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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도시의 겉과 속을 디자인하다

정진열 × 임국화

디자이너 정진열은 디자이너라는 기질을 활용하여 도시를 구성하는 개별적인 모든 것들을 총체적으로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도시에 대한 관찰은 결과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정체성, 개인과 집단, 상호관계성’은 도시라는 장소에 대한 이해에 진입하는 매개체이다.


정진열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예일대학교 그래픽 디자인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루에디 바우어》전, 2010 광주비엔날레 E.I(Event Identity) 작업 등으로 도쿄 타입 디렉터스 클럽TDC, 아트 디렉터스 클럽ADC, 아웃풋OUTPUT 국제학생건축 &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한 바 있다. 

인터뷰 임국화 <컨템포러리아트저널> 에디터


임국화 디자이너라는 역할을 통해 동시대 도시의 어떤 면을 주목하고 싶으셨나요?

정진열 철학을 전공했던 제가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실체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absent>, <imagelogue> 같은 작업이 개인의 상실이나, 개인과 집단 간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List of Something>은 사람들에게 콘텐츠에 대한 응답을 구해서 소통의 지점들을 연구한 작업이에요. 그런 것이 현실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하는 질문이 도시라는 공간을 주목하게 한 거 같아요. 사람들의 관계가 결국은 도시에서 맺어지고, 흩어지고, 파괴되고, 형성되는 것을 보면서 말이죠. 예일에서의 2년은 그런 질문들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집중적으로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예일에서는 졸업논문으로 본인의 작업들을 모아 책으로 만드는데, 『City as City of』는 제 졸업논문의 책 제목이에요. 커버는 구글 지도를 사용해 만들었는데 제가 방문했던 학교 근방의 지역을 방문 빈도에 따라 나타낸 거에요. 도시라고 하면 굉장히 광범위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객관화해서 생각하게 되잖아요. 이 작업을 통해 개인 삶의 패턴과 형태가 누적되어 만들어지는 경험의 총집합으로서의 도시를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책에 도시는 어떻게 형성되는지, 현대 도시에서 상실된 것은 무엇인지, 자본주의 시스템의 도시에서 일반화되는 개인의 경험 등에 대한 글을 함께 실었어요.

임국화 사람 간 관계를 바탕으로 도시를 살펴본 작업들로 도시의 궤적을 구성하셨군요. 그렇게 도시를 보다 보니 또 어떤 것들이 보이던가요?

정진열 도시 문제를 다루면서 도시라는 공간에서의 개인, 혹은 집단적 경험과 정체성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현대인의 70%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는데 그곳에서의 삶은 자본주의적인 구조 아래서 매우 동일한 경험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죠. 그런 것들, 특히 외면적인 현상에 대한 관찰적 작업들이 논문에서 이루어져 왔다면, <The Sign>은 그로 인해서 생성되는 도시거주민들의 내밀한 욕망에 대한 관심으로 진행했던 작업이에요. 우리가 흔히 뉴욕을 ‘욕망의 도시’라고 하잖아요. 욕망의 도시에서는 욕망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벼룩시장’ 같은 홈페이지를 이용해서 보여주었죠. <The Sign>의 소스로 사용된 글은 맨해튼에서 밸런타인데이에 데이트 상대를 찾는 글 2,000여 건이었어요. 그것들을 보다보니 사용빈도가 높은 단어들로 크게 3개의 그룹이 구성되더라고요. ‘관계’, ‘외적 취향’, ‘내적 성향’이었는데, 단어들의 속성에 따라 내면을 이야기하는 것은 안쪽을, 외면은 바깥을, 관계는 선을 사용해 아이콘을 만들었어요. 그 아이콘을 다시 텍스트에 넣어 보니 밀도의 차이가 만들어지고, 게시된 글의 성격과 작성자들의 그룹적 차이가 도시라는 환경 안에서 어떤 종류의 욕망을 생성하는지를 시각화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임국화 <The Sign>과 <Icons of City>는 언뜻 보면 비슷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어떤 차이를 가지나요?

정진열 <Icons of City>는 『City as City of』를 위해서 했던 심볼 작업입니다. 책에 제가 짧은 시를 썼는데, 도시의 역사 그리고 내가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고자 하는지에 대한 글이에요. 거기서 주요 키워드를 뽑아 논문의 주석기호로써 사용해 본 거에요. 이 심볼들을 통해서 도시의 외적, 내적 구조들을 보려고 했다면, <The Sign>의 심볼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내적인 욕망을 드러내 보려고 한 시도입니다.

‘Icons of City’, Symbol, 2008 / © 정진열

임국화 『이면의 도시』는 서울이라는 도시만을 주목하는 듯하지만 동시대에 도시가 어떤 구조를 통해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진열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서 마주하게 된 한국의 도시 풍경이라는 것은 꽤나 스펙터클하게 다가왔던 거 같아요. 그게 4년 전인데, 당시 텔레비전 광고의 70% 이상이 자동차, 제3금융, 부동산에 관한 것들이었어요. 그걸 보면서 우리가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 결국에는 이런 것들밖에 없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서 <The Sign> 에서 했던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그럼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할까’ 라는 생각들이 『이면의 도시』로 이어지게 된 거 같아요. 사실 이런 고민들을 이미 조주연, 박해천 선생님이 <DRS> 프로젝트를 통해서 해오고 계셨고 박해천 선생님의 소개로 계간 『자음과 모음』에 연재할 기회가 닿았어요. 김형재 디자이너와 함께 공동으로 기획하고 이런 작업에 관심이 있었던 대학원생들과 프리랜서 디자이너들과 함께 도시에 대한 관심사에 다양하게 접근해본 것이 『이면의 도시』에요. 기본적인 권리이자 도시를 구성하는 소셜인프라 가운데 4가지 이슈를 선정해 카테고리를 구성했죠. 정치, 언더그라운드, 브랜디즘, 금융인데, 여기에서 금융은 좀 더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싶었던 부분이에요. 책에서는 개인적인 에피소드로 끝맺음이 되었지만요. 대학생이 대학 졸업 후 겪게 되는 한국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문제와 성性산업이 어떻게 광범위하게 퍼져있는지까지만 다뤘죠.

‘The sign: The hidden place of the City’, 2009 / © 정진열

임국화 『이면의 도시』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정진열 그 책은 특별한 자료나 정보를 가공해서 완성한 게 아니에요.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물론 디자이너로서 그 자료와 정보들을 보다 명료하게 시각화시킬 방법을 알고 있기는 했죠. 사실 도시의 문제, 나아가서 지금 사회의 문제는 단순하게 하나를 고치면 확실히 나아진다고 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은 아니죠. 거의 모든 문제들은 복잡하고 거대한 시스템 아래 상호 연계되어 펼쳐져 있고 잠시 그 문제들을 들여다본 사람들은 그 방대한 스펙터클 아래 좌절하기 쉬워요. 하지만 그런 문제들을 어쩔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로만이 아니라 개인들이 당면하는 문제로 끌어내려서 문제들이 생성되는 구조를 파악해보려는 시도는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에 책임을 가지려는 자세로 연결될 수 있거든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시민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기초들이 된다고 생각하고요. 『이면의 도시』는 그런 부분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발전시켜서 각기 다른 층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겠죠. 저희가 인문학자나 사회학자는 아니었지만 결국에는 이야기를 끌어냈듯이.

임국화 다른 것에 열려있는 디자이너의 태도 때문인지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과 함께하는, 협업이라고 할까요. 그런 작업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정진열 협업이라는 개념보다는 기회가 닿아서 하게 된 일이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디자이너라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상대가 하는 이야기를 ‘거들어주는’ 일을 하잖아요. 물론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방법이 자신의 메시지가 되고, 자신이 추구하는 노선이 그 과정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상대와 하는 이야기들을 그려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보니 함께 일하는 과정에 거부감이 별로 없어요. 요즘 들어서 ‘장인’이라는 단어가 디자인계에서 다시 각광받는데 저는 ‘장인’을 어떤 작품을 내놓는 아티스트의 개념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작업에 대하는 윤리적인 직업의식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봐요.

제가 생각하는 장인은, 현실적인 차원에서 어떤 사람과 일할 때 그 사람의 이야기가 드러나게 하고, 장소와 맥락에 맞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으면서 거기에 개입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 태도의 노동이에요.

임국화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과 작업하면서 주로 염두에 두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요?

정진열 제게 있어 디자인이 재미있는 이유는 계속해서 논제와 고민의 대상이 바뀌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바뀐다는 점이에요. 저는 디자인을 할 때 상대방과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야기하거나 들을 때 상대의 입장에서 저자, 마케터, 개발자의 역할도 되어보거든요. 어떻게 디자인할까에 대한 문제는 그 이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대화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끌어내기도 하고 거기에서부터 디자인이 시작되는 경우도 많아요. 양혜규 작가의 책(『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생성하는 멜랑콜리』 와 『셋을 위한 목소리』)을 진행하면서도 이메일과 스카이프로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양혜규 작가도 일 자체가 물론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떻게 ‘협업’ 하는 것인가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죠. 어떻게 보면 작가의 책을 만드는 것은 그를 드러나게 해주는 일이니까 작가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양혜규 작가와의 작업에서는 이 일을 해나가는 것이 본인에게도 그리고 반대급부적으로 저 자신에게도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지 서로 고민했던 것 같아요. 작가 마음대로 혹은 제가 알아서 한 것도 아닌, 마음 놓고 부딪힐 수 있었던 사람과의 일로서 성공적인 협업의 지점에 이르렀던 몇 안 되는 작업이라서 지금 봐도 애착이 가는 작업이에요.

임국화 현재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디자인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무엇을 이야기하시나요?

정진열 저는 디자이너로서 기능적, 기술적인 부분을 충분히 유지하면서, 외부에 대한 관심 역시 중요하게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야만 디자인의 영역도 훨씬 넓어질 수 있어요. 예전에는 매체의 변화가 워낙에 극심하고 기술이 매체를 제한했기 때문에 기술을 따라가는 것에 급급해서 움직였고, 디자인 교육 역시 그것을 어떻게 구현하는가에 많은 부분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이제 기술적 제한이 장르적 제한을 만드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요. 디자인은 단순히 기능적인 서비스 이상의 것을 이미 사회로부터 요구받고 있죠.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적 능력과 함께 문제의 본질을 다층적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그리고 동시에 사회의 성원으로서 문제들을 함께 고찰할 수 있는 윤리적인 토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도 수반되어야 하죠.

임국화 마지막으로, 도시의 전개과정과 함께 관심사가 이동하고 확장, 전환되면서 현재 디자이너로서 갖는 내면의 정체성은 어디에 머물고 있다고 보시나요?

정진열 예전에는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정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관계, 관계망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타인의 존재로 인해 내가 성립되는 것이 보이더라고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니 시스템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던 거죠. 결국 시스템도 개인이 모여서 만들어지기에 개인이 어떤 입장을 표하느냐가 이 시스템을 규정짓는다는 느낌을 받아요. 물론, 구조적 담론도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긴 하지만 디자이너로서 주어지는 일들, 혹은 관계들에 어떻게 충실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하나씩 모여서 결국은 큰 이야기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Tracing changes in metropolitan Seoul from the Korean War〉, 2012 / © 정진열

인간과 도시의 겉과 속을 디자인하다

분량5,774자 / 12분 / 도판 3장

발행일2013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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