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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를 장착한 체념이 광장을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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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나는 나를 둘러싼 시스템 그리고 그것에서 사라질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는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작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다. 야구감독을 하셨던 아버지(1943년생)와 오랫동안 은행원으로 근무하신 어머니(1949년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5층짜리 보급형 아파트가 빼곡하던 서울 강남의 도곡동에서 자랐다. 모두가 주식에 몰두하던 당시 사회 흐름에서 아버지도 벗어나진 못했다. 정년의 어머니는 작은 가게를 열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퇴직금을 포함하여 집안의 모든 돈은 주식에 올인 되었다.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집안 경제가 주저앉기 시작했다.

이사를 가야 했다. 부모님은 헐값에 집을 팔아야 했다. 이사 후 이전에 살던 곳의 집값은 사상 초유의 가격으로 급등했다. 현재는 타워팰리스와 같은 주상복합 고층 아파트가 세워진 그곳. 재개발이라는 단어를 나는 당시 몰랐고 훗날 그 동네를 다시 찾았을 때 내가 살던 동네는 없었다. 만약 그렇게 헐값에 팔지 않고 조금 더 버텼다면 재개발 수혜자가 되어 경제적 이익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아마 가족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 미묘한 감정은 재기의 욕망으로 전환되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주식 투자는 멈추지 않았다. 모든 것을 끌어 모아 재기를 노렸지만, IMF가 찾아왔다.

집안에는 가훈처럼 걸려있는 꽤 커다란 액자가 있었는데, ‘믿음, 사랑, 소망’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 세 가지의 결핍과 충족이 오가는 순간을 기억한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 또한 기억한다. 우리는 모두 가정 안에서, 사회 안에서 어떤 믿음을 갖고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돌아가게 하는 에너지를 사랑했고 그 에너지가 자신에게 혹은 자신과 관련 있는 소수에게 풍족하기를 소망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훗날, 집이 망하고 나서 여러 번의 이사를 경험하고 나니 그 액자는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중학생이 된 나는 아버지에게 과거에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여자 사이에 나보다 나이가 꽤 많은 누나도 있었다. 어느 날, 그 누나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처음 보는 아줌마도 함께했다. 그 누나가 같이 살게 될 것 같다는 얘기를 어머니께서 조용하게 속삭이셨다. 어머니는 그 액자를 지니지도 않았지만 모든 가족들을 믿음과 사랑으로 바라보셨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는 다른 소망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를 가족이라고 생각할 무렵, 죽음을 목격했다. 나는 말을 잃었다. 오랜 시간을 집에만 있었다. 남겨진 가족들 모두 말수가 줄어들었고 서로 소통하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서 나는 소극적인 아이로 성장했다. 나라는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되고 결정되는 상황들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속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해소할 곳이 없었다. 그 무렵 PC 통신을 시작하면서 현실과 다른 존재로 활동하며 사람들과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경험했다. 현실과 다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말을 할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는 조용한 (들리지 않는) 소리를 지를 수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하고 싶은 것은 있었지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은 무력함을 달래는 좋은 표현 도구였다. 미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던 친구와 선생님의 도움으로 수능시험이 끝나고 공짜로 미술학원에 다니게 되었고, 등록금이 싼 국립대 한 곳을 목표로 입시를 준비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자녀의 성장 과정에 미안함이 있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나는 가족의 영향권에서 독립할 수 있었다. 기숙사와 고시원에서 살며 대학을 다녔고 알뜰하게 살았다. 참여정부의 시작점이었던 이십 대의 시작. 이제야 내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는 기분이었다. 월드컵으로 새로운 광장문화를 경험한 스무 살의 나는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모든 것에 참여해보고 싶었고 다양한 현장에서 일어나는 소통을 체험할 수 있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을 고민했다. 등록금을 감당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술대학의 관습적 졸업 시스템에 동의할 수 없었다. 교육구조의 고립과 그것에 영향받는 학생들의 태도, 등록금과 졸업전시에 사용되는 불합리한 비용, ‘기대감에 따른 금전지급’은 학교라는 시스템에서 나를 멀어지게 했다.

#2

예술가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직업군으로 인정되는 예술가가 되길 원했다기보다는 예술 활동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학력 없이 미술제도라는 높은 장벽을 넘어서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력서엔 항상 학력을 쓰는 란을 비워 두었다. 어떤 심사 및 공모 인터뷰 자리에 가게 되면 그에 대한 물음을 듣게 된다. 몇 년 동안 진행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3분도 채 되지 않는다. 시스템에 속하고자 하는 젊은 예술가들은 이런 것에 대해 상당 부분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예술관을 보여주고자 하는 기대감과 그에 따른 희생이 이뤄지는 순간, 나는 그 시스템의 유지를 위해 반복되는 개인의 소모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학습하고 싶지 않았다. 창작 지원 기금을 받기 위해서 맞춤형 작업 계획을 하는 것, 국가기관에서 하는 영수처리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그 절차를 표면적으로 따르며 다른 변종의 방법을 선택하여 처리하는 것들. 결국 시스템 유지를 위한, 개인의 생존을 위한 슬픈 모습이었다. 이것은 다른 시스템으로 확장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러한 개인이 살아가는 사회.

‘고립된 시스템을 겨냥하는 개인.’ 이것은 내가 몇 년 동안 작업 안에서 지속시켜온 관심사였다. <이동을 위한 회화>의 에너지가 이동하는 순간, <낭독회>라는 실제 대상의 발언, 사회적 세대론에 동의하지 않고 상징적 이미지들을 교환하며 함께했던 <세대독립클럽>, 기업질서에 영향받는 무기력한 개인과 함께한 <일시적 기업>, 도시계획과 주거문화에 관여하지 않은 세대들의 갈망이 담겼던 <뉴홈>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몇 년을 싸우듯 살았다. 언행이 폭력적이지 않았지만 나는 마음속에 폭탄을 품고 살았던 것 같다. 옆 사람으로 함께 생존하고 싶었고 전복시키고 싶었다.

고립된-경직된-견고한 시스템. 동의할 수 없었던 질서. 영향 받고 감당하고 체념하는 개인. “시스템이 사라지지 않으니 내가 시스템에서 사라져야겠다.” “한국 난민 판매로 접속하세요.” www.Korean-Sales.org / Ⓒ 차지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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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이 벌어졌다. 2012년 초, 부모님은 살고 있던 집에서 이사해야 했다. 당장 살아가야 할 집이 필요한 상황이 벌어졌다. 10년 동안 나는 가족과 별 관계없이 살았고 사라지지 않은 빚에 대한 무게를 다시 느껴야 했다. 가족의 삶은 더욱 몰락해 있었다. 아버지는 칠순을 넘기셨고 어머니는 목소리가 잘 안 나온다 하셨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던 시간이 갑자기 너무나도 미안해졌다. 당시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처분하고 취직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학력 없는, 작업만 하고 살아온 서른 살의 남성의 구직활동은 제한되는 것들이 많았다.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노동을 약속하고 돈을 구할 수 있었고 가족의 거취를 확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살던 곳을 정리하고 집 없이 바쁘게 살았다. 지금도 나는 가족에게 원조하고 있는 상태이며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부모님의 얼굴은 아직도 보지 못했다. 계좌이체만이 부모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행동이다. 그해 나는 결혼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가족의 일로 인해 많은 것들을 관계의 대상자와 나누지 못했고 포기해야 했다. 심신이 피로했고 악몽에 시달렸다. 편안한 잠을 자고 싶었다. 고민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함께 작업을 하던 사람들, 일하러 간 곳에서도, 동반자의 삶을 나누려 했던 사람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다. 혼자 고민하고 끙끙 앓기만 했다. 어떤 부분에서 나는 나 자신을 소모해왔는지 모르겠다. 말을 하지 않았던 시간 동안 감정은 어디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극도로 과열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그것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우연히 온라인에서 내 상황과 고민을 말할 수 있었고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외국인과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한국계 외국인으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국인이 되었다고 했다. 농담처럼 자신과 결혼하지 않겠냐고, 외국인이 되어보지 않겠느냐고 가볍게 물어왔다. 나는 처음엔 농담으로 동의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그렇게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녀가 사는 곳은 기본소득도 보장된 나라였다. 이것은 위장결혼으로 읽힌다. 국가시스템은 결혼을 제도로 보장하고 있었고 그에 따른 법률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그 속성을 사용해서 내가 태어난 나라의 시스템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기본적인 노동을 하고 가족에게 원조하며 당분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가족, 학교, 사회 등의 시스템들을 경험하며 그 질서들을 동의하지 못했지만 시스템의 내부자들은 사랑했다.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 스스로 시스템에서도 온전하게 평화롭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불균형으로 이미 기울어진 시스템이 어떻게 하면 바뀔 수 있을까? 만약 시스템의 생산자 사요 내부자 매개자 중, 어떤 하나가 떠나기 시작하면 점차 그 시스템은 사라지지 않을까? 계층의 자멸. 그렇다면 다음은? 질문을 남기고 나 자신을 던지는 실험을 해보려고 한다. 나는 그렇게 2012년 말 출국했다. (후략)


<한국 난민 판매>에서 판매 중인 개인들의 체념사

국가 안에서 기성에 영향 받는 무력한 삶을 사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오랜 시간동안 목격함과 동시에 당사자로 영향 받았고, 그것의 전복을 꿈꿨다.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체념으로 향하는 무력감은 상당수의 개인을 관통하는 감정이었다. 시스템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개인이 집단을 이뤄 시스템에서 사라지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렇게 떠올린 상상적 세계를 선명하게 제안할 수 있다면? 그 제안에 여러 시스템의 안과 밖의 존재가 반응하길 기대하며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우리는 난민을 자청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판매합니다.
우리는 글로벌 상품을 목표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존엄을 희망합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매국을 상상합니다.
우리는 창조적인 경제를 실현합니다.
어느 가까운 미래의 세계관.
시스템을 벗어날 제안,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스마트한 개인.
“과열된 체념이 흩어지고 있어요.”
“한국 난민 판매로 접속하세요. ”

www.korean-sales.org/#!market/c19qt

자료제공: 차지량

A는 오래전 자신의 에너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였고 지금은 그 포기선언조차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사회를 포기하였다. 자살할 용기는 없지만 범죄를 저지를 욕망이 있다. 잃을 것이 없었다.

B는 오염지역에 살고 있지만 국가가 B와 B가 속한 지역사회를 보장해주지 못했다.

B는 지역을 떠날 수 없었고 그 방법 또한 몰랐다.

C는 매립지 공사장에서 일했고 매립 기술과 매립 자재를 공수하는 방법을 파악했다. 미련하게도 C는 바다에 인공 섬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D는 C를 바보라고 생각했고, 거대한 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날 C와 D는 휴대전화 대화창에서 종일 깔깔거렸다.

A는 B가 올린 불평의 온라인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다. A는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남겼다.

C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D는 제3세계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A는 자국에서 주민등록을 말소하고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B는 이민을 위해 위장 결혼을 검색한다.

C는 D에게 자신을 실종신고 해달라고 부탁한다.

A는 위장 결혼에 성공하기 위해 외국에 뿌릴 광고를 만들었다.

B는 인터넷을 통해 물가가 싼 나라를 검색한 후, 그 지역의 땅을 모조리 사기로 한다.

C는 배를 만들다가 제3국으로 밀입국을 도와 부를 쌓고 있다.

D는 SNS를 통해 A의 광고를 확산시켰다. 게시물은 ‘좋아요’ 10만 건을 기록한다.


차지량

현재 <한국난민판매>라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공연 <뉴 미디어를 장착한 체념이 광장을 가로지른다>를 ‘페스티벌:봄’(2014. 3. 26~28)에서 선보였다. 이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의 체념하는 개인들을 모아 난민을 자청하게 할 계획이다. 그렇게 당신을 판매한다. 당신을 글로벌 상품으로 만들 것을 목표하며 당신의 존엄을 희망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매국을 상상하며 ‘창조경제’를 실현할 계획이다.

뉴미디어를 장착한 체념이 광장을 가로지른다

분량5,435자 / 10분 / 도판 3장

발행일2014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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