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 연기 Fog and Smoke
차재민
분량2,210자 / 5분 / 도판 13장
발행일2013년 12월 31일
유형작업설명
무릇 풍경이란 단단하고 판판한 표면 같은 것이어서 풍경 앞에 서게 되면 이내 막막해지곤 한다. 게다가 풍경은 거리를 두고 보는 넓은 범위이기에, 그 내부가 실감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따금 감각이 선연해지는 풍경이 있다. 무례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풍경에서 한 사람으로 파고들고 싶어진다. 작년 여름, 표표히 흩어지는 기체가 속절없이 명멸하는 풍경을 보았다. 서울에서 서쪽으로, 그러니까 인천으로 향하는 길에서 어김없이 안개와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일견, 안개와 연기는 구분하기 어렵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입자들이 머리 위로 내려앉는 것을 느껴본다면, 안개는 차갑고 연기는 뜨끈할 것이다. 짙은 안개와 연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내부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예감할 수 있을 뿐 깊이 들어갈 수 없는 풍경이라고 자백하고 말았다. 실은 이 자백 끝에서야 들어갈 수 있는 만큼 가보자는 건방진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연히 돌아섰을 때, 호기심이 두려움이 될 때, 풍경이라는 표면이 물러지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시작한 작업이 <Fog and Smoke>이다.
이 작업은 안개와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의 내부를 보여주는 일종의 로드 무비다. 어둠 속에서 전진하는 탭댄서, 부조리한 라디오 방송, 신도시를 가로질러 바다로 향하는 어부가 등장하는 20분 분량의 영상이다. 시간은 밤에서 아침으로 흐르고, 신도시와 구도시의 풍경이 갈마들면서 거시적인 것에서 미시적인 것으로 이동한다. 기실 안개보다는 연기, 느리게 피어오르는 열기 속으로 들어서는 감각을 재현하고자 했다. 요컨대 사건 이후, 무언가 타버린 후 남은 아주 지독한 것에 대해서.
연기의 내막은 이러하다. 개발이 시작된 지 벌써 십여 년이 흘렀다. (매립공사까지 포함하면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 과정에서 이미 다수의 삶이 달라졌다. 시기에 따라서 소망하던 곳으로 이주한 사람도 있고, 아예 집을 잃은 사람도 있다. 수년간의 개발로 신도시 건설이 고초 끝에 마무리되었고, 이제 신도시 주변이 뒤이은 재개발을 앞둔 상태다. (물론 무기 상태다) 여태껏 신도시에 진입할 수 없는 폐차장, 도축장, 하수처리장, 유흥업소들이 밀려들었던 땅이다. 그곳에서 만날 연기가 피어오른다. 신도시의 생활 쓰레기나 개발 잔해들 또한 몰려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정하고 깨끗한 것을 선호한다. 게다가 인간은 오염되고 냄새나는 것을 산뜻하게 하려고 애를 쓴다. 하여, 편리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은 욕망은 점차 광적인 방향으로 치닫는다. 안개에 휩싸인 것들, 펜스에 가려진 것들, 도시에서 추방당한 것들, 갑자기 쓸모없는 쓰레기로 변한 사물에는 매우 충격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Fog and Smoke>는 그런 대상으로부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집약한 작업이다. 그래서 이 작업이 시도하는 바는 어떤 대상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인 풍경을 발견하는 것에 가깝다. 고백하건대, ‘발명’보다 ‘발견’이 훨씬 괴롭다. 발명은 어떻게든 의욕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발견은 때로 의지와 상관없는 화학작용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적절한 순간에 만났던 몇 사람들이 나를 끌어 주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기보다, 한 사람과 오래 대화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숱한 사연들을 보류했을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정서에 한해서 접근하는 것. 내가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만큼의 풍경이라는 구분선. 이 자리에 진지한 질문 하나가 자리 잡았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이 균형 잡히지 않은 괴물이라는 사실, 불균형을 유발하는 활동을 벌이는 존재라는 사실, 그런 한에서만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즉 세상에서 인간이 혐오하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어떻게?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불균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인간은 어떻게든 혐오하는 것들을 감추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간다. 이 욕망 한 가운데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좇아가는 사람들이 충돌한다. 연기의 한가운데에서 맞닥뜨렸던 공포, 그 궁극적인 공포를 응시해 본다. 인간의 불균형, 증오심, 공격성이 억압된 장소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아니, 안개가 깊게 내려온다.

차재민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주요 작업으로 <Fog and Smoke>(2012), <Trot, Trio, Waltz>(2013), <Croma key and Labyrinth>(2013) 등이 있으며 현재 첫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안개와 연기 Fog and Smoke
분량2,210자 / 5분 / 도판 13장
발행일2013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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