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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재생의 논의와 세운상가

이종호

세운상가, 다시 살아나다

종묘 앞 큰길 너머에 낯선 이름, ‘초록띠 공원’이 있다. 2008년 말, 세운지구 들머리 현대상가 아파트를 보상에만 1,000억 원을 들여 허물고 들어선 공원이다. 이후 세운상가군 자리를 대신 할기다란 ‘띠’ 모양의 공원을 예비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그러나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초록띠 공원은 아직 그 모습 그대로이며 나머지 세운상가군 역시 그대로 서 있다. 2013년 6월 25일, 세운상가군을 그 인근 재개발 지구로부터 분리한다는 서울시의 공식발표가 있었다. 인접한 세운지구도 블록 전체를 전면철거 후 재개발하는 방법 대신 기존의 조직을 살리며 작은 단위로 정비해 나가겠다는 이른바 수복적 계획으로 변경을 알렸다. 도대체 이 사태의 전말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태는 우리에게 어떤 과제를 남기고 있는가? 흥미로운 일이다.

2008년의 세운상가 모습 / © 김용관

영욕의 세월

세운世運이란 세계의 기운을 모으겠다는 야심찬 이름이었다. 그 이름을 붙인 김현옥 전前 시장의 눈에 불량주거로 가득 찬, 도심 한 복판의이 ‘소개공지대’ 터는 정리 1순위의 대상이었다. 소개공지대란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종의 방화구획 용도로 서울 여러 곳에 만들어졌던 긴땅을 말한다. 그랬던 이곳에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무허가 주택이 들어차게 되었고 ‘종3’이라는 유명한 사창가를 거느린 골치 아픈 영역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민하는 김현옥 시장에게 여러 생각이 전달되었다. 그러던 중 건축가 김수근의 구상이 전해졌다. 양 옆으로 도로를 만들되 그 상부 공중데크에 보행자 몰이 만들어지고 중앙의 고층 건물군 속에 주거와 상업이 혼재되어있는 이른바 입체 도시의 개념이었다. 새로운 개념은 시장을 매료시켰고 망설임 없이 즉각 실천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김수근은 동시에 그의 젊은 브레인들에게 서울 도심 전체의 공간 구조와 세운지구 사이의, 구체적으로는 종묘에서 남산에 이르는 선형의 도시 구조와 그 인접 영역의 관계에 대한 비전을 주문했다. 그러나 김현옥의 시간은 매우 빨랐다. 전체 영역을 8개의 공구로 나누고 그 각각을 현대, 대림 등 주요 건설사에게 떠안기는 속도전이 벌어지고 김수근 팀의 도시 건축적 개념들은 그저 껍데기로만 남겨지게 되었다. 결국 착공한지 1년도안 된 1967년 11월 17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현대상가 아파트의 성대한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서울에 또 하나의 명물, 세운상가아파트 A지구 오늘 개점, 8~22층짜리 맘모스 8개, 상가경기의 중심지대로”라는 제목의 대대적인 찬양 기사를 싣기도 했다. 편리한 아파트에 유명 인사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는 상가, 사우나, 실내 골프 등이 한 건물 속에 집적되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주변 지역의 오래된 산업기반과 결합되며 세운상가에서는 초기 한국 전자 산업의 씨앗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모든 사건이 어떤 지평 위로부터 홀연히 솟아오르듯 세운상가군 또한 그와 같았다.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 김현옥의 도시 근대화라는 욕망에 더해 김수근의 도시 건축적 상상력이라는 욕망이 더해진 그 지평 위에서 세운상가군은 1960년대의 서울 도심 풍경 위로 낯설게 솟아올랐다. 그러나 밀려오는 파도처럼 또 다른 사건들이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건들은 이제 막 시작되었던 이 건물군을 찬사와 선망의 대상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로 급격히 전락시켜 버렸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1968년의 ‘ 1.21 청와대 습격사건 ’이었다. 그것으로 ‘ 위험한 ’ 강북보다는 한강 이남으로 서울을 확장하고 중심을 이동시키는 강남 우대 정책이 급속히 탄력을 받게 되었다. 강남 개발을 돕기 위해 학교와 관공서, 농산물 시장과 공구단지가 이전되었고, 강북 도심은 점점 활력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3년 시작된 ‘청계천 사업’이 세운지구에게는 운명의 최종 심판이 되고 말았다. 정책은 세운지구 쇠퇴의 과정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 쇠락한 그 결과만을 평가하며 세운상가 군의 소멸과 ‘녹지축’ 조성을 전제로 한 ‘도심재창조계획’, 연이어 2009년 세운재정비 촉진지구계획을 구체화시켰다. 좀 더 살펴 볼일이다.

2009 세운재정비촉진지구계획의 성찰

도심재창조계획상 ‘남북 제3축’이라 불린 이곳은 북한산으로부터 이어진 종묘 녹지가 시가지 깊숙이 뻗어내려 남산을 가장 가깝게 연결할 듯보여, ‘남북 녹지축 조성’이라는 그랜드 플랜의 유혹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 한 가운데를 도심의 ‘흉물’ 세운상가군이 관통하고 있었으니, 지우고 다시 쓰는데 익숙한 계획가들에게는 ‘흉물’을 지운 그곳에 근사한 녹지의 띠를 만들어 새로운 고층 빌딩으로 그 주변을 가득 채우는 상상이란 아주 자연스런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익숙한 전형적인 수법,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즉 쇠퇴한 도심으로 고차 비즈니스와 중산층이 회귀하는 현상 또는 유도정책이기도 했다. 이미 그곳을 채우고 있던 비교적 낮은 임대료에 의존하는 활동들과 거주를 추방시키게 되었다.

2009 세운재정비촉진지구계획 역시 또 다른 젠트리피케이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벌어지는 다른 많은 나라에서의 도심 쇠퇴와 재생은 그 양상이 우리 도시들과 달랐다. 영국의 셰필드, 리버풀과 같은 산업도시 도심의 쇠퇴는 전세계적인 산업구조의 개편과 맞물려 있었고 미국 디트로이트의 파산 역시 특정 산업의 쇠퇴와 관계가 있었다. 교외화 과정urban sprawl에 따른 도심인구 감소, 저소득층으로의 대체 등과 맞물리며 일어나는 현상들이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진행된 강북도심의 쇠퇴는 도시의 인구와 경제규모는 계속 확대되는 가운데 앞서 기술한 바 인위적인 도시 중심의 이동 정책과그 정책을 부추기고 활용했던 토건세력이 생산해낸 특이한 현상이었다. 공공청사와 공공시설의 이동, 개구리 뜀뛰기 식frog jumped의 택지개발 등이 그 모습들이었다. 한편 그와 같은 상황은 사실 개발연대를 거친 이 나라 대부분의 도시가 함께 가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모습이기도 했다. 광주의 도심이 비워진 것도 그 때문이며 순천의 원도심이 쇠퇴한 것, 대구에서, 부산에서 보이는 현상 모두 동일한 상황들이다. 결국 문제는 이나라의 도시가 가진 현상의 차이를 계획이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는가의 문제로 모아진다.

그런 면에서 2009 세운재정비촉진지구계획은 도심을 재생시키겠다는 목표는 있었으나 이곳에 실재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조사, 분석 그리고 인식과 결정과정 모두에서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물론 서울역사박물관에 의한 『세운상가와 그 이웃들: 산업화의 기수에서 전자만물시장까지』 라는 생활사 차원의 기록이 있었고 촉진지구계획 내부에서 진행된 ‘세운지구 기록화사업’도 있었다. 하지만 기록들은 이미 철거를 전제로 한 작업이었고 계획은 철저하게 타블라 라사tabular rasa(백지계획)의 계획으로 완성되고 확정되었다. 그러나 조금의 진전도 못 본채 다시 계획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누군가는 그 이유를 갑작스런 경제 여건의 변화, 문화재위원회의 높이 제한 등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2009년 계획은 내장된 동력 자체에 문제가 있어 스스로 작동을 멈춘 것으로 보려한다. 탑-다운 방식의 백지 계획이 작동되기에는 이미 사회가, 경제가, 사람들의 합의구조가 변해 있었다. 아니 도시를 변화시키는 과정에 대한 패러다임이 진작 바뀌어 있었다. 도시에 실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제각기 이유와 생명을 지니고 있는 유기적 요소들이다. 오랜 시간 동안 세운지구의 산업을 도심부적격 산업이라는 이유로 추방하려 했어도 추방에 실패한 이유 역시 그 유기적 요소들의 상호 연계 시스템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탓에 있다고 본다. 일거에 변화를 만들려 하는 백지 계획보다는 끊임없이 고민하며 조금씩 겹쳐 써 나가는 팔림세스트palimpsest(양피지에 계속 겹쳐 써나가는 방법)의 사고가 여기 서울의 도심 속에는 이미 필요했던 시점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계획이 기여한 바가 없지는 않다. 그것은 이 세운상가 군과 세운지구의 리얼리티-실재에 새삼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점그리고 더 나아가 이곳의 잠재력에 관하여 새로운 논의를 시작시켰다는 점이다. 역설적인 일이다.

세운상가군과 세운지구의 잠재력과 그 현실화

지난 1년 반 동안 필자도 참여(건축 M/P)한 가운데 벌어진 새로운 논의는 2009년 계획이 작동을 멈춘 원인과 그 대책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곳이 가지고 있는 어떤 종류의 도시적 잠재력과 그현실화의 가능성을 읽으려 하지 않았던 점을 먼저 지적할 수 있었다. 도시 구조, 자원, 생활의 차원에서 짧게 더 정리해 보자. 우선 도시 구조의 차원에서 이 영역에 남은 구조 자체가 바로 서울 도심의 뚜렷한 정체성이자 잠재력이다. 조선조의 미세조직과 그것을 200~300m로 크게 구획한 대로가 만들어내는 ‘서울 그리드’(필자 명명) 사이의 부정합 자체가 어느 도시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모순, 긴장, 독특함이며 풍경을 결정하고 있다. 도시 자원의 차원으로 보면 이 영역 깊숙이 그물처럼 조직되어 있는 산업의 네트워크를 본다. 그 중에는 이미 한계에 이른 것, 더욱 고도화시킬수 있는 것들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지연적 요소들을 무시할 수 있는 그 어떤 계획도 존재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 속에서 잠재력을 발견해 내는 것이 계획의 의무다. 마지막으로 도시 생활의 차원. 이 영역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것같은 시청 뒤 다동 블록의 활기와 삼각동 일대 재개발 완료구역의 스산함을 비교해 본다면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잠재력이다. 새로운 논의의 마무리는 바로 그와 같은 잠재력들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기획하고 그것들을 현실화시킬 수있는 통로를 기획하는 일로 남게 된다. 우선 제대로 읽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다음 단계로는 함께 상상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와 같은 작업들이 누적되는 가운데 이 영역의 잠재력이 서서히 드러날 수 있으며 그때에 가서야 그 잠재력의 현실화를 위한 더 구체적인 계획과 합의가 가능할 것이다. 서둘지 않을 일이다.

세운상가 군을 위한 ‘소급적 선언’

이 엄청난 도시복합체에 대한 즉각적 인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 필요하기도 하다. 그것은 이 복합체가 시작된 지점, 그 이후 전개 과정, 앞으로의 희망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또 앞으로 전개될 과정을 통해 그인식을 조정할 수 있다 믿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갈래에서 시도해본다. 그 하나는 이 복합체의 실체에 관한 것이다. 이 도시복합체는 애초 많은 도시적 프로그램들이 한데 뒤섞인 개념으로 출발되었다. 또한 지난 시간 더욱 이질적인 요소들이 드나들며 왜곡, 변형되고그 결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헤테로토피아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 복합체를 지속시키는 혼돈이라는 실체와 그 힘이다. 그 다음 하나는 그 실체가 겉으로 드러나는 형상에 관한 것이다. 이 도시복합체는 놀랍도록 거대하다. 반복과 차이로 연속되고 있다. 실현되지 못했던 수많은 메가스트럭처들이 꿈꾸었던 무언가를 이곳에서 말하려 한다. 그 결과 여기 미완의 형상을 지닌 도시 복합체는 그 거대함 속 곳곳에 온갖 접속이 일어나는 도시 공공영역을 은밀하게 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 복합체를 지속시키는 연속된 거대함이며 그 힘이다. 마지막 하나는 실질적인 역할에 관한 것이다. 이 도시복합체는 그 주위에 변화를 갈망하는 영역들과 길게 접하고 있다. 어느날 그 영역을 향해 이 복합체로부터 작은 간섭이 일어나고 에너지가 교환되며 서로 간의 피드백이 지속될 수 있다면, 마치 작은 날개짓이 태풍을 불러오는 것과 같은 창발적 현상이 그 둘 사이에 벌어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 복합체가 가진 연계 또는 끌개로서의 도시적 역할과 그 힘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소급적 선언은 앞으로의 과정을 위한 토대일 뿐섣부른 정의가 아니다. 기대해 볼 일이다.


이종호

건축을 기본으로 도시연구, 문화기획에 관여하고 있다. <박수근 미술관>, <이순신 기념관>, <노근리 기념관> 등 사회의 기억을 매개로 하는 건축 작업과 광주, 순천을 비롯한 여러 도시의 비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수근 문화상을 포함한 여러 건축상을 수상했으며 베니스, 광주, 부산 비엔날레의 초대작가다. 공공의 영역에 관계하고 그 영역을 만들어 내는 일이 살아가는 의무이자 즐거움이라 생각하고 있다.

도심재생의 논의와 세운상가

분량6,155자 / 12분 / 도판 3장

발행일2013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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