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으로 자본을 의식하는가
홍기빈, 김희진
분량12,789자 / 25분 / 도판 1장
발행일2014년 9월 30일
유형대담
학제간 대화는 쉽지 않다. 문화예술인과 경제학자의 대화는 특히 그렇다. 문과와 이과라는 생리적 이질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회적인 지식 권력의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학언어로 무장하고 정책수립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경제학의 위상과 산업경제 지표에서 미비한 입지를 차지하는 (순수) 문화예술인들의 경제위상이 그 불균형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대화의 난망함을 줄여보려는 노력에서 학제간 대화는 결국 어느 한쪽의 지식 패러다임에 무게중심을 두고 진행되기 마련이다. 문화예술과 경제 간의 대화는 따라서 십중팔구 미술시장, 작품(상품)가, 문화마케팅의 성과, 옥션시장 현황, 창작노동, 불공정 거래와 계약 등에 대한 자본주의 경제체제 프레임 안을 맴돌곤 한다. 대화가 좀 진일보하면, 피상적인 자본주의 비판, 현실경제 현장의 부정부패 토로를 거쳐 반자본주의에 의기투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다음 옵션이다. 본 대화는 문화와 경제 간의 불편한 동거나 학제간 비대칭성을 넘어서서, 자본의 문화와 삶, 인간적 경제라는 공동과제를 풀고싶은 사람들이 시작하는 대화의 도입부이다.1
홍기빈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과 동대학원에서 외교학을 전공하고, 토론토 요크대학 정치학과에서 정치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귀국 후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과 <뉴레프트리뷰> 한국어판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현재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http://www.gpe.kr/) 소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2012),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2011), 『자본주의』(2010),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2001) 등이 있으며, 한국 주류경제학계에는 생소한 경제사상가들의 명저를 국내에 꾸준히 소개해 왔다.
김희진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 학부와 동대학원에서 현대미국시를 공부하고 뉴욕시립대학원에서 미술사로, 뉴욕대에서 미술관학으로 석사를 마쳤다. 미디어시티서울과 아트선재센터를 거쳐 인사미술공간에서 기관 네트워크를 통한 실험적 지식생산 프로젝트를 주로 기획했다. 2010년부터 아트 스페이스 풀 (전 대안공간 풀) 대표이자 기획실장으로 활동했고, 2013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조감독으로 일했다. 현재 개관 전시 중 하나인 《변신하는 자본: 21세기 문화충돌》 (가제)을 문화비평가 브라이언 홈즈와 공동기획하고 있다.
의식 구조와 장치의 집합으로서의 자본
김희진 경제에는 문외한이니 무식하고 황당한 질문을 해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제가 주로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은 경제학이나 정책 쪽은 아니고, ‘경제 의식’이랄까요. 경제라는 작동을 인지하는 인식구조의 형성에 평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본이란 무엇인가’라는 피상적 테제보다, ‘우리는 자본을 무엇으로 의식하는가’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테제에서 이야기를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스스로 조금이나마 컨트롤할 수 있는 의식 구조와 장치의 집합으로서의 자본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홍기빈 맞습니다. 흔히들 자본이라 하면 어떤 객관적 실체로 구체적인 대상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쉽게 말씀드리면 경제는 고층빌딩이나 삼각김밥 자체의 가격에서 인지되지 않지요. 어제는 사 먹을 수 있었던 삼각김밥을 오늘은 못 사 먹게 될 때, 그 간극에서 비로소 인지하고 그 차이를 인지할 때 자본이 실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지역의 자본을 이해하려면, 그 지역의 사회과학적 맥락과 사람들의 심리, 주관의 영역을 같이 봐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우리 마음에 있다!’ 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마음은, 말씀하신 경제에 대한 인식은 사회과학적이고 역사적인 맥락과 개인의 주관과 심리가 같이 작동하여 조성되잖아요. ‘공구리 치는’ 경제가 어떻게 한반도를 구축했는가는 말하지 않고, 왜 사람들이 소주를 먹는가를 논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죠. 자본이 사람들의 정신에 어떤 신경증neurosis을 만들어 왔는가를 먼저 알아야 해요. 그 바탕에서 경제를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이런 태도가 바로 정치 따로 경제 따로 보지 않는 정치경제학의 입장이고, 자본주의는 생산, 창조성, 소비, 효용 등의 만큼이나 이념, 종교, 문화, 폭력, 성과 같은 원초적 본능과 같은 삶의 경로로 이해해야 하는 겁니다.
김희진 그렇다면 크게 세 가닥 정도로 나누어 이해해야할 것 같아요. 첫째, 자본을 관계의 총체성과 권력관계 측면에서 보는 입장을 재탈환해서 이해하기. 둘째, 경제를 삶에서 만드는 관계의 집합 속에서 이해하기. 그리고 셋째, 한국 자본주의 형성의 특성, 나아가 아시아 자본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으로요. 그럼에도 마르크스 경제학과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 본연의 고유 영역이랄까, 수학과 물리학적 입장에서 자본의 속성을 명제화한 공식들이 많잖아요. 자본의 고유 속성이랄까 하는 것은 정말 없을까요?
홍기빈 토스타인 베블런2이 사용한 표현인데, 자본주의는 사회적 과정의 흐름에서 ‘병의 목’에 해당하는 부분을 잡는 것이 핵심이에요. 노상강도가 자본주의의 원형이죠. 사회 전체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생산과 소비가 벌어지는 전체 사회적 과정이 반드시 통과할 수밖에 없는 핵심 지점을 ‘소유권’이라는 방식으로 독점하여, 사회로부터 ‘통행료’를 뜯어내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게 베블런의 이론입니다. 대표적인 통행세가 지세, 기계 장비, 지적소유권이죠. 사회적 과정이 흘러가려면 핵심 기술을 체현하고 있는 유형무형의 것들이 있어요. 여기에 ‘소유권’을 설정하여 소득의 흐름을 창출하는 ‘자산’으로 바꾸는 겁니다. 미국 자본주의의 시작이 전 대륙을 누비는 철도 건설이었고, 이 과정을 독점한 사람들이 이후 미국의 대자본가로 성장하는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김희진 수익이 성립되는 요건에 이미 소유권이 전제된 거군요. 소유권 싸움은 권력의 문제 맞죠. 그래서 비클러와 닛잔의 『권력 자본론Capital as Power』3이 나오는 거고요. 그렇지만 한편에는 화폐경제가 규정하는 권력이 워낙 강력하고 세계를 금융화 시켜가잖아요. 화폐경제 밖을 나가지 않는 거시경제학이 대단한 권력이에요. 거시적이면서 동시에 예전에는 경제학이나 경영학 정도였던 경제지식 지형이 전문화 복잡화 되었잖아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어떤 물리학자 출신의 월스트리트 주식분석가가 “금융위기도 금융공학자가 예측한 주식은 폭락 안 했는데, 증권사나 투자금융 쪽이 예측했던 장은 망했다”는 식으로 책에서 구분했더라고요. 일반인에게 경제는 곧 부동산, 물가, 월급, 주식, 저축이나 대출금리, 카드빚, 융자, 파생상품 이런 식으로 실물경제, 화폐경제로만 들어와 있습니다.
홍기빈 그 과정에서 경제학이 해왔던 역할을 아주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류경제학뿐만 아니라 마르크스 경제학 또한, ‘경제’라는 가상의 공간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들이 짜낸 논리를 ‘경제 법칙’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이것이 우리 생활 세계 심층에서 작동하는 ‘과학적 원리’라고 강변해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경제학은 우리 삶에서 유리되어 버렸어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 속에서 영위하는 경제활동이랑 경제학이 서로 소외되어 있는 게 문제라 봐요. 경제에 대한 설명은 사람의 인생이라는 영역을 설명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끝없이 재발견하는 것을 도울 수 있어야만 합니다. 가령 탄생부터 교육, 연애, 결혼, 출산, 육아, 직장생활, 질병, 치료, 죽음, 장례 등 우리의 인생 경로에서 경험하는 것이 우리의 ‘경제’이고요. 여기에서 자본도 또 자본주의도 삶의 체험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니까요. 좀 찜찜하긴 하지만 독일 나치경제학자인 괴틀Goettle- Ottlilienfeld은 이런 맥락에서 ‘생활로서의 경제’라는 개념을 주창한 적이 있어요. 물론 그의 이론은 사회유기체를 단위로 하여 온갖 반동적인 잡설들이 마구 섞여 있는 해독스런 것입니다만, 그 개념만큼은 생각할 것이 많다고 봅니다.
이러한 경제학 이론이 얼마나 실제 세계와 삶의 경험과 유리된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로 화폐 문제가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아직도 화폐의 역사적 기원과 본질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오는 그대로 믿고 가르치고 있는데요. 개개인들이 물물교환하다가 시장에 생겨났고, 시장에서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화폐가 생겨났다는 거에요. 이는 이론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역사적 현실에서는 정확히 그 반대입니다. 양자 간의 물물교환은 화폐가 필요 없지만, 다자간의 보편적 교환인 시장은 보편적 등가 체계가 존재해야만 성립할 수 있으므로 화폐 없이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물물교환은 몰라도 시장은 분명히 화폐가 먼저 있어야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이론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확인된 사실입니다. 경제학자들이 머릿속에서 구성한 화폐와 시장의 개념은 논리적으로도 모순일 뿐만 아니라 현실과는 더욱 터무니없이 동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편적 가치 체계의 척도로서의 화폐라는 건 어디서 나왔는가의 문제가 남죠. 고전학古錢學, numismatics의 대가인 캠브리지 대학의 필립 그리어슨Philip Grierson은 고대 공동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해 보상’에서 기원을 찾습니다. 게르만 공동체의 경우 ‘베어겔트(Wergeld, ‘사람’과 ‘죄’라는 말의 결합체)’라는 게 있었어요.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이나 그의 식솔을 다치게 했을 때 그 보상으로 어떤 물건을 어떻게 지불해야 하는가를 정해 놓은 것입니다. 함무라비 법전 뿐만 아니라 고대 사회의 법은 대부분 이 베어겔트의 등가 체계를 정해놓은 것을 내용으로 삼습니다. 이렇게 시장적 관계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인 채무를 청산하는 것으로부터 화폐라는 생각이 나왔다는 게 그리어슨의 견해이며 많은 인류학자와 역사학자 등이 공유하는 견해입니다. 즉, 돈은 본래 사회 정치적인 채권/채무 관계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거죠.
김희진 “돈 이전에 빚이 있었다”는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부채, 그 첫 5,000년』) 결국 돈의 원형은 복수를 막기 위한, 신과 자연 앞에 위태롭게 놓인 상태에서 사는 게 이미 빚을 진 거라는 채무의식에 기인하고, 그래서 빚을 갚지 못한 자는 결국 사회적으로 지탄받아도 싸다는 식의 과도한 도덕주의, 윤리주의가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말이죠.
홍기빈 고대 일본에서는 신전에 매년 자기 죄를 고백할 때 바치는 물건을 ‘폐幣’라 했습니다. 신과 공동체 간에 죄와 잘못을 갚기 위해 내놓는 물건이 ‘폐’인 거죠. 이런 폐, 베르겔트들의 가치체계는 문화적으로 결정돼요. 고대 슬라브인은 손가락을 부러뜨린 데 대한 베르겔트 보다 수염 뽑은 데 대한 베르겔트가 더 비쌌어요.

한국 경제의식 형성의 원인
김희진 그럼 경제를 결정하는 문화적 맥락 얘기로 넘어가 보도록 하죠. 선생님이 옮긴 칼 폴라니의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는 글로벌 경제와 지역적 경제 간의 차별적 특이성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박현채 선생님의 저술 이후, 사실상 세상이 모두 글로벌 금융화에 포획되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시는 한국의 지역적 경제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혹은 한국에서 경제의식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요소를 짚어주셔도 좋고요.
홍기빈 아시아인이 경험한 경제를 근대성 모더니티의 프레임에서 말하곤 하는데, 저는 근대라는 발명품에만 너무 방점을 둔 게 아닌가 해요. 서구 자본주의의 유입과 흡수 이전에는 몇천 년간 유지된 정신세계가 있잖아요. 변화가 별로 없다가 지난 100년 동안 정신 안팎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면 그 변화상만 분석하기보다는 그 변화를 겪은 사람들의 정신상태를 주목해야 합니다.
뒤르켐이 말한 아노미는 단순 ‘멘붕’이라기 보다는 정확히는 ‘신의 법이 사라진 상태’를 말합니다. 신이 정해주신 자연의 섭리 혹은 도리라고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진 상태, 그래서 공동체 성원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일체의 가치와 그 기초까지 모조리 날아간, 인류학자들이 이야기하던 “문화적 진공 상태”, “집단적 정신 궤멸 상태”와 같은 것이지요. 저는 한국 전쟁 직후 한국인들이 이 아노미 상태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전쟁의 2백만이 넘는 사망자들 중 군인으로 죽은 이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는 학살된 양민들이었죠. 사실 이념이고 뭐고 사람들이 모두 미쳐 돌아가며 서로를 잡아 죽인 끔찍한 그야말로 골육상쟁fratricide였던 겁니다. 물론 서양으로부터 오만가지 사상과 기호가 유입되기는 했지만 당시 고졸자도 4만 명 정도에 불과할 만큼 교육 수준이 낮았던 한국인들이 이를 내면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요. 기존의 문화적 정신적 세계로는 도저히 설명하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던 겁니다. 이런 아노미 상태에서 미국-기독교 선교사는 망해가는 이 땅에 내려온 외계인-선지자로 보였고 성장=축복, 천국- 물질적 풍요라는 신화가 생기고 무조건 결혼해서 다산, 물질적 풍요를 좇게 된 거죠. 공산주의는 악마와 동일시하는 사고 체계가 수립되고.
김희진 저도 한국자본주의 성격에는 물질적 풍요에 대한 일반적 갈망 수준을 넘어서는 일종의 선진문명과 백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선망과 복음주의적 구복의식이 섞여있다고 느끼고 있었어요. 최근에 「공리주의의 종교적 기원: 은총의 경제에서 경제의 은총으로」(박정호, 『사회와 이론』 통권 제23집, 2013)라는 논문을 읽었는데 저자가 종교사회학 쪽이어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참고해, 한국 기독교가 세속에서의 자본 축적을 어떻게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식해 교리로 공식화하게 되는지 설명하시더라구요.
홍기빈 맞습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은 한국 전쟁 후의 한국 기독교의 성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1911년에 함흥에 첫 교회를 만드신 분이라 한국 전쟁 전의 기독교 분위기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며 자랐는데, 해방 후의 한국 기독교와는 정말 판이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전쟁 후의 아노미 상태에서 함께 자라난 ‘피안이 아닌 현세에서의 물질적 정신적 구원’이라는 갈망이 한국 자본주의와 한국 기독교라는 쌍생아로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사실 기독교 유일신 사상이 본래 아시아 정신 체계에 잘 맞지 않는데 왜 한국은 일본, 중국에 비해 이렇게 기독교가 엄청나게 번성했을까를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 기독교가 정신성이나 영원성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지극히 현세적인 물질적 축복으로 구원과 신앙의 징표로 삼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말할 것도 없이 지옥이란 ‘쪽방촌에서 썩어가는 가난한 자들의 상태’가 되는 거고요.
김희진 축복의 징표가 오직 현세의 물질적 풍요인 거군요.
홍기빈 성장이 구원의 징표가 돼요. 베버의 프로테스탄트들과는 미묘하게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이 ‘신의 도구’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 영리 활동 자체를 합리적으로 조직하는 ‘자본 회계의 합리성’에 몰두하지만, 한국 자본주의에서 구원은 내가 이 빈곤과 혼란의 생지옥에서 몸부림치는 대다수의 한국인과 달리 거기서 빠져나왔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에서 구원의 징표를 찾습니다. 그래서 지독한 백인 우월주의와 함께 물질적 부의 급속한 성장과 과시라는 것에 몰두하게 됩니다. 거칠게 말해서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에게 구원은 정신적 피안적인 것이었다고 하면 한국 기독교인들에게서는 물질적 현세적이라는 겁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금욕과 검소에 절어 투박한 옷을 입고 소박한 교회 건물을 짓지만 한국 기독교인들은 비싼 차를 타고 화려한 교회 건물을 건축하게 됩니다. 즉 구원의 지표가 바로 ‘성장’이 되며 이것을 과시하는 것이 하나의 에토스가 됩니다. 여기에서 한국 전래의 토속적인 인생관이나 기복신앙과 밀접하게 결합합니다. 한국 기독교는 한국 서민의 밑바닥 욕망에 아주 충실한 종교이고,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가장 성공적으로 한국인에게 토착화된 종교가 된 게 아닌가 합니다. 대형교회의 설교나 한국의 토착, 주술신앙에서 하는 설교를 들어보세요. 레퍼토리는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1919년 출간된 이광수의 『무정』에 나오는 시골 할머니가 말하던 ‘수부귀다남자’(오래 살고 부귀를 누리며 아들을 많이 낳으라)인 거죠.
김희진 아노미 상태와 성장 이데올로기가 인과관계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란 말씀이군요.
홍기빈 이 근원적인 욕망이 지금까지 여러 양태와 이야기로 변주되면서 한국 자본주의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의 독특한 현상들이 나타난 게 아닐까 합니다.
김희진 저도 경제학 책을 들여다보고 경제 분석 기사를 읽어볼수록 드는 의문이 적어도 한국의 자본주의는 이런 정책과 체제를 일반인들이 알아서 경제가 돌아가는 것 같진 않았어요. 거시경제의 작동이 거의 백프로 주관과 욕망에 기대고 있달까, 체제는 그것의 관성을 이용만 할 뿐이고요. 그렇다면 아시아 자본의 성격으로 넓혀보면요? 국가주도형 파시즘 자본이랄까 하는 성격이 강하지 않나요? 아시아 자본주의도 태평양 전쟁이 정신적 아노미를 초래해 종교와 혼합된 자본주의 성장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한 욕망구조로 볼 수 있을까요.
홍기빈 전체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이며 권력적인 동원체제의 자본은 아시아에서 일본이 만든 모델이에요. 물론 19세기 후반부터 일본은 선도적으로 근대 자본주의로 전환해 왔지만, 중화학 공업의 시대에 맞는 20세기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1930년대의 파시즘 치하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는데요. 중화학 공업화와 관련된 이러한 20세기 형 일본 자본주의 모델은 이후 여러 아시아 나라 자본주의 체제의 원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원형이 최초로 구현된 모델을 저는 30년대 만주국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희진 만주국이라면 대륙 침략 요새로 쓰였던 그 괴뢰정부요?
홍기빈 예, 만주국 모델은 그전까지 있었던 19세기 형 자본주의와는 다른 모델이었습니다. 이게 전후 일본 자본주의의 형성에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만주국의 창설과 운영을 맡았던 기시 노부스케 –아베 수상의 할아버지– 와 신관료들이 50년대 이후 일본 자본주의 건설의 주역이 됩니다. 한국의 경우 60년대 이후의 고도성장을 만들었던 세력이 박정희, 최규하, 신현확 등 만주국에서 군인과 관료를 역임했던 이른바 만주 인맥을 안고 있었죠. 중국의 경우에도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 만주국에서 경제 건설 모델의 중요한 영감을 얻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밝고 희망찬 미래, 깨끗하고 정돈된 도로(신작로) 등의 이미지와 함께 강력한 국가의 동원과 계획을 통해 집단적인 생산과 소비의 조직으로 자본 축적 및 생산 건설을 이룬다는 것이 전후 아시아 자본주의에서 신화 속 원형처럼 반복되고 있습니다.
김희진 요즘 얘기로 좀 건너뛰어 볼까요. 파시즘형 국가독점 자본주의 체제는 그런 것 같지만, 기업이라는 양태는요? 베트남전의 해상물류 네트워크를 일궈 시스템 생산모델을 고안한 일본의 토요타나, 한국의 경우도 박형준 선생의 『재벌, 한국을 지배하는 초국적 자본』이 주목한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재벌의 팽창이 한국 자본주의 발전과정에 대전환을 가져왔지요.
홍기빈 방금 말씀드린 만주국 이야기랑 연결이 되는데요. 한국이나 일본이나 처음에는 이러한 20세기 형의 집산주의적 자본주의를 건설하는 주역은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자본주의 발전이 일정하게 궤도에 오르게 되면 국가보다는 기업이 사회 전체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중요한 핵심 기제로 떠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 60년대부터 이른바 오쿠무라 히로시奥村宏 같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법인 자본주의’ 즉 대기업 자본주의가 성립합니다. 한국도 독재 정권이 무너진 90년대 이후 비슷한 궤적을 걸었죠. 한국에서도 이 대기업이 사실상 사회의 작동을 쥐고 있는 최고의 권력 기관이라는 것은 달리 말할 분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직원들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이 소수 대기업의 성장과 축적을 위해 동원되고 있는 형국의 자본주의가 한국과 일본에서 만들어지게 됩니다.
오락으로서의 패륜
김희진 재밌는 질문 하나 드려볼까요. 경제학자로서 요즘 도저히 설명 불가라 느끼시는 사회적 현상을 목격하신 게 있나요?
홍기빈 ‘오락으로서의 패륜’이라고 해야 할까요? 무언가를 스스로 악으로 규정해놓고 오히려 이것을 즐겨 실행하거나 숭배하면서 소비합니다. 미국 일부 청소년들의 사탄 숭배 문화나 일본 망가에 나오는 재미로 하는 근친상간 같은 것이 예가 되겠습니다. 이걸 기존의 데카당스 미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마르쿠제처럼 산업 자본주의에서 에로스가 타나토스로 변질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타워팰리스처럼 아시아 경제 곳곳에서 발견되는 고층 건물에 대한 숭배를 보면 불교 설화의 수미산須彌山 -예전에 서울대학교에 계시던 박시인 선생은 알타이 어족의 공통 원형이라고 했습니다- 과 무슨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김희진 그럼 일상의 예능화는요? 청운동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포위한 전경들이 행군하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봤어요. 그 갈등의 현장이 버라이어티쇼의 한 장면이라 여기는지, 그 속에서 하이파이브하는데 그들의 눈은 초점없이 쾡한 상태였어요. 상황은 70년대인데 행동은 경찰 코스프레하는 연애인 지망생 같았다고나 할까요.
홍기빈 그 지친 가엾은 전경들은 잘 모르겠지만, 요즘 단식하고 계신 세월호 피해자 유족분들 앞에서 일부러 못된 짓을 하는 이들은 분명히 방금 말한 ‘오락으로서의 패륜’을 알면서 행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다른 것으로는 섹스 자체가 비주얼의 코스프레가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산업사회의 필연적 결과인지,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속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섹스가 삶의 연장, 일부분이 아니라, 가상현실이 되었어요. 그러면서 섹스는 훌륭한 시각적 조건을 갖춘 암수의 행위로 원형화되고 사람들은 이를 하나의 의례ritual로 만들어 그 원형을 모방하려는 것이라고 할까요. 그야말로 ‘섹스는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나 하는 거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라는 게 점차 사람들의 성의식이 됩니다. 그래서 성형수술, 성기수술, 섹스리스 부부, 건어물녀 및 초식남 등등의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성에서 시각적인 것이 다른 것들을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건데, 저는 이게 산업화나 자본주의도 그렇지만 시각 매체의 비약적 발전과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게 섹스만 그런 게 아니고, 삶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가 이렇게 의례가 되어 일정한 자격을 통과한 이들이 수행하는 코스프레가 된다는 겁니다. 이러면 인구의 다수는 여기에 피로를 느끼게 되고, 일체의 의례나 의미 부여가 없는 완전 ‘멍 때리는’ 찌질한 무의식 상태에 대한 욕망이 생겨나죠. 비비스와 버트헤드Beavis & Butthead나 오스틴 파워스Austen Powers 같은 거요. 이것도 현대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일 겁니다. 그런데 참고로 푸코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삶의 과정을 권력자들이 이렇게 바꾸어놓는 것을 ‘생체 권력’이라고 했고, 그 중요한 담지자로 주권 국가의 ‘통치성’을 들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아시아에서는 이게 국가보다는 가족 및 친족이 하는 역할인 것 같아요. 국가보다 훨씬 더 촘촘한 ‘감시와 처벌’의 망을 펼쳐놓게 되죠. 아시아 젊은이들이 그래서 유럽 젊은이들보다 더 불쌍한 것 같아요.
김희진 부모, 가족, 그 확장으로서의 사회 관계… 대인간 감찰이죠.
홍기빈 동양은 옛날부터 국가의 조직 단위가 가족이었으니까요.
김희진 하지만 철저히 개인화된 사회에서 가족까지 무너지는 문제는 출산률 저하처럼 근본적 위기감을 주기도 해요. 노동 분화가 심화되서 유니온 공동체도 와해되었잖아요.
홍기빈 아시아 자본주의의 특성에서 노동 윤리의 기초로 쌀 경작 문화를 이해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겁니다. 쌀농사는 토지집약이 아니라 노동집약 형태의 일이라, 가족 단위로 땅을 촘촘하게 구성해 살면서 노동과 구분이 없고, 하루 종일 일하고, 일하는 것이 삶의 낙처럼 되어버리는 형태가 되죠. 이게 산업 사회로 오면, 가족과 나의 삶을 위해 일과 휴식 구별없이 이른바 ‘몰빵’하는 식의 노동이 나타나는데요. 한편으로는 엄청난 경제 성장의 엔진이기도 합니다만 어두운 측면도 많습니다. 일단 휴식을 죄악시하는 경향도 있고요. 노동을 산업 사회 전체의 구성 요소로서 자리매김하는 게 아니라 자기 피붙이 먹고사는 문제로 보는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노동조합 운동도 산별노조나 전국 노조로 가는 게 아니라 기업별 노조로 찢어져서 사측과 유착하는 쪽으로 가버리고요. 결국 조직된 노동 운동이 나타나 산업 사회의 여러 부조리와 모순에 맞서는 주체가 되고 이게 다시 시민 사회와 연대한다는 고전적인 유럽의 민주화 및 노동 운동 성장의 길로 가지 않게 됩니다. 사회는 산업 사회인데 노동자들은 여전히 옛날 농민들과 비슷한 보수적인 사고방식과 개인주의적인 행태를 보이는 거죠. 그런데 지금처럼 사회 전체가 평범하게 일하는 이들의 삶을 지독하게 거의 극단까지 몰고가는 경우에는 이러한 아시아 자본주의 특유의 특징들도 바뀌지 않을까 합니다.
김희진 노동쟁의라는 말 자체를 사치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더라구요. 그럼 선생님께서는 지식노동자로서 어떤 사안에 봉착해 계신지요?
홍기빈 문화예술계도 비슷할 지 모르겠지만, 대학이나 이른바 지식 산업이라고 할만한 곳은 어디든 교수들이 십장什長 비슷한 역할을 하더군요. 실제 부가가치로 연결이 되는 연구와 아이디어 혁신 등은 집단 단위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집단의 수장에 해당하는 권력있는 교수나 인사들이 보상의 큰 몫을 가져가고 나머지 대다수는 기아선상에 던져지는 그런 양태는 학계나 영화계나 지식 산업계 어디에나 비슷하지 않은가 합니다. 제 생각에는 자본/노동이라는 옛날 산업 사회의 경제적 범주를 지식노동자들에게 적용하는 것도 그 폐해 원천의 하나라고 봅니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아니면 프리랜서냐, 이 세 가지 선택밖에 없는데, 사실 학자나 예술가나 작가들은 이 세 범주 어디에도 잘 맞질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식노동자총연합 같은 단체라도 만들어서 법적·제도적 형태를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문화예술인들은 희망버스 타고 가서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것도 좋지만, 석자나 빠진 우리 코도 챙기기 위해 창작노동 관련 법조항 같은 것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자본을 의식하는가
분량12,789자 / 25분 / 도판 1장
발행일2014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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