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vol08-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주거 취약계층 지원에 대한 상보적 접근

위진복 × 이영범

주거 취약층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쪽방과 싸구려 여관을 전전하는 사람들은 거리에 여전하며, 낙후된 주거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숫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주거가 복지의 근간이지만 한정된 자원 안에서 합리적 방법을 찾는 것은 항상 요원하다. 탑다운 방식으로 쪽방촌을 만든 위진복 소장과 바텀업 방식으로 도시 빈곤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이영범 교수가 만났다. 


이영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마치고 영국 AA School 대학원에서 도시공간이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도시연대의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건축과 도시 공공성으로 읽다』 (2011), 『도시 마을만들기의 쟁점과 이슈』 (2013) 등을 썼으며, 도시재생, 커뮤니티디자인, 마을만들기, 문화도시 등에 관심을 갖고 현장과 이론을 넘나들며 활동 중이다.

위진복 한국에서 건축학부를 졸업한 후 4년간 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하다, 런던으로 건너가 AA School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마이클 홉킨스 Michael Hopkins와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gers 사무실에서 근무하였고, 2009년 가을 귀국해 UIA(Urban Intensity Architects) 건축사사무소를 열었다. 현재 공사중인 삼성동 유기타워 등 민간프로젝트와 함께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다양한 공공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영등포 쪽방촌 프로젝트

이영범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해서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위진복 전에 영국에서 조립식 주거 설계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계속해서 모듈러 건축에 관심을 가져왔고, 컨테이너를 이용한 계획을 많이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서울시 공공건축가에 지원하면서 서울시 임대주택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고, 시에서 만나게 된 공무원들과 컨테이너로 프로젝트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쪽방촌 리모델링 공사기간 동안 영등포 쪽방촌에 있는 여인숙에 숙박료를 주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니 컨테이너로 쪽방촌을 리모델링 해보자는 의견이 서울시 측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와의 대화에서 그런 기획을 하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서울시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의도가 기획부터 보였습니다. 5일 만에 집을 지었던 영국에서의 모듈러 하우징, 컨테이너 사례를 보여주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도로에서 바라본 영등포 쪽방촌의 거주시설 / © 이재성

이영범 쪽방촌은 아주 특수한 주거형태에 속하는 임시주거 공간입니다. 이곳을 컨테이너로 리모델링한다고 했을 때 아무래도 방식에 관한 최종적인 의견을 수렴하기까지 무척 어려운 과정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소장님의 제안은 컨테이너라는 기계적 대량생산품을 미학적인 영역으로, 그리고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면에서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재료와 공간이 갖는 서로 다른 가치와 의미 사이에서 분명히 괴리감도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위진복 막상 진행을 해보니 매우 섬세한 delicate 방식으로 진행되는 재생 프로젝트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재생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인 개입intervention이 있다는 것이 재미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생각도 있었습니다.

이영범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개념적인 레벨에서 접근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위진복 대지 위에 올린다고 하더라도 까다로운 과정이고 컨테이너로 한다고 해서 가격이 절대로 절반으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민간에서 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차라리 원래 하던 대로 리모델링해서 들어오는 게 훨씬 나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못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재생이라는 측면에서 컨테이너가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인지 다른 재료가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바로 이동성입니다. 또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도시공간의 재생 측면에서의 일정 정도 효과를 기대하면서 컨테이너로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영범 이 프로젝트에는 여러 주체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즉 서울시와 영등포구, 쪽방에 거주하는 주민, 지역단체 이렇게 모두 네 곳이 있었지요?

위진복 시공사와 건물주 대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건물주의 경우는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인데 미국에 있는 사람, 도무지 연락방법을 찾을 수 없는 사람 등을 포함해서 20여 명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협약을 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영범 서울시가 나서서 리모델링한다고 마냥 좋아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을 거라 짐작됩니다.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들 사이에 처음부터 합의를 이룬다는 게 쉽지 않다보니 말입니다.

위진복 영등포구청에서는 반기는 분위기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은 일단 컨테이너와 같이 기존에 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은 싫어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이라고나 할까요. 다행히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합의를 구했고, 쪽방촌에 봉사하는 광야교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프로젝트는 100세대에 못 미치는 곳에서 시범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걸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영범 시범사업을 한 대상지가 어디인가요? 사실 시범사업 대상지를 정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위진복 시범사업의 범위뿐만 아니라 어느 수준까지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도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진행해야 하는데 대상이 법에 어긋나는 경우도 있어, 4층 건물의 시범사업은 차라리 쉽게 느껴졌습니다. 공무원 그리고 허가권자 입장에서는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외관이나 볼륨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는 당부도 지켜야 했습니다. 20명이 넘는 사람들과 1년 이상 매주 만나 3~4시간씩 이야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주민들이 와서 ‘문이 안 닫히는데 이것 좀 고쳐주세요’라고 하면 리스트에 옮겨 적었고,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전부 다 협의하려고 했습니다. 서울시, 영등포구청 사회복지과, 건축과, SH, 광야교회, 사회적 기업들, 재능기부 건축가들 그리고 도큐멘테이션을 위해 관련 업체도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저는 요즘 참석을 못해서 죄송하지만, 지금도 매주 수요일 미팅을 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행정적 지구력입니다.

영등포 쪽방촌 커뮤니티 시설 (야경) / © UIA 건축사무소

이영범 건축가로서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만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건축가로서 이 작업을 사회적 실험으로서 접근했는지 아니면 공공성을 상업화하거나 혹은 작품화하려고 했던 것인지가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위진복 사실 ‘공공적 가치’는 인문사회문화적 영역에서 논제일 뿐 아니라, 텍토닉tectonic 안에, 재료 안에도 실현되어야 합니다. 모든 물질과 사물은 자체의 ‘지능intelligence’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인간의 의식이 발전하면 동시에 사물의 지능도 발전하게 됩니다. 그 무한한 능력을 놓치고 있다는 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영등포에서 이 컨테이너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지능에 대해서 그리고 열등함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캔틸레버cantilever가 반 정도 나와 있는 것도 정말 해보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콘크리트를 6m의 캔틸레버로 하려면 1,000만 원을 줘야 한다면 컨테이너는 100만 원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만 했을 때랑 여러 개를 쌓는 것이 다릅니다. 처음에 현관을 바라보고 컨테이너를 배치하는 것이 사용자의 프라이버시가 없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프라이버시를 지켜줄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웃 간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하고자 현관을 맞대어 붙이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양한 공간들, 예를 들어 통로와 테라스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여러 개의 컨테이너의 다양한 조합 및 배열을 통해 실현된 것입니다.

이영범 설계 공간을 조직화하는 것과 텍토닉을 다루는 건축가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지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셨는데, 사회적 이슈에 대응할 수 있는 물리적인 언어로서 컨테이너를 사용하고 그것이 갖고 있는 지능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소위 건축가의 전문성이 결합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서 사물의 지능과 건축가의 전문성이 어떻게 결합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소위 쪽방의 임시주거라는 사회적 이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쪽방이라는 임시주거 공간이 갖는 특수성에서 어떤 사회적 이슈를 발견할 수 있었는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건축가로서 이 부분에서 고민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건축가로서 개입해서 컨테이너라는 사물의 지능을 전문성이라는 영역으로 다루셨는지요?

위진복 사실 저희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노숙인의 잠자리를 빼앗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가도로 밑은 여름을 나는 노숙인의 잠자리입니다. 때문에 시공업체가 펜스를 치는 데만 1주일이 걸렸습니다. 콘크리트로 짓는 것보다 컨테이너로 엇갈려 쌓으면 외부공간,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올 수 있습니다. 캔틸레버니까 외부 공간을 포함해서 두 배를 준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게해서 여름에 훨씬 더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든 셈입니다. 본래 공간의 자리는 한 평이 조금 넘는 공간밖에 안 되었지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훨씬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영범 실제로 쪽방에 들어가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결국 삶이 담긴 건 쪽방이 아니라 쪽방 ‘촌’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쪽방촌 사람들 대부분이 쪽방이 아닌 밖에서 생활을 합니다. 매일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거나 하루 종일 동네를 배회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컨테이너로 공간을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그런 부분까지도 고민한 점을 굉장히 높이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그들의 생활공간을 어떻게 확장시키고 함께 살 수 있을지를 건축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잘 진단한 것 같습니다. 건축가의 공간적 해석이 결국 사회화의 어떤 장치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진복 네.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런 조합이 나온 것 같습니다. 처음엔 커뮤니티 시설인 마을회관이 없었습니다. 별동으로 나와 있는 7개의 컨테이너는 추가로 계획되었습니다. 10%라도 다른 주거 양식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강하게 이야기 했고 그런 과정에서 마을 회관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건축 내외부에서의 평가

이영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건축가로서 했던 고민은 무엇이었습니까? 공간적으로 담아내려고 했던 것 중에 사람들이 꼭 읽어줬으면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위진복 디자인도 엔지니어링 기반 하에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재료 테스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다보니 민간에서도 공사비가 높게 나오면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엔지니어링 솔루션도 여러 가지니까 그 퀄리티에 주목해줬으면 하는데 말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건축을 인문학의 차원에서 읽으려고 하면서 건축에서의 엔지니어링은 간과되고 있습니다. 의자 하나, 조명 하나도 정말 많은 고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이해가 부족하니까 아쉬울 따름입니다. 공간이 물질환경의 부산물이라면 그 시스템에서 엔지니어링의 완성도는 중요합니다.

이영범 엔지니어링이 결합된 스페이스에서 퀄리티는 비용과 직결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유형의 공공프로젝트에서는 소셜 엔지니어링social engineering이 제도화되어 있지도 않고, 건축가가 모두 담당하고 개입하기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공공프로젝트에 적용되는 소셜 엔지니어링에서 지향하는 가치나 철학적인 문제들, 사회적 기반에 따른 적정 수준은 어떻게 결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의 기준이 부재한 게 아닌가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공간을 현학적으로만 이야기하고 실제 구현되는 과정은 다른 문제라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상업적인 엔지니어링도 있지만, 소셜 엔지니어링도 존재할 테니 도움을 주는 파트너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엔지니어링을 개발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위진복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을만들기 사업에서 공간 분석관련 시뮬레이션을 사용해서 소셜 엔지니어링을 어떻게 만들고 읽어낼 것이며, 그리고 다이어그램화 하는 과정에서 공간과 사회의 엔지니어링 의사소통이 가능할지 질문합니다. 그 의사소통을 건축가, 플래너와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 컨디션을 만드는 프로세스가 안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은 그것에 대한 필요라던지, 다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는 세대를 리딩할 만한 것도 없었고, 이를 개발할 만큼의 의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호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는 엔지니어링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소셜 커넥션을 읽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이어그램으로 어떻게 서로 만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따라야 하겠습니다.

이영범 컨테이너 리모델링을 하면서 욕심도 생겼을 것 같습니다. 쪽방들이 모여 있는 지역 전체를 프로젝트화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을 것 같은데 어떠셨는지요?

위진복 말씀처럼 정말 마스터플랜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만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웃음) 그 일은 예산을 적절하게 잘 쓰는 게 더 중요합니다. 불법으로 구분되는 것도 많고 정비구역으로 정해져 있기도 해서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사고가 나지 않게 정리하면서 발전시키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래로부터의 건축

위진복 공공건축가로서 탑다운의 방식을 말씀드렸는데 반대로 교수님께서는 바텀업의 방식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다른지를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이영범 도시 공공성과 관련된 부분들은 행정에 의지하지 않고 또는 행정의 권한을 빌리지 않고서는 시민사회가 주체적,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질문해봅니다. 이는 현재 제가 참여하는 두 가지 프로젝트를 들어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과 용산구 동자동에서 진행한 ‘한평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은 주민 참여의 커뮤니티 디자인을 통해서 도시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빈곤의 문제를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매개해서 풀어보고자 할 때, 공간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기여 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한 것입니다. 도시 빈민들과 공간이 어떻게 관계 맺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따라 마을만들기의 어떤 단서나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를 탐색하면서 주민들 속에 들어가서 관계를 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제가 하는 주된 바텀업 방식의 고민거리입니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민간 영역에서 자율적으로 빈곤과 공간간의 관계에 대한 핵심 부분들을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모색 중입니다.

위진복 최소한의 그리고 아주 기본적인 것을 한다고 하더라도 활동가들이 민간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부분일 것입니다. 물리적인 조건들을 만들어주는 것은 어렵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이영범 어렵습니다. 민간 영역이라고 해도 기업 정도가 되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홍제동 개미마을 같은 경우 주민들에게 노후 주거지에서 가장 걱정되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장마로 지붕과 축대가 무너지는 거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누구도 주거공간의 안전을 위해 축대를 개보수하는 것에 돈을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노후화된 주택의 지붕, 축대는 생명과 직결돼있는 위험요소인데 바깥에서는 이런 것에는 관심 갖지 않고 와서 벽화만 그려준다는 겁니다. 노후 주거지의 벽화는 이들의 삶터를 미화해 버리고 주민의 삶을 대상화해 버려서 정말 문제입니다. 종로구 교남동에는 6.25 이후에 지어진 집들이 많다보니 겨울에 허름한 벽을 통해 바람이 들어오는 집이 허다합니다. 도시연대 그리고 지역 토박이들의 봉사조직이 교남동사무소와 함께 문풍지작업단이라는 걸 진행했습니다. 저비용으로 도시연대가 500만 원을 지원하고 동사무소에서 500만 원을 보태서 1,000만 원으로 약 80가구 이상의 집에 임기응변 식의 보수 작업을 했습니다. 문풍지작업도 별 게 아니고 비닐과 청색 테이프로 바람이 새는 곳을 막는 것뿐이었지만 한 겨울을 난 할머니들은 너무 따뜻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나 큰 비용으로 문제의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을 수 있습니다. 임시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소셜 엔지니어링과 결합되는 적정 기술로 시도한다면 작지만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제 관심사는 이런 것과 교차하는 지점에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것이 더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제동 개미마을 노후 주거지 전경 / © 이영범

위진복 사회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계층에 대한 배려 차원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한 단계 더 향상할 수 있는 기회로서 개입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1인 가구도 많으니까 주택을 싸게 공급하고 이걸 도시공동화에 개입을 시키는 겁니다. 제도적으로도 뒷받침된다면 좋겠습니다. 말로만 융합을 이야기 할 게 아니라 벽돌공장, 건축가, 사회운동가가 서로 융합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것 아닐까요?

이영범 제도권 행정에서도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제도나 정책이 좀 더 유연하게 풀려야 합니다. 변화하는 사회 패러다임에 대응하기 위해서 민간영역에서 그에 발 맞춰서 굉장히 많은 시도들을 하려고 하는데 정작 그런 시도들을 얽매고 있는 제도나 장치는 10년 전, 20년 전 그대로인 경우가 있습니다. 제도나 정책도 현장의 속도에 맞추어 새롭게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문제는 공공이 모든 문제를 다 껴안고 해결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공공은 힘에 벅차고 민간은 수익이 안 나오기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주민의 자치와 자활

이영범 영국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회적기업이 이익추구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신 특정한 상황에서는 공동체 이익 회사community interest company라는 게 있어서 지역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위해 활동하면서 이익을 추구할 수 있게 합니다. 이 경우 행정기관은 무엇을 통해서 이익을 만들어내는지, 그 이익이 어디에 쓰이는지만 관리하고 통제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공공적 민간을 어떻게 해서든지 육성해야하고 이들이 주체로써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해갈 수 있도록 공공이 간접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산 총량의 50~60%만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위 소장님께서 진행하신 재건마을 프로젝트는 이런 논의에서 살펴본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위진복 세부적인 것을 다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지금 결정된 건 설계업체는 SH, 임대아파트라는 것뿐입니다. 주민들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 상태에서 프로젝트에 투입된 터라 열심히 마을분들과 만나고 막걸리도 마시고 있습니다. (웃음) 바통은 이제 서울시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제도 수정이 불가피한 이유도 있고 기존 임대아파트 공급하고는 다르다 보니 서울시에서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건마을은 커뮤니티도 활성화되어 있고 가능성도 있습니다. 거주자들의 의지도 굉장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주민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좋은 것 같습니다. 영등포 프로젝트가 인연이 되었는지 몰라도 한국 사회 단면이 좀 더 명확히 보이는 것 같고, 건축가로서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정치, 행정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역사들이 모두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할 때는 넓은 스펙트럼을 한꺼번에 바라보고 관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미마을은 어떤가요? 이곳도 주민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곳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이영범 개미마을의 주민들은 아랫마을 사는 사람들, 윗마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통장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커뮤니티도 있습니다. 여기서 구체적인 목적의식을 갖고 계속해서 움직임을 가진 집단은 재개발 추진과 관련해서 이익집단으로서의 커뮤니티뿐이었습니다.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동네이다 보니 외부 의존적인 커뮤니티의 속성을 자연스럽게 갖게 됩니다. 내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뭘 해주겠다는 사람들은 참 많이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민들의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일방적으로 자기네들이 해주고 싶은 것을 하고는 가버립니다.

위진복 결과는 똑같더라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영범 그렇습니다. 내 것이라는 인식과 남이 해주고 간 것이라는 인식의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향하는 방향이 달라집니다. 결과는 똑같더라도 공공성이라는 것은 결국에 프로세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등포 프로젝트도 사실은 행정이 일방적으로 떠안겨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등포 쪽방 전체를 리모델링을 했다고 하면 서울시에서는 쪽방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으로 비춰지지만, 사실 과정상 행정의 폭력성이 다분히 개입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공공성을 이야기할 때 절차적 합리성, 결과가 갖는 합목적성을 떠나서 절차, 과정에서의 타당성을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요?

위진복 용산구는 주민 자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 같은데 영등포는 그에 비교하여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이영범 실제로 가보면 영등포에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거친 것 같습니다.

위진복 일단 자치가 없습니다. 전부 개인이고, 관리의 측면이 강하기도 합니다. 광야교회는 거기서 강력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대화 자체가 매우 어려워서 교육과 재활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영범 중요한 얘기를 하신 것 같습니다. 쪽방 주민들에게서 자치와 자활의 가능성을 리모델링 프로젝트와 함께 모색해야 하는데, 돈을 들여서 쪽방을 리모델링했고, 그 결과로서 물리적인 환경을 개선한 것만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물리적 리모델링과 결합된 쪽방 주민들의 자치의 형태를 이해하고 자활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컨테이너 임시주거가 만들어졌으니, 그곳을 거점으로 삼아 새로운 동력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가 많이 이야기 하는 지속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진복 그런 걸 민간에서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중간에서 매개 역할을 해줄 큐레이터가 참여해서 효과와 가능성을 극대화 시켜보는 큐레이팅 작업도 필요하다고 봅니다.이영범 위 소장님이 말씀하신 창조적 융합으로서 기존의 우리가 쓴 여러 방식들을 활용해서 가치를 구현하는 데 사용해 본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거 취약계층 지원에 대한 상보적 접근

분량11,125자 / 20분 / 도판 3장

발행일2013년 12월 31일

유형대담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