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vol10-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예술가의 내면은 없다

박찬경 × 허윤

올가을 서울시립미술관은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를 개최한다.1 이번에 총연출을 맡은 예술감독은 <독일로 간 사람들>, <신도안>의 작가이자 <파란만장>, <만신>의 영화감독 박찬경이다. 억압된 한국현대사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작가로서 박찬경은 다양한 아카이브를 활용, 미디어를 작품세계에 끌어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계획하고 있는 <미디어시티서울> 2014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찬경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서 냉전, 남북관계, 한국의 전통 종교문화, 역사의 재구성 등을 주제로 다뤄왔다. 주요 영상 작업으로는 <신도안>(2008),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2011), <파란만장>(2011, 박찬욱 공동감독), <만신>(2013) 등이 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미국 로스앤젤레스 레드캣, 독일 슈투트가르트 슐로스 솔리튜드 아카데미 등 세계 전역에서 다수의 전시에 참여한 바 있으며,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2004),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영화부문 황금곰상(2011),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장편경쟁부문 대상(2011) 등을 수상했다. 대안공간 풀 디렉터를 역임했고, 《포럼 a》, 계간 『볼』의 편집위원을 맡으며 미술언어를 새롭게 생산하는데 힘쓰고 있다.

인터뷰어 허윤  허윤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했으며, 1950년대 한국소설과 남성성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 『젠더와 번역』 등의 공저가 있으며, 「1930년대 여성 장편소설의 모성담론 연구」, 「1970년대 여성교양의 발현과 전화」 등의 논문이 있다. 1950~70년대 대중잡지와 여성잡지 등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망딸리떼와 정동을 살펴본다는 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허윤  분단, 파독광부, 무속, 신종교 등 한국현대사를 키워드로 작업해온 작가 박찬경으로서는 이번 <미디어시티서울> 2014의 예술감독 자리가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어떻게 감독직을 맡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박찬경  2012년 ‘페스티벌 봄’에서 <만신>의 전작인 단편을 상영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와 관련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아시안 고딕’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는데, 당시 서울시립미술관의 김홍희 관장님이 강의를 보시고 이 컨셉으로 전시를 기획해보자고 제안하셨다. 이 전시가 기획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디어시티서울> 2014로 이어졌다. ‘아시안 고딕’이라는 주제가 아시아 작가나 관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울시립미술관과 통하는 지점이 있었고, 이를 통해서 아시아를 특징짓는 프레임을 만들려고 시도한 결과이다.

허윤  본인이 작품을 만드는 것과 여러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조율하는 감독의 역할을 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박찬경  주로 작가로 활동하긴 했지만, 그 전에도 글 쓰고, 큐레이팅 하고, 국제전시도 참여하고, 저널도 만들어왔기 때문에 아주 낯선 작업은 아니다. 내가 만든 작품도 전시장에 다른 작가의 작품을 빌려온다든가 다른 작가들의 자료를 카피해서 쓴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큐레이터와 작가의 경계가 명확한 작품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예술감독이 된 지금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예술감독은 행정업무와 펀딩 등 작가가 흔히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시를 기획해보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규모가 큰 전시도 처음이라서 부담이 있기도 하다. 사실 제일 힘든 것은 작가의 입장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 거꾸로 작가들에게 듣기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경우이다. 그 점이 심리적으로는 가장 어렵다.

허윤  그동안의 <미디어시티서울>은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뉴미디어아트를 소개한다는 측면이 강했는데, 올해의 경우에는 테크놀로지보다는 메시지에 중점을 둔 것 같다. 어떤 차이가 있나. 

박찬경  지난 2010년 제6회 <미디어시티서울>은 뉴미디어아트 중심의 전시를 과감히 포기하고 일반 비엔날레로 기획했다.2 이번 비엔날레는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뉴미디어로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비엔날레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기존의 여타 비엔날레도 미디어아트가 거의 80%에 달한다는 점에서, 미디어아트를 비엔날레의 차별성으로 삼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리고 뉴미디어아트가 예술적 장르로서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뉴미디어아트가 세상에 나온지 벌써 20~3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매체 자체에 희망을 갖기 보다는 내용에 좀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미디어나 테크놀로지를 다 버리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미디어아트가 보편화되었다는 전제 위에서 내용에 충실한 전시를 하려는 것이다. 

허윤  이번 <미디어시티서울> 2014의 기조는 ‘귀신, 간첩, 할머니’이다. 박찬경 감독의 작품세계를 체험한 적이 있는 관객들에게는 익숙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낯선 조합일 수 있다. 이전의 <미디어시티서울>의 기조들과 비교해보아도 그야말로 ‘새롭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박찬경  일단 셋 다 비가시적 존재들이다. 간첩은 아예 숨어 있는 존재, 귀신은 보이지 않는 존재, 할머니는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계층이다. 그런데 이들은 가시적이지는 않지만,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존재’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귀신은 과거를 알고 있고, 간첩은 정보원이자 밀정으로서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 할머니는 역사의 증인으로서 많은 것을 겪어온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잘 보이지 않지만 많은 것을 체험하고 알고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 ‘귀신, 간첩, 할머니’의 표상은 우리가 아시아를 주제로 하다 보니 아시아의 식민지 경험, 혹독한 냉전, 급속한 서구화 등 19, 20세기 역사를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기도 하다. ‘귀신’은 역사에 등록되지 않은 존재들이 어떻게 과거의 말을 할 수 있느냐, 역사에서 누락된 것을 어떻게 다시 끄집어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간첩’은 냉전과 관련되어 있다. 남한사회는 간첩문화에 익숙하다. 이는 남한만이 아니라 1차 세계대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아시아 지역에서 강력한 영향을 미쳤던 냉전의 표상이다. 냉전심리, 정치, 희생양들과 같은 주제를 통해 이데올로기적 마녀사냥, 반공교육, 위키리크스, 은행 해킹 등까지 연결시켜 볼 수 있다. ‘할머니’는 아시아 여성의 시간을 의미한다. 여성을 이 험악한 시간을 견뎌온 소수자로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전쟁을 체험하고 그 속에서 삶의 길을 찾아나간 여성들의 이야기는 현재적 관점에서도 의미 있을 것이다. 최근 밀양에서도 그렇듯이 우리의 역사에는 할머니들이 나서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다. 또 동시에 기도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있다. 젊은 남성들의 사회와 대조적인 할머니의 염원과 인내, 간절함, 삶의 증인으로서의 면모를 보고 싶었다. 할머니는 무당, 노파, 마녀까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이야기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허윤  일본 종군위안부와 기지촌 군위안부에서부터 밀양의 할머니들에 이르기까지 싸우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구술사나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미디어시티서울> 2014에서 할머니에 대한 표상, 혹은 재현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인가.

박찬경  우리가 ‘귀신, 간첩, 할머니’를 기조로 잡았지만 이들을 소재로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냉전, 역사, 여성을 표상하는 키워드로 사용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김수남 선생의 사진을 보면 무당도 등장하지만, 거기에 참여한 많은 여성들과 할머니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나이토 마사토시의 사진에도 주로 할머니들이 나온다. 또 <밀양전>, <낮은 목소리 2> 등을 상영할 예정인데, 사실 할머니에 관한 글이나 문화적 재현물이 풍부하지 못해서 어려움이 있다. 귀신과 간첩은 많은데, 할머니는 많지가 않다. 그렇지만 할머니를 아시아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인내와 싸움의 주체로 보는 시선을 견지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윤  이전의 <미디어시티서울>이 탈-민족적, 에스닉한 차원의 (포스트)모던한 느낌이었다면, 이번 기조는 ‘남한’의 망딸리떼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것은 미디어를 이용하여 역사를 조망하는 박찬경의 작업 방식과도 통할 것 같다.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여기, 남한’의 지역성을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박찬경  비엔날레를 할 때는 그 지역의 지역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호스트이기 때문에 우리의 입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우리가 아시아 지역에서 비엔날레를 하기 때문에 남북문제와 같은 국가 간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지역과 지역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사적인 차원에서 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이 반영된 전시이지만 여기와 다른 지역 간의 관계를 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을 예정이다. 한국 작가가 북한과 아프리카의 관계를 다룬다든가, 프랑스 작가가 일본과 레바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주목하는 것과 같은, 지역 간의 대화나 관계들, 국가를 넘어선 이야기, 국가를 초월한 관계를 다루고 싶었다. 간지역성inter-local, inter-regional을 통해 우리가 국가라는 틀 속에서 사고하는 방식을 깨는 것이다. 

허윤 박찬경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적절한 단어로 ‘액티비즘activism’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비판적 작가로서 박찬경이 생각하는 외연을 넓힌 공공을 위한 미술이란 무엇인가.

박찬경  과거에는 대안공간 풀이나 《포럼 a》, 민중미술 등의 활동을 했기 때문에 액티비즘이라는 말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액티비즘식의 활동을 그만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쯤이다. ‘너는 좌파니까 잘하겠지’라는 분위기 때문이랄까. 당시에는 오히려 활동할 여건이 별로 안 됐다. 그런데 거꾸로 보수 정부가 되면서 할 일이 많아졌고, 지금은 여러 강연이나 전시,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사실상 운동의 경험을 통해 미술가가 조직을 만드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을 모색했어야 하는데 그럴 만한 비전이나 지혜는 없었다. 그래서 작업을 통해서 이야기하려고 했다. 지금은 액티비스트라고 볼 수는 없지만, 작업으로 목소리를 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작업이 개인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개인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잘 이해를 못하겠다. 요새 사람들은 ‘그건 그 사람 스타일이지’라며 주관성이나 상대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나는 그게 예술에서 가장 안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술에 취미나 스타일이 개입할 수는 있지만, 작가의 내면적 주관은 중요하지도 않고, 진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공미술 이전에 미술 자체가 공공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이 사적이라고 하는 믿음은 낭만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따져보면 낭만주의 작가들도 공적인 부분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99%가 공공예술이다. 공공예술이 아닌 것이 어디 있겠나.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는 내면이 어떤 관계나 교류 속에서 생산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것을 내면이라고 하는 순간, 글이든 회화든 조각이든, 그 물적인 표현으로 인해 더 이상 내면이 아니게 된다. 그런 점에서 모든 예술은 공공예술이다. 개인적으로 나를 생각해봐도, 나한테 무슨 내면이 있나. 세상하고 접촉하면서 생겨나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공공이라는 말은 관官의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말 자체가 오용, 남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은 본래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한 것이다. 공공미술을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겠지만, 예술 자체를 공공적인 영역으로 확장하여 사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윤  예술은 ‘개인의 취향’이라는 상대주의적 태도에 대해 비판적 입장인 것 같다. 취향이나 내면성이 아닌 공공성으로서의 예술이라면, 예술에 좋고 나쁨이라는 가치를 붙일 수도 있나.

박찬경  나는 예술이 적어도 문화적인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무와 연결된 책임이 아니라 현실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깨우쳐주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 이론이나 저널리즘은 이러저러한 것이 잘못되었으니 이렇게 고쳐나가자고 말해야 한다. 예술은 그런 것과는 다르다. 예술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미학적인 세계는 그러한 현재의 현실과 완전히 단절해서 다른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술은 전혀 다른 세계를 구상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유토피아적 사고와도 관련이 있다.

예술가가 정말 개인적이라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위대한 예술가인지 아무도 모를 거란 말이다. 이는 결국 위대한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작가의 개인성이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고, 그 자체로 공공적이라는 뜻이다. 건축과 똑같다. 많은 사람들이 쓰지 못하면, 그게 건축으로서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가장 공공적인 예술로서의 건축을 보면 예술의 공공성이나 가치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허윤  <만신>이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꽤 많은 관객 수를 기록하고, 다양한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등 흥행과 비평적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작가로서의 박찬경과 영화감독으로서의 박찬경은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예술감독으로서 박찬경이 생각하는 <미디어시티서울> 2014의 목표 혹은 성공은 무엇인가.

박찬경  물론 관객 수도 중요하겠지만, 평균 매회 약 15만 명의 관객이 찾아온다. 관객층도 다양하다. 서울시민들이 지나다 들르기도 하고,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오기도 한다. 불특정 다수의 관객이 많기 때문에 관객 수는 크게 걱정이 안 된다. 지금 염려하는 부분은 비평적 문제제기이다. 전시는 항상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아시아에서는 그런 전시가 드물다. 우리 비엔날레 문화에서는 비교적 광주가 그런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고, <미디어시티서울>에서는 김선정 감독 때가 그랬다.

전시에서 문제제기가 부족한 것은 식민지와 냉전의 결과이기도 한데, 예술에서는 90년대부터 문제제기 하는 것을 피곤해하고 불편해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80년대의 미술은 문제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60, 70년대 아방가르드도 그렇지 않았다.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우리는 이슈메이킹을 하고 문제제기와 제안을 목적으로 한다. 냉전, 역사, 여성과 시간이라는 주제를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표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이 키워드는 아시아 전역에서 공통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번에 리앙李昻이라는 대만소설가를 초대하는데, 그녀의 『눈에 보이는 귀신』은 대만의 역사를 여귀의 시선으로 쓴 작품이다. 우리 주제와 딱 맞다. 여귀가 원혼을 통해 대만의 역사를 훑어가는 데, 이것은 작가가 현대사를 체험한 할머니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비엔날레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에서도 여귀 공포영화들이 있다. 일본에서는 대중적인 장르이고, 동남아시아에서도 많이 만들어진다. 공포영화, 괴담, 그림 등의 형태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J호러’는 일본사회의 불황, 걱정, 근심, 불안이 표현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상업영화라는) 자본주의 예술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균열,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무협영화가 있다. 무협영화에 보면 동양화의 기암괴석 같은 스펙터클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폐허나 재난,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관심 같은 것은 아시아 문화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처럼 ‘귀신, 간첩, 할머니’는 할 말이 많은 존재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조망하고 문제의식을 던지는 것, 이것이 이번 비엔날레의 ‘성공’이 아닐까.

허윤  영화 <만신>의 성공은 무당과 현대사가 아직 한국 사회에서 흥미 있는 ‘대중적’ 소재임을 입증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단편 <갈림길>에서부터 이 작품을 준비해온 감독 박찬경으로서는 더욱 뜻깊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제 <만신>의 성공이 앞으로 무엇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작가/감독으로서의 박찬경의 계획을 듣고 싶다.

박찬경  사실 지금은 비엔날레가 잘 되길 바랄 뿐이다. 비평적인 의미에서 <미디어시티서울> 2014를 성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비엔날레는 전시가 끝나고도 오랫동안 회자된다. 《카셀 도큐멘타》의 10, 11회가 좋은 예로, 당시 풍부한 자료가 나오고, 좋은 작가가 발굴된 예술행사로 기억된다. 이번 <미디어시티서울> 2014도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한 결과가 될 것이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할지는 사실 아직 모르겠다. 처음에는 상업영화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 좀 더 공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술이든 영화이든, 나 혼자 뭘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자부심도 무너지고, 어떤 면에서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 면이 있다. 무언가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된 게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사람들이 잊지 말자고들 이야기하지만, 이건 어려운 일이다. 이게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결국 세월호로 나타난 전방위적 문제점들을 장기적으로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가,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이냐의 문제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상업영화도 하고 싶지만, 심정적으로 마음이 움직이지가 않는다. 

우리 비엔날레의 기조인 ‘귀신, 간첩, 할머니’도 사실 세월호 참사 이전에 정한 타이틀인데, 세월호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서 그야말로 ‘정치과잉의 한국 사회’를 다시 확인하게 됐다. 세월호 이슈를 종북으로 모는 등의 정치과잉은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할 텐데, 이런 과잉은 실제 전쟁 세대가 사라지면서 이데올로기적 대립, 갈등에 대한 증거가 희미해지는 지점에서 나타난다.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무의미해지면서 이념갈등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시뮬레이션 되는 것이다.

과거에 냉전은 실제로 정치적인 함의가 있었고,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용 없는 갈등이다. 남한이나 북한이 각각 자기의 지지기반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갈등한다. 그래서 지금 간첩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훨씬 문화적인 것이고 이념이나 체계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 된다. 전쟁세대, 냉전세대의 기억이 사라지고, 정치 프로파간다, 문화화, 상징화만 남았다. 북한도 보면, 공산주의 국가라기보다는 일종의 거대한 가족국가, 극장국가로서 존재한다. 권헌익, 정병호 선생 등이 말했듯 극장국가로서의 북한은 대규모 카드섹션이나 공연이라는 프로파간다만 남은 국가이다. 프로파간다가 권력과 대중을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만 남은 형태이다. 그럼 남한사회는 어떤가. 남한 역시 뉴스, TV, SNS 등 다양한 미디어의 매트릭스가 내용을 지배한다. 냉전사회가 아닌 냉전극장이다.

허윤  세월호 참사에서도 이런 프로파간다의 문제와 이미지의 힘을 느꼈다. 실시간으로 내보내는 이미지들이 타인의 고통을 남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미디어의 발달이 오히려 사고처리를 방해하는 형국이었다.

박찬경  사실 제일 중요한 이미지는 아이들이 직접 찍은 이미지이다. 아이들의 이미지가 아카이브로서 가치를 갖고, 의미를 갖는다. TV에서 내보낸 것들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러니 테크놀로지만 가지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미디어가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은 낭만적 믿음이다. 미디어는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미술은 미디어 유토피아적 사고방식이 뉴미디어아트란 이름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이것도 순진한 발상이다.

허윤  그래서일까. 이번 <미디어시티서울> 2014의 아이덴티티는 뉴미디어나 테크놀로지라기보다는 오히려 고대 종교의 비의를 담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상형문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우로보로스의 뱀’ 같기도 하다.

박찬경  종교적 의미와도 통하게 일종의 부적과 같이 만들었다. 직각은 간첩, 흐물흐물한 곡선은 귀신, 밑이 풀린 것은 할머니를 형상화했다. 이 셋이 얽혀있는 아이덴티티는 이번 비엔날레의 상징이다. 이걸 스탬프, 스티커로도 만들어서 부적처럼 활용하도록 할 것이다.

이는 테크놀로지와 뉴미디어가 해소하지 못하는 기원과 절실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도 느꼈지만, 기도나 염원, 절실함에 대한 태도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고나 죽음 등은 사람이 자기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를 위한 종교의 공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절실함을 통해서 공감과 연민의 능력이 커지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닐까.

예술가의 내면은 없다

분량9,994자 / 20분 / 도판 5장

발행일2014년 6월 30일

유형인터뷰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