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서 능동적 지혜를 발휘하는 사람들
야마자키 료 × 김정헌
분량6,886자 / 14분 / 도판 3장
발행일2013년 12월 31일
유형인터뷰
한국 건축계의 집짓기 열풍은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 삶의 지혜, 협동, 공동체가 부재한 나만의 집짓기는 더욱 그렇다. 삶이 풍요롭고 즐겁기 위해선 능동적으로 지혜와 힘을 나누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삶을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을 잇는 방식을 디자인’하는 야마자키 료와 새동네연구소 이재준 소장의 이야기를 듣는 이유다.
야마자키 료 studio-L 대표이자 교토조형예술대학 교수이며, 지역의 과제를 해당 지역 주민들이 해결할 수 있게 돕는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고 있다. 마을 만들기 워크숍, 주민 참여형 종합 계획 수립, 건축과 랜드스케이프 디자인 등 다수의 프로젝트를 해왔다.
인터뷰 김정헌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을 졸업했고, 30년 동안 공주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로 일했다. 민족미술협의회 대표, 문화연대 상임집행위원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1980년대 대표적인 미술운동가 중 한 명으로서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했다.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었으며, <행복을 창조하는 럭키 모노륨>, <마을을 지키는 김씨>, <한 농부의 일생>등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이며,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예마네)’ 대표로 활동하면서 예술인과 마을이 함께하는 ‘마을 공화국’을 실현하는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김정헌, 예술가가 사는 마을을 가다』가 있다.
번역 김혜수
김정헌 『커뮤니티 디자인』(야마자키 료 지음, 안그라픽스, 2012)에 소개된 공공영역 프로젝트를 보며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경 디자인을 하더라도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나 풍경을 디자인하기보단 그곳을 사용할 주민을 잇는, 즉 디자인에서 주민과의 소통을 우선시 한 점 말입니다. 선생님이 정의하는 ‘커뮤니티’란 무엇입니까?
야마자키 료 저는 커뮤니티를 지연地緣에 기초한 ‘전통적인 커뮤니티’1와 목적, 테마를 중심으로 형성된 ‘테마형 커뮤니티’ 모두를 커뮤니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령자가 대다수를 이루는 전통적인 ‘지연형 커뮤니티’에 예술 등의 다양한 활동을 테마로 하는 테마형 커뮤니티가 결합하면 커뮤니티 구성원에게서 활발한 활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쇼도시마에서의 프로젝트 경우, 2013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로부터 참가 요청을 받았습니다. 주민들과 무엇을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커뮤니티 그 자체를 작품으로 삼아 참가하기로 한 것입니다. 세토우치 섬의 쇼도시마는 간장으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쇼도시마에서 참가를 희망하는 주민 50명을 모집해서 함께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식사를 하는 가운데 모두 간장병을 형광등에 비추어 간장의 선도를 체크하는 겁니다. 이후 주민들로부터 안 쓰는 물건들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도시락용으로 쓰이는 작은 간장병 수 천 개가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은 간장병에 다양한 농도의 간장을 담았는데 농도를 잘 보이게 할 수 있도록 형광등을 달아 그라데이션을 만들고 벽면에 설치했습니다. 작품 자체도 인기를 끌었지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주민들과의 연계가 진정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헌 다트 던지기로 대상지를 결정한 이에시마의 프로젝트 역시 인상 깊게 봤습니다.2 주민 또는 기관에서 요청을 받아 착수하는 프로젝트와는 어떻게 다른지요?
야마자키 료 우선 저희 회사인 studio-L에 대해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studio-L은 NPO Non-Profit Organization가 아니라 NPC Non-Profit Company 의 형태를 취합니다. 주주들로 회사가 구성되지만 프로젝트로부터 얻은 수익금을 배당금으로 나누지 않고 다음 프로젝트에 투자합니다. 영리사업이 90% 그리고 나머지 10%는 반드시 비영리사업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말씀하신 이에시마 프로젝트와 책에 소개된 호즈미 제재소 사업은 비영리에 해당하는 사업입니다. 누구에게도 의뢰받지 않은 일들을 하는 거죠. 돈을 받고 하는 프로젝트는 실패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잘 되지 않을 것 같으면 하지 않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도전을 주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비영리사업은 돈을 받지 않고 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알 수 없어도 실험해볼 수 있습니다.
김정헌 커뮤니티 디자인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민, 전문가, 기관이 서로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야마자키 료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도 전문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전문가들은 주민들보다 지식이 많아서 해결방안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어 왔습니다. 건축가는 주민들보다 설계를 잘 할 수 있고, 조각가는 시민보다 조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고, 화가는 그림을 더 아름답게 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시민들에게 ‘내가 잘 하니까 건물이고 미술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해버리면 시민은 손님이 되는 겁니다. 전문가가 없으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많았습니다.
전문가는 참여자들이 즐겁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장을 만들 수는 있지만 솔루션, 즉 해답을 내놓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주민들은 ‘행정기관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커뮤니티 디자이너가 왔으니 무언가 해주겠지’ 하고 기대를 했는데, 정작 그들은 아무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우니, 다시 ‘대체 너희는 뭘 하러 온 거냐, 세금 받고 왔으면 제대로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첫 번째 워크숍은 아직까지도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고 긴장도 많이 합니다. 보통 워크숍은 5인 또는 10인 정도로 작은 단위 그룹을 만들어 게임을 하거나 이야기를 하면서 진행되는데, 아이디어를 불려나가고 실행해보면서 잘 된 점과 잘 되지 못한 점을 스스로 느끼고 반성하고 그것을 또 다음의 활동에 연결해나가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런 일련의 활동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옆에서 돕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라 하겠습니다.
김정헌 공원에 어린이 놀이터를 만든 사례(놀이 왕국, 효고 현)는 학생리더, 협력자들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하게 했습니다. 학생리더들이 어린이들과 접촉해서 생각을 끌어내는 커뮤니케이션의 구축 과정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대한 제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야마자키 료 학생은 ‘약함’을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자면, 어떤 지역에 들어갈 때 대학교수가 간다고 하면 “선생님~ 해주세요” 하고 모두 손님이 되지만, 학생들이 가게 되면 스스로 그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움직임이 생깁니다. 그 존재의 약함이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김정헌 프로젝트에서 탐사와 조사 과정을 반드시 선행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중요성 때문인지, 또 주민들을 그 과정에 참여시킬 방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야마자키 료 조사는 전문가 조사와 주민이 함께 하는 조사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전문가가 하는 조사는 의뢰받은 프로젝트와 비슷한 사례를 전국 또는 해외에서 찾아 케이스스터디를 하며 진행됩니다. 주민이 함께 하는 조사는 주민들로부터 안내를 받아 자신이 사는 곳이 어떠한 곳인가를 알아보는 과정으로 이뤄집니다.
김정헌 그것 역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인 것처럼 보입니다.
야마자키 료 전문가 조사, 주민 조사 모두 ‘듣기’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약 100명 정도의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관계를 구축하고 정보를 얻습니다. 현장에 가기 전에 케이스스터디를 하고 직접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역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 주민들과 함께 지역을 탐사하면서 그곳에 대한 것들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사례를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상점가 활성화’ 관련 프로젝트입니다. 카가와 현의 칸논지시音寺市 상점가 사람 50명이 모여서 상점가 활성화를 위한 커뮤니티 디자인을 의뢰해왔습니다. 제일 처음으로 한 것이 전국, 세계에서 상점가 활성화를 사례들 가운데 성공한 사례들을 살펴본 케이스스터디입니다. 두 번째로는 가게 주인아저씨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느 집과 어느 집이 사이가 좋고 나쁜가, 누가 이 안에서 존경받고 있는 인물인가를 파악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아저씨들과 함께 상점가를 직접 돌면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이 다니면서 이 상점가의 재미있는 점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는데, 재미있는 게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런 게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됐겠냐고 대합합니다. 하지만 같이 걸어 다니던 중에 재밌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가게 안에 또 다른 가게가 있었던 거죠. 속옷 가게 안에 케이크 가게가 있고, 잡화점 안에 카페가 있고, 기모노 가게에서 빵을 팔고, 세탁소 안에 교자 가게가 있는 등 흥미로운 조합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런 건 이곳에 오래 산 상점 주인들은 전혀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창피해했습니다. 왜 이런 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되짚어보면, 전쟁 후 쯤 처음 문을 열고 1970년대까지 번성해서 확장했던 가게들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형 슈퍼들이 근처에 생기니까 장사 규모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면서 남은 자리에 외지에 나갔다 돌아온 자식이 가게의 일부 공간에 자신의 가게를 낸다던가 하는 방식이 오늘날의 가게 속 가게가 된 것이었죠. 이런 상황이라고 한다면 자기 가게를 운영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50~60대의 가게 주인들과 하나의 팀이 되어 한 가게 안에 자기 가게를 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전문가 혼자 마을을 둘러보고서 이런 제안을 한다면 주민들은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사례처럼 가게 주인들과 워크숍을 하면서 제안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가게 주인들이 여러 이벤트를 하면서 자발적으로 젊은 사람들과 접할 기회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카페나 잡화점 운영을 원하는 젊은이들과 가게 주인들이 매칭 되어 실제 가게 운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정헌 커뮤니티 디자인에서 지역의 복지와 관광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특히 관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이에시마 같은 경우 외지에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이 프로젝트가 갖는 최종 목적이자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야마자키 료 관광의 성공 여부를 관광객의 양적 증가나 소비 증대로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대접하는 마음가짐을 갖추는 것과 같은 지역 주민들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사례로 히로시마 바다에 인접한 10개의 시에 관광을 촉진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별한 이벤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연을 날리는 사람, 철도에 대해 해박한 사람 등 테마형 커뮤니티를 소개하며 관광객의 방문을 유도하는 개념입니다. 현재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지역 가운데 주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실행할 단체들은 150개 정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단체들의 바깥에는 단체의 활동에 직접 참여하며 활동을 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활동을 지원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방문객들에게 맛있는 가게나 화장실을 가르쳐주는 정도의 참가를 의미하는데, 보통은 농사나 어업 같은 일을 하지만 특정한 배지를 부착함으로써 방문객들이 쉽게 말을 걸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김정헌 정부 기관의 보조금 등이 프로젝트에 지원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보조금 같은 공적 자금을 잘 활용할 수 있을까요?
야마자키 료 주민들의 의식 전환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년간 히로시마 섬 인근 지역의 150개 단체 사람들과 지원금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그 결과 보조금을 주면 하겠다는 태도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라면 돈을 내서라도 하겠다는 태도로 변화했습니다.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활동은 보조금이 끊어지면 이 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참가자들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끼리 즐겁게 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보조금 역시 단지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서 사람들과 함께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은 전문가 대신에 기존의 참여자가 뒤늦게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인식을 전달하는 정도의 인식 수준을 갖게 되었습니다.
김정헌 커뮤니티 디자인이 일종의 소셜 디자인과 같은 콘셉트라고 생각합니다. 커뮤니티 디자인을 통해서 주민들의 자활과 자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야마자키 료 네, 물론입니다. 한국과 일본 둘 다 비슷할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양국 다 전후 고도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행정과 기업이 돈을 쥐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마을 일의 대부분은 행정기관이 돈을 들여서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의 상황과 달리 인구수가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행정이 예전만큼 재정을 확보하고 어떤 일을 진행하는 것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마을이 운영될 수 없는 시대가 앞으로 20년, 30년 앞에 와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티 디자인이나 소셜 디자인으로 주민들의 자주 운영 능력이나,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의욕을 높이지 않으면 마을은 운영되지 못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커뮤니티 디자인이나 소셜 디자인은 주민들이 스스로 일어서는 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자신의 마을의 일은 스스로 해보자, 하는 기운을 형성해가는 것이 우리와 같은 전문가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헌 바쁘신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시간이 되어 한국에 오시면 한국 공공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야마자키 씨의 얘기를 좀 더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야마자키 료 여기까지 와주신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시간이 나면 한국에 꼭 방문하고 싶습니다.
공동체에서 능동적 지혜를 발휘하는 사람들
분량6,886자 / 14분 / 도판 3장
발행일2013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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