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vol09-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환상부동산

이주영

경험과 기억

<환상부동산>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사무실을 ‘복덕방福德房’으로 임시 활용하는 에이전시 형태의 프로젝트이다. 그러나 <환상부동산>에는 실제의 부동산 매물이 존재하지 않기에 부동산의 매매나 임대는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떤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한 장소의 목록inventory’만이 이곳의 유일한 비즈니스로 존재하며, 작가는 ‘비’공인중개사가 되어 방문자에게 오직 기억의 목록만을 소개한다.

<환상부동산>에 오는 모든 이들은 작가의 안내에 따라 이 장소 목록에 기록된 경험과 함께 ‘대항적 투어리즘Counter Tourism’을 위한 전술을 만나게 된다.1 대항적 투어리즘이란 작가이자 퍼포머인 크랩 맨Crab Man이 만든 용어로, 패키지 관광 산업이 유적들을 보여주는 방식에 의문을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장소를 보는 방법을 변화시키는 일종의 전술이다. 참여자는 이 투어리즘을 무상으로 구입하여 활용하는 것을 전제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동시에 작가의 전술을 위탁 받는 에이전트이자 퍼포머가 된다.

<환상부동산>의 비공인중개사인 작가는 식민지 유적이나 혹은 지역 신화에서 잊히거나 버려졌던 역사적 유적지를 방문하여 사진과 문자로 기록하고 이들을 포스터 형식의 목록으로 전시한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전술은 사진, 텍스트, 영상, 기념물, 사운드 등 특정 매체에 한계를 두지 않으며, 온라인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환상부동산> 임시사무실 설치 장면, 워크온워크, 서울, 2013

함께 걸으면서 수다도 떱시다

<환상부동산> 프로젝트는 최근 몇 년간 진행한 걷기 이벤트인 <함께 걸으면서 수다도 떱시다: 인천, 베를린, 정동, 요코하마 챕터>의 연장선에 있다. 이 이벤트는 도시에 남아있는 근대공간의 건축적이고 구조적인 개념 사이에 새겨진 개인과 역사의 탈연대기적 이야기 발굴과, 사회의 중층적 의미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었다. 서울 한강변에 분포된 패밀리마트를 이정표 삼아 양화진을 탐사한 경험이 이벤트를 기획한 계기가 되었다. 좀 더 구체적인 계기는 현재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있는 양화진이 조선 후기 제물포와 서울을 연결했던 나루터이자 근대 서양문물이 당시 외교 중심가인 정동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한 경로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벤트는 인천(2009)에서 시작하여, 베를린(2010)과 정동(2011), 그리고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부군당 (지금은 서울시에 의해 공원화될 예정)이 아직 남아 있는 이태원(2012)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는 일본의 개항도시 요코하마(2012)에서도 진행되었는데, 일본의 근대 여성운동가이자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가 박열의 연인이기도 한 가네코 후미코의 흔적을 밟는 작업으로 그 궤적을 확장했다.

‘허구’를 파는 복덕방

<환상부동산>은 바로 이 걷기 이벤트에서 사용된 방법론을 그대로 유지한 채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좀 더 신화-지리학으로 접근하면서 동시다발적이고 수행성을 띤 프로젝트로 확장했다.

참여자들은 지역의 신화와 역사에 접근함으로써 도시 공간에 침전된 이야기나 신화-지리학mytho-geography을 재발견하는 도구이자 전술로 제안한다. 작가 (또는 다른 참여자)의 지속적인 안내를 받는 참여자들은 도시의 ‘속도’에 의해 방해받기도 하며 일종의 ‘허구 퍼포먼스fictional performance’를 수행하기도 한다. 여기서 허구는 하나의 ‘마찰(저항)의 인식’으로 작동되고, 이러한 마찰의 인식은 과거의 흔적이 사라졌거나 훼손된 곳, 기념비, 인공유산이 된 공간, 재개발로 인해 복구/재생과정에 있는 도시의 공공 영역들이 심리지리학적인 ‘표류d rive’의 무대로 확장된다. 여기서 ‘표류’란 상황주의 이론가 기 드보르Guy Debord가 행했던 실험적이면서 유희적인 방식으로 도시urban를 탐험하는 일종의 전략을 뜻한다.

개인 혹은 만남의 사건, 참여자 간의 내러티브, 환경의 기억에 따라 매번 주제가 달라지기도 하는 이 ‘허구 퍼포먼스’는 어떤 감각의 전복을 발견하기 위한 목적이 되기도 하고, 참여자 간의 역동성으로 인해 때로는 강요된 탐험이 되기도 한다. 신체의 한계를 실험하는 기존의 퍼포먼스의 범주에서 벗어나 ‘환상’을 유도하는 이 퍼포먼스는 비밀스럽게 수행되기도 하며 역사성을 띨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환상부동산>은 물질이 아닌 ‘허구’를 파는 복덕방으로서 도시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수행적 중개자가 된다.


이주영

이주영은 땅과 역사 간의 복합적 관계성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작가이다. <환상부동산>은 2013년 초 9일간의 ‘첫 영업’을 시작해 워킹 투어를 진행했고, 같은 해 인천 아트플랫폼 페스티벌 기간에는 아트플랫폼의 한 공간을 거점으로 투어를 가졌다. 워킹 투어는 현재도 진행 중이며, 페이스북 페이지와 이메일을 통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www.facebook.com/fantasyrealestateagency
walkerstories@gmail.com

환상부동산

분량2,389자 / 5분 / 도판 6장

발행일2014년 3월 31일

유형작업설명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