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保通사람을 위한 보통普通집
이재준
분량5,609자 / 10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12월 31일
유형리포트
한국 건축계의 집짓기 열풍은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 삶의 지혜, 협동, 공동체가 부재한 나만의 집짓기는 더욱 그렇다. 삶이 풍요롭고 즐겁기 위해선 능동적으로 지혜와 힘을 나누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삶을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을 잇는 방식을 디자인’하는 야마자키 료와 새동네연구소 이재준 소장의 이야기를 듣는 이유다.
동네를 말하다
‘동네’에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우리 동네’는 집 근처일 수도 있고, 학교나 직장 근처를 의미할 수도 있다. 타운이나 빌리지가 그 의미를 대체할 수는 없다. 최근 급격하게 자주 사용되는 ‘마을’ 역시 동네와 다르다. 마을이 땅의 물리적 경계를 기반으로 한다면, 동네는 공간이 가진 심리적 경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하고 진화하는 공간으로서 동네는 정보혁명시대, 탈 경계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공동체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새로운 동네를 그리다
사실 집은 팔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사용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사용할 집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필요한 집’을 만들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플랫폼으로서 ‘새동네’를 아이디어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새동네’를 만들다
‘새동네’는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서 빌려준다. 10년 동안 임대료를 내고 살면 5년간 무료, 20년을 살면 20년 무료로 살 수 있다. 면적은 40, 60, 80㎡ 형으로 구성되며 1㎡당 10,000원이라는 명확한 임대료 기준을 세웠다. 주변시세에 따라 보증금은 다르게 산정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은 ‘그게 어떻게 가능해?’라는 질문을 한다.
혁신은 전혀 다른 무언가가 아니다. 즉각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지만 그 안에 감춰져 있는 강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혁신이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는 방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이상하고 어색하게 들릴 것이다. 돈을 모아서 집을 사는 개념으로 보면 돈이 모이는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다. 이 순서를 바꾸는 것에서부터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집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한다면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을지를 질문하며 부동산이 아닌 삶의 과정으로서 집의 공유를 실험하고자 했다.
‘새동네’의 목표는 멋지고 근사한 집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에게 집을 원활히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데 있다. 집을 필요로 하는 지극히 일반적이고 보통 사람을 위한 매우 평범한 보통집을 짓는 것이다. 건축적으로 혁신적이지도 창조적이지도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보통’은 그저 평범한 특별하지 않은 무엇이었다. ‘새동네’에서 보통普通1의 뜻은 넓게 통하는 보편적 가치 common를 의미한다. 일시적 처방이 아닌 지속적 관계를 만드는 정주의 개념을 추구하며, 잠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애 주기의 변화에 따라 진화하는 관계를 만들어 간다.
‘새동네’의 주민이 되면 독립해서 결혼을 하고 가족을 만들고 노후에 이르는 과정에서 필요한 집의 면적이나 위치를 선택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부동산으로서의 특별한 주택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를 통한 삶의 다양한 과정들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공정주거를 실천하다
집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의 평생 숙원과제이다. 가장 큰 문제는 주택을 공급하는 왜곡된 시스템에 있다. ‘집=아파트=자산가치’라는 모순된 구조는 살기 위한 것으로서의 집이 아닌 팔기 위한 집으로 전락시켰다. 집의 매매를 권장하는 잘못된 부동산 시장 논리가 결국 정당한 방식으로는 주택을 구입하거나 거주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공정주거2는 공급자가 정확한 가격과 투명한 과정을 통해 집을 짓고, 수요자는 집의 활용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만 한다면 원하는 집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주택 공급 시스템을 의미한다.
‘새동네’는 ‘좋은 삶을 짓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공정주거를 실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 선순환 구조를 원칙으로 필요한 집을 짓는 것이다. ‘새동네’는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계획하고 실천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집을 짓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선진국의 순환 재개발 방식은 이러한 실천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공동의 이익을 원칙으로 한다. 개발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목표가 일확천금의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면 ‘새동네’에서는 십시일반으로 자본을 만들고, 공정하게 개발하여 정당하게 이익을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 확대되고 있는 소셜펀딩은 이러한 가능성을 더욱 실현 가능하게 해준다.
세 번째, 과정의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건축계획, 시공방법, 외장재, 내장재 등이 다를 뿐 집을 짓는 과정은 모두 비슷하기 때문에 공정에 따른 비용과 내용을 규격화, 공식화하여 공개하고 이를 공유한다. 이를 통해서 올바르고 공정한 방향으로 집을 짓는 과정을 개선해 나가면 정해진 예산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과정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새동네’는 이러한 원칙을 적용한 시스템의 실험을 통해 장기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몇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공급자 방식의 주택문화에서 벗어나 사용자 중심의 주거문화로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소비자가 중심이 되어 공급을 조정하는 것을 크라우드 클라우트Crowd Clout3 라고 한다. 일테면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생이 약 30만 명, 그중 약 15만 명이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다. 이들 중 자가주택이 가능한 약 2만 명을 제외한 나머지 2만 명이 기숙사에 있으며, 약 1만 명은 정부나 지자체가 제공하는 주택에 살고 있다. 그 외의 10만 명은 대학 4년 그리고 졸업 후 직장생활까지 최소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월세를 내고 살거나 전세를 얻어 살아야 한다.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여성, 노인, 직장인 등의 1인 가구를 포함하면 이들의 영향 규모는 부동산 시장의 흐름의 중심이 되어 주거문화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선도할 수 있다. 두 번째, 왜곡된 자본이 되어버린 주택기금을 주거기금의 방식으로 전환하여 공정한 자본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집을 살 수 없는 사람이 10년 동안 50만 원의 월세를 내면 결과적으로 6,000만 원이라는 돈을 소비하게 된다. 이는 평방 미터 당 100만 원을 기준 삼았을 때 약 60㎡의 집을 지을 수 있는 예산이다. 또 서울에서 월세를 내는 대학생 약 10만 명이 50만 원씩 저축을 할 경우, 10년이면 6조 원이다. 이는 20㎡의 주택 약 3만 가구를 공급할 수 있는 금액이다.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 이 말하는 롱테일의 법칙은 최소의 전체는 최대의 하나보다 높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한 사람에 의한 1,000만 원이 아닌 1,000명의 10,000원을 통해 그동안 불가능했던 새로운 자본을 만들 수 있다. 주택이 아닌 주거를 위한 투자와 개발은 장기적이지만 안정적인 이윤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를 민간이 아닌 국가나 지자체가 주도한다면 가능성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세 번째, 대규모 일괄 공급 방식에서 벗어나 소규모 다종 생산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대부분의 주택정책을 아파트로만 진행해 왔다. 1,000가구의 아파트 단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지를 정비하는데 3년, 이후 아파트를 건축하는데 걸리는 3년이라는 시간까지 합하여 평균 6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소규모로 개발하면 100개의 사이트에서 각각 10가구씩만 지어져도 최소 6개월 최대 1년 안에 1,000가구를 만들 수 있다. 서울시 주거용 토지의 약 70%는 작은 필지로 구성되어 있다. 뉴타운 등의 도시정비사업이 해제된 지역의 이러한 대상들은 대안 없이 변화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를 활용한 소규모의 동시적 순환재개발이 올바른 자본과 연합하면 3년 안에 10만 가구 이상을 공급할 수 있으며 이는 지역 경제 활성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새동네, 복덕방을 열다
누군가 ‘새동네’의 주장을 강하게 부정하기 바란다. 강한 부정은 동시에 강한 긍정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루어진 균형은 평균common을 만들고, 평균은 ‘현명한 다수 collective intelligence’4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이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으로서 ‘새동네 복덕방’이란 커뮤니티는 진행 과정을 공개하고, 관련된 정보를 공유한다. 복덕방은 ‘복’과 ‘덕’을 가져다주는 곳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땅과 집을 사고파는 ‘장터’이며 정보를 나누기 위한 ‘마실’이었고, 정을 나누고 공감을 얻기 위한 ‘사랑방’이었다. 한 동네에 오래 머무르며 그 지역 삶의 역사인 어르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지에서 온 사람들의 새로운 삶의 길잡이가 되는 의미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동산은 오늘날 투기 중심의 부동산 나라에서 길을 잃고 우리 동네에서 사라져버렸다.5 ‘새동네’는 이를 온라인에서 복원시키고 좋은 집과 좋은 삶을 위한 아카이브로서의 가능성을 열어가고자 한다.
첫 번째 집, <가좌330>
‘새동네’는 올해 11월에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첫 번째 집을 짓고 여섯 세대의 삶으로 출발한다. 주소는 남가좌동 330-9 (가재울로 33번지)이지만, 집 이름은 ‘가좌330’이다. 땅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도로명 주소로 바뀌면 10년 이내에 동의 이름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건축수명을 최소 50년으로 보면, ‘새동네’ 의 집은 그 땅의 흔적을 담아내고 그 이름을 기억하게 해 줄 것이다. 내년 2월, 청년들이 만든 협동조합과 함께 서대문구에 두 번째 집을 착공하여 가을에 입주할 계획이며 매년 2개 이상의 다른 지역에 비슷한 규모의 공급을 계획하고 있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차곡차곡 진행하고자 한다.
스웨덴과 우리나라의 주택정책은 비슷한 규모와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한 쪽에서는 끊임없이 집을 사라고 권장했고, 한 쪽에서는 생애주기에 따라 필요한 집을 사용하라고 다양한 방법을 제공했다. 지금, 한 쪽은 가장 행복한, 한 쪽은 가장 불행한 시기를 살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특별함이 아닌 보통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보통사람들이 만드는 보통의 가치. 그것이 새로운 공감대를 만들고, 함께 사는 사회에서 공존하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새동네’는 삶을 짓는다. 그래서 ‘새동네’의 집은 건축이 아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삶의 기록으로서 ‘새동네’ 의 이야기가 보편적인 가치를 갖는 새로운 기록으로 남겨지길 기대한다.
이재준
새동네연구소 소장. 건축과 실내환경디자인을 전공하였으며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디자인하는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도시와 함께 공존共存하며, 사회 안에서 공유共有하고, 예술을 통해 공감共感하고자 하는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전시, 공공예술, 인테리어, 출판 등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시도하며 디자인의 유무형적 가치에 관해 탐구하고 있다. 2012년, 윤리적 건축의 실현을 목표로 ‘새동네연구소’를 공동으로 설립하여 플랫폼의 가치를 가진 서비스 디자인의 실천적 방안을 연구하고 있으며 제4회 TedxSeoul에서 <공정주거를 디자인하다>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보통保通사람을 위한 보통普通집
분량5,609자 / 10분 / 도판 2장
발행일2013년 12월 31일
유형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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