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돌
변상환
분량1,679자 / 3분 / 도판 4장
발행일2016년 7월 31일
유형포토에세이
비탈진 달동네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주택 골목을 따라 걷다가 순간 맞닥뜨린 거대한 암벽. 놀랍게도 서울 한복판에 기이한 암릉과 그 아래 작은 절 안양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새롭게 이사 온 동네와 친해지기 위한 산책길에서 마주한 안양암의 첫인상이다. 서울시 종로 한복판에 있는 낙산은 한양 옛 도읍의 좌청룡으로 산 대부분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제법 기운이 강한 골산이었다. 지금은 정상까지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 본래의 모습을 알 길이 없지만, 과거 낙산 정상에서 흘러나온 암맥이 남동 방향으로 힘차게 흐르다 평지와 만나는 암릉에 이 초현실적인 안양암이 자리한 듯 하다. 낙산의 동편에 이웃하고 있는 동망봉-숭인 근린공원에 오르면 꼬리뼈처럼 남아 있는 낙산의 안양암을 확인할 수 있다.
낙산 성곽 아래 창신동에는 커다란 절벽이 있다. 과거 채석장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절개지인데 이곳에서 떼어진 돌들은 시청과 총독부, 그리고 서울역이 되었다. 후에 폐허처럼 버려진 이 채석장 주변에는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지금의 밀도 높은 동네가 형성되었다. 가파른 낙산의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길 한편은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고, 다른 한편은 높게 쌓아 올린 축대 벽을 끼고 걷는 경험을 하게 된다. 평지의 축대라면 별 감흥이 없겠지만, 절개지의 언덕에 약 10m 높이의 축대 위에 집들이 올라앉은 모습은 마치 성곽을 보는 듯하다. 어색할 것 없이, 멀지 않은 낙산 능선에는 옛 한양 도성의 모습이 간직되어 있다. 태조이래 오랜 시간 동안 축성과 증축, 보수가 이루어진 고성古城의 역사를 연결하며 주택가 골목골목도 그 모습을 닮아 있다.


난데없이 주택 대문 앞에 놓여있는 큼지막한 바윗덩이, 코너 모퉁이 화강석, 맨홀 뚜껑을 지키고 있는 돌들이 최근 내 작업의 주인공이다. 마치 청량한 하늘을 배경으로 멀리 보이는 바위산처럼 항상 거기 있지만, 어느 순간 뜬금없는 존재감을 드러내며 내 발길을 멈추게 하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들. 철 지난 전원의 향수인가, 아니면 영험한 힘을 지닌 돌에 대한 정령신앙인가? 그것도 아니면 주차금지 표지판을 대신하는 주택 시공 당시 파헤쳐진 짱돌이란 말인가? 마치 이들은 시간을 박제해 놓은 듯 단단한 형상을 하고 분명, 여기, 묵직하게 존재하며 자신이 놓여있는 집과 골목의 과거와 현재를 묵묵히 증언하는 것은 아닐까?
돌을 좇아온 지금까지의 여정이 서울 시내 곳곳의 골목을 탐험지로 했다면, 앞으로는 범위를 좁혀 낙산의 창신동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본래의 바위산이 사라진 공간을 점유하는 주택가 돌들을 찾아다닐 것이다. 창신동의 매력은 (노다지 금광 보듯) 서울 어느 동네보다 이런 생뚱한 돌덩이를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낙산에는 없는 바위는 내가 오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어쩌면 앞으로의 작업은 그 부재하는 거대하고 무거운 돌산을 대신해, 내 걸음이 닿는 여기, 작지만 묵직하게 존재하는 돌들을 만지고 쓰다듬으며 그 좌표를 연결해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듯’.


변상환
사물을 관찰하고 다루는 작가이다. 동시대에 공존하는 여러 대상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와 그것이 담고 있는 역사를 시각화는 일에 몰두한다. 멀지 않은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오래되고 익숙한, 아슬아슬하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물들의 증언에 귀 기울인다. 작업을 통해 평평하고 납작하게 바라보던 동시대 풍경을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낙산돌
분량1,679자 / 3분 / 도판 4장
발행일2016년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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