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vol13-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신진건축가 지원사업에 부쳐

권문성

젊은건축가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은 일반적으로 그들을 지원한다는 선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간혹 제도화로 인해 오히려 의도와 상반된 모습을 띠기도 한다. 건축가 권문성은 지원 건축가 선정 단계에서부터 열린 합의와 공유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지원 내용에 대한 공동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신진건축가 지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서울시 SH공사, LH공사 그리고 지방정부에서 발주한 10개 가까운 소형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신진건축가 지원 사업의 대상으로 결정되었다. 설계자로 젊은건축가를 선정하여 실제 설계가 진행된 것이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의 중요 사업으로서 젊은건축가상

‘젊은건축가상’으로 불리는 신진건축가상 제도는 새건축사협의회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제1회 신진건축가상의 수상자로 이진욱 건축가가 선정된 이래 10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하나의 단체에서 시작된 신진건축가 발굴의 시도가 정부의 포상으로 공식화되고 이들 건축가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방법을 찾는 노력이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의 중요 사업으로 확장된 것이다. 신진건축가들을 대상으로 한 공공건축물 설계발주 방안을 찾고 이를 실제로 시행하는 것은 참으로 우리 건축계의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는 멋진 사례이다. 외국 건축계에도 역시 건축가에 대한 신인상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그 포상의 일부로 공공사업이 일감으로 주어지고 있다. 그 예로 20여 개 유럽연합국가가 연합하여 시행하는 유로판Euro-Programme d’Architecture Nouvelle 사례는 어느 사회에서나 신인 건축가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꼭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시킨다. 사회에 자신의 역량과 가능성을 제대로 알릴 기회를 가지기 어려운 신진건축가가 사회에서 기반을 닦을 수 있는, 즉 자신이 할 일감을 얻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참신한 신진건축가에게 공공건축물 설계 기회는 중견 건축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자 동시에 가능성을 넓히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시민 모두가 사용하는 공공건축물의 수준을 높이고 참신함을 더할 수 있으니 어느 누가 이의를 제기할 것인가. 하지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국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한 계약법’은 오히려 기회를 차단하기도 한다. 이는 꼭 신진건축가에게만 국한된 것이라 할 수 없다. 설계 기회는 설계를 제대로 잘해낼 역량을 충분히 갖춘 건축가에게 주어져야 함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설계를 할 수 있는 행정적 자격과 사회적 기여도가 설계 기회를 얻는 기준이 되고 있다. 모두에게 같은 확률의 기회를 보장하는 설계입찰 제도가 가장 공정한 방식인 것처럼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은 무성한 논의에 비하여 조금도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미래 건축가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는 기회는 어디에

물론 공공건축물에 대한 현상공모 제도가 그나마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발주방식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공모안 준비에 소요되는 경비에 대한 과도한 부담이나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인해 결국 이 또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기회로 보기는 어렵다. 수많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킨 턴키발주 방식은 몇몇 대형사무실만의 카르텔 속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신진건축가에게는 모든 기회가 넘기 어려운 커다란 장벽으로 존재한다. 경기침체와 선진국형 저성장 기조로 건축 및 건설업계의 축소와 재조정 속에서 신진건축가에게 주어질 민간 프로젝트 역시 생존을 담보할 만큼의 몫이 될 수 없다. 우리 건축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신진건축가들에게 그 능력과 열정에 대한 배려를 사회가 해주지 않는다면 미래의 뛰어난 건축가의 출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신진건축가 지원 소식은 그 이야기만으로 신선하고 기분 좋은 소식이지만, 그 속사정을 들어보면 부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 그 원인의 가장 큰 부분은 신진건축가를 왜 배려해야 하고, 그들의 역량과 가능성을 어떻게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결과로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한 이해가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상태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신진건축가에게 문제가 있는 프로젝트를 떠밀듯이 맡기는 경우들이 있다. 일단 업무를 정상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낮은 용역비를 책정하여, 이를 맡아서 일하는 건축가라면 누구나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태의 일이 주어진다. 신진건축가에게 주어진 공공건축에 대한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는 선의를 악의로 이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경우로는 발주처의 관행과 요구한 제출물의 형식 자체가 경험이 부족한 신진건축가에 대한 불신으로 애초에 신진건축가가 참여하는 발주방식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식으로 평가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긍정적 평가를 하는 발주처도 있기는 했으나 한두 개의 프로젝트에 그쳤으며, 전반적으로 이러한 시도가 우리 현실에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우세하였다.

우리 건축계에 거는 기대로서 신진건축가 지원 이런 상황이니 신진건축가 지원으로 좋은 성과를 내면서 정책 또는 참여 신진건축가 홍보가 제대로 이뤄졌을 까닭이 없다. 실로 많은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또 왜 그들만 특별한 혜택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신진건축가 지원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의 시행착오로 보고, 안정적인 제도화 및 충분한 준비가 매우 필요하다는 사실이 지난 한 해의 경험을 통해 드러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떤 것도 1년이 채 되지 못하는 경험을 대상으로 평가를 내리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공동 관리의 필요성이다. 프로젝트 기획과정에서부터 신진건축가 지원에 적정한 프로젝트의 선별과 공동지침을 만들고, 신진건축가들 간의 경쟁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한다. 또 이를 가능한 비슷한 시기에 추진하여 건축계 중요 행사에 전시하는 등의 홍보도 필요할 것이다. 그 성과를 시민과 함께 검증하여 신진건축가 지원제도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공사의 공공건축물 발주를 일반화하여 적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제도가 충분히 안정될 때까지 한시적인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신진건축가 지원사업이 가진 중요성에 더욱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10여 년 전부터 시행된 전국 대학의 건축학과 학년제가 바뀌고, 건축학교육인증제도를 통해 강화된 건축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이미 사회에 진출하여 수련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교육 대변혁의 구체적 성과는 이제부터 드러날 것이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충분한 교육을 통해 배출된 인재들에게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건축의 퇴행은 정해진 수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간 우리 건축계가 다른 문화예술 분야보다 국제적 경쟁력을 제대로 드러내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면, 후배 건축가들을 통해 새로운 기대를 걸어 볼 만하다. 그들에게 선배로서, 또 우리 건축의 발전을 염원하는 시민으로서 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신진건축가 지원사업이라 확신한다.

꿈을 공유하는 건축가

그간 신인건축가상과 젊은건축가상을 받은 건축가가 작년 2012년까지 총 46명이며, 지난해 서울시 공공건축가 중 신진건축가 분야로 선정된 건축가가 35명, 그외에도 올해로 제7회를 맞은 부산의 신인건축가상 수상 건축가들, 지난해 SH공사에서 선정한 신진건축가 등 우리 사회의 신진건축가 인력풀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공식화되고 있다. 이들에게 사회와 건축계의 기대가 집중되고 있는 만큼 신진건축가들은 스스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야 할 것이다. 주어진 작업을 높은 완성도로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민이 인정하고 존경하며, 또 그에 걸맞은 합당하고 충분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건축가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10년 전부터 모교인 고등학교의 작은 프로젝트 설계와 감리를 맡아서 하고 있다. 오래된 화장실을 새로 고치는 일부터 교문을 만들고, 급식실과 식당을 고치고, 건물 창문을 바꾸고, 외장재를 다시 정리하고, 작은 강당을 만드는 등 20여 개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물론 제대로 된 용역비를 책정하여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학교 형편과 제도의 한계 안에서 설계용역을 계약하여 작업하였다. 내 꿈을 키웠던 모교에 내가 만든 환경과 공간 속에서 성장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또 모교 은사님과 선후배들의 격려를 받으며 작업하는 일은 참으로 행복하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작은 일이라 하여 특히 애정을 가질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기능적인 부분만을 해결하며 진행하던 일인데, 전문가인 건축가가 고민하며 작업하니 그 결과는 많은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하지만 건축가들 모두가 이와 비슷한 일들을 찾아서 실천한다면 자신의 모교 혹은 자신의 고향마을이 바라던 모습으로 조금씩 바뀔 것이고 또 그 과정에서 건축가가 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존재인가를 시민에게 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건축가는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여 높은 건축적 성취를 이룰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낼 세상에 대한 꿈을 공유하며 그 역할을 나눠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권문성

아뜰리에17,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신진건축가 지원사업에 부쳐

분량4,544자 / 10분

발행일2013년 3월 20일

유형서문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