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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共生, 공유共有, 공감共感: 집합集合의 공간

신승수

아파트, 공동주택에서 집합주택으로

최근 몇 년 새 아파트로 대표되는 공동주택에 관한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파트』, 『아파트 한국사회』,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게임』 등. 반백 년 아파트 생활을 두고 벌어지는 사회적, 문화적 분석과 비평의 시선이 새롭다. 이제 아파트는 공동주택의 한 가지 유형을 넘어서 우리 삶을 구성하고 구조화하는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이 된 것 같다.

아파트의 문화적 정체성을 하나의 이미지로 말하라면, 회전초밥집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끊임없이 돌고 있는 색 띠 두른 접시들이 떠오른다. 오직 색깔로 가격이 구분되는 똑같은 접시들은 입지와 건설사 브랜드 별로 가격이 결정되는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단위세대를 닮았다. 쉴 새 없이 폐곡선을 그리면서 도는 모습은 폐쇄적인 아파트 단지의 모습을 영락없이 빼닮았기 때문이다. 회전초밥 접시처럼 단순하고 똑같이 생긴 모습이야말로 대량생산도 쉽고 환전성과 교환성도 우수한 상품을 만들어내기에 좋은 조건이다. 지난날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는 어디까지나 상품이었고 소유의 대상이었다.

문득 공동주택이라는 단어 자체에도 의문이 든다. 공동共同이란 ‘같은 것을 나눈다’는 뜻이니 공동주택이란 같은 것을 나누어 쓰는 주택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같이 사용하거나 같이 거주하는 형식적 의미보다는 ‘같은 것’이라는 형태적 의미가 너무나 강해서 성냥갑 주택이라는 비판을 받기 일쑤다. 소유가 아니라 거주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공동주택보다는 ‘집합주택’이라는 말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집합集合은 여럿이 한곳에 모여 특정한 무리를 이루는 것, 즉 같이 거주한다는 의미다. 학창시절 수학시간에 배운 가락을 끄집어내 보면, 집합은 기본적으로 공통성과 개별성 사이의 일정한 관계와 조건 속에서 정의되는 열린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해서 집합이란, 획일적이고 균일한 집단이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모여 공유할 것은 공유하고 사유하는 동태적인 개념어다. 모여서集 합合을 이루는 것이니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이 갖는 다양성 없이는 합의 조건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거주자의 삶이 공존하는 집합주택을 위한 세 가지 질문

최근 문정동에 지은 공동원룸주택에서는 개별적 삶과 공통의 삶이 공존하는 집합 본연의 의미를 살려보고자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합의 조건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이 살 것인가? 어떤 부분을 공유할 것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 공동주택에 관련된 현재의 법과 제도라는 무형의 조건들에 관해서도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문정동 공동원룸주택 전경. 건축가 신승수는 본 프로젝트를 통해 개별적 삶과 공통의 삶이 공존하는 집 ‘합주택 ’ 본연의 의미를 살려보고자 하였다. / ©디자인그룹 오즈

먼저, 이 집합주택은 사회 초년생인 1인 가구를 임대인으로 예상하고 설계되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계되었던 연남동에서의 주거작업과 마찬가지로 입지적 특성과 예상 임대비 등을 고려하여 거주자를 예측하고,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표준적인 평면을 공급하는 대신에 입주자의 생활방식에 맞추어 데드스페이스를 없앤 단위세대와 수납기능을 갖는 공용공간, 공용 빨래방과 커뮤니티 홀 등의 주민공동시설이 마련되었다.

이전에 나대지裸垈地로 방치되었던 시유지를 활용하여 공공임대주택을 계획하는 만큼, 대지 남측의 인접 세대들이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보행로와 텃밭도 남겨두고, 건물을 들어올려 1층 전체를 입주자들과 인근 주민들이 공유하도록 하였다. 문제는, 대지의 형상과 여건상 발주처인 SH공사에서 요구했던 전용면적 14평방미터에 31세대를 수용하는 동시에 대지의 경계를 열어 공유공간을 마련하기에는, 「건축법」상 ‘아파트’로 불리는 공동주택의 유형이 적합하지 않았던 터라 우여곡절을 거쳐서 유형상 ‘연립주택’에 속하는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첫 고비를 넘기고, 설계에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공유공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쉽게 접근되고 인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실용적이면서 특징적이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 끝에 두 개 층 볼륨 두 덩어리를 엇갈려 쌓는 형태의 라멘구조를 적용해서 서측 보행로 쪽으로는 두 개 층 높이와 복도 두 배 폭의 커뮤니티 데크를 마련했으며, 동측에는 테라스 층을 마련하는 등, 모든 층이 특징적인 공유의 공간을 갖도록 구성하였다. 한편, 가로에 면한 2층 커뮤니티 데크의 끝에는 공용 빨래방을, 보행로가 인접 세대와 만나는 반대쪽 끝에는 커뮤니티 홀과 텃밭을 배치해서 대지 안팎에서 쉽게 인지되도록 했고, 복도에는 반투명한 문이 달린 붙박이 창고 (락커)를 설치해서 부족한 수납을 보충하는 한편, 미래의 입주자들이 쌓아둘 세간붙이의 윤곽들로 삶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희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공유의 공간이 건축물의 입면을 통해서 표현되어 삶의 단면과 여지가 드러나는 집합의 형태를 모색하고자 했다.

문정동 공동원룸주택의 테라스 / ©디자인그룹 오즈

또 하나의 질문은 법과 제도 등 코드code에 관한 것이었다. 현행 코드들은 대부분 대규모 아파트단지 위주의 대량공급 체계에서 다듬어진 것들이라 소규모 공동주택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장소별, 규모별 특수 상황이 고려되지 않은 획일적인 지표와 관리방식을 소규모 공동주택에 그대로 적용하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단순면적으로 나누어 설계기간, 설계금액, 친환경 및 에너지효율 관련 인증기준을 적용하다보니 비현실적인 설계기간과 씨름하게 되고, 협력업체를 구하기도 어려운 터무니없는 설계비로 아파하며, 소규모 임대주택에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임대료 상승을 유발하는 과대설계를 단지 인증항목별 점수를 따내기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만 한다. 천우신조로, 불합리한 지표에 대한 분석적 문제제기를 서울시가 수용하여 <문정동 공동원룸주택>을 필두로 소규모 건축물에 관한 더욱 현실적인 녹색건축물설계 가이드라인이 개정보완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질문은 설계 프로세스에 관한 것이다. 알다시피 설계는 기획, 기본, 중간, 실시설계로 이어지는 일련의 단계를 거치게끔 되어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제대로 된 ‘기획설계’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대신에 아파트 형태 만큼이나 천편일률적인 과업지시서나 최대 용적률에 맞춘 정량적 지표만이 제시된 보나마나한 규모 검토서가 난무한다. 어떤 장소에 있는지, 누가 살게 될지도 모른 채 규모만 구하다 보니 사회적 어젠다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고사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계획이 되어버린다. 앞서 언급한 연남동의 경우를 보면, 진입도로의 폭을 검토하지 않고 규모가 정해져서 결국에는 규모를 대폭 축소한 다세대주택으로 변경되어야만 했다. 더욱이 설계의 각 단계가 인허가단계별로 관리· 정산되고 있기 때문에 품질향상을 위해 소요되는 연구조사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진행되는 수많은 설계변경 등에 관한 품삯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소규모 공동주택을 비롯한 중층중밀도의 건축, 단지와 상업지역 사이를 매개하는 길모퉁이 중간지대의 건축, 그리고 마을 단위의 사회문화적 도시재생과 같이 구체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종합적인 운영관리계획이 요구되는 오늘날에는 더더욱 깊게 생각하고 오랫동안 소통하는 지속가능한 설계 프로세스 확립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간-기반의 설계비 산정방식이 도입되어야 한다.

유형, 집합방식, 코드, 프로세스에 관한 앞선 물음과 응답이 바로 이 작은 공동주택이 겪은 성장통이자, 바로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공동주택의 현황과 전망의 각 지점이다. 서울시의 경우 1인 가구 비율이 40%를 넘어섰고, 전국적으로는 향후 10년 이내에 30%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는 ‘나 홀로 사회’, LH 영구임대주택의 경우 노인 비율이 이미 초고령 사회 수준으로 높아졌고, 2022년에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는 ‘노인 사회’, 평균 자녀 수 1.3명의 ‘초저출산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거주방식은 무엇일까?

문정동 공동원룸주택의 Diagram
문정동 공동원룸주택 Ideogram

주택공간 유연성을 위한 적극적인 공유

최근 서울시는 구로구 천왕동 ‘여성안심주택’을 필두로, 강동구 강일동 ‘노인·신혼부부 혼합임대주택’, 중랑구 신내동 ‘의료안심주택’, 신혼부부 및 다자녀가구와 1인 가구에 우선 공급 되는 은평구 기자촌 ‘미래도시주거 신모델 조성사업’ 등 수요자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추진하는 한편, 공영주차장이나 고가도로와 같은 기반시설을 활용한 복합개발과 민간의 다가구, 다세대 등을 매입하거나 유휴토지를 임차하여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등 다양한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한편, 민간에서는 3저 1고의 시대(저임금, 저금리, 저출산, 고분양가)를 사는 사람들, 즉 ‘집’ 대신 ‘방’을 택해 원룸과 집의 기능을 외부화한 ‘도시의 방’에서 거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공유주택이나 컨셉주택과 같은 새로운 주거모델 개발이 한창이다. 키즈카페, 오피스카페, 텃밭카페, 음악카페, 식당카페, 스터디카페, 전시카페, 모임센터 등 수많은 전문적인 공간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인구 구성비의 변화와 다변화된 사회적 요구, 그리고 살인적인 토지가격과 부동산경기의 침체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내 집 마련의 사다리가 사라진 시대에 임대주택의 수요는 부분적으로 늘겠지만, 누적적자 규모가 한계점에 도달해 있는 공기업들은 이전과 같은 대규모 ‘단지’ 대신 중·소규모 ‘블록’ 단위의 개발로 선회하거나 개발의 주체에서 관리의 주체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대량공급에 최적화된 획일화된 생산시스템과 ‘1가구 1주택’ 분배시스템도 다양한 수요자에 대응하는 유연한 방식으로 변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최근 마련된 세대구분형 아파트 건설기준 (사실상 2가구 1주택)이나 주거공간 지하층 배치 허용 등, 주택건설기준은 물리적인 공간 유연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새로운 유형과 집합방식, 새로운 코드와 프로세스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거주의 방과 도시의 방에서 거주하는 삶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서 단위세대 설계는 물론이고 주민공동시설 등의 부대복리시설도 맞춤형으로 설계될 것이고, 이곳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전문 공간 서비스 조직도 등장할 것이며, 이들 조직은 여러 블록별 공동시설을 연계하여 규모의 경제를 충족시키는 형태로 발전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거주 공간과 커뮤니티 공간의 연결망으로 조직된 ‘방들의 집합’을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한 건물 안에서 여러 세대가 특정 공간을 공유하는 ‘공유주택’은 다른 공공의 시설과 결합하거나 공공의 서비스에 연결된 ‘시설’의 공유방식으로 확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예컨대, 파출소 부지였던 장소에 여성안심주택을 짓고 여기에 무인택배시스템과 무인경비시스템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파출소와 주택을 공간적으로 결합해서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것은 빼내고, ‘공공 서비스의 공유’나 ‘휴먼 시큐리티’와 같은 새로운 사용가치를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공유의 적극적 의미다. 공공 도서관이나 평생교육센터와 결합한 노인주택, 유치원이나 경찰지구대와 결합한 여성전용주택, 중·고등학교와 결합한 임대주택, 창업지원센터와 결합한 원룸주택 등, 창조적인 주거복합시설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서울시에서 국토교통부에 건의한 바와 같이 공공임대주택을 도시계획시설인 공공시설로 규정한다면 여타의 유휴·저밀 공공시설과의 복합개발이 용이해지고 용적률 인센티브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함께 산다는 것, 함께 나눈다는 것

한편, 앞으로 장소와 수요자에 맞춘 저비용·고효율의 복합개발을 계속해 나가려면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집합 사이의 매개공간인 커뮤니티시설의 효과적인 계획과 운영이 필요해 보인다. 시류에 발맞추어, 최근 서울시가 내놓은 사람과 장소 중심의 ‘창조적 정비계획’ 모델에서는 재개발, 재건축 주거단지에 획일적 용도와 형태로 설치되는 주민공동시설의 기준을 대폭 강화하여 지역과 공유하는 다기능 복합 커뮤니티시설 설치를 권고하고 있다. 집의 기능을 외부화한 방을 다시 집 안으로 끌어들이되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말이다. 이 옳은 말을 좇아서인지는 몰라도 재개발, 재건축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각종 공동주택단지 현상설계공모에는 주민공동시설의 크기와 중요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당연히, 맞춤형 설계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지만, 정작 이 중요한 공간은 ‘용적률 적용 완화규정’에 의해서 법적 면적에도 계약상의 면적에도 존재하지 않는 ‘부재의 공간’으로 둔갑해 버릴 위험성이 있다. 그 실체가 부재하니 단돈 1원도 건축가에게 주어지지 않고 재능기부라는 아름다운 말로 포장될지도 모를 일이다. ‘공유’를 말하기에 앞서서 ‘공정公正’이 필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복잡하고 복합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것 같다. 오늘날 거주의 문제는 곧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는 문제다. ‘함께 산다는 것’은 한 모습으로 산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 가운데 함께 나누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적이고 지속적일 수 있는 것은 ‘같은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감은 차이 나눔의 경험을 내면화시키는 여지room이다. 그래서 장자는 공감을 ‘존재 전체로 듣는 것’이라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 기능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공생共生과 공유共有, 그리고 공감共感의 참뜻이며, 집합集合의 공간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신승수

서울대 건축학과 학· 석사를 마쳤고 네덜란드 베를라헤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공간 사용자의 창조적 행위에 기반을 둔 도시공간 및 시설의 새로운 가능성과 조직방식에 관심이 있다. 디자인그룹 오즈를 운영하며 성균관대에서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젊은건축가상(2008), 오늘의 젊은예술가상(2010), 한국건축문화대상 (2013)을 수상했고, 2010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 전시작가로 선정되었다. 저서로는 『공존의 방식』, 『공공을 그리다』, 『뉴욕, 런던』, 『서울의 도시재생 이야기』(공저) 등이 있다.

공생共生, 공유共有, 공감共感: 집합集合의 공간

분량6,853자 / 14분 / 도판 4장

발행일2013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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