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집으로의 귀향
탈랄 덜키 × 정재은
분량11412자 / 20분 / 도판 3장
발행일2014년 9월 30일
유형인터뷰
시리아는 3년째 내전 중이다. 중동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으로 촉발되어 민주화 운동과 종교 전쟁으로 확대되며 해결점 없이 계속되고 있다. 올해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에서 대상을 받은 <홈스는 불타고 있다Return to Homs>(2013)는 2011년 8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시리아 내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주인공은 국가대표 골키퍼 출신인 19세의 바셋 살룻. 그는 고향 홈스의 민주화 투쟁이 정부군에 의해 무력 진압되자 친구들과 총을 들었다. 이 영화는 바셋을 따라가며 참혹한 시리아 내전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아랍의 봄’을 다룬 그 어떤 다큐멘터리 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이유는 현실의 나열이 아니라 뚜렷한 서사를 발견해 재창조했기 때문이다. 영화제를 위해 서울을 찾은 탈랄 덜키 감독을 정재은 감독이 인터뷰했다.
탈랄 덜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출신인 탈랄 덜키Talal Derki는 아테네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로이터, CNN, 프랑스24 등에서 리포터로서 왕성히 활약한 바 있다. 시리아 혁명 이전에 만들어진 작품들은 다양한 영화제에 초청받았지만 그가 가족과 시리아를 떠나기 전까지는 가명으로 상영되어야만 했다. 시리아 혁명의 발발은 갖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모국을 위한 작품을 만들겠다던 그의 오랜 꿈을 현실로 옮기는 계기가 되었다.
인터뷰어 정재은 2001년 인천을 배경으로 스무 살 여성들의 우정과 성장을 다룬 장편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로 데뷔했다. 2003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옴니버스영화 <여섯 개의 시선> 중 <그 남자의 사정>을, 2005년에는 어그레시브 인라인을 타고 서울을 가로지르는 도시청년에 대한 영화 <태풍태양>을 감독했다. 도시와 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건축다큐멘터리 3부작을 기획해, 고 정기용 선생의 삶과 건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와 서울신청사를 다룬 <말하는 건축 시티:홀>을 개봉했다.
번역 김그린
✽ 본 인터뷰는 영화 주간지 <magazine M>의 주선으로 2014년 8월 29일에 진행되었다.
✽ 정림건축문화재단은 11th EIDF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의 ‘도시와 건축’ 섹션을 공동기획하고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정재은 감독님의 영화를 감동적으로 잘 봤습니다. 다큐멘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정말 다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탈랄 덜키 감사합니다.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연대기 순으로 어떤 영웅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하나의 전형적인 서사라고 봅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와는 다르게 풀어나가야 합니다. 픽션에서는 전형적인 형식을 따르지만 다큐멘터리는 아티스트이자 감독으로서 극영화보다는 자유롭습니다.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요소를 옮겨보고 바꾸어 볼 수가 있기 때문이죠. 사실 저는 다큐멘터리를 하기 전 극영화 쪽에서 일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촬영을 할 때 정보보다는 그 안에 있는 드라마에 흥미를 느낍니다.
정재은 저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할 때 관객을 감안해 스토리텔링의 중요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편입니다.
탈랄 덜키 관객들은 극영화에 비해 다큐멘터리 영화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큐멘터리는 관객이 평소 즐기는 형식의 영화 감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선입견을 가진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저 인터뷰들의 연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정재은 감독님은 저널리스트이고 액티비스트이기도 해서 드라마를 만드는 것에 매우 소극적일 수 있다고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군요.
탈랄 덜키 저는 속임수를 씁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것은 다큐멘터리 영화다’라고 인지하고 보기 시작하겠죠. 영화의 시작도 매우 전형적인 다큐멘터리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시작하고요. 물론 인터뷰도 있습니다만, 어느 순간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관객은 처음에 두 명의 인물을 만나는데 어느새 그들을 실시간으로 따라갑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저의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관객에게 생생한 현장을 보여고자 했습니다. 혁명, 내전이라는 상황 속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현실’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준다고 생각하니까요.
정재은 한국은 아랍과 중동에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특히 시리아 내전은 종교적인 갈등으로만 치부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영화는 시리아 전쟁을 “독재자와 민주주의를 원하는 대중, 젊은 사람들과의 전쟁”이는 뚜렷한 선을 만들었습니다. 저널리스트의 시각에서 볼 때는 그리 단순할 수는 없을 텐데요.
탈랄 덜키 사실 ‘시리아 내전은 이러한 전쟁이다’라고 하나의 관점으로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큰 그림을 보면 온갖 것이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죠. 이건 종파간의 전쟁이고, 민주화를 위한 전쟁이며, 국가의 내전이기도 합니다. 약탈과 살해, 정말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많은 외국인들 또한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 전쟁이 시작된 처음 2년을 담았어요. 저는 오히려 한국 관객이 시리아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이 영화를 본다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정치적인 질문을 하기 보다는 영화의 분위기, 인물들, 그 안의 갈등을 따라가 볼 것을 권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하나의 서사로 기획했습니다. 홈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서사영화 말입니다. 홈스의 사람들은 투쟁 중이고 군인도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을 준비를 하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마을과 가족을 지키고 있어요. <홈스는 불타고 있다>는 그들이 전쟁에서 패배하였으나 아직 용기를 잃지 않았으며 끝까지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안에서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적인 요소들을 많이 넣었어요. 운이 좋게도 기술의 발전으로 작은 카메라로 현장을 실시간으로 담을 수 있었죠. 사건 후의 인터뷰나 상황을 재연하는 극영화가 아니고요.
저와 프로듀서 그리고 에디터는 이 영화 기획 초기에 이런 얘기를 했어요. “이 영화를 정말 이해하기 쉽고 현실과 가장 가깝게 만들자. 그래서 현재 시리아에 어떤 일이 있는지 모르는 한국이나 일본에 있는 사람들 또한 이 영화를 보고 시리아에 대해 쉽게 알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자.”


정재은 감독으로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탈랄 덜키 저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10년 혹은 그 이후에 보더라도 제가 기획한 대로 볼 수 있다고 믿어요. 시리아의 모든 분쟁이 끝난 후 이 모든 것이 과거가 되었을 때, 사람들이 정치적인 관념들을 내려놓고 그저 서사 영화로서 볼, 그때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마 이 순간을 기다린 것 같습니다. 현재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시네마 예술로 보이면 좋겠습니다.
정재은 그리스에서 영화를 공부했다고 들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사에 대한 탄탄한 자기 확신을 갖고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또 그래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탈랄 덜키 사실 저는 작가입니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요. 학교를 마친 후 시리아로 돌아왔을 때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진짜 영웅 말이에요. 하지만 독재 정부와 구소련의 시스템 안에 살고 있는 저희에게는 영웅이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정부 대통령 외의 어떤 영웅도 허락하지 않으니까요. 그 외에도 금기사항이 많습니다. 종교도 섹스도 정치도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없어요. 그 와중에 저는 이 19살 소년 바셋을 만났습니다. 그를 만나며 저는 혁명을 믿게 되었고 우리 세대는 못했지만 이 젊은 세대들은 대항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재은 다큐멘터리가 픽션과 다른 점은 좋은 주인공을 만나는 것을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영화에 대한 기획을 마치고 여러 인물을 만나며 호시탐탐 주인공을 찾았을 텐데 주인공 바셋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바셋이 정말 주인공이라는 확신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탈랄 덜키 대략 4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4개월간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니면서 찾았어요. 저널리스트 일을 하면서부터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 계획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을 찾게 되면 바로 작업에 들어가려고 생각했고요. 처음에는 제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날 때면 기자처럼 이런 저런 질문부터 시작했습니다. 바셋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마주 앉아 인터뷰 형식으로 대화를 했습니다. 인터뷰 중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바셋, 너는 홈스에서는 유명인이지만 나는 너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나는 영화를 찍는 사람이고 많은 경험이 있다. 내게 너에 대해 이야기해보지 않을래.’ 바셋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축구 국가대표팀의 골키퍼야. 나는 상도 받았어.’ 19살짜리가 자신도 경험이 많고 멋있어 보이려고 했어요. 바셋은 자신에게 화가 나 보이기도 했고 긴장되어 보이기도 했지만 저는 그런 모습들이 참 사랑스러워 보였어요. 그는 이야기하는 것을 참 좋아해요. 재능도 있고요. 가끔 제게 자신이 훌륭한 연기자가 될 수 있겠냐며 물어봤습니다.
정재은 제가 보기에 바셋은 정말 배우로서도 자질이 있어요. 그는 감독이 무엇을 원하는지 본능적으로 느꼈고 그건 자신이 원하는 진실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탈랄 덜키 사실 바셋은 지금 홈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어요. 자신의 이웃이였던 이들과 싸우고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싸움은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이기도 해요. 그는 자기자신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그리고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정재은 바셋의 얼굴이 영화에서 계속 노출되는데 이는 곧 정부군의 표적이 됨을 의미합니다. 걱정되지는 않나요?
탈랄 덜키 바셋은 처음부터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어요. 혁명 초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그들을 카메라에 담을 때에는 모자이크 처리를 하거나 뒷모습 혹은 마스크를 쓴 모습을 촬영했어요. 하지만 바셋은 카메라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중 하나였어요. 아마도 그는 유명한 골키퍼였고 카메라에 많이 서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것 또한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용기를 갖고 카메라 앞에 나서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이죠. 사람들이 점점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편하고 쉽게 생각하죠. 아까 바셋과 통화했을 때 바셋이 제게 ‘내가 위험한 곳에 가는 일들을 나 또한 멈출 수가 없어. 내 운명이 그런가봐’라고 말하더라고요. 저는 바셋에게 너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는 전쟁 속에서 자신으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위험해질 수 있고 지금 자신도 불행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고 했어요. 시위 중에 그는 승리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말했어요. 승리 아니면 죽음. 바셋에게는 지금 그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정재은 진짜 혁명가가 되어가는 과정인 거죠. 기술의 발전으로 문자로 기록되던 혁명가의 모습은 이제 카메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바셋이 죽을까 안 죽을까를 너무 긴장하면서 봤고, 바셋의 이야기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탈랄 덜키 네, 정말 보고만 있어도 안타까워요. 영화를 만드는 중에 저의 가장 큰 걱정은 많은 사람들이 시리아, 그리고 홈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였어요. 사람들이 영화에 몰입하려면 영화의 다음 장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 불가해야하고 또 영화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더더욱 홈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동감할 수있으니까요.
정재은 정말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이신 것 같아요. 처음으로 만든 장편영화인데, 시나리오를 많이 써보셨는지 궁금해요.
탈랄 덜키 저는 여러 장편 극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어요. 장편 영화 시나리오도 썼었고요. 자금이 없어서 영화를 찍지 못할 때에는 혼자 시나리오 작업을 많이 했는데 그것이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영화와의 끈을 놓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마 그런 제 노력들이 지금 영화를 만들 때에 –어떤 요소들로 구성해야하고 어떻게 관객의 감정을 끌어 올릴 것이고 그러려면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감각들을 키워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 거리에서 어린이들과 사람들이 바셋 뒤에서 뛰어다니는 장면을 그가 폐허가 되어버린 같은 거리에서 혼자 걷고 있는 장면과 나란히 찍어서 보여주어야겠다는 판단 같은 것 말이죠. 이런 장면은 마치 꿈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씁쓸한 악몽이요. 그가 혼자 같은 길을 걷는 장면, 그의 친구와 사람들의 피가 묻은 거리, 힘들어 보이는 그의 얼굴, 그리고 모든 것이 파괴된 거리.
저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시간 순대로 보여주었어요. 영화의 처음 5분을 참 중요하게 생각해요. 몰입도는 무의식적으로 5분 안에 결정됩니다. 만약 5분 안에 관객이 그 영화 속 사건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나머지 부분도 포기하게 돼요. 시작부분에서 저는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말해주듯이 다양한 이미지들을 사용해서 지금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줄게’ 하며 시작하죠.
정재은 영화에 음악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가 유일하죠. 하지만 바셋의 노래가 많이 나옵니다. 친구들이 지쳐있을 때에는 위로하는 노래를 하고, 또 전투를 나가야 할 때에는 용기를 주는 노래를 합니다. 시리아에서 남자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종교와 관련된 구전 문화의 영향인가요?
탈랄 덜키 저는 음악이 중간에 나오게 된다면 영화에 대한 현실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생각했어요. 영화 속 음악은 관객들에게 감정을 자극하잖아요. 음악으로 하여금 이 장면에는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명령하는 셈이죠. 저는 이 같은 현실극에서 음악은 불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어떻게 저런 장면에서 음악이 나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어요. 전쟁과 투쟁의 현장을 담는 것인데 말이에요. 카메라 감독인 오사마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휴대용카메라를 갖고 촬영하기까지 했는데 말이에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셋이 노래 부르는 장면일 거예요. 바셋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며 노래를 가르쳐주었어요. 축구경기 때에도 바셋은 사람들에게 응원가를 부르도록 알려준 사람이기도 해요. 시리아 전통노래는 아니지만요. 시위 때면 사람들은 그저 소리치기만 했었어요. 바셋은 자신의 예전 경험을 되새기며 노래들을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정재은 영화에서 계속 반복되는 장면 중 하나가 그 홈스라는 도시가 파괴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정부군의 저격위협 때문에 거리로 쉽게 나가지 못하고 그들이 이동할 때는 해머로 벽을 계속 부수면서 이동합니다. 나중에는 땅굴을 파기도 해요.
탈랄 덜키 포위 상황에 대한 도입일 뿐이에요. 시리아는 지금 포위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그 상황을 아름답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끊임없이 부시고 또 부셔도 계속 나오는 겹겹의 벽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포위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저는 아무리 벽을 부수어도 밖에는 있을 수 없기에 그 안에서 각자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거예요. 이 영화는 5, 6단계의 시대 순으로 짜여있습니다. 첫 번째 도입부는 폭동의 시작을 담았고요. 두 번째는 황금기, 즉 홈스의 거리가 노래로 가득 차고 사람들이 행복하던 시절을 담았어요. 세 번째는 학살이 시작되고, 네 번째에는 도시는 폭격되어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기 시작합니다. 다섯 번째에서는 포위된 홈스는 텅 빈 도시로 그려지고요. 여섯 번째에서는 다시 홈스로 돌아오죠. 그래서 저는 벽을 부수는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포위된 상태에서 생존하려는 사람들을 담아냅니다. 그 후에는 도시가 왜 폐허가 되었으며 왜 이렇게 정적이 흐르는지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그려냅니다. 그리고는 바셋과 함께 거닐며 그처럼 도시를 바라보며 이야기하죠.
정재은 다큐멘터리 촬영이고, 다른 도와주는 스태프 없이 갔을 터인데, 촬영 중에 데이터의 백업과 그것의 안전한 관리가 참으로 어려웠을 것 같아요. 더군다나 전기도 끊겼을 것 같고요.
탈랄 덜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들은 내부 방송을 더 이상 믿지 않았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영화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습니다. 혼란 속에 있다보면 감독님께서 물어보신 그런 실질적인 어려움들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떻게 물품을 지원받느냐가 아닌 바셋 살룻이라는 이 미친 사람을 어떻게 따라다니느냐 였습니다. 바셋을 따라다니는 일이란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는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지금 다른 도시에 있다고 전화를 합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예측 불가합니다. 그는 혼자 결정하고는 옷만 챙겨서 바로 떠나버리니까요. 바셋의 에너지가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를 쫓는데 급급한 저희가 카메라도 켜지 않고 뛰어가면 바셋은 벌써 사람들과 이야기 하며 또 다른 소재 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어요. 그리고 함께 자고 일어나도 그 다음날 바셋은 사라져버렸고요. 이런 점들이 물자를 구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정재은 편집을 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고, 어떤 과정을 통해 현재의 버전이 완성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탈랄 덜키 총 200시간 정도의 분량을 찍었습니다. 저희가 직접 촬영했고 아카이브에서 빌린 장면은 없습니다. 저희가 촬영한 것 이외의 것들은 쓰지 않았어요. 저는 정말 훌륭한 편집자와 일했습니다. 안나 파비니Anna Fabini 라는 독일 편집인이에요. 참으로 현명하고 굵직한 경험도 많아요. 빨리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은데 전혀 돌아가려 하지 않고 꼼꼼하게 일합니다. 첫 편집본은 분량이 총 6시간 이였어요. 그 다음 편집에는 3시간으로 줄였고요. 저희는 3시간짜리 편집본에서 더 이상 줄이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려면 전부 다 필요한 장면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소중한 장면들을 생살을 잘라내는 심정으로 다시 편집했어요. 사실 너무 무거운 장면들이였고 저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다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안 되니까요. 이 이야기에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에 영상적으로는 훌륭하지 않지만 꼭 중요한 장면들이 있잖아요. 가령 바셋이 자기 집을 파괴하는 장면이 그래요. 그가 더 이상 자신은 평화로운 방법으로 싸울 수 없다고 말하며 굳은 결의를 다지는 첫 장면이에요. 오사마는 기술적으로는 이 장면을 참 못 찍었어요. 빛도 엉망이었고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에 넣을 수밖에 없었죠.
정재은 촬영이야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후반작업을 위해서는 많은 제작비가 필요합니다. 파이낸싱을 위해서 피칭을 많이 한 프로젝트인지, 어떻게 제작비를 구했는지 궁금합니다.
탈랄 덜키 비밀스럽게 작업했어야 했습니다. 저 또한 군부의 통제를 받고 있는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에 나서기란 쉽지 않았어요. 작업 할 때에는 가명을 썼고요. 저희 프로듀서 역시 시리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그래서 지인들을 통해 외부에 접촉했어요. 제 첫 영화였기 때문에 재정지원을 받는 것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방송국을 통하여 지원을 받았는데 엄격한 계약서에 묶여있죠. 가령 영화가 나오면 바로 아르테ARTE에서 방송되어야 한다는 것처럼요. 저희 프로듀서 팀에 한즈 로버트 아이젠하우어라는 정말 좋은 독일인 프로듀서가 있어요. 그 사람이 돈을 끌어올 수 있었어요. 한즈는 이 프로젝트를 강하게 믿고 있었고 영화제에 상영되지 못할지라도 텔레비전에서는 꼭 방송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와 편집자들 사이에서 항상 중간 역할을 잘 해주었죠. 아, 저희는 일본 NHK 와도 함께 작업했습니다.
정재은 이 영화로 선댄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타셨잖아요. 저 같은 일반관객도 시리아 내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요. 원하던 게 다 이루어진 거네요!
탈랄 덜키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 뿐이 아니에요. 홈스 사람들은 아직도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점점 증오심과 복수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홈스는 불타고 있다>를 하나의 역사적인 서사로 풀 수가 없었어요. 역사적인 영화로 보기 전에 그들의 심리상태를 먼저 이해해야 했어요. 시리아가 나아갈 방향을 찾으려면 먼저 사람들의 증오심이 왜, 그리고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알아야만 해요.

정재은 주인공 바셋이 홈스로 돌아가는 엔딩에서 시리아에 대한 당신의 희망과 기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프로젝트는 굉장히 어두울 것 같습니다.
탈랄 덜키 다음 영화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전쟁 안에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영화일 겁니다. 전쟁이 가족에게 그리고 그 사회에 미치는 영향들에 관해서 말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라고 있어요. 아버지 세대의 증오심, 여러 가지 사상 등을 말이죠. 그런 것들을 보고 배우며 자라는 것과 내재되어 자라나는 것에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직접 겪으며 자라난 청년들은 전쟁 전 과거에 대한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그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 지금의 혼란스러운 홈스가 아닌 다른 모습을 상상해볼 수가 있어요. 하지만 전쟁 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지금 이러한 상황 외의 홈스를 알지 못해요. 저는 그런 부분이 너무 걱정됩니다. 그래서 다음 영화에서는 십년 후 모든 어려움을 딛고 이겨냈을 때의 아버지와 아들 간에 있을 심리적인 갈등과 이 도시와 아이들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정재은 한국만 해도 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되었고 분단 상황에서 전쟁의 후유증으로 얼마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문제들은 일이십 년 만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백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탈랄 덜키 네. 몇 년 전만 해도 이웃이었던 우리가 이제는 서로를 적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정재은 시리아가 아름다운 나라라고 들었어요. 당신의 고향 다마스쿠스는 어떤 곳인가요?
탈랄 덜키 다마스쿠스는 작은 도시에요. 그리 전통적인 도시는 아닙니다. 일이나 시간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에요. 그저 음악을 들으며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는 그런 도시입니다. 전쟁 전의 문제라면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가난합니다. 시리아 밖을 여행하며 다른 문화를 접할 기회란 없어요. 다마스쿠스에서 일하고 일이 끝나면 교외의 집에 가서 쉬는 것이 전부입니다. 폭풍 전야처럼 참 조용했어요.
정재은 언제쯤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요?
탈랄 덜키 이번 영화를 찍을 때에 다음 장면에 무엇을 찍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었어요. 마찬가지로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정재은 시리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매우 부족합니다.
탈랄 덜키 저는 사람들이 지금 시리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를 알아주었으면 해요. 국제적으로 고민하여 이 전쟁을 멈추고 타협할 방법을 찾았으면 해요. 그들은 이미 너무 불행하고 많은 것을 잃었어요. 다마스쿠스 근처는 이미 포위되었고요. 포위라는 것은 없어져야 합니다. 포위는 또 다른 괴물을 만들어내거든요. 우리는 더 이상 착한 사람들이 괴물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불타는 집으로의 귀향
분량11412자 / 20분 / 도판 3장
발행일2014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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