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공성 확보’ 실패기
이영준
분량3,794자 / 7분
발행일2013년 6월 20일
유형오피니언
나는 공공적인 성격의 전시를 몇 번 만들어 봤는데 두 번 모두 좋지 않은 경험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글은 실패담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2010년에 서울시 주관으로 열렸던 제1회 《서울사진축제》였다. 우선 내가 이 축제의 총감독이 된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었다. ‘축제祝祭’란 일상의 속박을 풀어놓고 신명 나게 놀며 즐기는 곳이다. 막걸리와 빈대떡이 있어야 축제다. 그런 축제는 해당 기획자가 맡아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신명도 막걸리도 빈대떡도 별로 즐기지 않는 성격이다. 나에게 신명이란 방안에 혼자 틀어박혀 좋아하는 전위음악이나 헤비메탈을 듣는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딱 질색으로 싫어하는 나에게 축제의 기획을 맡긴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그 일이 맡겨진 것은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즉 사진계 내부에서 누가 누구를 밀고, 누구는 누구를 반대하는 정치적 관계 때문에 나에게 그 일이 맡겨진 것이다.
공공성 확보를 위한 사전 절차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사진을 가지고 어떻게 축제를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이 행사를 제대로 치르려면 프랑스의 《아를 사진축제Les Rencontres d’Arles》 같은 유명한 해외 사진축제를 다녀와 봤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행사에 도통 관심이 없어서 전혀 가본 적이 없다. 만일 공공성이 확보된 제대로 된 사진축제를 치르려면 다음과 같은 절차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선, 이 축제는 서울시가 주도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서울시민을 위한 것이므로 서울시민이 원하는 사진축제는 어떤 것인가를 조사해야 한다. 유명한 사진작가를 만나고 싶은지, 대중들을 위한 사진 강습을 원하는지, 사진이나 기자재를 교환하는 물물교환을 원하는지, 레이싱 모델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고 싶은지 등을 조사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의 전시행사나 비엔날레와 축제는 뭐가 다른지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도, 나 자신도 그런 연구는 전혀 돼 있지 않았다. 그냥 나에게 덤터기가 씌워진 것일 뿐이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만들어낸 행사는 ‘신명 나는 한 판’과는 거리가 먼, 썰렁한 전시와 워크숍뿐이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중에 평가하는 자리에서 ‘홍보가 잘 안 됐다’는 질책이 많이 나왔는데, 사람을 싫어하는 내가 제일 못 하는 일이 홍보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공공적인 행사로서 사진축제를 준비한다면 소위 사진계 내부의 몇몇 사람이 모여서 준비할 것이 아니라 축제전문가가 참여해 함께 연구하고 일을 만들었어야 한다. 그것은 전시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일이어야 한다. 즉 공공성으로서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대한 고민
사실 사진은, 특히 요즘 같은 정보네트워크 시대의 사진은 공공적이지 않은 것까지도 ‘순식간에 공공적으로’ 되어버리는 격랑激浪의 시대에 처해 있다. 요즘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소비하는 플랫폼은 소셜 미디어인데, 이것은 사적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공간이다. 옛날의 가족사진은 집에 있는 앨범에 들어 있어서 누가 이 앨범을 가져다가 공표하지 않는 한 그 속의 사진들은 철저히 사적인 것으로 남게 된다. 사진에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분리가 분명했었다. 그러나 정보네트워크의 시대에 그런 분리의 벽은 무너졌다.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은 누가 볼지 모른다. 친구에게만 공개해 놓아도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전체공개’로 설정해 놓는다. 즉 자신의 사생활을 공공의 영역에 열어 놓은 것이다. 이런 시대에 사진의 공공성이란 어디에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축제의 장으로 끌어낼 것인가는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아마도 오늘날의 사진은 공적 영역과 사적인 영역 사이에서 마구 짓이겨지듯이 뒤섞여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사적인 것을 즐기면서 동시에 공적인 것을 즐긴다. 페이스북에 ‘좋아요’가 많이 붙으면 좋아하지만 엉뚱한 사람이 ‘친구요청’을 하면 거절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사진을 즐기는 방식은 전적으로 나르시시즘에 기반을 둔다. 자기가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는 얼굴, 자기가 먹은 음식, 자기 고양이 사진 등 오로지 자기를 중심으로 구축된 폐쇄된 소우주가 페이스북이다. 그리고 거기에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은 그런 나르시시즘이라는 병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전혀 아름다울 것이 없는 중년 아줌마, 아저씨 사진에 “젊으세요, 멋지세요”라는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나르시시즘의 동병상련을 앓고 있는 중이다. 사진을 보는 경험이라고는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것밖에 없는 요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축제는 무엇인가? 난해한 문제이다.
실패가 예견된 축제
사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요즘 ‘제대로 된 축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사진의 문제 이전에 축제의 문제인 것이다. 일단, 나비를 어디서 왕창 사다가 풀어놓고 하는 ‘함평 나비축제’나, 연어의 집단학살인 ‘양양 연어축제’ 등의 지역축제는 왜곡된 축제라 할 수 있다. 과연 즐기면서 배우고 관람할 수 있는가? 그것도 사진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남대천에서 사람들이 맨손으로 연어를 잡으면서 야생과 원시성으로 되돌아가는 쾌감을 사진에서도 느끼게 할 수 있는가? 나는 이 문제를 풀 수 없었다. 그것을 풀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서울사진축제》는 실패였다. 게다가, 내가 기획한 어떤 전시에서도 그랬듯이, 나는 대가의 이름을 칭송하는 식의 전시를 꾸미지 않는다. 따라서 작가의 지명도에 기대서 사람을 끌어모으는 식의 행사도 기대할 수 없다. 축제라면 사람을 끌어 모아야 하는데 내가 사람을 싫어하니…….
그래서 그 다음 해에 《서울사진축제》의 총감독을 뽑는 회의에서 나는 서울사진축제의 방향성에 대해 연구하는 기구를 상설로 두고 그 기반 위에 축제를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그 회의에서 나를 반대하는 쪽의 사람들도 그 안에 대해서는 찬성했지만 그들은 나를 총감독으로 뽑지 않았고, 그 안은 허공의 말로만 떠돌았을 뿐이다. 지금도 《서울사진축제》는 어찌어찌 열리고는 있지만 축제로서의 성격은 별로 획득하지 못한 것 같다.
아직도 맴도는 질문은 그것이다. 사람들은 과연 사진축제를 원하는가? 사진으로 축제를 하길 원하는가? 사람들은 이미 일상 속에서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통해 나름의 사진축제를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몇억 원씩이나 써 가며 굳이 사진축제를 만들 필요가 있는가? 지금 나의 의견은 기존과 같은 진행 방식이라면 사진축제가 별로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하려면 축제전문가와 사진전문가가 모여서 제대로 기획해서 해야 할 것이다.
사진축제를 통한 나의 공공성 획득은 실패했다. 심혈을 기울여 책을 써봐야 1년에 1,000부를 간신히 팔정도로 공공성과 상관이 없는 내가 공공성을 획득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인지도 모른다. 미술에서도 공공미술이 중요한 정치적 화두인 것 같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오늘날의 예술은 대중들이 모이는 곳에서 예술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썼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인다고 무조건 공공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성은 사실 가장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의 이름인 것 같다.
이영준
오랫동안 사진 이미지 평론을 해오다가, 수년 전부터 ‘기계비평’이라는 새 영역을 개척해왔다. 그는 정교하고 육중한 기계들을 보러 다니는 것이 인생의 낙이자 업이다. 그 결과물로 『기계비평: 한 인문학자의 기계문명 산책, 페가서스 10000 마일 같은 저서를 썼다. 또한 사진비평에 대한 책(비평의 눈초리: 사진에 대한 20가지 생각)과 이미지비평에 대한 책 (이미지비평의 광명세상)도 썼다. 기계비평은 즐겨 하는 업이긴 하지만 돈을 벌어주진 못하므로, 생계를 위해 계원예술대학교 아트앤플레이군의 교수로 있다.
나의 ‘공공성 확보’ 실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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