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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공모전, 굴업도 이야기

SoA

인천여객터미널에서 세 시간, 서해 최서단에는 굴업도라는 섬이 있다. 한반도의 영토 안에 수천 개의 섬이 제각기 다른 형상을 하고 있지만 굴업도는 어딘가 특별하다. 작은 섬의 남과 북이 한쪽은 고운 모래로, 한쪽은 응회암으로 이루어졌다. 백사장이 있는가 하면 십수 미터 높은 파도의 형상이 그대로 음각된 기괴한 암석도 있다. 섬의 남북과 동서가 제각기 다른 자연의 시간성을 보여준다. 굴업도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

이 아름다운 섬은 1990년대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부지로 선정되면서 몸살을 앓았고, 2000년대 들어서는 국내 대기업이 섬의 98.5% 이상을 사들여 골프 리조트로 개발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는 환경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그 일환으로 2011년 12월에 이곳을 생태예술섬으로 보존하기 위한 국제 건축공모가 시행되었다. 그리고 이 공모전은 <춤추는 섬>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드물게 활성단층이 섬 하부를 지나가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굴업도 주변의 해상 기후는 다양하다. 건국대 지리학과 박종관 교수의 자문에 따르면, 굴업도 지형이 다양하고 생물종 다양성이 높게 유지되는 것은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섬 하부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수면 위에 역동적인 기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굴업도는 섬 아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수면의 기후와 섬 표면의 다양한 생태적 조건들을 통해 드러낸다. 이는 환경운동과 건축공모를 통해서 지켜내고자 했던 섬이 가진 가장 중요한 생태적 가치이다.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는

하지만 이 공모전의 당선작이 <춤추는 섬>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공모전 초기부터 멘토 시스템이라는 운영 방식으로 논쟁을 일으켰고, 지금까지 이 섬을 지켜내기 위한 환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음에도 공모전이 어떤 결과로 마무리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모전은 최종 단계에 오른 다섯 작품을 심사하는 기간 동안 주최측의 한 운영위원이 굴업도 답사 중에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면서 운영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모전을 공동 주최한 한국녹색회와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이 결별하게 되고 공모전은 더이상 진행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최종 당선작을 선정하고 시상식까지 치뤄내는 노력으로 마무리 되는 것으로 보였다. 남은 일은 당선작의 실시설계를 진행하고 건축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춤추는 섬’의 메인 콘셉트 이미지 / ©SoA

그런데 공모전의 대상부지였던 토지의 소유권이 공모전 운영에서 이탈한 한국녹색회 측에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당선작의 계획안을 실행에 옮기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더이상 진행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선작 공표와 실시설계권 부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과 운영위원 그리고 당선자가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까지 마련되었다.

불의의 사고와 공모전 공동 주최자의 중도이탈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변수였기에 당선자를 비롯한 주최측과 운영위원은 공모전을 원만하게 마무리하자는 데 의견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섬을 지키기 위한 환경운동의 일환이었고,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였으며 불의의 사고로 고인의 명예를 위해서 누구라도 이 파행의 상황을 악이용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절차는 당선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당선작을 발표하는 일일 것이다.

공모전의 마무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은 당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1. 당선작가 측에서 공동주최 단체, 주관 단체를 약속 불이행으로 고소할 수도 있다.
2. 실시 설계를 주장하여 납품할 경우 예술인모임에서 실시 설계비를 지급할 수 있다.
3. 다만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지나치게 현실적인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은 재고하는 것이 좋겠다.
4. 작가들의 실력을 인정하고 여러 다른 프로젝트에 기회를 부여하도록 노력한다.
5. 여러 매체에 결과를 공표한다.

당시 이에 대한 당선자의 대답은 “공식 홈페이지 gulupdo.org에 당선작을 공지해 달라”는 것이었다. 비극적인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환경운동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고소 고발의 법적 공방을 벌이고 싶지 않았고, 지어지지 않을 건축에 대한 실시설계비를 요구할 이유도 없었다. 당시 막 독립한 설계사무소로서 공모전의 당선작을 실행에 옮길 소중한 기회가 무산된 것은 큰 아쉬움이었지만, 손해배상을 청구하듯 무리한 요구를 할 생각 또한 없었다. 그리고 공모전과 무관한 다른 프로젝트를 통해서 보상을 받을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홈페이지 공지는 1년이 넘게 이행되지 않고 있다. 중간 심사의 결과발표를 끝으로 지금까지 공모전 홈페이지는 버려져 있다. 국제 공모전의 형식으로 참가비까지 받으면서 치러졌던 공모전이 파행을 겪자 당선작 공지도 하지 않은 채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 공모전은 1차 심사에서 20개 팀, 2차 심사에서 5개 팀, 3차 심사를 통해 당선작을 결정하였고 2011년 12월 공모전 개최부터 2012년 5월 15일 공모전 마무리를 위한 관계자 협의까지 장장 5개월의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1년여 기간 동안 공모전은 당선자가 납득할만한 마무리 절차 없이 방치되었고 굴업도를 소유한 대기업의 총수가 구속되면서 다시금 환경운동의 움직임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을 비롯해 환경운동에 동참하던 시민단체 연석회의는 한국녹색회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운동을 전개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일간지 보도를 통해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이 섬을 찾아 공연과 행사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행사는 다름 아닌 섬의 여러 장소에서 춤 공연을 펼친다는 것이었고, 보도자료의 행사 제목은 ‘춤추는 섬, 굴업도’였다.

섬에서 춤추기, 저작권 침해인가?

공모전을 마무리하기 위한 절차로서 “공식 홈페이지에 당선작을 공지”해달라는 요구에 대해서 1년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당선작이 제안한 문화예술 활동의 기획을 아무런 상의 없이 실행에 옮기는 상황을 발견하면서 이 공모전이 파행을 겪는 동안 주최측의 비전문적인 방식과 태도를 다시금 복기하게 되었다.

공모요강은 저작권을 “멘토와 공모전 참가자 공동의 것”으로 한다고 말하면서 저작권이 귀속되는 대상까지 명기하였다. 이로 인해 ‘공동 저작권’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면서 아직 많은 건축가들에게 모호했던 저작권의 개념을 발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공적인 논쟁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공식발표도 되지 않은 당선작의 내용을 상의 없이 실행에 옮겨버리는 행위는 결국, 공모전 참가자들의 시간과 노력과 많은 사람들의 진지한 관심을 헛되게 한다.

1년 전, 주최측 간 파행으로 더이상 공모전이 진행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선작 공지’에 대한 요구와 함께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지켜나갈 것임을 주최측에게 명달하였다. 비극적인 공모전 파행의 상황을 이용해 “지나치게 현실적인 권리”를 주장할 힘도 의사도 당선자들에겐 없었기 때문에, 명백하게 지적 저작물인 당선작에 대한 권리만큼은 지켜나갈 것임을 알렸다. 그렇다면 주최측이 섬에서 무용수들을 초대해 춤행사를 벌인 것이 저작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일까?

이 원고를 준비하는 동안 『공간』 9월호에는 “건축가와 현상설계 그리고 시스템”이라는 제목으로 굴업도 공모전을 다루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서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은 “굴업도를 예술섬으로 만들기 위해 사진전을 열고, 시도 낭독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는 게 어떻게 표절이 되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공모전은 애초에 덕적군도 내의 굴업도를 생태예술섬으로서 특화할 수 있도록 기획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공모요강을 제시한 바 있다. “굴업도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예술과 문화를 통하여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소통의 공간을 만드는 콘셉트와 섬의 자연 콘텐츠를 통한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광의적 다이어그램을 제안하라”

당선작은 이러한 공모전의 구체적인 요구에 대해, 굴업도가 놓인 지질학적, 지리학적 조건을 섬의 문화-예술 자산의 정체성으로 활용하되, 무용이라는 시간예술을 통해 섬 전체를 훼손하지 않고 예술활동을 벌이는 객석-무대로 이용하자는 건축적 제안이었다. 자연을 보존하는 동시에 섬의 역동적인 지형과 예술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무용이라는 장르를 특정하여 기획한 것이다. 이는 3차 프레젠테이션에서, 굴업도의 기후를 분석해 예술활동이 가능한 시간과 장소를 연결짓는 타임-스페이스로 발전하여 제안되었고, 최종 제안은 육지와 섬이 연결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도록 하는 인적 자원의 구성까지를 포함하였다. 섬 전체를 무용이라는 장르의 무대와 객석으로 이해하는 인식의 틀은 공모전이 요구한 두 번째 제출물인 생태환경컴플렉스의 공간적 구성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프로그램과 함께 제안된 생태환경컴플렉스의 전경 / ©SoA

이 모든 기획은 세 차례에 걸친 계획안 제출과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심사위원에게 설명되었고 공모전 마무리 절차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운영위원 중 한사람이 인천시립무용단과의 협력을 통해 기획을 구체화하자는 제안까지 한 바 있다.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공식 채널을 통해 당선작 공지도 되지 않은 저작물에 대한 인격권과 관련하여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상식적으로는, 어느 섬에서나 춤을 추는 행위 자체가 저작권 문제를 따질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공모전을 통해서 기획안을 선정한 주최측이 마치 모든 것을 없었던 일처럼 취급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공모전을 마무리하는 방법

‘춤추는 섬 굴업도’ 이후 이 행사를 독립적으로 주관한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에 다시 한 번 정중히 저작권과 관련한 의견을 묻는 두 차례의 서신을 보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부득이 내용증명을 발송한 후에서야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으로부터 한통의 이메일을 받게 되었는데 그 내용인즉슨, 이번에는 ‘노래하는 섬, 굴업도’ 행사를 개최하니 참가 신청하라는 공지였다. 1년 만에 처음 받은 대답이었다.

공모전이 전개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미천한 경험의 당선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이 사회에서 건축가로 커가기 위한 수업료 정도로 여겨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항상 몸에 남아 정신을 환기하는 교훈들은 살갗을 긁어내는 생채기나 뼈가 부러질 정도의 고통이지 않던가. 당선자로서 개인적인 아쉬움을 걷어내면 굴업도 생태예술섬 국제건축공모전은 그 이전의 건축 공모들이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는 절차상의 문제와 저작권이라는 이슈를 남긴다.

우선, 아직 공모전의 최종 절차로서 당선자의 요구가 이행되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은 국제건축공모전에서 설계권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점은 형사법상에서 허위 공모로 인한 사기 혐의의 소지가 있으며, 혐의가 인정될 경우 아직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사건으로 간주할 수 있다.

사실 이 공모전에서 절차상의 문제는 너무도 간단한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당선자의 최종요구에 주최측이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절차가 복잡하거나 비용이 소모되는 거창한 보상이 아니라, 홈페이지를 통해 당선작을 공지하고 저작권을 보호해달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주최측의 입장에서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었겠지만 참가자와 당선자들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절차이다. 특히 저작권의 경우 발주처 귀속의 저작권 규정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몇 차례 시정조치를 내리는 등, 저작권이 일신 전속의 권리로서 공모전에 제출되는 즉시 원저작자가 저작권을 가진다는 인식 정도는 건축계 일부에서라도 공유되고 있기에, 다시 한 번 건축계에서 환기되었으면 한다. 아직 이름도 다 알지 못하는 뭇 생명을 희생하며 골프장으로 사유화하겠다는 욕망이 야만이라면 굴업도라는 자연자원의 생태적, 문화적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보전하고자 하는 운동은 가장 인간적인 정신활동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더욱이 그 환경운동의 방식은 자연을 예술과 결합된 장소로 읽어내고, 드러내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내는 비폭력적이고 문화적인 과정 아니던가. 이런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공모전이 시행되었다면, 환경운동이라는 큰 의미에 동감하고 그 과정에 동참한 창의적인 노력들이 빛바래지 않도록 더 세심한 배려와 존중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건축사사무소 SOA

Society Of Architecture는 2010년부터 도시와 건축의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어젠다를 설정하면서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굴업도 생태예술의 섬 국제공모에 당선되었고 <오송바이오밸리> 마스터플랜, <부산 중앙광장> 국제 공모 등에 입상한 바 있다. 이탈리아 국립현대미술관 MAXXI, 광주 비엔날레, 문화서울역 전시에 참여했고 『도서관 산책자』를 출판했다. 현재 “서울 동북사구 발전방안 수립 연구용역” 및 APAP 2013, <우포 자연도서관>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미완의 공모전, 굴업도 이야기

분량6,287자 / 13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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