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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 화력발전소의 문화공간 변용에 대한 시론

김홍기

최근 20년 사이에 산업건축물의 문화적 변용에 대한 관심은 증폭되어 왔다. 사람들은 왜산업화시대의 건축물에 관심을 두고 문화적 변용을 꿈꾸는 것일까? 이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일까?

산업화시대 건축물과 문화적 변용

샤를 보들레르는 1863년에 쓴 에세이 「현대 생활의 화가Le Peintre de la vie moderne」에서 모더니티의 한 쪽은 찰나적, 일시적, 우연적이고 다른 한 쪽은 영원불변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보들레르의 명제에서, 예술가란 도회都會살이의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순간에서 영속성을 포착하는 자로서, 성공적인 현대 예술가라면 찰나로부터 미적 형태들을 숙성시켜 예술로 표현해야 했다. 빠르게 변모하는 도심의 거리, 아케이드와 가로등, 증기기관차가 들어오는 기차역, 뿌연 연기를 내뿜는 공장의 굴뚝. 모더니티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이 모든 것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로 전기산업 시대를 추동하는 시대정신의 산물이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흘렀다. 기술은 고도로 발전했고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갔다. 동력은 수력에서 화력을 거쳐 원자력으로 진화했고, 증기기관을 이용하던 공장은 포드 시스템과 테일러 시스템을 거쳐 자동화 시스템으로 모습을 바꿨다. 기술 문명이 고도화 되면서 전기 산업시대를 이끌던 산업건축물은 더이상 시대정신을 지닐 수 없었다. 노선이 바뀐 철도역사는 기능을 다했고, 화력발전소는 가동을 멈췄고, 방적공장의 기계도 멈췄다. 용도 폐기된 건물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었다. 개발론자들은 끊임없이 철거를 외친다. 그들의 눈에는 단지 흉물스런 사생아처럼 보였다. 산업시대의 건축물은 단지 시대의 사생아일까? 하지만 그곳엔 지나간 산업화 시대의 흔적이 양피지처럼 퇴적되어 있었다. 산업 유산을 보존하여 문화공간으로 개조하는 움직임은 이러한 인식 속에 배태되어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과 베를린의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은 원래 기차역이었고, 뉴욕 허드슨강 유역의 디아 비콘 미술관은 포장 박스를 만들던 나비스코 공장이었으며, 베이징의 798예술지구는 모택동 시대의 공장지구였다. 카를스루에의 미디어센터는 역시 탄약 공장이었으며 템즈 강변의 테이트모던은 화력발전소였다. 산업건축물의 보존과 변용의 흐름은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도 파급된다. 최대 관심사는 테이트모던과 유사한 맥락을 지닌 당인리 화력발전소였다.

1930년 한국 최초로 준공된 화력발전소 ‘ 당인리 발전소’ 이후 1969년 ‘서울화력발전소’ 로개칭되었다. 공해를 일으키는 무연탄 1~3호기는 철거되고, 대신 액화천연가스를 이용한 열병합 방식의 4, 5호기가 1970년을 전후한 시기에 들어서지만 이마저도 가동을 멈출 예정이다. 당인리 화력발전소를 문화공간으로 바꾸고자하는 구상이 정책의제로 처음 거론된 것은 2004년으로, 그해 6월에 나온 「창의한국」 보고서에 ‘당인리 문화발전소’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명박 후보의 선거공약으로 등장하면서 급물살을 타는 듯 했지만, 발전소 이전 문제에 발목을 잡혀 무산된다. 하지만 새정부는 이 계획안을 다시 꺼내 들었다. 2016년이면 수명이 다하는 당인리 4, 5호기를 보존하여 2018년까지 탈장르 · 융복합의 문화창작공간으로 변용한다는 구상이다.

2018년 당인리 문화발전소로 거듭날 화력발전소의 전경 / © 김용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누가 운영할 것인가

지난 7월 17일 문화역서울 284의 2층 강연장 열기는 뜨거웠다. ‘ 당인리 문화창작발전소’ 조성 기본 구상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다. 이에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기본 구상에 대한 연구 용역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의뢰한 바있었다. 김연진 연구원의 「문화창작발전소 기본구상안」 발표가 있은 후, 패널토론이 이루어졌다. 관심의 요체는 폐기되는 4, 5호기에 어떤 용도의 프로그램을 집어넣는가 하는 것이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융합 탈경계의 복합공간, 놀이와 창작이 결합된 예술놀이터, 다양한 예술 실험을 전개할 LAB, 홍대 주변지역과의 연계’라는 세부 조성방안을 제시하였다. 예술카페, 편집숍 등예술적 소비로 확산시킨다는 구상도 포함돼 있다. 영역별로는 ‘공연+전시 복합공간 영역, 창작공간 영역, LAB 공간 영역, 아카이브공간 영역, 지원 영역’으로 나뉜다. 언뜻 꿈과 희망이 담긴 구상처럼 보이나, 문화창작발전소라는 개념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독창성과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았다. 종합선물세트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당인리 화력발전소는 템즈 강변의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처럼 큰 규모가 아니다. 터빈실의 기계장치들을 철거한다 하더라도 다양한 기능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 당인리 화력발전소가 브랜드를 지닌 문화공간으로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아이템을 줄일 필요가 있다. 홍대 주변 문화와 연계하여 문화창작발전소로 발전시키겠다는 전략 또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홍대 주변을 탈경계, 장르융합적, 예술활동의 신흥거점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이곳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상업 자본에 잠식당한 홍대 인근은 더이상 ‘한국의 몽마르트’가 아니며 ‘소호 거리’도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상업 자본에 밀려 거의 떠났다. 카페와 유흥업소가 즐비하고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홍대 주변의 문화를 진정한 예술문화로 착각하지 말라고 꼬집는다. 홍대 주변이라는 문화인자를 떼놓고 다른 발상을 해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은 그래서 힘을 얻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외국의 재생 프로젝트들은 상상력과 역발상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두어 왔다. 발전소 속에서 그림 감상을 하고 탄광시설 속에서 수영을 즐기고 녹슨 조선소 공장 내부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등 보편적 생각을 파기시켜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당인리 문화발전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단순히 외국의 선례를 답습할 것인가. 당인리 문화발전소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위한 묘책은 있는가? 이를 위해 생각의 틀을 달리할 수 있는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껏 문화예술 단체가 주축이 되어 당인리 문화발전소의 미래를 구상해 왔으나 전혀 다른 영역의 인물들에게 구상을 맡겨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사업을 주도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프로젝트인지 서울시를 위한 것인지 마포구를 위한 지역 시설인지에 대한 전략적 접근도 부족한 상태다. 국가적 레벨로 접근한다면 당연히 좀 더 큰 그림이어야 한다. 문화산업적인 측면, 즉 컬처노믹스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를 끌고 갈 중심축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성공한 재생 프로젝트에는 강력한 리더들이 있었다. 테이트모던은 니콜라스 세로타Nicholas Serota라는 출중한 기업형 관장이 있었고,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프로젝트는 MBA 출신의 뛰어난 관장 토마스 크렌스Thomas Krens가 주도했다. 이들은 경영 마인드를 갖춘 ‘문화 CEO’들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고 있었고 적시에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어떤 프로그램을 넣을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전략 또한 중요하다. 계획 단계부터 문화창작발전 구상을 이끌어갈 뛰어난 선장이 필요한 이유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처럼 완공 단계에 이르기까지 수용 프로그램이 모호하거나 서울시청사나 광화문 광장처럼 완공 후에 불량한 시선으로 프로젝트를 바라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문화의식을 수용하는 건축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문화창작발전소 조성을 위한 토론회가 끝나고 보름이 지난 8월 1일에는 ‘당인리 발전소 공원화 현상설계공모’ 현장설명회가 열렸다. 발전소 전체터 118,000m² 가운데 75%인 88,350m²를 공원으로 조성해 주민에게 개방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도시재생형 공원의 한국형 모델’을 제시한다는 기치 아래 시행되는 현상설계공모의 마감일은 10월 11일로 잡혀있다. 마감일까지는 3개월도 안 된다. 발전소 내외부에 담을 프로그램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공원 설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화창작공간과 매칭되는 창의적인 공원계획안이 수립되길 기대하지만, 여타 한강주변 수변공간과 다름없는 밋밋한 계획으로 이루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시간호를 끼고 있는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나 네르비온 강변의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의 사례처럼 수변공간의 공원계획과 건축물이 조화된 독창적인 모습이어야 한다. 이런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엔 3개월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다. ‘바우휘테Bauhutte’라는 명칭 아래 점진적으로 추진된 졸버레인 탄광의 사례는 경종을 울려주는 추진 사례이다. (중세시대 성당건축에 참여했던 장인집단을 일컫는 바우휘테는 건물을 둘러싼 전체론적인 접근방식을 지칭한다.)

독일 에센Essen에 위치한 ‘졸페라인 탄광’은 파리의 오르세미술관, 런던의 테이트모던과 함께 산업화 시대 건축물의 문화적 변용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 © 김홍기

사실 발전소라는 거대한 산업기반시설을 문화예술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많은 기관과 인근 지역의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져 있어 더욱 그렇다. 발전소를 이전 하든 지하화 하든 상당한 경제적 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산업유산을 문화공간으로 재생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나, 과연 발전소 4, 5호기가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부정적 견해도 있다.

창의적인 프로그램과 도발적 상상력의 조화

2012년 연말 당인리 화력발전소를 문화공간으로 바꾸겠다는 협약이 발표됐을 때, 신문 기사들은 ‘한국의 테이트모던’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았다. 일부 신문은 “테이트모던을 뛰어넘는 문화공간을 기대”한다고 했다. 테이트모던을 벤치마킹 모델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냉정한 성찰이 요구된다. 영국과 한국의 문화적 토양이 다르고 당인리 발전소와 테이트모던의 하드웨어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1963년에 완공돼 1980년까지 가동된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는 빨간 공중전화 박스 디자인으로도 유명한 건축가 질레스 길버트 스콧Giles Gilbert Scott이 설계한 것으로 재료와 형태적인 측면에서 견고함을 갖고 있다. 외부로 창이 전혀 창이 나있지 않은 금욕적인 벽돌조 건물로 산업화 시대의 랜드마크라 해도 손색이 없다. 외벽은 그대로 둔 채 발전소 건물의 천장을 걷어내고 유리지붕을 덮어 전시장으로 바꿨다. 폭 24m, 길이 154m, 높이 35m에 이르는 터빈실은 세계에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인 미술관을 가능하게 했다. 99m 높이의 굴뚝은 런던의 밤하늘을 밝히는 등대가 됐다.

이에 비해 이 발전소의 하드웨어는 매우 취약하다. 문화공간으로 바뀔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의 4호기와 5호기의 외피는 발전 시설을 씌운 철제 거푸집에 가깝다. 철제 프레임에 주름강판을 씌워 비바람을 막은 정도다. 건물 외형을 어떻게 보존하고, 내부 시설의 어느 부분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전시 시설에 맞게 외피의 단열기능을 보강하는 문제 등 기술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하드웨어 관점에서 보면 테이트모던보다는 철제구조물로 구성된 졸버레인 탄광이 참조대상으로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우리 사회가 문화공간의 과잉 공급을 겪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 구청, 기업마다 문화시설을 갖추는 것이 관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운영 프로그램이 부실하여 비어있는 공간도 많다. 산업유산의 문화적 변용이라는 거대 담론이 담긴 당인리 화력발전소 재생 프로젝트 역시 자칫 평범한 지역 문화공간으로 전락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어떤 분야이건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구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일은 합리성에 덧붙여 도발적인 상상력이 요구된다.

한강의 기적을 웅변하는 당인리 화력발전소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지혜를 모을 때다.


김홍기

한국실내디자인학회와 아시아 실내디자인학회연맹(AIDIA) 회장을 맡고 있고 동양미래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그림이 된 건축, 건축이 된 그림』 , 『로빈슨 쿠르소가 건축가라고』 , 『건축조형디자인론』 등이 있으며, 건축과 예술문화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당인리 화력발전소의 문화공간 변용에 대한 시론

분량5,852자 / 12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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