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vol06-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이 땅에서 북한 건축 하기

안창모

북한 건축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일회성 세미나와 포럼이 열리고, 장기적 연구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사회주의 도시의 이상을 구현한 평양 연구는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방편이며, 건축과 도시 연구는 내일의 북한을 그려내는 훌륭한 캔버스이자 상호 이해의 출발점이다. 건축사가 안창모 교수는 지금의 남북한은 서로의 건축과 도시를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요즘의 북한을 향한 국내 건축계의 움직임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북한은 중요한 이슈의 중심에 있다. 이슈의 핵심은 ‘북핵문제’다. 6.15선언 이후 가장 중요한 남북대화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은 동력을 상실 중이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우리가 다시 불씨를 살려낼 것이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지만, 최근 건축계의 움직임을 보면, 감히 건축이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내는 데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이렇게 건축계에 북한 교류에 대한 기대를 거는 이유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북한 건축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신문을 만드는 재단에서는 북한 건축을 장기적인 리서치 사업으로 삼았고, 북한이 고향인 부모를 둔 한 건축가는 자신이 운영하는 포럼에서 연중기획으로 북한 건축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내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의 커미셔너로 선정된 또 다른 건축가는 한국관에 북한 건축이 함께 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알 수는 없지만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최근의 움직임이 더욱 반가운 것은 예전의 북한 건축에 대한 관심이 대북 관계 개선의 사회적 흐름에 편승하는 분위기 속에서 형성되었던 것에 반해, 오늘의 관심은 어려운 상황에 적극 대응하며, 지금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남과 북 사이에 형성된 냉전의 현실을 극복하는 데 건축이 직접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점도 북한 건축을 대하는 오늘의 달라진 모습이다. 물론 장밋빛 앞날을 꿈꾸기에는 걱정스러운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십여 년 전, 북한 건축에 대한 관심이 일장춘몽처럼 사라졌던 상황에 비춰보면 희망의 끈을 이어갈 만하다.

과거의 북한 건축에 대한 접근 자세

글을 청탁받고 ‘이 땅에서 북한 건축 하기’를 주제로 글을 쓰려다 보니, 오래되지 않은 희미한 옛일이 생각났다. 대한건축학회에 ‘북한 건축 분과’가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분과에서 활동하겠다고 몰렸던 일이다. 당시만 해도 남북 관계는 금방 좋아질 듯했고, 이때 북한 건축 분과의 위원이 된다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동참한다는 명분과 함께 혹시 ‘남보다 앞서 북에 가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나아가 어쩌면 북한 건축분과에 소속되어있다 보면 ‘북한 특수의 덕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얕은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후자와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당시 북한 건축에 대한 연구는 실질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북한 건축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가 기대했던 것만큼 빠르게 호전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가볍게 버렸다. 그들은 인내심이 부족했던 듯하다. 물론 그들이 인내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좋아지지 않았던 남북 관계를 탓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한 역사학자는 ‘무임승차 중도하차無賃乘車 中途下車’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무임승차 중도하차’의 문제는 비단 북한 건축에 한정된 현상은 아니다. 자신의 노력 없이 빠른 시간 안에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고도성장 사회의 부작용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

남북 교류에서는 늘 ‘수단’이었던 건축

그렇다면 남북 관계가 극도의 긴장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의 북한 건축에 대한 높은 관심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동안의 학습효과라고 하기에는 건축분야의 남북 교류는 전무한 편이다. 물론 건축이 남북 교류의 수단으로 사용된 적은 많이 있다. 북한 금강산의 유서 깊은 사찰을 복원해 준 바 있고, 북한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공장, 학교, 주택 그리고 교회를 지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많은 건축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업에서 건축은 보조적인 수단이었다. 그리고 수 많은 건축을 매개로 한 교류 및 지원사업이 있었지만, 다양한 경로를 통한 건축지원 사업의 노하우를 축적하는 지혜가 발휘된 적도 없다.

얼마 전 북한 건축을 주제로 하는 한 심포지엄에서 북한 건축 연구를 하는 이들이 자신들을 ‘시한부 인생’에 비유했다. 그 배경에는 북한 건축 연구가 통일이 되는 순간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통일이 되기 전에 북한 건축에 대한 연구성과를 내놓을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듯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풀리지 않는 남북 관계는 그들의 의지를 또 다른 방향에서 시험하고 있는 듯하다. ‘이래도 북한 건축 계속 할래?’ 라고…….

건축이 갖는 통일 이후의 잠재적 역할

과연 북한 건축은 통일과 동시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러한 물음에는 우리의 상황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 깔려 있다. 만일 통일이 된다면 그 통일은 자본주의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는 1972년 이후 남북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해 우리가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배경으로 한다. 물론 경제력에 기초한 자신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남북 관계에서 남한의 역할이 크다는 점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어떻게’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진 바가 없다.

여기서 북한의 건축과 도시에 대한 연구는 통일이 될 때까지 필요한 연구가 아니라, 통일을 준비하고 통일 이후에도 우리가 하나 되는 데 필요한 많은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기초연구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회주의에서 건축과 도시를 ‘사회적 응축기social condenser’라 부르며, 자본주의형 인간을 사회주의형 인간으로 바꾸는 데 어느 문화예술 분야보다 건축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했고, 이의 실천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이 건축과 도시에 기대어 만들고자 했던 이상사회의 틀에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던 나라가 북한이었다는 사실은, 그러한 생각을 가장 실천적으로 구현했던 북한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이해가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가 될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건축은 물리적인 실체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특히 사회주의 국가에서 건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종전 이후 60여 년이 지나면서 남과 북 사이에는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사건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러한 민첩하지 못한 대응을 두고 우리는 북한 사회의 폐쇄성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북한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법을 우리가 몰랐던 것은 아닐까? 그동안 우리는 북한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우리의 희망사항을 분석으로 내놓는 데 익숙하다. 결과가 예상과 맞고 안 맞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는 정치학자들의 분석이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분야에서 일반화되어 있고, 건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남한이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기까지 다방면의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낸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북한의 미래를 얼마나 상상할 수 있는가

우리는 북한의 미래가 궁금하다. 그러나 궁금한 대상은 ‘있는 그대로의 북한’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이기를 바라는 궁금함이다. 하지만 여기에 모순적인 상황이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북한의 모습이 현실의 북한이라면 굳이 그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북한의 모습이 실제 모습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는 북한의 모습이 매우 열악한 것을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내가 옳게 살아왔음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고,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지난 오랜 시간 동안의 남북 대치가 가져온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만일 함께 미래를 공유할 동반자로서 북한의 실체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못한 북한의 실체를 상상하면서 스스로 뿌듯함을 느낀다면 우리는 정말 잔인한 사람들이다.

북한의 현 체제가 종말을 고한 다음의 모습이 어떠할 것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떠한 역할이 가능할 것인지 막연한 기대와 호기심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현 체제 이후 북한의 도시와 건축 모습에 대해 예측하고픈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북한의 미래, 아니 북한 건축의 미래를 예측하기에는 그곳과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없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북한은 코끼리며 우리는 장님이다. 그리고 우리는 장님이 코끼리를 만졌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한 그동안의 학습을 통해 어떻게 하면 장님들도 코끼리의 실체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1950~60년대와 1960~70년대에 각각 세계가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세계가 주목할만한 나라로 우뚝 섰던 각자의 지혜를 모은다면 우려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우리의 미래가 있듯 그들에게는 그들의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우리와 공유해야 할 플랫폼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과 도시는 공유해야 할 미래를 담아낼 충분히 훌륭한 그릇이자 상호 이해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한 핏줄이지만 통역이 필요한 사회

끝으로 북한이라는 사회에 접근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점이 하나 있다. 북한은 우리와 한 핏줄이고,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을 함께 사용하고 있지만, 해방 이후 70년의 분단체제로 인해 너무도 다른 나라가 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시간 동안 남과 북이 각기 걸어온 다른 길과 우리 사회에서 형성된 북한에 대한 선험적 지식을 생각한다면, 한글로 쓰인 북한의 문헌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번역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그들의 글을 읽다 보면 과대해석하거나 과소해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사실을 준비하지 못한 채, 마치 잘 아는 이웃을 대하는 태도로는 북한 건축에 한 걸음도 가까이 하기 어려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창모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후 (주)대림산업에서 근무했으며 1990년 건축사 면허를 취득했다. 동 대학원에서 건축가 박동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과 일본 동경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지냈으며, 경기대학교 대학원 건축설계학과 역사문화환경보존프로그램 주임 교수로 ‘한국 근대 건축의 역사와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도코모모코리아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건축역사학회와 한국도시설계학회 이사, 서울시와 경기도 문화재위원, 문화재청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땅에서 북한 건축 하기

분량5,314자 / 10분

발행일2013년 6월 20일

유형오피니언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