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를 기획하고 농산물을 브랜딩한다
김수향 × 이장섭
분량11,805자 / 24분 / 도판 4장
발행일2013년 6월 20일
유형대담
원시부족의 거래는 인간관계가 중심이었다. 반면 우리는 먹거리마저도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쳐야만 식탁에 올릴 수 있다. 당연히 농부나 요리사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 최근 생산자와 요리사가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 나누며 즐겁게 먹고 노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두 사람을 초대했다. 한 사람은 농산물을 브랜딩하고, 다른 한 사람은 도시 내 먹거리 장터를 꾸리고 있다.
김수향 기획자 / 카페 수카라, 마르쉐@. 김수향은 자이니치 3세이며 1997년부터 서울에 거주한다. 일본 미디어의 음식 전문 코디네이터, 기자, 편집자로 활동했다. 카페 수카라를 오픈하면서 음식으로 소통하기 시작했고, ‘마르쉐@’를 통해 또 다시 음식을 배운다.
이장섭 디자이너 / 액션서울. 이장섭은 서울에서 시각디자인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공공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부터 1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독립적인 활동을 지속해왔고, 2010년 다양한 분야의 젊은 크리에이터들과 브랜드 컨설팅그룹인 ‘액션서울’을 설립했다.
보이지 않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드러내고 연결하기
김수향 마르쉐@(이하 ‘마르쉐’)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 나눌 장이 필요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물론 카페 ‘수카라suッkara’를 7년 동안 운영하면서도 어떤 음식을 어떻게 만나고 만들어 전달할지에 대해서도 즐겁게 고민해왔죠. 예를 들어, 발효에 관심이 생기면 카페 식구들과 함께 연구하고 농부도 만나면서 놀이처럼 해왔어요. 그러다가 당시 본가인 요코하마에 머물 때 일본 원전사고를 겪었어요. 순식간에 공기가 오염되고 얼마 뒤엔 물에서 세슘이 검출되고 곧이어 땅에서 방사능 물질이 나왔죠. 약 열흘 사이에 원전사고의 전 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나니까 공포스럽더라고요. 공기, 물, 땅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경험하고 알게 된 거죠. 그 후로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계속 자문했어요. 대부분이 자기가 어디에서 만든 전기를 쓰고 있는지 모르고 있듯이, 그전에는 후쿠시마 원전의 전기를 요코하마 우리 집에서 쓰고 있다는 걸 몰랐어요. 그걸 알고 나니까 내가 전기 하나 어디서 오는지 모르고 살았다는 게 너무 충격이었어요. 또 모든 게 오염되었으니 무엇을 먹고 먹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면서 요코하마에 사고가 난 일본 동북부 지역의 식재료를 주로 먹고 살아온 것도 알게 됐죠. 그걸 몰랐던 스스로에게도 화가 났지만, 의도적으로 그것을 보이지 않게 만든 시스템에도 화가 났어요. 특히 전기의 경우에 그런 힘이 크잖아요. 2011년도, 그때 내가 미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걸 확실히 깨달은 거죠. 그러면서 ‘ 지금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저는 재래시장을 좋아해요. 지방에 가면 마을 할머니들이 직접 재배한 것을 파는 5일장을 찾고, 해외 어디를 가도 꼭 그 지역시장에 갔어요. 내가 먹는 음식을 직접 키우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장보기가 굉장히 즐겁거든요. 그런 게 제 삶에서 빠져있는 걸 원전사고를 통해 크게 느꼈고, 결국 마르쉐를 만들게 됐어요.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을 ‘내가 어떻게’ 먹는지 다 알고 싶어서요. 서울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이 없지만, 수카라 안에서 혼자 즐겁게 생각하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는 생각은 분명했거든요. 오직 즐거움만을 위한 좋은 것, 좋은 사람을 찾는 시기는 끝났고, 먹는 것과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다 같이 이야기해야 전기까지도 말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시장을 만들겠다는 데에서 출발한 거예요.

이장섭 ‘액션서울Action Seoul’이 최근 홈페이지 (http://www.actionseoul.com)를 만들기 전까진 많은 사람들이 ‘파머스파티Farmers Party’ 때문에 우리를 농산물 디자인 전문 업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 정체성의 한 부분이에요. 현재 액션서울은 브랜드 컨설팅 및 디자인 전문 조직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다지는 과정이에요. 파머스파티라는 농산물 브랜딩을 시작하게 된 건 김수향 씨처럼 그것이 농산물이어서 시작했다기 보다, 세상의 가치 있는 것을 브랜딩하는 것 자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우리의 주된 관심사이고요. 정말 가치 있는 것에 제대로 된 가치를 부여하는 것, 그래서 주체와 소비자의 관계, 그 상호작용을 만드는 일이 브랜딩이라고 생각해요. 농산물 외에도 기업, 지방 페스티벌, 영화제 등의 아이덴티티도 디자인하는데, 이들 간의 교집합은 ‘브랜딩’이에요. 파머스파티는 브랜딩에 진지하게 접근하려던 과정에서 제대로 된 자세와 철학을 가르쳐 준 프로젝트였어요. 우리에게 왜 지금까지 그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왔냐고 물으면, 브랜드화시킬 진실한 상품과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클라이언트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우리는 브랜드 전문가로서 가치 있는 현상이나 상품이 있을 때, 성심성의껏 행동대장이 되어 그들이 구현하려는 것을 최선의 가치로 만들어 주는 것이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이봉진 농부를 만난 거죠. 그 프로젝트의 핵심은 “농부의 진심을 어떻게 하면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잘 브랜딩 하느냐”였으니까요. 그 프로젝트를 하면서 방금 김수향 씨도 얘기한 중간과정이란 것을 학습하게 됐어요. 브랜딩 전문가이긴 하지만 농산물의 유통이나 소비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그 중간과정이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가 된 거예요. 그걸 잘 풀기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면서 소비자와 직거래할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고민의 과정이 여러 매체에 소개되고 유사한 프로젝트들이 발생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이봉진 농부라는 좋은 클라이언트 덕분에 액션서울은 마음껏 신이 나서 행동대장 역할을 했던 거죠. 기회와 틀이 마련되어 브랜드의 방향성이 잡혔고, 지금까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려움, 한계, 그리고 다음 단계는?
이장섭 현재의 시스템에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경계로 인해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 회복이나 적절한 농산물 가격 등과 같은 풀어야 할 과제가 많아요.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에서 브랜딩을 통해 극복하고 싶었던 것은 생산자에게도 제대로 된 가치 창출의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는 거였어요. ‘직거래는 저렴할 것이다’는 통념에 다른 원칙을 보여주고자 한 거죠. 이 상품이 정말 좋고, 생산자가 좋은 생산품을 만들기 위해 진실함을 가지고 있다면 정직한 상품, 좋은 브랜딩에 의한 이윤의 많은 부분이 생산자에게도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저희가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지 않은 것은 소비자만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 역시 이 브랜드의 이익을 나눠 갖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여전히 합리적인 소비에 익숙해진 많은 사람들이 가격이 ‘가장’ 싸지 않다는 이유로 정직함에 의심을 품기도 하거든요. 파머스파티의 영어표기는 잘 보면 ‘농부의 farmer’s’가 아니라 ‘농부들farmers’이에요. 사실 액션서울과 이봉진 농부가 함께 만든 브랜드지만 나중에라도 이 브랜드를 원하는 다른 농부가 나타나면 공유하겠다는 의지로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2010년 당시에는 프로세스가 성숙하지 않았지만 3,4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다른 농부들과 나누는 것을 더욱 염두에 두었어요. 그렇게 암암리에 다른 농부도 만나고 주변 농부에게 권하기도 했는데, 사실 모든 농부가 절실함을 갖는 건 아니더라고요. 이런 생각을 다른 농부들과 공유하는 게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게 되었죠.
김수향 그렇다면 그런 생각에 공감하지 않는 농부는 어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
이장섭 기존의 시스템에 의존, 적응하다보니 변화의 절실함까진 없는 거죠. 어렵게 농사짓는 걸 보상받는 어느 정도의 시스템은 갖춰졌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이봉진 농부나 그와 뜻을 함께하는 몇몇 농부들이 생각하는 것은 그러한 안정적인 상황이 일시적일 수 있다는 거예요. FTA, 기후 변화, 정책, 자본 등 여러 요소에 의해 변동될 여지가 매우 많으니까 좀 더 주체적으로 컨트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사실 이봉진 농부가 매우 특별한 경우이고, 그런 문제의식까지 닿은 농부가 많은 건 아니죠. 그런 의미에서 아직은 파머스파티 프로젝트를 무브먼트의 역할까지 확대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김수향 저는 아직 마르쉐를 시작한 지 6개월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벌써 한계를 염려하는 시점은 아니에요. 처음부터 무언가를 완성하거나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시작한 건 아니까요. 마르쉐는 그런 시장을 가지고 싶은 사람, 제대로 된 먹거리를 찾는 사람, 도시농사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사람, 이렇게 셋이 시작했어요. 일단 모이면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고요. 현재까지 관계를 맺은 팀이 80개 정도고, 그 중 40~50팀은 마르쉐에 매일 나오니, 아직까진 즐거운 변화가 일고 있는 건 확실해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니까 이전에 자기만의 시스템이나 공간에서 한계를 느끼거나 고민하던 것이 하나씩 해결되는 걸 보거든요. ‘관계’가 만들어지니까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연결이 돼요. 가령, 좋은 토마토를 만나고 싶은 사람이 마르쉐에 나와서 토마토 농가랑 연결되면서 관계가 생기는 거죠. 또 이 사람이 눈앞에서 직접 파스타를 만들면 농부는 내가 만든 농산물이 하나의 요리가 되는 걸 보고 감동을 하고요. 지금은 시작 단계라서 처음 주고받으며 배우는 게 많고, 즐겁게 진행되고 있어요.
외부에서 비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바로 가격에 대한 건데, 사실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해요. 어떤 팀은 100% 유기농 재료로 일일이 손으로 만든 음식을 준비해 오는데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좋은 재료를 푸짐하게 쓰니까 재료비 원가가 엄청 높고, 조리과정도 오래 걸리고, 사람도 하루 5명은 종일 붙어야 필요량을 만들 수 있어요. 그러다보니 보통 카페나 음식점에서는 생각도 못하는 원가를 들일 수밖에 없죠. 그리고 출점자들이 다음 마르쉐를 위한 종잣돈인 ‘지속가능기금’ 을 모으는데, 시스템 사용에 드는 기본 비용인 출점비와 지속가능기금을 합친 것이 매출의 10% 밖에 되지 않아요. 이들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단지 해보고 싶어서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가격만 부각되다보니 마르쉐가 원하는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시장이라고도 비판해요. 그런 논의를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아서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 지 고민하죠. 내부에서도 전체 이미지를 위해 가격을 조정하자는 얘기가 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런 팀을 응원해야겠더라고요. 보통 음식점이나 카페에서는 단가를 먼저 책정하고 ‘그 정도’의 음식을 만들잖아요. 그런데 전혀 다른 개념으로, 음식을 먼저 생각한 다음 가격을 정하는 방식으로 만든 음식은 마르쉐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어딜 가도 그렇게 즐겁게 만들어서 즐겁게 먹는 일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이런 메뉴들이 하나씩 늘어나는 걸 오히려 반가워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그걸 전달하는 방식에는 과제가 생겼어요. 마르쉐는 원래 ‘만나고 대화하는’ 시장에서 시작했는데 갑자기 널리 알려지고 사람이 붐비다 보니 대화의 여유가 없어졌어요. 음식을 기다리는 줄은 길고 한쪽에서는 만드느라 정신이 없고요. 브랜딩은 잘 모르지만 결국은 ‘스토리’, 즉 그 안에 있는 ‘의미’를 전달해야 사람들이 뭔가를 느끼고 구입하는 동기가 생기잖아요. 이런 것들이 쌓여야 하는데 이제는 그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온 거죠.
이장섭 말씀하셨던 그 출점팀이 마르쉐에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어떤 만족을 위해 참여하는지 궁금해요.
김수향 그들은 요리를 연구해요. 스스로 실험하고 서로 배우며 나누는 단계라 마르쉐에 지속적으로 참가하는 것도 가능한 거죠.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갈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 음식만 나왔으면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음식도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좋은 재료를 하나하나 선택해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었으니 먹어봐 주세요’라며 만든 음식을 접하는 게 도시에선 쉽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시 맛을 보면서는 잘 몰라도, 시간이 좀 지나면 다른 유사한 음식을 먹으면서 그때 먹었던 게 달랐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음식이란 게 아주 원초적인 힘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기회를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봤으면 하는 거죠. 귀한 경험을 알리려고 마르쉐를 만들었으니 비싸다고 부정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아직은 시작 단계라 몇 달 뒤에는 또 어떻게 생각이 바뀔지 모르지만요.
자본에 대한 태도
김수향 마르쉐는 상업적인 목적을 우선으로 하는 시장은 아니에요. 원초적인 마켓이라고 볼 수 있죠. 오늘날엔 화폐를 매개로 교환하지만 옛날에는 다 물물교환을 했잖아요. 그래서 마르쉐에서도 물물교환을 할 수 있도록 했어요.
이장섭 액션서울은 삼성 같은 대기업의 일이라고 해서 반감을 갖진 않아요.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를 떠나겠다는 건 아니거든요. 다만 자본에 독립해서 살 수는 없지만 브랜드의 다양성을 위해 자본에 끌려다니지는 않으려 하고, 또 자본을 우선 목표로 삼지도 않아요. 브랜딩을 통해 제대로 된 가치를 만드는 과정을 누릴 대상이 다양해지고, 우리 능력을 가능하면 골고루 나누면서, 그 안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는 것도 현명하게 겸해보겠다는 게 현재 생각이에요. 일을 하다보면 자본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내부에서도 가끔 나오긴 하지만 그런 기준에서 프로젝트를 선택하지는 않아요. 이 시스템 안에서 휘둘리지 않을 정도의 의지를 표명하면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액션서울이 해볼 만한 일이고, 또 그것만으로도 힘든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김수향 어려운 일이네요. 저는 돈의 문제에서 ‘내 돈을 아무 데나 쓰고 싶진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해졌어요.
이장섭 액션서울이 여러 브랜딩을 하면서 각각의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수 있잖아요. 공공적이든 지극히 상업적이든, 브랜드는 세상에 내놓는 순간 공공성과 상업성을 병행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하는 브랜드 컨설팅은 제안을 하는 입장이니까 기존의 방향을 1, 2도라도 틀어주는 게 역할이라고 봐요. 파머스파티가 만들어진 건 이봉진 농부가 미래의 소비 패턴을 일찍이 내다본 덕분인 것 같아요. 합리적인 소비를 얘기하는 요즘에는 외국에서 먼저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소비를 주장하고 있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서서히 그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고요. 그런 사람들이 계속해서 믿고 찾는다면 유지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우리는 그걸 현실화시키는 것이 몫이고요.
김수향 저는 같은 돈이라면 좀 더 즐겁게 쓰고 싶어요. 마트에서 장을 보면 먹거리와 나와의 관계는 가격 만으로만 연결되는 정말 재미없는 관계죠. 그보다는 기왕이면 내 돈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나누는 느낌으로 전환하고 싶었어요. 마르쉐를 해보니 그런 걸 느꼈는데, 그런 경험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관심이 없다 해도 실제 몇 번 경험하다 보면, 마음에 작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그리고 그렇게 구입한 것은 다른 사람과 나눌 때도 아깝지 않아요. 그게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정서적으로 조금 다르더라고요. 회가 거듭할수록 마르쉐 안에서도 커뮤니티가 탄탄해져서 서로 왕래하면서 물건을 교환하거나 구입도 하면서 연락을 자주 해요. 그저께 아침에 누가 갑자기 찾아와 제 냉장고의 재료를 가지고 밥을 해줬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매진되어 아깝게 못 구한 유정란을 제외하고는 소금에서부터 모든 식재료가 마르쉐에서 구한 재료였거든요. 내가 산 것들이 누구로부터 왔고, 또 내가 낸 돈이 누구에게 갔는지 알고, 또 그 사람들은 그걸로 먹고 사는, 그 모든 과정이 보이잖아요.
음식이라는 매개가 공동체와 밀접한 것 같아요. 교환하기도 쉽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도 쉬우니까요. 그러다보니 밥을 같이 먹다 보면 친해질 수밖에 없어요. 마르쉐가 한 달에 한 번 있으니 사람들도 한 달에 한 번 만나지만,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은 서로를 그리워해요. 그래서 이름을 기억할 수 있으면 한 마디라도 더 말을 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명찰도 만들었어요. 마르쉐에서는 그렇게 돈의 흐름뿐만 아니라 관계도 변화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도시와 농촌의 관계는?
이장섭 도시와 농촌의 관계가 꼭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 건 아니지만, ‘아그로폴리스 2040’ 이라는 워크숍을 한 적이 있어요. 환경오염과 여러 인위적 요인으로 지구가 2030년에 위기를 맞는다는 가정하에, 인류가 다시 자생적인 도시를 만드려면 어때야 하는지, 우리는 매개 역할을 하고 학생들에게 직접 상상하게 한 워크숍이에요. 그렇게 해서 10년 후인 2040년에는 도시와 농촌이 일체화된 ‘아그로폴리스’가 생성되고, ‘많은 사람들이 노동의 가치를 느끼면서 도시에서 살지 않을까’하는 시나리오 속에서 학생들이 고민하는 거였어요. 그 워크숍은 대안적인 도시 모습이 도시와 농촌의 일체여야 한다고 못 박은 건 아니고, 파머스파티의 브랜딩과 마케팅의 일환이었어요. 파머스파티가 도시와 밀접한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을 생각하고 시도한 거죠. ‘작은 농가 브랜드가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과 미래까지 적극적으로 걱정하는 이유가 뭘까?’ 이런 괴리감이 도시와 농업이라는 큰 두 가지를 연결해보게 된 거예요. 파머스파티나 농촌 브랜드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지극히 도시화된 문화에 깊숙이 들어가 생각하면서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 해서 만든 워크숍이에요. 파머스파티가 이렇게까지 도시와 관계를 맺어 보려고 한다는 태도를 보여준 거죠. 이처럼 워크숍 외에도 패션이나 인디 음악 등 농촌에서 만들어진 생산물과는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도시의 라이프사이클과의 관계를 맺어주고자 했고요.

‘아그로폴리스 2040’ 워크숍 포스터, 2011 
강남에서 게릴라마케팅 중인 파머스파티
김수향 도시 자체가 그렇게 오래 못 버티잖아요. 많은 사람이 이미 귀농하고 있고, 도시의 미래는 도시가 아닐 것 같아요. 저는 대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도시 밖의 삶을 경험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어쩌면 지금 마르쉐나 텃밭을 가꾸는 건 도시 밖에서 사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에요. 저처럼 준비가 되면 도시를 떠나는 사람은 늘어날 거예요. 어쨌든 그러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니, 그때까지는 도시에서 ‘나의 농부’를 갖는 것이 좋은 관계일 것 같아요. 뭐든지 스스로 키워서 먹는 게 제일 즐겁고 맛있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나의 농부를 가지는 거죠. 나의 사과 농부, 나의 쌈 채소 농부 등 이미 직거래를 하는 사람도 많고 앞으로도 그런 관계가 늘어날 거예요. 그게 앞으로 당분간의 도시와 농촌 관계라고 생각해요. 도시에서 살면서 그런 농부들이 10명 정도만 있어도 아주 행복하죠.
김수향 이장섭 씨는 요즘 어떤 일에 관심이 있나요? 그리고 앞으로 파머스파티가 어떻게 갈지도 궁금해요.
이장섭 파머스파티는 브랜드의 성장을 이루고 싶다던 클라이언트의 1차 목표는 기대 이상으로 이뤘어요. 그분의 좋은 뜻이 사회에 실현되는 것이 1차 목표였는데, 앞으로는 그것을 계속 발전시켜 가려고 해요. 그 다음의 목표는 좋은 사례로서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브랜드로 컸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빨리 성장하고 싶고, 이런 모델에 많은 농부들이 참여해서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파머스파티와 오랜 파트너로 간다는 전제 하에 주변의 긍정적인 시각이 늘어나고 요구도 느는 걸 보면서 성장가능성과 의미에 대해 확신을 가져가는 단계예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그 부분을 준비하고 있어요. 최근 또 다른 브랜드로 ‘파파청’이라는 조청 브랜드가 나왔어요. 파머스파티를 통해 알게 된 봉화를 기점으로 하는 작은 산사에서 직접 손으로 만든 거예요. 파파청은 파머스파티 중 하나의 브랜드로 들어오는 것이고, 그 분에게 드리는 거에요. 그런 콘셉트로 생산자들이 브랜드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지금의 과정이에요. 이봉진 농부 외에도 이런 것을 원하는 농부들이 있는지 반신반의 하기 때문에, 올해는 그런 의문에 대해 조용한 실험을 하려고 해요. 그래서 우리 스스로도 의미를 확인하고 프로젝트로서의 가치가 확실해 지면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어요.
서로의 프로젝트가 갖는 의미와 재미
김수향 파머스파티를 하는 건 재미있나요?
이장섭 재미가 가장 크죠. 이봉진 농부라는 클라이언트가 우리에게 일을 맡겨서 그분이 꿈꿔온 방향으로 성취시킨다는 건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겐 가장 큰 만족을 주는 거예요. 프로젝트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찾을 수도 있지만 개인이든 기업이든 우리를 믿고 희망한 부분에 대한 것을 대리인이자 전문가로서 만족시키는 데 성공하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우리든 그분이든 사회적으로 좋은 방향의 의지가 있다면 더 좋은 것이고요. 그리고 지금까지 저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서든 하겠다는 생각으로 선행사례를 만들었고, 그 과정을 보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죠.
저도 궁금한 게 있어요. 마르쉐에 참여하는 분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동기는 어디에서 나오나요?
김수향 그건 참가자마다 다 다를 수 있는데요, 사실 저희는 지속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자기 일을 해야 할 때가 올 수도 있고 서로 느끼고 얻을 수 있는 시점이 자기 안에서 끝날 수도 있잖아요. 다 같이 계속 가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현재 참가하는 분들의 지속성은 ‘ 대화하는 재미와 즐거움’인 것 같아요. 농부님들은 12월에서 3월까지는 농사를 짓지 못해서 출전하기 어렵게 되자 ‘저장음식 워크숍’을 만들어 새로운 출점 거리를 만들더라고요. 그곳에서 농부들은 자투리로 못생긴 채소가 피클로 담그면 더 좋다는 것도 배우면서, 기존의 생각에서 벗어나 작업의 범주도 넓어져요. 그 모든 과정이 즐겁고 자랑거리도 생기죠. 요리사는 이곳에서 손님들과 이야기하고 반응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아하고요. 보통 음식점과 달리, 마르쉐에서는 컵과 접시를 대여하고 반납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요리를 먹기 전에도 설명하고, 먹고 나서는 접시를 돌려주면서 맛에 대한 평가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그래서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바쁜 주말에도 마르쉐에 나오는 팀이 있어요.
저의 꿈은 장보기, 소비, 판매에서 이런 형식의 공간이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자주는 아니어도 정기적으로 열리는 거예요. 내 생활에 필요한 어느 정도는 거기에서 충족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스페인에 있을 때였는데, 농가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겸 호텔에 갔어요. 그곳은 미슐랭 별 1개짜리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맛이 정말 훌륭했어요. 모든 식재료가 가족이나 마을 사람이 키운 거예요. 거기에는 자부심과 가족이 같이 하는 행복한 에너지가 있었어요. 그때 쉐프가 자신은 ‘작은 원 속에서 살고 싶다’고 했어요. 모든 것들을 자기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만든 걸 먹고, 입고 싶다는 뜻이었어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서울에서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요.
이장섭 파머스파티는 변화를 원하는 다른 농부들이 있고, 그들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어서 지속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예요. 브랜드를 가지게 되면 농부들도 지속성에 유리한 지점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우수한 디자인이 아니라 세상에 남을 수 있는 브랜드로 인식되길 바랐어요. 이봉진 농부와 뜻을 같이 하는 농부들까지도 함께하면 그 지속성이 훨씬 커질 것 같아요. 이렇게 진지한 얘길 많이 하는 가운데도 저희는 지치지 않기 위해서 장난스러운 것도 많이 해요. 소비자에게 접근할 때는 너무 진지하지는 말자는 게 우리의 자세에요. 액션서울에서도 가장 애착이 큰 브랜드인 만큼 재미있게 오래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지칠 때마다 신나는 일들을 벌여요. 정말 오래갈 수 있게, 그 호흡을 길게 하기 위해 지금은 준비하는 중이고요. 그리고 액션서울과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어했던 조직이나 개인의 공통점은 간절함과 변화에 대한 의지였어요. 그 목적성이 다 각각 다르지만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조금이나마 함께 기여했다는 게 가장 보람 있고, 앞으로도 우리 역량 안에서 다양한 변화에 기여하는 게 비전이에요.
장터를 기획하고 농산물을 브랜딩한다
분량11,805자 / 24분 / 도판 4장
발행일2013년 6월 20일
유형대담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