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적률 전선에서 보내온 소식
김성홍, 김승범, 신은기, 안기현, 정다은, 정이삭 × 김정임
분량14,450자 / 30분 / 도판 2장
발행일2016년 7월 31일
유형인터뷰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 큐레이터는 김성홍 예술감독을 비롯해 5명의 공동 큐레이터로 구성됐다. 이들은 수평적 구조 속에서 《용적률 게임: 창의성을 촉발하는 제약》(이하 ‘용적률 게임’)이라는 전시 타이틀을 통해 한국 건축의 주요 생성 원리를 탐구했다. 총감독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전선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란 주제를 제시함으로써 건축가의 사회적 실천을 보고자 했다면, ‘용적률 게임’은 시장원리에 충실한 한국 건축의 단면을 드러낸다. 한국관 공동 큐레이터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현장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1
김성홍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200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부커미셔너를 역임했고, 2005년 한독 퍼블릭스페이스 포럼을 기획했다. 2007-2010년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탈린, 바르셀로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메가시티 네트워크: 한국현대건축전》을 총괄기획했다. 대표 저서로 『도시 건축의 새로운 상상력』(2009), 『길모퉁이 건축』(2011) 외 다수가 있다.
신은기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 조교수. 미국 워싱턴 C.D.에서 건축설계 및 마스터플랜 실무를 하였으며, 사회기술적 조건에 대응하여 건축 디자인의 유형화와 변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세기 중반 미국 대량생산 주택이 만들어낸 주거 문화와 실험 주택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천대학교에서 사회적, 기술적 제도와 건축 디자인에서 공공성 확보 관계를 연구·교육하고 있다.
안기현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2010년 에이앤엘스튜디오(AnLstudio)를 공동설립했고, 2013년부터 한양대학교 건축학부에 재직 중이다. 주요 프로젝트로 〈Oceanscope〉(레드닷어워드 ‘best of best’ 수상), 〈Lightwave〉(호주 브리스번), 극소주택 〈몽당〉, 중국 광저우에 컨벤션홀 〈The Suit〉, 신당동 근린생활시설 〈다공〉이 있다. 다수의 개인 및 그룹전시에 작가로 참여하였으며, 2014 설화문화전에 아트디렉터 및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김승범 브이더블유랩(VW LAB) 대표. 서울건축과 공간건축에서 다수의 건축 설계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업무를 수행했으며, 카이스트 미래도시연구소에서 건축과 IT 접목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연구전담 교수를 거쳤고, 베를린 아에데스갤러리의 《Seoul : Towards a Meta City》(2014)에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정이삭 에이코랩(a.co.lab) 대표. 〈DMZ 평화공원〉 마스터플랜 연구, 〈철원 선전마을 예술가 창작소〉 〈연평부대 도서관〉 〈동두천 장애인 복지관 문화공간 조성〉 등의 사회적 건축과 공공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REAL DMZ PROJECT》(2013) 총괄코디네이터를 맡았고, 《서울서울서울》(2015)을 공동기획했다. 공공디자인대상 우수상, It-Award 공공환경디자인상, 따뜻한 공간상 대상을 수상했다.
정다은 코어아키텍츠(CoRe architects) 팀장. 스튜디오 어싸일럼과 매스스터디스에서 실무를 했고, 지금은 도시 변화 안에서 건축물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각 건축적 요소를 어떻게 수집하고 표현하는지를 연구한다. 70년대 이전 서울에 지어진 건축 변화에 관심이 많고, 수집한 건축물 사진을 모아 《Memoryscape》(2010)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에는 서울도시건축국제비엔날레 SNS 플랫폼 구축을 위한 ‘#너머도시 #citythru’를 기획했다.
인터뷰어 김정임 서로아키텍츠 대표

김정임 안녕하세요. 저는 서로아키텍츠의 김정임이라고 합니다. 이번 한국관 전시 주제인 ‘용적률 게임(The FAR Game)’은 국내 건축가 모두가 고민하는 현실적인 주제입니다. 이 주제를 통해 한국 건축의 단면이 드러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큐레이터 간의 역할 분담이 있었나요?
김성홍 처음부터 딱히 정한 것은 없었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분담이 이루어지다 마지막에는 다 같이 공동작업을 했습니다.
김정임 많은 자료와 프로세스에 대한 것도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전시를 하시나요?
김성홍 이전 한국관 귀국 전시를 아르코미술관에서 해왔는데 이번에도 돌아가서 보여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확정은 안 되었지만 2017년 2월 중순부터 2개월간의 전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김정임 한국관의 주제가 ‘용적률 게임’인데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전체 주제는 ‘전선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잖아요. 한국의 전선에서 주목할 만한 이슈로 용적률이란 것을 제기하셨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서의 용적률 이슈가 건축을 규정짓는 데 주목할 만한 요소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승범 한국에서 좀 더 중요한 이유라기보다 보편성에 대해 말하자면, 처음 준비할 때는 용적률이 한국에서 특별하고 강한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름 한국적인 특징도 있는 것 같고요. 그런데 현장에서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다 보니, 이탈리아 사람들도 그래프를 보며 ‘우리도 60–70년대에 이런 붐이 있었다’며 공감을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80–90년대 대량생산 시대 벽돌로 지은 2–4층의 다가구 주택라는 이름으로 많이 등장 했던 것들로, 형태와 재료는 다를 수 있겠지만요.
신은기 용적률이라는 것이 한정된 자원 안에서 최대한 큰 효과를 얻으려는 것으로 본다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에서 유별나게 다뤄졌던 것은 도시의 발전 속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주어진 대지 면적과 경계 내에) 좀 더 많은 면적을 가지려는 것과 빠른 경제 성장이 만들어낸 대량생산이 맞물리게 되면, 디자인에서도 표준화가 이루어지고 도시 풍경이 좀 더 획일화되죠. 용적률이란 현상은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그것이 나타나는 결과가 도시의 풍경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는 도시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베니스 같은 구도시는 대규모 대량생산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도시의 골격이 완성되었다면, 서울은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전후 전 세계적인 경제 호황, 대량생산 시기의 도시 형성 과정이 압축해 한 번에 일어나면서 획일화 과정이 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용적률 자체보다 그것이 도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며, 건축가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결과가 사람들이 매일 경험하는 일상의 도시 문제에 어떻게 직접 드러나는가가 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정임 전시에서 한국 건축물 모형을 통해 용적률이라는 제약이 오히려 ‘창의적인 제약’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건축가가 정해진 용적률을 극복하거나 형태적으로 재미있게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서 각자의 해법을 제시한 것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다루신 것이지요? 도시 전체의 집합적인 풍경을 이루는 데 있어 건축가가 개별적으로 행한 용적률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으로 작동한다고 보고 전시를 기획하신 거라고 해석하면 될까요?
정이삭 ‘긍정적으로 봤다’ ‘긍정적인 현상으로 해석한다’라기 보다는,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라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전시에 보이는 36개의 예시 이외에도 사례들은 매우 많습니다. 우리는 통상 도시에서 벌어져온 다가구 주택의 풍경을 아름답게 보지 않잖아요. 그런 가운데 건축가들은 그 풍경 자체가 결과적으로는 아름답지 않지만, 분명 어떤 의미가 있는 풍경이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일단의 시작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한 출발에서 ‘여기에 질적인 부분을 더할 수는 없을까’가 잘 드러나는 것들이 전시에 소개되는 36개의 건축 작업인 거죠. 그렇다면 이것이 단순히 ‘좋은 현상이다’ ‘나쁜 현상이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나 합니다.
신은기 용적률이 피할 수 없는 극복 대상인데, 건축가는 이를 위해 건축적 언어 내에서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대량생산에 의한 획일화의 틈 안에서도 거주자가 자발적으로, 또는 불법의 영역에서 나름 건물을 다양하게 변형시켜 왔는데요, 그런 가운데 건축가는 제도 내에서, 즉 합법의 영역에서 다양성도 살리고 있다고 봅니다. 도시의 풍경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거주자에게도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죠. 같은 예산 안에서도 약간의 노력만으로 더 많은 선택의 가능성을 지닌 다양한 건축 환경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김정임 자의 반 타의 반인 것 같아요. 대형 프로젝트는 없어지고 양극화가 되면서 수퍼리치들은 외국 스타건축가를 아무나 쓸 수 있는 상황이 되니, 결국 국내 건축가가 수용 가능한 시장 수준에서 타의적인 요소도 있는 것 같아요. 수요자의 수준이 올라가니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더 좋은 디자인을 사고자 하는 욕구도 늘어나는 등 사회적으로 많은 것이 얽힌 현상인데, 앞으로 한국의 건축이나 도시 환경이 더 풍부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성홍 교수님께 드리는 질문인데, 『길모퉁이 건축』을 비롯해 그간 ‘중간 건축’을 말씀해 오셨잖아요. ‘용적률 게임’이란 이슈가 우리나라에 다양한 지역이나 다양한 스케일의 개발에도 적용이 된다고 보시는지요? 아니면 교수님이 관심 있는 중간 건축에서 좀 더 첨예한 이슈라고 보시는지요?
김성홍 우선 ‘용적률 게임’이 가장 치열한 곳은 큰 개발에서죠. 고층 건물, 메가 콤플렉스가 대표적으로, 인센티브도 있으니까요. 또 그 게임은 대형 건설사와 시행사가 주도했습니다. 작은 시장에서의 ‘용적률 게임’이라는 것은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 직접 발코니를 덧대거나 옥상을 늘리는 정도에 머물러 있고요. 그런데 이런 작은 시장 안에서 건축가가 디자인이라는 툴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에요. 게임은 어디서나 있어 왔고 어디서나 치열했는데 다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정이삭 첨언하자면, 대규모와 소규모 모두에서 격렬하게 벌어지는 현상인데, 이번 전시에서 작은 규모들을 대상으로 한 것은 가장 일반적인 건축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일반적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중산층을 위한 건물, 즉 고층건물을 짓는 거대 자본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환경을 아우르는 건축물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 안에서 ‘용적률 게임’이 사회와 건축과의 최전선(front line)을 말하는 데 훨씬 더 유효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김정임 대규모 개발은 주거 지역에 짓지 않기 때문에 항상 첨예한 일조권 사선 문제도 없고 도로 사선도 여유 있어서, 용적률 제한으로 인한 창의성의 발현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중간 규모 건축에서는 일조권 사선 등과 맞물려 더 첨예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다음 질문으로, 이번 ‘용적률 게임’이 총감독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제시한 ‘전선에서 알리다’ 전체 주제와 어떤 점에서 연결되고, 또 어떤 점에서 단절되었다고 보시는지요? 다른 국가관을 보면 난민, 남미 정치와 사회, 환경 문제 등 각국이 짊어진 문제들 속에서 건축가의 사회적인 역할이나 도전에 대한 리포트를 기대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정다은 저는 전선이란 것이 예전에는 거대한 범위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봤는데, 지금은 각자의 입장에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다른 국가관을 보면 일상 물품을 많이 보여주더라고요. ‘주어진 환경에서 각자 무엇을 어떻게 만드느냐’의 문제를 다들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울 곳곳에 각자의 전선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있는 건물 옆에 ‘용적률 상향’을 통해 어느 순간 아파트나 대형건물이 생기기도 합니다. 용적률은 필지 면적에 대한 건축물 (지상) 바닥 면적 총합의 비율입니다. 넓은 땅이 생기면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죠. 그리고, 어떤 필지를 합치느냐에 따라 더 많은 용적률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용적률을 미처 챙기지 못한 다가구 주택 건물은 상대적으로 조건이 열악해지는 것이죠. 그런 각자의 전선에서 주변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한 대답들이 여기 전시한 36개의 건물에 있는 것 같아요. 각각이 어떤 방법으로 ‘용적률 게임’을 했는지에 관한 차트가 있거든요. 증축, 발코니 확장, 층고 높이기 등의 방법이 있는데, 각각의 방법이 도시를 읽는 하나의 코드인 것 같습니다. 각자의 주변을 반영하는, 각자의 전선을 드러낸다고 보는 거죠.
김정임 전시한 36개의 작업은 유형별로 선정한 건가요, 아니면 용적률 이슈를 흥미롭게 다룬 프로젝트들을 임의로 찾은 건가요?
신은기 처음에는 규모를 많이 보았어요. 김성홍 교수님의 ‘중간 건축’에 나오듯이 몇 층 규모 몇 제곱미터 이하의 건축을 선택했고요. 그중에서 많이 나타나는 전략들을 발견하고, 그중 좀 더 명쾌한 것들로 규모를 다양하게 확장했어요.
안기현 처음에는 최근 매체에서 주목한 건축가들을 보았는데, 그러다 보니 젊은 분들이 많았고 2000년대 후반부터 지어진 건물들이 군을 이루는 것이 보이더군요. 시작 당시에는 분류하는 기준이 없었는데 자료들을 계속 수집하고 그 안에서도 한국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과정 중에 중복되는 유형은 제외하기도 했고, 전시를 생각해서 형태적으로 눈에 띄는 것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임 리서치를 하면서 80년대부터 최근 2010년대까지, 각각에서 다른 사회적인 현상이 나타났을 텐데요. 전시를 오픈한 이후에라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거나 발견하신 주제가 있으신가요?
안기현 어려운 질문인데요. 그런 이야기가 김성홍 교수님이 말씀하신 ‘중간 건축’, ‘길모퉁이 건축’, ‘용적률 게임’, 그리고 최근 황두진 소장님의 ‘무지개떡 건축’ 등에서 다뤄지는 것 같습니다. 이종 일반 주거 지역에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지어지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일 텐데요, 지어지는 건물들의 타이폴로지, 거기에 적용되는 여러 가지 법규, 건축가가 선택한 전략, 대형 사무소가 아닌 소형 건축사무소가 주로 작업하고 주변과 잘 대응되어 지어진 점, 그리고 이러한 건물들이 도시 속에 점점 더 많아지면서 좋은 도시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더하여 좋은 디자인의 건물이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속화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등 지속적으로 여러 가지 조사해야 할 것, 그리고 토론하며 다양한 생각을 공유해볼 만만한 것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이삭 최종 선별된 36개의 건축가 개별 작업이 어떻게 도시 내에서 건강한 풍경을 만드느냐는 질문을 하셨지요. 정다은 선생님도 말씀했지만, 각자가 개별 해법들이잖아요. 그리고 IMF 이후 시장이 먹고사는 것에 더 신경을 쓰고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는 없어지면서, 생존을 위해 그 시장으로 개별적으로 들어간 것이지 하나의 사회적 운동은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이제는 사회가 인지할 정도로 동일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시대적 과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담론을 벌일 충분한 시기인 것은 맞는 것 같아요. 이 전시 이후에 한국 건축계 내에서든 밖에서든 생산적인 이야기의 시작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신은기 어느 영국 기자분은 “건축가들이 제도 안에서 맥시마이즈(maximize)를 하려고 노력하는데 이게 끝까지 가면 다음에 무엇을 할 거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런데 지금까지를 돌이켜보면, 그 법이나 제도라는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었어요. 건축가, 클라이언트, 거주자가 끊임없이 요구와 대응을 하면서 사회도 변해왔어요. 영국 기자가 질문한 ‘끝까지 간 상황’에 이르기 전에 제도가 이미 바뀌어 있을 것 같아요.
김정임 대표적으로 사선 제한이 없어졌죠.
정다은 비슷한 측면에서, 예전에는 이미 지어진 집 중에서 골라 살았다면, 이제는 구체적인 요청을 하는 건축주의 수가 많아졌죠. 건축주가 건축가를 찾아가고, 마당, 다락, 지붕이라는 건축 용어를 구체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요구를 해요. 건축 용어도 더욱 보편화되고, ‘재료는 무엇으로 해주세요’ ‘지붕은 어떻게 해주세요’ 등으로 요구도 구체화되겠죠.
건축을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용어가 보편화되면서 사람들도 공부를 더욱 적극적으로 해요. 이를 위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매뉴얼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려면 건축, 도시 관련 용어에 대한 정의가 먼저 명확해야겠죠. ‘도시 풍경이 좋으려면 좋은 건축물이 지어져야 한다’는 말은 제게는 그다지 와 닿지 않습니다. 좀 더 개인적인 관점에서 각자 ‘좋은 건축’을 구성하는 요소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기본적인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한 듯합니다.
김정임 삶의 질과 밀접하게 닿아 있어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김승범 잡지에 실린 건축 작품을 보면 건축가가 직접 글을 쓴 걸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작품’이라는 것은 자신만의 특별한 무엇인가가 들어가야 하고, 이를 위해 건축가 대부분이 많은 노력을 하죠. 이제까지 건물이 개별적인 작품으로 표현되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건물 개별에 대한 수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이야기를 곁들여서, 즉 클라이언트와 제도의 변화 사이에 어떤 파워게임이 있었는지, 같은 현상을 두고 보는 방식을 바꿔 본 것이에요. 그래서 전시되는 건물 모두는 개별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하얗게 만들었어요. 처음 건물 하나하나를 두고 보았을 때는 개별 특징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명확하게는 몰랐다가, 모아놓으니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나더라고요. 일례로 사선 제한이 만들어 내는 그 무엇 혹은 그 사이에서 법규와 제도와 용적률과 싸워가는 방식들이 우리나라 건축의 특징이었던 것 같아요.
신은기 지금까지 한국적인 아이덴티티는 거창한 것에서 찾았잖아요. 물론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생겨나 자리잡은 아이덴티티를 발견하는 것이 좋았어요.
정이삭 또 다른 흥미로운 것은, 전시의 또 다른 축이 80–90년대 많이 지어진 다가구 주택이에요. 사진작가들의 작업에서 당시 건물들을 볼 수 있는데, 이 건물을 지은 건축가가 훈련받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면 사람들이 버내큘러(vernacular)라는 단어를 쓰더라고요. ‘토착적인’이란 뜻이죠. 보통 이제까지 한국식 버내큘러, 토착적인 것이라고 하면 한옥을 많이 떠올렸는데 어느 순간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의 80-90년대 다가구 주택이 한국 토착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아요.
김정임 결국 그것이 어떤 요구에 의해서인지도 알고 어떤 욕심이나 의욕에 의해서인지도 알겠는데, 한국에서는 튀는 것에 너무 가치를 두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10년, 20년이 축적되고 나면 튀는 것들 사이에서도 집합적인 풍경이 나타나겠죠.
정다은 모양이 튈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국적인 상황인 것 같아요. ‘내가 돈을 얼마나 들여 집을 짓는데, 돈 들인 티가 나야지’ 이런 심정이랄까요.
그런 게 한국적인 것 같다는 것에 동의해요. 전체 국가관이나 아르세날레관을 봤을 때 전 세계적으로 빈부의 양극화, 국지적 전쟁, 자연재해로 인한 난민, 환경 파괴, 에너지 고갈 등 여러 이슈를 다루는데, 막연하게 알고 있는 서구 몇몇 나라들의 상황이 아니라 국가별로 얼마나 다양한 이슈에 직면해 있는지, 그것에 대해서 각국의 건축가들이 전선에서 얼마나 여러 해법을 제기하고 고민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 한국관 주제와는 별도로, 현재 한국 사회 또는 한국 건축이 당면한 다른 시급한 이슈로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모두 제일 어려운 질문인데요.
김정임 건축업에 대한 이슈나 건축가의 생존 문제도 있잖아요.
김승범 말씀하신 건축가의 생존이 이번 전시와 중요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이라는 도시 조건에서 건축가들이 생존을 위해 싸워 온 결과라고 생각해요. 2000년대가 지나면서 대형사무소의 구조조정으로 많은 사람이 밖으로 나왔잖아요. 그러면서 어떻게든 일감은 찾아야 하고, 그래서 저런 시장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해요. 그렇다면, 그 시장의 규칙을 지키면서 건축주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면적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그것을 맞춰주지 않으면 클라이언트가 떠나버릴 테니까요. 기본적으로 맞춰야 하는 조건이 비슷한 설계비와 공사비, 거기에 최대한의 면적이에요. 거기에 자기만의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공간들, 우리 도시를 획일적이지 않고 조금은 다르게 만든 공간들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신은기 한국관은 제도와 시장을 다뤘는데, 다른 국가관을 보면 어떤 곳은 환경을, 또 어떤 곳은 공간에 대한 아주 근원적인 경험을 다루기도 했어요. 그중 주제관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제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제도가 사람을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왜곡시키는가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한국관의 주제가 제한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건축가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그 다큐멘터리는 제도의 방향성을 묻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건축의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하지만, 접근 방식을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안기현 저희가 건축을 배울 때는 건축가라는 직업 자체가 공공에 대한 책임이 중요하고, 선배들도 그런 모습을 강조해 왔어요. 그런데 이제는 자본주의 안에서 공공보다는 당면한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더 앞서고, 건축가라기보다는 디자이너로서 해야 할 역할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선배 건축가와는 다른 상황에 놓인 젊은 건축가의 생존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데, 과연 건축가에게 예전처럼 강한 책임과 사명감을 물을 수 있는지도 자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백승우 사진작가가 한 말 중에 매우 재미있었던 것이, 기존에 우리가 알던 사진작가라는 것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이제는 카메라가 너무 보편화되어 누구나 사진을 찍고 작품처럼 만들 수 있는데 사진작가가 아주 미세한 차이로 나타나는 구도나 기술만을 가지고 과연 ‘작가’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어떤 것을 생각해봐야 하는지 그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고 했는데, 그것이 건축을 하는 저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았어요.
김정임 같이 전시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위해 이 전시의 귀국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건축업계가 극복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사대주의라고 생각해요. 이제 한국에서는 대형건축물을 국내 설계사무소가 단독으로 설계하는 게 상상조차 안 되는 일이 되어버렸어요. 큰 건축회사들은 자본이 있으니 기술 축적도 가능한 상황이었을 텐데, 너무나 쉽게 그 자리를 외국 회사들에 내주고 자신들은 로컬 건축가로 심부름꾼을 자처하면서 한국 건축계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어요. 저변에서 활동하는 건축가가 늘어나는 것은 좋은데, 다른 한편으로는 큰 스케일의 건축도 다루고, 또 한편에서는 작은 사무소들이 효율적인 네트워킹으로 큰일을 협업할 수 있으면 제일 좋겠어요.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가면, 이번 큐레이터 팀엔 학교에 계신 분도 있죠. 프랑스관을 보면 건축 교육이 최전선에서 해야 하는 일에 대한 글이 있었는데, 건축학자이자 교육자로서 교육 현장은 프론티어로서 무엇을 다루어야 하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앞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론상으로는 학교가 실험의 장으로서 가장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김성홍 우리가 ‘용적률 게임’을 다루었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왔던 전통적 의미의 건축 주제가 다른 쪽으로 넘어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더 풍부하게 또 더 다양하게 만들고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뭔가 자극을 받는 공간을 만드는 게 건축의 궁극적인 목적이죠. 그런데 그 과정에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은 거죠. 여전히 우리에겐 숙제가 있어요.
좋은 건축을 하기 위해 기본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우리가 ‘기본이 약하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데, 하는 것을 기록하지 않고 할 때마다 각개전투하고, 그것이 하나의 데이터로 묶여서 축적되지 않고 (않으니), 할 때마다 사람들도 다른 것 같아요. 감각과 치기를 통해서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이 무르익어서 깊이와 울림이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직 많지 않아요. 그것들이 한국 건축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교육에서 요즘 융합을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융합이라는 게 자기 것이 없을 때는 못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배운 서양의 근대건축이 현대건축의 가장 주요한 문법과 어휘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충분히 소화하면서도 자신의 것을 만들어야겠지요. 그런데 자신을 둘러싼 현재와 현실에 대한 자존감이 없으면 깊이가 있으면서 정체성을 갖춘 것을 만들기 어렵죠. 그런 점에서 새로운 세대의 건축가들은 국제적인 동향에 촉수를 대고 있어야 하지만 그것보다 자신의 것을 깊이 들여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반드시 과거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요. 우리 현실 속 밑바닥을 깊이 들여다보고 거기에서 자존감을 갖고 만들어내야 할 것 같아요. 그것이 사회적으로 축적이 되도록 하는 공통의 숙제라고 생각하는데, 건축 하나만을 가지고 건축의 질이 좋아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건축의 품질이 좋아진 것은 건축가가 잘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제품과 재료가 좋아져서 수준이 올라간 것도 있지 않을까요? 학생들도 지금처럼 어렵다고 느낄 때일수록 기본을 익히고 다져야 하는 것이 가장 먼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이삭 당면한 과제와 다음 세대 교육 문제가 같은 이야기 같아요. 학교에서 지역적인 것을 가르치지 않는데 어떻게 지역적인 건축을 할 수 있을까요. 한국 사회의 문제 이전에, 그 당면 문제를 파헤쳐서 가르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꼭 이 전시를 빌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다가구 주택를 가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지도하거나, 아니면 이미 부족한 모습도 정확하게 보려는 의지를 전달한다거나 하는 교육 과정이 사실은 별로 없잖아요. 그것들이 좀 더 풍부해지지 않고서는 한국적, 지역적, 한반도적, 국가적인 부분에 해당하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관련된 중요한 가치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건축을 하는 것부터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전시의 36개의 건물도 다가구 주택의 집단적 현상에서 무언가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해서 나온 현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저 자리에 있던 것을 부수고 지은 것이에요. 과연 바뀐 풍경들이 20년, 30년이 지나면 다시 이 벽돌 건물처럼 훌륭한 가로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경관적 풍경, 집단적 풍경으로서 아름다울 수 있을지 거기에 대한 확신은 안 들어요. 그렇다면 대량으로 생산된 특정 시기 이후 어디서나 발견되는 것을 다듬으면서 진행한 개발의 단계들이 우리에겐 여전히 없는 것이잖아요. 다듬으면서 풍경을 진화시키려는 의지가 있어야 할 것 같고 건축가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으니 사회적인 공감대가 만들어져야 하고 이런 전시도 하는 것이죠. 책이나 언론 등 사회적인 파급력을 가져서 ‘우리가 이 풍경을 좋은 것으로 긍정하자’ ‘이것을 서서히 진화시켜나가자’라는 동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시 쓰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해야지, 언제까지고 새로 짓는 것에 대한 이슈에 파묻혀 있으면 답이 안 나오는 것 같아요.
김정임 개인적으로는 이번 전시에서 36개의 건물도 좋았지만, 정연두 작가나 백승우 작가의 사진작업도 좋은 일부였다고 생각합니다.
정다은 학생들의 디자인을 보면 정답에 목말라 하는 것 같아요. 정답은 없는데 말이죠. 정답에 대한한 강요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언가를 판단할 때 좀 더 면밀했으면 해요. 예를 들면, 도시 풍경이 획일화되어있다 하지만, 도시의 건물들은 모두 다르게 생겼어요. 오히려 베니스의 건물들은 거의 비슷하게 생겼어요. ‘획일하다’라는 평가는 무엇을 기준으로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 언급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왜 같아야 하는지 왜 달라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솔직히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신은기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를 직접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답은 둘째예요. 그런데 지금은 문제도 없어요. 몇 제곱미터의 학교를 설계한다 하면, 사이트 분석하고 예쁘게 앉히는 게 표준화되어 있어요. 학생들은 나름 개별적으로 디자인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프로세스나 문제 자체가 표준화되어 있고 다루는 대상도 표준화되어 있고, 전반적으로 매우 중성적이에요. 지역적인 가치도 없고, 있다고 해도 말하는 방식조차 표준화되어 있어요. 어딘가에서 늘 말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죠. 예를 들어, 다가구 주택을 집합적 경관으로 보존하고 리노베이션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지만, 주장이 자신으로부터 발견된 문제의 답이었으면 해요. 그 주장 이전에 일상에서 왜 그것이 중요한지 말하고 설득할 수 있고, 그것을 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된다라는 것, 그런 이야기가 갖추어진 사고와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장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김성홍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기본에 충실해서 일상에 굉장히 디테일한 눈을 가져야 되고 이로부터 자신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김정임 앞서 사진작가 말씀도 하셨지만, 사진이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같은 대상인데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거기에 카메라 렌즈를 갖다 대느냐에 대한 문제잖아요. 건축도 그런 것 같습니다. 펼쳐져 있는 것 안에서 무엇을 집어내어 문제화하고 그것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제시할 것이냐. 학교 교육에서도 그런 것들이 많이 다뤄져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저도 학교에 가면 과정을 다 보았음에도 마지막에 프린트된 패널의 시각적인 것에 좌지우지돼요. 전반적인 문화가 깊게 들여다보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총괄 큐레이터로서 마지막으로 김성홍 교수님께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김성홍 짧은 시간이었는데 전시 준비 동안의 훌륭한 팀워크를 가졌던 것이 매우 소중했습니다. 그 과정과 이야기들이 조금씩 파생되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용적률 전선에서 보내온 소식
분량14,450자 / 30분 / 도판 2장
발행일2016년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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