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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경계와 미디어의 끝없는 탐독

최태윤 × 이경희

최태윤 작가는 도시 시스템의 경계를 거대 담론이 아닌 일상의 소소한 물건에서 출발해 자신만의 지형도를 만들어 공유한다. 그의 활동범위는 매우 넓고 한순간도 머리와 손과 몸을 놀리지 못해서, 끊임없이 읽고, 드로잉하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태깅하고, 거리에서 몸으로 부딪친다. 작업의 범주와 분야가 매우 광범위해 이야기가 한눈에 잡히진 않지만, 공공예술의 전방에서 그를 어렵지 않게 곧잘 마주치게 되는 것은, 그가 동시대 도시에서의 인간 삶에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태윤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퍼포먼스를 전공하고 카이스트에서 문화기술 석사를 마쳤다. «기술이 실패할 때, 현실이 드러난다»는 개인전을 시작으로 아르스 일랙트로니카, I.S.E.A 등 다양한 페스티벌에 초대받았으며, 가옥 레지던시와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의 ‘만들자 연구실’ 등을 기획했다. 최근 뉴욕 브루클린에 SFPC라는 소프트웨어 아트교육 기관을 설립했다. 

인터뷰 이경희 본지 편집인


이경희 홈페이지 메뉴에서도 보듯이, 전시기획, 교육, 드로잉, 작가, 글쓰기 등 어느 하나 소홀함 없이 매우 활발하게 넘나들고 있습니다.1 요즘에 가장 관심 갖고 준비하는 일은 어떤 것인가요.

최태윤 여러 명의 작가, 큐레이터, 기술자와 함께 작업하는 것을 좋아해서, 마치 여럿이 휴가를 가는 것처럼 어떤 시골에 들어가 도시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레지던시를 하나 지원했어요. 출발은 ‘먹는 것’이에요. 선박이나 페덱스Fedex를 통해 도시로 들어온 외래침입종invasive species2이 그속에서 어떤 영향을 주고받은 뒤 또 어떤 흔적을 남기며 살아남는지 알아보고 싶어서요. 꼭 뉴욕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도시의 흔적이 없는 시골이어야 해요.

좀 더 이렇다할 뚜렷한 것을 말씀 드리기 어려운 이유는, 보통 하나의 작업이 정리되는 데 3, 4년 정도의 리서치와 현장 경험,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필요하거든요. 아직은 공부가 많이 필요해요.

이경희 도시 경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변화의 추이를 ‘먹을 것’에서 찾아본다는 건가요?

최태윤 네, 도시라는 큰 개념(대상)과 먹을 것이라는 작은 것의 관계를 보려는 건데, 이미 몇 년 전에 도시프로그래밍urban programming의 맥락에서 <정물화Still Life>(2011)라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3 하루는 브로콜리를 하나 구입했는데, 좀 비싸서 보니 유기농이라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더 자세히 알아보니 인공적인 방식의 유기농인 거예요. 아무리 유기농이래도 사막 한 가운데서 인공적으로 재배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자연 생태계에 좋지 않거든요. 이후 먹는 과일마다 바코드를 트랙킹하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이것들이 어느 나라에서 재배되어, 어떤 운송수단과 지역을 거쳐 내가 사는 지역에 오게되는지 알 수 있더라고요. 그걸 기반으로 재구성한 채소와 과일의 소비경로 지형도를 그릴 수 있었고 오늘날의 전지구적인 경제와 정치 상황이 유추 가능한 거예요. 마치 오늘날의 생태계 정물화를 보는 듯했죠. 굳이 거대담론에서 출발하지 않더라도 일상 활동영역에서 지역 간 경계와 정치사회적인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는 거예요.

중 일부, 2011.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 대한 미술사적 연구가 정물을 통해 당대의교 역과 부의 상징을 읽었다면,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의 ‘만들자 연구실’에 대한 작가의 소개 드로잉, 2014 오늘날 전지구적으로 유통되는 채소와 과일의 바코드 또한 세계의 정치와 경제의 지형도를 보여준다. / Ⓒ 최태윤

이경희 활용하는 매체가 다양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것도 많아 작업들을 따라가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그런데 ‘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가닥 잡는 것은 쉽지 않거든요.

최태윤 실제로 어려우니까요. (웃음) 예를 들어, 공간과 예술의 공공성에 대해 작업할 때도 개발과 기술 등의 영역을 왔다 갔다 한단 말이죠. 제 작업이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것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요. 하지만 분명 서로 만나는 지점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것들을 정리해 전시로 풀어보고 싶어요. 단순한 아카이브를 넘어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하고 있어요.

이경희 그렇다면 그 전시도 도시와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최태윤 연산computation과 도시가 서로 만나는 ‘지점’이 있다고 언제나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 첫 책의 제목도 『도시 프로그래밍 101: 무대지시』 (미디어버스, 2010)고요.

이경희 그 ‘지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까요?

최태윤 도시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요. 경제적인 것이든, 이념적인 것이든, 생활적인 것이든. 그런데 그것을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전자회로 작동방식으로 보면 이진법 논리의 응용으로 볼 수 있거든요. 기억, 저장, 인풋, 아웃풋 등으로요. 도시도 마찬가지에요. 가령 LA는 인풋 시스템이 고속도로에 나타나고, 안양은 위성도시도 아닌 구도시지만 신도시 근방에 있음으로 해서 독특한 문화환경을 갖고 있고요. 이런 것들이 프로그램 내적인 것과 하드웨어적으로 존재하는데, 저는 각 도시를 살아보면서 체감하는 하드웨어들이 매우 흥미로웠어요.

반면, 또 기존 시스템을 혼란시키는 사람/요소도 있어요. 건축가, 시위자, 노숙자 등이 그러한데, 그러한 혼란 속에서 생겨나는 변화에도 관심이 있어요. 월가 시위Occupy Wall Street가 내세운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는 구호도 월가 한가운데서 반자본주의를 외치는 거거든요. 그런데 서로 다른 입장인 월가 사람들과 시위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풍경이 펼쳐져요. 그래서 공공장소에 대한 관심과 기대지점이 생기게 돼요. 엑티비스트만 봐도 서로 이념에 따라 사이가 안 좋은데, 시위장에서는 같은 공간에 있으니 얘기를 나눠요. 그런데 점령occupy 동안에는 그 안에서 생활도 하거든요. 텐트가 늘어나면서 공공장소임에도 사적공간이 생기고, 얘기할 공공장소가 점점 줄어들면서 결국에는 얘기를 할 수 없게 되요. 공유지가 만들어지고 일시적인 공공장소가 생겼다가 결국 포화상태가 돼요. 이러한 사이클은 월가 시위의 경우에는 평균 2, 3개월을 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의미가 있고 희망적이라고 봐요. 그래서 오픈소스 작업을 하거나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것도 사회적 실천이라고 보는 거고요.

이경희 기존의 형태나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에서 희망을 본다고 하셨는데, 말씀하신 경험은 뉴욕에서 한 거였죠. 우리나라에서도 도시점거를 통해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보나요?

최태윤 확신해서 말하긴 조심스러워요. 점령보다는 지역화폐나 공유지, 커뮤니티하우스와 같은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으니까요. 안으로는 어느 정도까지 꿈꾸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꿈이 너무 크면 사람을 무력화시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우선은 실현 가능한 것만 주로 봐요. 아까 얘기했던 시골에서의 활동도 그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어요.

이경희 실제로 공유지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우리나라에도 활발해지는 단계라, 공동출자를 통해 공유공간을 운영해요. 잘 운영되는 곳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거든요.

최태윤 아마 그런 곳은 기획이 개입되서 그렇지 않나요?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겨나야 하거든요. 참여자가 실제 그곳에서 생활하고 필요로하는 사람이어야 해요. 캘리포니아의 한 사막에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한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거기 사는 사람이 아닌 건축가가 먼저 제안을 한 거라 결국은 실패해 지금은 관광유적지에 지나지 않아요.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가 유쾌하게 나올 때예요. 지금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안양파빌리온(구 알바로 시자 홀)도 매우 모던한 건축인데 등산객들이 등을 대고 쉬기도 하고, 근처 공원에서는 조형물들 사이에서 고기를 구어먹어요. 그런 모습이 건축가나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한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처음의 깨끗한 건축에서 시작해 지역민들이 섞이기 시작하면서 색다른 풍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하나의 사이클은 경험한 것 같아요.

이경희 처음 전공은 독특하게도 퍼포먼스였어요. 처음 전공 선택 때 어떤 기대를 갖고 선택한 건가요? 지금의 작업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도 궁금하고요.

최태윤 퍼포먼스 전공은 몸을 많이 써서 좋았어요. 플럭서스 계열에서 온 해프닝, 모던댄스와 무브먼트 계열의 즉흥연기, 그리고 영상, 조명, 사운드 등의 무대기술도 접할 수 있었거든요. 아직까지도 거기서 하던 것과 비슷한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시 선생님들 중에는 신체와 정치를 이야기하는 페미니스트, 미디어와 정치를 이야기하는 활동가도 많았기 때문에 사회참여적인 작업도 할 수 있었고요. 몸을 써서 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기 때문에, 지금의 강연과 피티도 포함돼요. 비논리적인 것을 체계적으로 끌어낸다는 점에서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나 마이크 켈리Mike Kelley의 렉처퍼포먼스를 좋아했고, 백남준의 비디오설치 이전의 플럭서스 작업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서 하는 ‘만들자 연구실’4에서 오픈소스 키트에 지시사항을 넣는 방식도 과거 플럭서스 상자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볼 수 있죠.

이경희 그때의 경험이 매우 중요한가봐요. 작가님의 강연, 드로잉, 워크숍이 어찌 보면 모두 퍼포먼스군요.

최태윤 친한 친구들도 그렇게 얘기해요. «Speakers’ Corners»(2012) 전시가 특히 그랬어요. 글도 쓰고 현장에서 시위도 하고, 무대도 만들었거든요. 야외 퍼포먼스가 아카이빙이 되기도 하고, 그게 다시 퍼포밍이 되기도 하고요. 오프닝이 있었지만 그때는 완결된 게 아니었어요.

전시 «Speakers’ Corners»(2012)의 일부. 작가가 뉴욕의 미디어아트센터인 아이빔Eyebeam에서 레지던시 동안 작업했던 것으로 워크숍과 전시를 진행했다. 전시 동안 작가는 글도 쓰고 현장에서 시위도 했다. / Ⓒ 최태윤

이경희 앞서도 말했지만, 아카아빙을 온라인에 잘 하고 있음에도 레이어가 워낙 많아 그런지 파악이 어려워요. 동영상도 봤는데 현장성이 떨어져 전달하는 데 분명 한계가 있거든요. 본인이 얘기하고자 하는 게 좌절되거나 지속성이 어려울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최태윤 아카이빙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아요. 그래서 가르치는 것 같아요. 그게 가장 효과적이거든요. 가르치는 것은 자체로 아카이빙이 되고, 지속성도 있어요. 왜냐하면 가르치려면 커리큘럼을 짜야하고 과정이 끝나면 결과도 나오니까요. 사실 제가 아는 걸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알고 싶은 것을 가르치는 게 더 맞는 표현이에요. ‘교육이 오가는 환경을 큐레이팅’한다는 개념인데, 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을 초대해서 같이 배우는 거거든요. 제가 배우면 다른 사람도 배우니까요. 뉴욕에서 하는 SFPC(시적연산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5에서는 참여학생들이 가르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이미 자기 분야에서 잘 하는 사람들이 와서 각자의 워크숍을 진행하니까요. 플럭서스의 초기 해프닝도 작가의 스테이트먼트와 작업과정, 스탭과 관객의 기록을 통해서 전체 그림이 그려지거든요. 그래서 최근 깃허브GitHub6라는 걸 쓰는데, 매우 유용해요. 이게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담아놓는 곳이지만 저는 프로그래밍 언어 대신 제 글을 올리는데, 버전 컨트롤이라고 해서 누가 작업을 같이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어요. 글을 같이 쓰기도 하고 이전 버전으로도 돌아갈 수도 있고요. 이게 책보다도 효과적인 게, 미세한 차이도 컨트롤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다음 책은 어느 시점에 이것을 바로 출판하는 거예요. 몇 년 후에도 업데이트가 가능하고 아키비스트가 접근할 수도 있거든요.

이경희 SFPC의 모토인 “More Poetry, Less Demo”는 어떤 의미인가요?

최태윤 MIT 미디어랩의 슬로건이 “구현하느냐 아니면 죽느냐Demo or Die”예요. 이건 스타트업이나 대기업에서 실험적인 R&D에 목숨을 건다는 걸 잘 보여주죠. 기술적인 분야에서 그런 모토를 거는 건 이해가 되는데, 문제는 그게 문화나 예술(미디어아트, 인터랙티브아트)에 적용했을 땐 우스운 상황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데모하기’ 보다는 ‘시를 쓴다’는 거예죠. 시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미니멀하고 연약한 표현 방식이지만,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상상력을 제시할 수 있어요. 데모가 과업보고서라면, 시는 투명하고 주관적인 거죠.

사실 컴퓨터 언어도 시적인 언어를 담고 있어요. 시에 은유, 리듬, 서사, 읽는 행위, 사운드와 퍼포밍이 모두 있는 것과 같이 (언어와 전자 모두를 포함하는) 컴퓨팅에도 기본적인 이진법 논리 안에서 시적인 가능성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적’이란 표현은 ‘창의적’, ‘예술적’이란 단어를 쓰지 않기 위해 대용하는 것이기도 해요.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기술이라는 표현이 이미 너무 포화상태이기 때문이죠.)

이경희 교육 내용의 한 예를 든다면요?

최태윤 가령, 스마트폰에서 보낸 모든 문자를 시각화 한 작업도 있고, 코드로 시를 써서 책을 내기도 했어요. 실제로 잘 짜여진 코드를 보면 “와 예술이다” 하거든요. 복잡하게 생각될지도 모르겠는데 정리하면, 저흰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 이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이경희 왜 이런 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최태윤 일단 기존 학교에서 이런 걸 가르치지 않고요, 있더라도 학비가 너무 비싸서 장벽이 높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에요. 현재 15명이 졸업했는데 참여 방식도 열어놔서 방문작가, 작가, 자원봉사 학생 등 다양하고 지금도 자주 연락해요. 하지만 보통의 대학/대학원은 매우 배타적인 커뮤니티잖아요. 제가 뉴욕 아이빔Eyebeam에서 일할 때도 비슷한 교육프로그램이 있었고 처음 몇 년은 저도 지원서를 검토했는데, 매우 좋은 사람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필터링이 되니 아쉬운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개방적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경희 커리큘럼에서 다루는 기존 기술의 해킹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최태윤 기존의 장비에는 기능이 매우 많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히 부분적인 기능만 써요. 하지만 해킹이 용도를 변경하고 다른 의미도 부여하거든요. 예술가든 시민이든 작동 방식을 알아야 자신의 것이 되잖아요. 도시공간을 이해하고 프로그래밍 할 수 있어야하는 것처럼 기술도 그래야한다고 봐요. 쉽다고 할 순 없지만, 무조건 어려운 건 아니에요. 10주 프로그램인데 협업을 통해 정말 흥미로운 결과가 나와요.

이경희 기존의 수동적인 생활의 지평을 넓혀준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최태윤 특히 예술이나 시적인 활동을 위해서요. 지원을 한 사람 중에는 에이전시나 광고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창작을 하는 사람을 우선순위로 뒀어요. 왜냐하면 보통 회사에서는 디자이너, 코더coder, 기획자(프로젝트 매니저)가 하나의 삼각형이 돼서 일하거든요. 아무리 간단한 프로젝트라도 그속에서 또 분업화가 되어 있어요. 이러한 포디즘Fordism적인 분업화는 디지털 세계에도 있는데, 많은 웹디자이너들이 개발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건 그런 까닭이에요.

이경희 말씀하신 포디즘으로 인한 분업화와 효율성 (시간과 자본의 연결성)을 일반 도시민의 일상에도 연결시킬 수 있나요?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최태윤 사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것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어요. 다만 창작을 하려면 자율적인 공간과 매체가 있어야 해요. 포토샵만을 가지고 만든 이미지도 디지털아트라 할 수는 있겠지만, 상용소프트웨어를 쓰지 않았을 땐 어떨지, 즉 매체탐구를 해보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사실 이게 모든 사람을 위한 건 아닌데, 생각보다 수요가 매우 많았다는 점에선 놀라워요.

이경희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의 ‘만들자 연구실’은 대상이 일반인이죠.

최태윤 그렇죠. 지식knowledge, 도구tools, 아카이브archive 이 세 가지가 퍼블릭아트센터의 핵심인데, 저는 그게 너무 좋았어요. 보통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기존의 영상미디어센터나 영화제작워크숍, 자유대학 등과는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는 게 너무 신이 났어요. 미디어액티비즘이나 미디어교육을 오픈소스와 연결해 공공미술 맥락에서 진행한다는 게 제겐 매우 설득력이 있고 말이 되는 것인데, 주변에서 처음엔 좀 어려워했지만 지금은 많이들 이해하고 좋아해요.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의 ‘만들자 연구실’에 대한 작가의 소개 드로잉, 2014 / Ⓒ 최태윤

이경희 커뮤니티와 종교단체의 공통점에 대해서도 예전에 이야기 나눈 적이 있는데, 작가님은 공동체에 관심이 많은 듯해요. 도시와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계속 순환하고 있어요. 그 둘이 만나는 구체적인 모습을 어떤 건가요?

최태윤 하나의 프로젝트로 정리하긴 어려워요. 제가 어느 정도 산만한 건 인정해요. (웃음) 책도 내고 장사도 하고 (그런데 알고 보면 전복적인 목적이 있는데, 그 전복적인 게 마케팅이었다든지) 유쾌하게 끌고가고 싶어요. 그래서 전시는 한번 해보고 싶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시간성을 근거로 하잖아요. 그게 벌어지는 순간엔 저와 같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것을 장소나 위치성을 근간으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해요. 그게 드로잉일 수도, 조형물일 수도 있겠죠.

이경희 처음 도시나 공간에 대해 가졌던 호기심이 지난 10년의 작업 생활 동안 달라진 것이 있나요?

최태윤 그간 가본 곳과 읽은 것이 조금 더 있으니 쉽게 흥분은 하지 않죠. (웃음) 예전엔 처음부터 기대를 크게 갖고 가능성을 좀 더 본 것 같긴 해요. 그리고 서울은 10년 사이에 매우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도시디자인 정책 때문에 간판도 바뀌고, 기술적으로는 유비쿼터스도 되고요. 요새는 더 큰 그림이 궁금한 것 같아요. 모바일기술과 도시 이야기는 정리가 된 것 같아서, 자연이나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어요. 일본만 해도 물을 마시는 게 일상의 고민이 되었잖아요.

도시경계와 미디어의 끝없는 탐독

분량8,403자 / 17분 / 도판 3장

발행일2014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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