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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채워가는 학교

김인철, 김성진, 나여래, 동준모 × 박성태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는 앞으로 10년 간 공사 중일 학교 〈이상집〉을 최근에 완공했다. 건축가인 김인철은 기본적인 틀만 정하고, 디자인 학교 학생들이 스스로 스튜디오 작업의 집적으로 나머지 부분을 채워가는 방식이다. 건축가는 약간의 낭비와 불편을 감수하고 여백과 여유가 이 공간에 서서히 피어나기를 의도한다고 말한다. 이런 도전의 시작을 함께 한 건축가와 워크숍 참여 학생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김인철  홍익대학교와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14년 간 엄덕문 문하에서 실무를 거친 뒤 1986년 아르키움을 개설했다. 전통과 풍토에 바탕을 둔 ‘없음의 미학’을 화두로, 〈김옥길기념관〉 〈웅진씽크빅〉 〈어반하이브〉 〈호수로 가는 집〉으로 건축가협회상, 김수근문화상, 서울시건축상을 수상했다. 4·3그룹에 참여했고 국가건축정책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서울건축포럼의 의장을 맡고 있다. 

김성진  중앙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고, 졸업과 동시에 아르키움에 입사하여 실무를 익히고 있는 디자이너다.

나여래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한배곳 4기

동준모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한배곳 1기


건축가와 학생들의 워크숍

김인철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이하 ‘파티’)의 〈이상집〉은 파주출판도시 2차 단지에 있어요. 1차 단지는 건물들을 개별적으로 설계하고 지었는데, 2차 단지는 한 블록에 있는 입주자들이 설계뿐만 아니라 시공까지 공동으로 개발하는 마스터플랜으로 시작했어요. 그렇게 하려 한 이유는 도시가 건축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이고, 각각의 개별적인 건축들이 공동성이라는 것을 갖지 못하면 죽은 도시가 되기 때문이죠. 그 공동성을 이루기 위해서 각각의 개발보다 같이 개발하는 게 좋겠다는 것, 오랜 시간을 두고 만들어지는 재래식의 도시개발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개념으로 개발하자는 것인데 실행과정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각 입주자가 소유권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여러 가지 부차적인 문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칙에는 동의를 하나 디테일에서 고정관념을 쉽게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이죠. 사실 아무 문제가 될 것도 없었는데 결국 개별로 설계와 공사를 하게 되었어요. 원래는 (단지 내) 블록 아키텍트가 큐레이팅을 하고 다른 건축가들과 설계를 나누어 맡아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입주자들의 합의가 쉽지 않아서 시범 사례로 저희 아르키움이 건물 3개를 다 하게 되었어요. ‘파티’는 그중 뒤늦게 입주가 결정되어 마지막으로 만들어졌지요.

박성태 건물이 아직 시공 중인 것 같은 인상입니다.

김인철 날개(‘파티’의 교장)2 안상수 선생이 설계를 부탁했는데 급자기 결정된 일이라 자금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설계비 중 계약금만 치르고 잔액은 10년에 걸쳐 분할상환으로 갚겠으니 10년짜리 설계계약을 하자고 했어요. 그렇다면 나도 일반적인 건축방법이 아니라 대안적인 방법으로 공간의 틀만 정하고 완성은 ‘파티’의 스튜디오 작업과 그것이 집적되는 시간에 맡기자고 했지요. 그리되어서 나는 설계자의 의무와 권리를 10년 동안 확보한 셈이 되었어요. 준공과 개교를 했지만 여전히 공사 중이라 계속 보아야지요.

박성태 유사이래로 처음 있는 일 아닌가요?

김인철 아마 그럴 거예요. 그렇게 계약을 하고 곧바로 설계를 시작하는데, 안상수 선생이 부탁이 있다고 했어요. “학생들을 설계에 참여시켰으면 좋겠다.” 그래서 워크숍을 하기로 했어요. 워크숍은 내가 건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과제를 주면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만드는 식이었어요. 재미있었던 것은 제가 워크숍을 하기 전에 이미 설계의 구상을 만들어놓았지만 학생들에게 보여주지는 않았는데, 아이디어 단계에서 동준모 군이 본인이 사는 집을 분석해서 ‘깍두기’라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우연이겠지만 준모 군의 아이디어는 내가 만들려던 것과 다르지 않았어요. 결국 ‘파티’의 설계 개념은 ‘깍두기’입니다. 이 공간은 한 면이 18m씩인데 그것을 6m 폭 3개로 나누면 9개의 판으로 만들어지니까, 5개 층의 판을 연속해 이어서 15m 높이의 45층 건물을 만들게 돼요. 

각각의 판은 칸막이 없이 높이의 차이만으로 하나의 오픈 스튜디오가 됩니다. 대학에서의 수업을 학년별로 나누기보다, ‘나는 이번 학기에 실크스크린을 하겠다’ 하면 실크스크린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1–4학년 학생들이 한군데 모이는 거예요. 1학년은 2학년한테 배우고, 2학년은 3학년한테 배우고, 3학년은 4학년한테 배우면 지도교수는 4학년만 가르치면 되지요. 그렇게 하려니까 교실은 구획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구획 없이 전체 45개의 교실이 한 통으로 이어지게 하면 학생들이 자유롭게 오가면서 서로의 관심 분야에 따라서 이합집산이 가능하게끔. 그러다 보니 건축적인 틀은 있지만 구획의 틀이 없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었어요. 이것이 ‘파티’의 기본적인 구성입니다. 그리고 그 공간은 학생들이 스스로 변형시켜 나갈 것인데, 다른 건축가들이 참여해서 지도하다 보면 다른 생각들도 들어가겠지만, 뭐가 되더라도 좋다고 생각해요. 

동준모 작년 8월에 김인철 선생님이 오셨길래, 선생님이 우리 학교를 지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마침 제가 ‘서울시건축포럼’에서 선생님 강의를 들어서 직접 설계하신 〈어반하이브〉랑 〈질모서리〉를 가봤고, 우리 학교도 대략 그런 느낌이겠구나,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겨울이 되어 실제로 설계 워크숍에 참여했는데, 의외로 감이 잘 잡히지 않았어요.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 스케일을 전혀 알지 못해서 제가 잘 아는 공간과 비교를 해 보고 싶었거든요. 그게 저희 집이었어요.

김인철 이 친구는 건축 전공이에요. 

동준모 잠깐 다른 학교의 건축학과를 다니다가 ‘파티’로 건너왔어요. 제가 사는 집이 5층 다세대주택인데, 위성지도를 보니까 정확하게 18×18m였어요. 실제로 학교 옥상을 걸어보니 가로세로가 각각 열여덟 걸음 열여덟 걸음이어서 비슷한 정도의 공간이 나오겠구나 했어요. 그런데 저희 집은 전형적인 다세대주택이라 출입구나 통로가 하나여서 이웃 간에 만나는 공간이 하나밖에 없어요. 우리 학교 건물도 저희 집이랑 규모가 비슷할 텐데, 저희 집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 즉 입주민들이 서로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이 학교에서는 해결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김인철 선생님께 학생들이 서로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저희가 학부 과정인 한배곳 1, 2, 3, 4학년, 대학원 과정인 더배곳 1, 2학년 있어서 학생이 총 100–120명 정도 됩니다. 이들이 모두 5층 건물에 들어오면 비좁을 테니까 어떻게 하면 공간을 좀 더 넓게 사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공간을 잘게 나누면 표면적이 늘어나서 느낌으로라도 넓게 공간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했고, 그러한 내용을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김인철 지금까지 우리는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공간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것이 모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동선이 길더라도, 또 헛 공간이 생기더라도, 여백과 여유가 있어야 좋은 공간이 되지요. 구체적인 예로 외부에 회랑을 돌아가게 했어요. 소위 툇마루처럼 서로 만날 수 있고 부대낄 수 있는 공간인 거죠.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번에 올라가거나 계단으로 목적지만 가는 것보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서, 다른 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무슨 공부를 하는지 다 알게 되고, 쉬는 시간에 발코니로 나오면 옆 반 친구들과 만나 서로 의견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박성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생겼네요. 어느 정도까지 학생들의 개입을 허용하셨나요? 벽을 뜯어도 괜찮나요?

김인철 덕분에 담배 피는 커뮤니티가 생겼죠. (웃음) 벽을 뜯는 것도 상관 없어요. 오히려 벽을 뜯는 것을 전제로 설계하고 시공한 거니까요.

김성진 저는 아르키움에서 〈이상집〉의 설계와 감리를 담당했고, 이번 학기에 ‘공간 변형’ 워크숍을 맡아 2주간 진행했습니다. 콘크리트 틀 안에 샌드위치 판넬이 있는데 뜯으라고 만든 가벽이니까 학생들에게 그것을 뜯어서 문을 만들 수도 있고, 창문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무엇을 붙이는 것도 된다고 했죠. 회랑의 난간도 공간으로 활성화 되려면 다른 기능이 포함되어야 좋겠다고 했더니, 자연스럽게 네 가지로 카테고리가 나뉘었어요. 벽 팀, 칠 팀(스텐실 기법으로 외벽 담당), 이끼 팀(본래는 녹화 담당이나, 벽면에 이끼를 심고 화단에 나무를 심는 등의 활동으로 붙여진 이름), 난간 팀이 만들어졌어요.3 저는 2주간 옆에서 지켜봤고, 각 팀이 기술적인 자문을 구하면 도와주는 정도였습니다.

마음껏 만들 수 있는 공간

김인철 성진 군이 ‘파티’에서 진행되는 스튜디오를 맡는다고 하기에 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하나 궁금했어요. 벽에 창문을 낸다든가 하는 식의 변형을 시작한 것인데, 학생들이 처음에는 ‘새 집에 그림을 그려도 돼? 뜯어도 돼?’ 하며 손 대는 것을 어려워했다고 해요. 집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게 있는 것이죠. 안상수 선생과 처음 이야기 한 것도 벽에 캘리그라피를 해도 되고, 색을 칠하든 재료를 바꾸든 마음 대로 하자는 것이었어요. 난간도 가장 저렴한 재료로 안전에 이상이 없게만 일단 가려 놓고, 차후 바꾸어 만들어보라고 했지요. 디자인에 따라 난간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각각의 난간이 하나의 그림이 되겠지요. 그래서 ‘파티’의 한 학기가 끝나면 수업 결과로 건물 전체가 전시품이 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무엇이 될 지는 모르지만 디자인 수업의 결과가 건물에 더해져 표현되는 것이지요. 워크숍에 참여했던 나여래 양의 생각이 궁금해요. 실제로 해보니까 어땠어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했는지? 

나여래 이 수업은 제게 굉장히 중요한 수업이었어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야 제가 〈이상집〉 혹은 ‘파티’ 전체를 얼마나 힘들게 여겼는지를 처음 알았거든요. “자, 이제 마음껏 하셔도 됩니다” 라고 말씀해주셨을 때도 막상 시작하려니 마음 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문을 담당하는 팀이었는데, 다른 팀들도 모두가 같이 사용하는 공간이니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것이 고민이자 걱정이었어요. 

저는 제 책상 바로 뒷공간에 문을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공간’ 혹은 ‘공용공간’을 해친다는 부담이 덜했어요. 그런데 그나마도 마음이 또 편치는 않은 게, “내가 문을 뚫었는데 문을 잘못 달아서 바람이 들면, 그건 다 내 책임인데 어쩌나? 괜한 일을 벌리는 게 아닌가?” 싶은 고민이 또 들더라고요. 아이들도 작업을 신기해하면서도 혹시 바람 들지 않나 염려했고요. 그런데 제가 경험이 없으니 뭐라 안심시켜 줄 다부진 말도 할 수가 없으니 부담이 컸어요. ‘파티’에서는 ‘학생들이 마음껏 만들어가는 ‘파티’’라고 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는 ‘아, 그렇지. 내가 그래서 ‘파티’에 들어왔지’ 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실제 생활의 영역으로 좀 더 자세히 들어가면 마음껏 하기가 어려운 거죠. 나만 쓰는 공간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이것이 매우 큰 기회라는 것은 알았어요. 부담이 크면서도 앞으로 살면서 학교 혹은 이미 지어진 건물에 구멍을 뚫어서 문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여간해서는 없을 테니까요. 게다가 저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인데, 이 프로젝트는 곁에서 지도를 해주는 사람(instructor)이 있는 워크숍이었으니까요. 이끼 팀이나 스탠실 팀도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처음 회의 때는 감이 안 잡히는 거에요. 워크숍 초반에는 스승이 보여주신 〈토레 다비드〉를 보고 ‘와, 정말 멋있다. 저런 것 하고 싶다’ 했다가도, 정확히 내가 뭘 구현하고 싶은지 모르는 채 어영부영 회의를 했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이야기가 나오면서 저는 문을 뚫고 싶다고 했죠. 문 작업이 품은 많이 들 수 있지만, 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반드시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그런 쓸데 없는 것들이 사실은 인생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문을 뚫는 일을 몰랐기 때문에 다소 무모하지만 하겠다고 한 것 같아요. ‘파티’에서 몇 개의 워크숍을 통해 ‘일단 어떻게든 하면 된다’는 배움도 있었고요.

사전 워크숍 이후 직접 제작을 하는 파주타이포그라학교 배우미들 / 자료 제공: 아르키움

건축은 명사가 아닌 동사

김인철 나는 이번 기회에 ‘건축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답도 얻고 싶었어요. 요즘 경기대학교 이종건 교수와 이야기하면서 만들어진 것 중 하나가, ‘건축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거에요. 건축은 행위를 지칭하는 동사이고, 그 행위로 만들어진 결과가 명사인 건물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동사에는 과거형, 현재형, 미래형이 있고, 현재진행형도 있는데, 나는 건축을 과거형이나 미래형보다, 현재진행형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해요. 

‘건축을 한다’는 것은 그 건축으로 이루어진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조직하는 것인데, 그 일상은 고정된 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비확정적인 것이죠. 건축은 그 변화를 계속해서 따라가며 변환할 수 있어야 진정한 건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파티’라는 10년 프로젝트를 통해서 이것이 어떻게 적응해 나가는지 실험해 보려 하고, 그 변형을 ‘진화’라는 개념으로 보고 싶어요. 한번 해 보고 아니면, 새로 해볼 수도 있겠지요. 문을 이렇게 뚫었는데 불편하니까 조금 더 다르게 뚫어본다든지, 색이 마음에 안 들면 바꿔보든지 하는, 소위 실험들이 계속 일어난다면 정말 재미있는 결과로, 그것도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과정적인 완성으로 계속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문제는, 학생들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소극적이라는 점이에요. 디자인은 어떤 재료를 써서 표현하는 것이니까 재료에 대한 물성을 과감하게 실험을 해본다든가 덧새길 수도 있고, 텍스처를 바꿀 수도 있고, 아니면 콘크리트, 벽돌, 블록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보고, 혹은 담쟁이를 얹어서 자연스러운 난간을 만든다든가 아니면 조형적인 제안을 할 수도 있겠지요. 어떤 아이디어든 수용할 수 있으니 그런 쪽으로 학생들이 실험정신을 가지고 도전을 하면 세계에서 볼 수 없는, 또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의미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어요. 건축가 없는 건축인 〈토레 다비드〉는 디자인의 의도 없이 일상적인 필요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었잖아요.

박성태 찰스 젠크스가 최근에 쓴 책에서, ‘모더니즘은 규격화된 공간들을 대규모로 제공하는 것인데 포스트모더니즘은 그것을 극복하려고 했지만, 사실은 실패했다’고 했어요. 그 책에서 주장하는 새로운 생각은 남이 우리에게 주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드는 공간이어야 한다며, 스스로 만드는 공간의 가치들에 대해서 쭉 나열했어요. 그 책을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번 작업이 그것과 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준모 학교는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주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방향성을 찾아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공간도 잘 해석되어서 틀이 나오면 그 안에서 헤집고 나오며 덧붙여지는 과정이 쌓여나갈 텐데, 공간에서 배울 수 있는 지혜들을 학습해서 우리 학교에 실험하고 문제점들을 찾아내 만들어나가면 좋을 것 같았어요. 김인철 선생님께도 질문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희 팀에서 1층에 카페와 실기실을 목수분들이랑 같이 만들었어요. 다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일차적으로 주방 시설과 카페, 그리고 그 위에서 회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인철 지난번 집들이하는 날 학생들이 추가해서 만든 것을 봤는데, 사실 제가 기대한 것만큼 과감하지는 않았어요. 처음부터 과감해버리면 부담스러웠을 테니까 시작은 그런 정도로 무난하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개념적인 접근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문을 뚫을 때, 문이라는 것의 개념이 무엇인지에서 출발해 스터디 끝에 결과가 만들어지면 같은 문이라도 좀 다르지 않을까 해요. 지금 만들어진 카페와 교수실은 사람이 많아서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파티’답지 않다는 것이에요. 그저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것이 재현된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동준모 변명일 수도 있지만, 저희는 과감한 실험도 실험이지만 일부러 실험을 덜 하려 한 것도 있어요.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패턴 랭귀지』나 『영원의 건축』을 보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누구나 안락하게 느끼는 패턴들이 몇 가지 있다는 거죠. 저희는 창가의 허리춤 선반이라든지, 알코브(alcove)라든지, 또는 출입문을 열고 바로 공간에 들어갈 것을 중간에 한 번 끊고 중간 공간을 통해 들어가도록 하는 것 등을 차용해서 실험을 해보고자 했어요. 곳곳에 노대(발코니)가 돌아가는데 그쪽에 알코브 공간을 만들어서 지금 노대의 바깥 공간을 좀 더 내부로 흡수하는 실험을 해보고 싶어서 이번에는 그렇게 풀긴 했는데,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끼리 하다 보니 약간 실수하는 부분도 있긴 한 것 같아요.

〈이상집〉의 완공 초기 입면 / 자료 제공: 아르키움

스스로 만들어가는 공간

김인철 이 건물은 외부에 골조가 있고 바닥의 판들이 높이가 변하며 이어져 있어요. 회랑을 1.2m 폭으로 남겨두고 벽을 설치했는데, 벽은 샌드위치판넬로 단열 규정만 맞추어 세워놓은 거예요. 공부하다가 ‘여기에 빛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싶으면 창을 뚫으면 돼요. 

박성태 외부에서 봐도 계속 변화하는 게 보이겠어요.

김인철 무엇이든 가능해요. 코너에 창을 넣든지, 개구멍을 파든지, 아니면 위를 자르든지, 〈어반하이브〉처럼 구멍을 뻥뻥 뚫든지… 샌드위치판넬이 거북하면 그것도 떼어버리고 다른 벽을 세워 놓든지, 벽돌로 쌓든지, 블록을 올리든지 아니면 합판으로 해보든지, 또는 철거하는 곳에서 폐자재를 모아 활용하든지, 다양하게 마음껏 하라는 것이죠. 화장실의 경우도 지금은 화장실의 기본 기능만 하도록 만들어 놓은 건데, 벽의 색을 바꾸어볼 수도 있고, 재료를 다른 것으로 실험해볼 수도 있어요. 냉난방 시설도 없습니다. 학생들이 그 공간에서 여름과 겨울을 지내면서 지혜를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디를 열고 어디를 닫으면 시원할지 따듯할지, 어디를 열면 바람이 통하고 빛이 퍼진다는 것을 찾아내지 않을까요? 경험들을 통해 해법들을 스스로 찾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게 진정한 공부가 아닐까요? 난로를 만들어보고 선풍기를 디자인 해보는 것까지요.

박성태 선생님이 꿈꾸는 10년 후 ‘파티’의 모습은 어떤 건가요?

김인철 제가 상상할 수 없었던 게 만들어지는 것이죠. 나를 흥분시킬 수 있는, 나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 만들어지길 원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예상했던 것을 보면 감동하고 흥분하지 않아요. 내가 상상해보지 않았던 것,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경우를 만났을 때 감동하거나 흥분하죠. 그것이 창작의 즐거움이고 보람이겠지요. 새롭지 않으면 어떻게 감동을 만들어내나요? 내가 익숙한 것에서 감동을 할까요? 물론 일상적인 것에서도 감동할 수 있으나, 소위 말하는 창작이라고 하는 것은 창안해서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이미 있었던 것을 다시 만든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내가 기대하는 것은 나도 상상하지 않았던 것, 내 상상을 뛰어넘은 결과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박성태 동준모 군의 공간은 어떻게 만들고 있나요? 선생님께 자랑한다면?

동준모 저는 곧 졸업이라 자리를 빼야 하기 때문에 공간은 만들지 않고 있어요. 옛날에 사용하던 제도책상이 제 책상인데, 거기에 덧붙여서 흑관으로 만든 프레임 하나가 있습니다. 곧 졸업하면 쫓겨날 신세라 지금은 배치하지 않고, 다음에 들어올 학생들을 위해 비워놓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다른 공용공간을 계획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박성태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동준모 다소 고리타분할 수도 있는데요. 다양한 실험은 저 말고도 다른 분들이 많이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 더 정제되고 지금은 잊힌 공간들을 찾고 싶습니다. 지금은 다 뚫어놔야지 시원하고 좋다고 얘기를 하지만, 오히려 막혀 있을 때 아늑한 공간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그런 공간을 잃어버렸고, 또 잊지 않았나 싶어서요. 저는 그런 공간들을 적재적소에 패턴들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아르키움과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학생들의 워크숍 전경 / 자료 제공: 아르키움

마음껏 만들 수 있는 공간

박성태 한 면이 세 개의 레벨이 있잖아요. 세 개의 레벨이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김인철 한 레벨에 스튜디오가 하나 씩이에요.

박성태 세 개의 스튜디오가 한 면에 있는 건가요?

김인철 그런데 그게 합쳐져서 2개의 스튜디오가 될 때도 있고, 3개가 될 수도 있고, 4개가 될 수도 있어요.

동준모 각 층마다 나누어진 단의 높이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단 하나의 높이는 34cm인데, 층 하나 당 7개의 단차가 나는데, 한 층의 천장 높이가 2.38m 이거든요. 그런데 그 높이가 애매하게 앉아있기도 좋고, 밑에 앉아서 팔 걸치기도 좋은 정도여서 저는 그 공간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래서 단차를 살리고 연장해서 두 스튜디오로 사용하기도 하고, 그 높이 만큼 올려서 좌식 공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박성태 그건 선생님의 감으로 결정하신 건가요? 

김인철 아니, 그것은 숫자놀이였어요. 건물의 전체 높이가 15m인데 파주는 최고높가 15m로 제한이 있어요. 그것을 45단으로 나눈 것이지요.

동준모 저희는 웬만해서 좌식 공간이나 단차 공간을 만든다고 하면 높이를 34cm로 통일해요.

나여래 강의실로 사용하는 공간이 가운데에 있어서 저희가 길을 헤매지 않을 수 있어요.

김성진 층의 구분이 모호한가 봐요. 지어지고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파티’ 관계자들에게서 메시지가 많이 왔어요. 사진 찍어 보내면 여기가 몇 층이냐고? 저는 계속 있었으니까 익숙한데 처음 접한 분들은 낯설어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제게 일련번호 매기는 방식을 제안해 달라고 하셔서, 문에 1A, 1B라는 식으로 넘버링을 했습니다.

동준모 에피소드가 매우 많았습니다. 학교 내부에 공간 배치하고 이런 작업을 도왔는데 그때 “너 어디야? 3층으로 내려와” 하면 서로 돌면서 못 만나고, 결국에는 밖에서 만나 같이 올라가고 그런 게 많았습니다. 그리고 내부를 어떻게 꾸밀까를 모델링 한 것을 토대로 배치하다 보면 스스로도 너무 헷갈렸습니다. 다 똑같은 공간인데 45개 층이니까. 그래서 다시 지우고 새로 배치하고 이런 과정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적응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그래서 오히려 친구들과 많이 부딪혀서 “너 여기 왜 또 왔냐?” 이런 식으로 대화 한마디도 더 할 수 있었습니다.

나여래 “우리 교실로 가자” 하고 빙글빙글 건물을 돌아서 계단을 이용해 내려가다가 다 왔는 줄 알았는데 4학년 교실이라 “죄송합니다” 하기도 해요.

박성태 계단으로도 동선이 작동할 수 있지요?

동준모 바쁠때는 다 동선으로 사용하지요.

나여래 정말 빙글빙글 돌아서 옥상까지 갈 수 있는 구조라서 운동이 많이 돼요.

박성태 ‘파티’의 〈이상집〉을 비롯해 한 블록 안에 선생님의 작업들이 모두 같이 있습니다. 그 블록 안에서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의 무엇이 있나요?

김인철 그 공통의 것은 세 개의 건물 사이에 있는 사이 공간들인데, 그것을 각자의 욕심대로 만들어버린 탓에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감각이 만들어지지 않아요. 조경으로라도 공간적인 흐름을 만들려고 했는데, ‘파티’만 내 뜻대로 따라오고 이웃은 관심이 없어요. 우리는 아직도 제집만 생각하고 자기 집이니까 자신이 결정권을 갖는다고 생각해요. 건축가에게 일임한다는 인식과 그럴 수 있는 용기를 여전히 만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10년간 채워가는 학교

분량11,411자 / 20분 / 도판 3장

발행일2016년 7월 31일

유형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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