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자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음속에 간직한 그립고 정든,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된 (곳)
로와정
분량1,450자 / 3분 / 도판 8장
발행일2016년 7월 31일
유형포토에세이
고향 (故鄕) [명사]
-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된 곳
부산이었던 것 같다.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새벽. 뒷좌석에서 잠을 자다 한강을 지날 때 눈이 떠졌다. 그때 올림픽대로 (아마도)를 달리고 있었는데 차창 밖 풍경을 보았다. 어슴푸레 해가 뜨기 직전 드문 불빛과 가로등 위로 안개가 내려앉고 있었고 태어나서 처음 이곳이 아름답다 느꼈다. 새벽의 한강 풍경을 보는 일이 초등학생에겐 드문 일이었을 테니. 그 후론 잊었고. 빠르다는 속도를 느끼지도 못할 만큼 사정없이 변하는 서울은 언제나 타박할 거리가 넘치는 대상이었다. 아름다움의 기준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편리함과 새롭지도 않은 새로움만 고집하며 변신하는 서울을 떠나고 싶었다. 혹시 요즘 아이들의 변신로봇 장난감을 보았는지. 예전의 그것은 내 손으로 하나 접고 하나 펴서 착착 들어맞아 가는 변신의 과정을 지켜보며 희열을 느꼈는데. 이제는 한 손으로 버튼을 누르면 쫙하고 접히고 열리며 변하더라. 서울은 그런 매력 없는 변신로봇 같았다.
그런데 얼마 전. 잠시 서울을 떠나있다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간판에 서울표시가 보이고 익숙한 도로에 들어서자 마음이 편해졌다. 이상하다. 분명 여기를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싶어 했다. 고층건물이 드물어 고개를 쳐들지 않아도 하늘이 보이고 밤이면 어둠이 있는 조용한 곳을 원했는데 이상하다. 애증이 너무 오래된 걸까. 이곳을 바라보며 반항하고 회의하던 마음은 언제부터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변했다. 가끔 차를 타고 내가 태어난 동네 길이나 유년시절을 보낸 곳을 지날 때면 이상하게 아랫배가 간질거린다. 좋고 나쁨으로 가를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골목길을 다녀볼까 해도 고층아파트를 뚫으며 걸을 수는 없기에 포기한다. 그런데 사실 그곳은 고향이 아니던가. 티브이에 나오던 전원의 푸근한 고향의 이미지와는 다르지만 명백히 서울은 나고 자란 나의 고향이다. 태어나 한 번도 서울을 떠나 지낸 적 없는 나의 대부분의 기억은 서울에 있다. 이제야 고향을 찾아온 기분이다. 서울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을까. 온갖 종류의 문제가 많은 서울은 문제의 씨앗을 안고 사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나고 자란 고향이다. 서울의 형태가 기억과는 많이 변했지만 사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서울이 변한 것은 아니지 않나.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겉에서 속까지의 알 수 없는 거리. –깊이 나의 면과 그에 평행한 서울의 맞면이 점점 더 넓어져간다는 사실. –두께
나이가 차고 처음 찾은 고향에게 개인적인 취향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더라. 싫은 면은 싫은 대로 받아들이고 맘에 드는 구석은 마음껏 좋아해야지. 마음을 달리 먹으니 눈도 너그러워진다.
로와정
2007년 노윤희, 정현석으로 구성된 미술가이다. 그들은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관심사를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룰지에 대해 열려 있으며 직접보다는 간접,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을 선호한다. rohwajeong.com
태어나서 자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음속에 간직한 그립고 정든,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된 (곳)
분량1,450자 / 3분 / 도판 8장
발행일2016년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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