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강했던’ 레간자 – 대우자판 투쟁기
정윤석
분량3,984자 / 8분 / 도판 3장
발행일2013년 6월 20일
유형인터뷰
현재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와 홈플러스 비정규직 투쟁장과 달리, 부평의 대우자동차판매주식회사(이하 ‘대우자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업장은 아니다. 노조원 대다수가 남성 판매직이자 고학력자로 이루어진 대우자판 투쟁은 세상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가, 2011년 ‘인천지역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왔다. 현재 장기 점거농성 중인 대우자판 본사 건물은 지난날 ‘삶의 터전’에서 ‘투쟁의 장소’로 변모되었는데, 최근 한 노조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간의 변화와 함께 삭제된 개인의 목소리에 주목하고자 했다.
1990년대 초반에 입사하실 때 자동차 열풍은 어느 정도였나요.
80년대 중후반에 ‘마이카my car’ 붐이 일어나서 이미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다 사버렸더라고. 대우자판의 경우 94년도부터 판매전문회사로 바뀌고 ‘레간자’, ‘라노스’, ‘누비라’, 이 세 가지가 나오면서 매출이 많이 늘었어요.
‘레간자’의 경우 “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광고카피가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자동차는 자기 과시욕이 상당히 크죠. 그전까지 대우차는 ‘튼튼하지만 시끄럽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레간자’ 출시부터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어요.

어떻게 노조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자동차 영업직에는 군대 같은 게 있어요. 옛날에는 지점장이 차를 못 팔면 조회 때 책상에 무릎을 꿇어앉게 했어요. 다행히 우리 영업소는 대의원 총무와 같이 조직도 잘 되어있고 노동조합의 성향이 강하니까, 차 못 판다고 지점장이 재떨이를 던지지는 않았죠. 그때 ‘노동조합이 있으니까 이런 게 좀 덜 하구나’라고 자연스럽게 느꼈죠.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 대우는 노사관계가 좀 남달랐나 봅니다.
기본적으로 대우는 현대나 삼성 같은 대기업과 성장 과정이 틀려요. ‘박통’ 시절 수위계약으로 부도기업들을 인수해서 단기간에 확 큰 회사라서, 그룹 자체가 하나로 통일될 수가 없는 구조랄까. 그렇게 출발하다 보니 회사마다 각자 개성이 남아 있어서 노사관계 자체가 겉으로는 아주 극단적이지는 않았어요.
많은 이들이 대우자판 진행사항을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대우자판이라는 회사가 2003년 워크아웃 이후 법정관리까지 갔는데 사실 연 매출이 1,000억 원이 넘는 건실한 회사였습니다. 쉽게 말해, 자동차 판매만 하면 되기 때문에 IMF 때도 굉장히 재무상태가 양호했고 부채비율이 낮은 건실한 기업이었죠. 그런데 현재 구속된 경영진이 취임하자마자 아파트 건설에 눈을 돌렸어요. 자동차 팔아서 번 돈을 건설로 밀어 넣었죠.

소위 문어발식 경영을 한 거군요.
송도에 회사 땅이 어마어마하게 있어요. 파라마운트사社하고 102층짜리 건물을 지어서 복합 빌딩을 막 추진하던 과정이었죠. 당시 경영진이 비자금 축적하려고 건설에 손을 댔다가 금융위기 겪으면서 아파트 가격 폭락하고, 덩달아 GM대우에서 독점판매권을 끊어버리면서 현금유동성이 끊겨 부도가 난 거죠. 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송도개발, 대우자동차판매, 빚만 따는 회사 (즉 채무 해결이 되면 소멸이 되는 회사), 이렇게 셋으로 나눴죠.
구조조정을 통해 회사를 나눴으면 인수하는 쪽에서 고용승계라든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정리해고자는 빼고 알짜배기만 가져간 거네요.
뭐, 인수한 쪽에서는 아쉬울 게 전혀 없는 거죠. 싼값에 회사 건물이나 부동산만 인수해서 용도 변경을 통해 아파트형 공장을 지어도 되고. 면적이 어마어마하거든.
소위 대기업들이 지방대 사학을 인수하는 방식과 똑같습니다. 학생들 등록금 빼먹고 부도낸 다음 건물용도를 변경하는 것과 다를 게 없네요.
전형적인 자본가들이 하는 수법이죠.
이렇게까지 노사 양측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사측에서 임금체계를 바꾸려고 했어요. 즉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이었는데, 당시 우리의 임금체계는 기본금이 70%, 성과급이 30%였어요.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싸워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런데 새로운 경영진들이 전국을 돌면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유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된 거죠. 2001년 12월에 전국에 있는 조합원들이 다 상경을 해서 6개월 동안 서울에 있는 모든 대학교를 전전긍긍하며 싸웠어요. 그 결과 임금체계가 두 개로 나뉘었어요. 회사의 회유에 자기가 동의서를 쓴 사람들은 회사가 요구하는 20:80으로 가버렸고, 끝까지 버텼던 우리는 이전 임금체계를 그대로 유지했어요. 그러니 사장 눈에는 계속 남아있는 200여 명의 조합원들이 얼마나 눈엣가시였겠어요.
사측의 이런 태도가 자연스럽게 대규모 정리해고로 연결됐겠네요.
그때 웬만한 싸움은 다 해봤어요. 공장사람들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 우리가 다 해봤거든요. 당시 대우빌딩을 완전히 점거하기도 했고, 힐튼호텔에서 GM하고 대우가 인수합병 할 때도 기자회견장을 점거 해보고, 다 해봤죠.
현재 대우자판의 가장 큰 문제는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안 보인다는 겁니다. 같은 판매직이라도 홈플러스 비정규직 투쟁처럼 생산라인을 중지시킬만한 힘이 없는 상태에서 이슈메이킹’에 대한 유혹을 받지 않으셨나요?
한진중공업에 김주익 지회장이라고 있어요. 그는 김진숙 지도의원이 있었던 그 크레인에서 결국 목 매달아 죽었거든요. 그때 여러 번 갔는데, 내가 조합원들하고 소주 한 잔 하면서 “저 사람 저렇게 놔두면 안 된다. 간부 하나가 더 올라가 같이 있던지 해야지, 한 사람을 외롭게 놔두면 절대 안 된다”고 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아침에 목 매달아 죽었다고. 너무 마음도 아프고 개인적으로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조합원끼리는 쌍용이라던가 한진중공업처럼 크레인에 올라가는 건 절대 하지 말자, 같이 하면 같이 하지 혼자 올라가 죽는 거는 하지 말자고 해요.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런 식의 강성 노동자 투쟁을 하다 보면 계속 희생자를 요구하는 소위 ‘열사’화 정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목숨이라도 걸어서 이슈메이킹을 한다는 극단적인 책임감은 이해가 가요. 그러나 이런 식은 개인적으로 원치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도 그런 적이 있었고 돌이켜보면 어쩔 수 없었지만, 한편으론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 와 듭니다. 결국 회사도 망해버렸고 우리도 이렇게 돼버렸고,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라서 그렇게 따랐는데 돌이켜보면 여러모로 아쉽죠.
한편으론 노동자를 보호하고 기업들을 견제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너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이 좀 싫었어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대한민국은 더……. 노동운동 하다 해고되면 다른 직장 잡기가 어려워요. 찍히니까. 그래서 한번 해고가 되면 직장생활이 끝나요. 복직투쟁을 해도 기업 자체가 법을 안 지키니까 소용이 없어요. 96년도 김영삼 정부 때 새벽에 날치기로 통과한 노동악법이 당시에는 이렇게 피부에 와 닿을지는 몰랐는데, 앞으로 젊은 세대는 더 하겠죠. 그래서 애들한테 “외국 나가서 살아라, 기회가 되면 나가라”고 이야기해요.
저는 정리해고 투쟁이 철거민 투쟁과 원칙적으로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이 싸움을 지속하는 자신만의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유야 많죠. 워낙에 핍박을 많이 당해서, 막판에 정리해고 당할 때는 동요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근데 싸움이 길어지다 보니까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 몇 번이나 들죠. 그래도 어쨌든 옳은 일을 주장하는 게 맞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힘들게 싸움한 사람들끼리 끝은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만약 복직합의가 된다면 그 순간에 딴 데 가고 싶기도 하고.
마지막 질문입니다. 만약 제가 선생님께 1억을 드리면서 마음에 드는 차를 고르시라고 하면, 그래도 대우차를 사시겠어요?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대우차를 사고 싶어요. 그러니까 여기도 대학 졸업하자마자 첫 직장인 사람이 몇 명 있어요. 난 대학을 못 나왔지만 그래도 이 직장에 대한 애정이 아주 컸었어요. 내가 원했고, 내가 선택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온 힘을 들이며 살았다고 자부해요. 아직도 이 회사에 대한 애정은 있어요. 지금도 대우차를 타고 있고.
정윤석
미술을 전공하고, 현재 작가 및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통해 국가와 사회의 ‘공공성’을 꾸준히 질문하고 있다. http://www.neverc.com/
‘소리 없이 강했던’ 레간자 – 대우자판 투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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