니다.
승효상 그런 점에서 제가 생각하는 건축학교는 건축가 양성이 아니라 ‘근사한 삶을 사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할 생각입니다.
안상수 가만히 생각하면, 전체 건축가와 디자이너 중에 스타가 되는 사람은 5%도 안 돼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스타를 지향하는 교육을 받고 있어요. 결국 스타가 안 되는 사람은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요.
승효상 교육의 목표가 전문직업인의 양성이라고 보면 그 순간 교육의 의미가 너무 초라해집니다.
안상수 일단은 학교가 즐거워야 합니다. 전 잘 놀기는 했지만 학교 자체가 즐겁지 않았어요. 특히 엄격한 규율과 군대식 문화가 있는 중고등학교 시절은 아주 힘들었어요.
승효상 학교는 공간 자체도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죠. 공간 때문에도 더욱 엄격한 규율이 생겨요.
몸과 손을 쓰며 배우는 창의 교육
안상수 한배곳, 더배곳의 배우미들이 자기가 4년, 2년 동안 쓸 책상을 지난 일주일간 스스로 만들었어요. 제작은 황학시장 지하에 용접이나 공작 시설을 다 갖춘 신당 창작아케이드에서 했어요. 이 프로그램은 가구 디자이너 김건태 님이 맡아 진행했습니다. 가구디자이너가 가구, 의자, 재료 등에 대해 교육을 먼저 하고, 그다음 학생들에게 각각 10만 원씩 쥐어 줬어요. 그리고 학생들이 나가서 낡은 옷장이나 책상 같은 걸 주워오거나 을지로에서 재료를 구해서 그걸 자르고, 용접해서 자기만의 가구를 만들었어요. 이 가구들은 졸업할 때 가져가게 됩니다. 한 어린 배우미는 철제 책상을 개조하면서 상판을 뜯어내고 유리를 댔더니 서랍의 소지품이 다 보이는 거예요. 처음엔 이해가 안 됐는데 상판을 들어내면서 전혀 다른 책상이 된 거죠. 그걸 본 더배곳의 학생이 따라하더니, 자연스럽게 “저 이거 따라했어요”라고 하더라고요. 또 집에서 쓰던 책상을 가져와서 개조한 학생도 있어요. 니스로 칠 하는 걸 안 해봐서 못하지 한번 시범을 보이니까 다 하는 거예요. 톱으로 켜서 대패로 밀고 사포질해서 니스칠을 해요. 그리고 용접 같은 경우 극을 떼어서 하는 정교함이 필요하다보니 여자애들이 훨씬 섬세하게 잘하고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용접은 보통 노동자들이 하는 걸로 생각하는데 직접 해보면 그런 이미지와 다르더라고요. 이런 경험들을 그 나이에 하고 안 하는 건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듭니다.
승효상 건축과를 졸업하고 사무실에 온 아이들도 니스칠 한번 안 해본 아이들이 대부분일 텐데.
안상수 기존의 교육은 몸을 쓰며 노동하는 걸 밑보고 있어요. 허튼 일이나 지저분한 일을 안 하는 일일수록 좋은 직업이라고 가르치죠. 그런데 실제로 몸과 손을 써서 직접 해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창의성이 생겨요.
승효상 다시 말하지만, 참교육이란 단순한 직업교육이나 기술연마가 아니라고 봅니다. 사는 방법을 깨우치는 게 교육에서 가장 중요해요. 제가 건축학교를 만들면 건축가 양성이 아니라, 어떻게 건축을 하는 것이 바른지 ‘바탕’을 교육할 생각입니다. 건축학교를 나와서 다른 일을 하는 것도 근사해 보이는, 이런 학교가 더 좋은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보편적 특별성, 즉 보편성을 가르치되 개인의 특별성을 도출해내는 게 목표이지, 특별한 보편성을 길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원이든 학부든 기존 제도나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목표 때문에 가르치지 못하는 것을 교육하는 것이 대안학교로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아직 건축학교를 어떻게 만들지 아직 구체적으로 완성하지 못했어요. 몇몇 공조자를 규합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같이 이뤄갈 사람들의 생각도 중요하니까요.
파티가 지향하는 교육생태계 마스터플랜
작은 현대식 도제학교를 지향하는 파티는 디자인으로 세상을 더 낫게 바꾸고자 하는 이들이 뜻을 모아 세우는 ‘협동조합’ 학교이다. 뜻을 같이 하는 주위의 학교, 단체 등과 커리큘럼 및 시설공유 등을 통해 지속적인 네트워크 관계를 이어갈 예정이다.

대안 디자인 교육, 날개를 펴다
분량10,146자 / 20분 / 도판 3장
발행일2013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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