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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로서의 건축전시

심소미, 이성민, 정다영, 정다은

미술관에서 건축전시를 보는 일이 이제는 생경한 일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건축 전문 학예사를 통해 꾸준히 건축전시를 선보이고 있고, 꼭 건축전시가 아니어도 이미 건축 혹은 어반 이슈를 다루는 전시들을 최근 3,4년 동안 급증했다. 이번 좌담에서는 근간의 건축·도시 리뷰를 통해, 전시로서의 건축이 문화예술계와 일반 관객에게 소비되는 양상을 살핀다. 또한 담론을 일으키는 새로운 매체로서 그 가능성을 이야기 나눴다.


심소미 독립큐레이터로 현대미술과 도시연구를 매개한 전시기획 및 저술 활동을 해왔다. 장소성 기반의 예술 실천과 대안적 영역을 전시기획으로 탐색해오고 있다. 도시개입 프로젝트 «마이크로시티랩»(2016), «신지도제작자»(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2014) 등을 기획했으며,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연구자(2016)로 있다.

이성민 건축과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4회 안양공공예술 프로젝트(2013-2014)에서 일했고, «건축어바니즘: 서울/멜버른»(2014)을 기획했으며, «Out Of The Ordinary»(2015) 코디네이터로 참가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미디어시티서울 2016’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일한다.

정다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공간』 기자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 건축 부문 전시기획과 연구를 맡고 있다.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2013),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2014), «장소의 재탄생»(2014), «아키토피아의 실험»(2015), «보이드»(2016) 전 등을 기획했다. 공저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2015)가 있다.

정다은 2016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현재 Co.Re(코어) 건축사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1970년대 이전 서울에 지어진 건물들의 건축적인 변화를 어떻게 지도에 표현하고 수집할 것인지에 대해 연구 중이다. 

좌담 진행 박성태, 이경희

좌담 일자 2016년 9월 27일


건축전시의 동시대성

박성태 한국 사회에서 2016년에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건축전시에서 과연 동시대성이 있는지, 혹은 건축전시가 지금의 시대적 요구를 올바르게 드러내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정다은 2016년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가 ‘전선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 line’였죠. 한국관을 기획한 우리 큐레이터 팀은 ‘용적률 게임’을 주제로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과연 전선front line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희 전시는 2000년대 이후 도시의 건축, 건축가, 건축시장에 관한 것이었어요. 이 전시를 통해 건축을 둘러싼 전선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마도 환경, 재생과 개발, 1인 주거, 날로 높아지는 주거비용 등도 지금 건축의 전선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건축전시는 이렇게 건축과 도시에 관한 단어들을 사람들로부터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심소미 올해 열린 로테르담 건축비엔날레(IABR)는 주제가 ‘넥스트 이코노미Next Economy’였어요. 건축가가 경제에 관해 이야기 한 거예요. 그동안 건축가가 에너지, 환경에 대해서는 얘기를 했지만, 경제 이야기는 처음이었고, 경제에 건축가가 어떤 제안을 할 수 있을까 했죠. 전시 방식은 60여 개의 프로젝트 리서치를 테이블에 쭉 나열하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자료를 올려놓는 것이 관람객과 어떤 소통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는데, 오히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건축가가 ‘다음 경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던진 질문과 지금 사회가 처한 문제나 현실적인 위기에 대해 어떤 대안을 내놓았는지에 대해 공감하게 됐어요. 각 리포트 마지막에는 항상 결과물이 제시되어 있었고요. 현재 로테르담은 이전에는 들어올 수 없었던 곳, 가령 공공공간이나 임대주택에도 자본들이 들어와 파괴되었다고 해요. 거대 자본이 도시 변화를 가속하며 처한 위기에 건축가 입장에서의 넥스트 이코노미가 제시되는 것이지요. 이 외에도 최근의 건축전시들에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이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다 또렷하게 가지고 전시를 논의의 장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에요.

정다영 저는 거꾸로, 건축전시가 반드시 동시대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벗어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 건축은 역사적으로 아직은 과거에 대한 정리가 더 필요하다고 봐요. 말씀하신 것처럼 건축전시가 이제는 새롭다는 것을 넘어,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 것인가로 논의를 옮겨야 하는데 그동안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컸죠. 이제는 그 단계는 넘어 질문을 던지는 정도까지는 온 것 같습니다. 정림건축문화재단도 올해 ‘난민’을 주제로 전시한 바 있고, 베니스비엔날레도 ‘전선’이라는 주제를 던졌죠. 이제는 더 나아가 주제를 담는 형식적인 부분을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도’ 같은 것들이죠.

또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게 건축전시의 비평이에요. 건축(물) 비평과 건축전시 비평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계와 비교해서 건축전시 비평은 아직 경험이 얇은 데다 접근법도 다양하지 못해요. 논의도 생산적이지 못해 지속이 어렵고요. 건축전시 리뷰에 대한 방법론을 같이 공유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성민 건축을 주제로 한 전시 혹은 건축가가 참여한 전시는 그동안 쭉 있었지만, 요즘과 같이 많아진 것은 최근 3–4년 전부터인 것 같아요. 그래서 건축전시에서의 동시대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왜 건축전시가 이렇게 많아졌는지, 그리고 그 위치는 어디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2010년 말 일민미술관에서 열렸던 «감응感應_정기용 건축» 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사립미술관에서 한 건축가의 생애를 주제로 드로잉, 영상, 재료와 구조물 등을 가지고 그만큼 방대하게 전시한 경우가 이전에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이후 정다영 큐레이터와 같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주제를 가진 건축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의 활동이 두드러졌고, 건축가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도 함께 높아졌고요. 

목천건축아카이브와 같이 현대건축가에 대한 구술을 책으로 출간하고, 아카이브 방법론에 체계를 만들어나가면서 건축큐레이터로 활동하는 혹은 건축전시에 참여한 건축사가나 건축이론가들이 한국 현대건축에 대한 담론을 불러일으킬 자원을 만들어나간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형민, 안창모 선생님께서 조민석 건축가와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도 계기가 된 것 같고요. 

하지만 제도화된 공공미술관이나 갤러리나 예술시스템 안에서 건축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논쟁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건축전시에 대한 정의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전시라는 매체 혹은 방법론을 통해서 건축의 문화적 속성을 사람들과 나누고 어떤 담론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 이론을 생성하는 사람, 건축을 문화 차원으로 연결하는 사람, 이 모든 것을 비평하는 사람, 이들 모두가 세분화되어 생태계를 이뤄야하는데 저희는 아직 생태계 형성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박성태 건축전시는 건축가라는 직능의 특성상 사회적인 문제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이유로 건축 큐레이터의 사회적 필요도 증가하고 있고요. 큐레이터마다 각자의 방법론이 요구되는 거죠. 문제는 건축전시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당분간 계속 있을 텐데, 건축 큐레이터의 숫자는 미비하다는 겁니다.

정다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의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전시는 ‘신안 이케아 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많은 사람이 몰렸어요. 저는 이 전시가 사람들이 원하는 어떤 지점에 성큼 다가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람들이 박물관에 갈 때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는 즐거움도 있지만, 원래 알고 있는 것들을 만날 때의 반가움도 있거든요. 전시장에서 ‘아! 나 이거 알아’ 하는 반가움. 루브르박물관에 가서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봤던 작품을 발견하고 반가운 것과 비슷해요. 그러니까 건축전시도 사람들로 하여금 ‘나 이거 알아!’ 하고 다가갈 수 있는 지점을 다양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필요해요.

이경희 동시대성과 관련해, 건축전시가 동시대가 고민하는 사회적인 이슈를 담는 것의 여부는 어느 것이 맞다 아니다를 떠나, 다양한 관점과 접근의 전시가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미술이론과 역사를 공부해서 미술과 건축 양쪽의 입장을 보게 되는데요. 전시라는 것 자체가 박물관학, 미술관에서 발전해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 등을 아우르며 다양한 매체와 역할로 기능하잖아요. 공공미술관은 특히나 작품의 커미션이나 아카이브에 대한 고민도 그만큼 깊고, 어떻게 보이고 기록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데, 건축전시는 그것에 비해서는 역사와 경험이 짧고, 건축이 본질적으로 공공성을 띄니 교육적인 측면이 당연히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동시대성이 있는 사회 이슈를 담은 건축전시를 미술전시를 기대하듯이 보고 가는 게 괜찮을까?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건축전시를 진행하다 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왜 그런가를 생각해봤어요. 아마도 미술에서는 전시 자체가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의 집결, 그간의 작업과정과 언어를 최적화해서 이전의 전시를 뛰어넘는 매우 중요한 자리인데, 건축가는 본업은 따로 있고 전시는 본인의 관심사를 제안하거나 사회문제에 대안을 내놓는 데 좀 더 초점을 맞추죠. 어쩌면 미술전시와는 완전히 다른 채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건축전시의 소비 환경

정다영 미술관에서 개최한 전시의 흥행을 따져보면, 내부에서도 건축전시는 최소한 중간 정도는 한다고 평가받아요. 다른 곳에서 건축전시를 볼 기회가 많이 없기도 하지만 전공자를 비롯한 기본 수요층이 있기 때문이죠. ‹한국 현대건축의 단면들› 포럼에 대해서도 그처럼 늦은 저녁 시간에 매번 120명 정도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것을 두고 미술관에서는 의아해해요.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기관에 있다 보니 시각예술, 그중에서도 최근에는 디자인계와 건축을 비교하게 됩니다. 건축(문화)를 소비하는 층은 있는데, 더 나아가 소위 ‘덕질’하는 팬층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건축계에도 굉장히 지적이고 도시와 문화 현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소비만 하지 직접 생산을 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시를 기획하는 저와 같은 사람은 특히 외로워요.

건축전시의 중요한 점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역동적인 장이라는 점이에요. 그래서 건축비평, 전시기획, 전시디자인이 하나의 세트라고 생각합니다. 외부에서 전시디자인 상을 받은 전시들이 대체로 건축전시고, 미술관 내에서도 전시 디자이너들은 건축전시를 도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편입니다. 순수 미술전시의 경우 작가의 작품이 중요하지만 건축전시는 작업 요소들을 하나로 이끄는 분위기와 에너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정다은 저는 그렇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건축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건축은 이래야 한다’는 테제가 꽤 세다 보니 덕후들을 길러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잘 몰라도 우선은 좋아할 수 있고, 좋아한다는 것 자체로부터 대화를 시작할 수 있어야 했다고 봅니다.

심소미 미술전시의 방문객을 보면 건축가 혹은 건축 전공 학생이 많아요. 건축에서 미술로 오는 사람들도 보면, 건축계에서 채우지 못한 요구들이 미술에는 세분화 되어있고 다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듯해요. 말씀하신 덕후 경우만 보아도, 미술에서는 무언가 한 가지만 탐구하더라도 이를 강하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가져갈 수 있어요. 나머지에 대해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건축은 맥락과 형식 모두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해 보여요. 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미술은 공교육은 물론 전체 교육시스템 안에서 계속 제안하고 세분화하며 무언가를 충족시키려 하는데, 건축은 상대적으로 그런 게 적은 것 같거든요. 그런 면에서 정림건축문화재단을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이곳처럼 동시대성을 파악하면서 역동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곳이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한다면 좋겠어요.

이성민 2015년에 참여했던 «Out of the Ordinary» 전시를 보면, 전시경험이 많은 건축가는 완공 건축물의 사진이나 드로잉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그 전시를 위한 프로덕션을 새로 제작하더라고요. 저는 그들이 전시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이용한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건축가가 자신의 작품은 곧 완공된 건축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전시를 자신 혹은 설계사무소에 대한 홍보도구로 여기는 것을 보거든요. 완공된 작업을 소개하니 전시 전체를 빈약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고요. 전업작가 만큼 건축가가 전시에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긴 어렵지만, 미술관에서의 전시를 고민했을 때 원작을 보이는 것 이상으로, 하나의 건축물을 어떻게 전시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과 질문이 전시할 작품수집과 제작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봅니다. 이와 함께 큐레이터십도 발휘되어야 하죠.

국내 건축잡지 출신의 사람들이 건축전시에 참여하게 된 것도 유의미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건축 큐레이터들도 잡지기자나 편집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건축잡지가 가지고 있던 매체의 특성 혹은 담론 생산이라는 역할이 그대로 전시로 옮겨질 수 있을까요? 전시가 가진 수많은 장치를 운용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이 필요할 겁니다. 이전에 건축잡지가 건축계 내부에서만 순환되던 것과는 다르게 전시는 더 다양한 사람을 향해 열려야 한다고 보거든요. 저는 ‘불특정한 다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관람객 수도 중요하지만, 전시나 아카이브를 의미 있게 연구하고 활용할 수 있는 개인이나 소규모의 공동체도 있습니다. 건축이 어떤 특정 기간에 행해진 결과물일지라도 그것이 가진 사회적이고 공공적인 측면에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봐요. 건축 생산자와 시스템 못지않게 건축을 소비하는 사람과 환경도 중요합니다.

전시라는 새로운 매체가 미치는 영향

«마이크로시티랩» 전시 전경, 인디아트홀 공, 서울, 2016 / 사진: 홍철기
최춘웅, ‹실종된 X를 찾습니다›, «보이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6 /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최승호)

정다영 건축가들이 모노그래프를 발간하는 것처럼 전시도 그와 상응하는 또 다른 하나의 매체로 인정받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료들을 버리지 않고 이왕이면 더욱 잘 만들고, 더 나아가 최근 개관한 일본의 ‘건축창고Archi Depot’처럼 모형 자체를 보관하면 그 자체가 하나의 전시장이 되는 것도 서울에서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 모형과 같은 건축 자료를 생산하는 주체도 전반적으로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건축가 아래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면 이제는 대등한 구도에 있는 전문 사진작가나 영상작가가 협업하죠. 건축가뿐만 아니라 건축의 판을 움직이고 기록하는 사람들, 기획하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건축전시를 통해 얻는 좋은 기회들은 여타 장르와의 협업으로 질과 태도를 개선하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심소미 공감이 많이 가는 게, 만약 ‘붕괴collapse’라는 주제를 건축가에게 던진다면, 공간적 제안 외에도 붕괴를 상상하는 여러 방식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기존 건축전시는 대체로 하나의 공간 구조와 조형성이 돋보이는 것 같아요. 건축가의 전시준비는 매우 꼼꼼한 사회문제 리서치를 바탕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결과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애초의 질문이 희석되는 경우를 많이 봐요. 그래서 저는 건축가와 작업할 때 결과물, 솔루션, 해법, 대안 등을 제거하고 자신만의 시선을 드러내 달라고 해요. 같은 주제에 대한 건축과 미술의 접근은 매우 다르거든요. 가령 ‘벽’에 대한 접근이 미술가는 보이지 않는 지층부터 시작할 수 있지만, 건축가는 물성을 직접 파악해야 하고 공간성, 도시를 파악해야 하니까요. 제게는 그러한 건축 프로세스가 가진 가능성이 흥미로는 지점이에요. 자기 어법을 다룬 매체를 완전히 전환하는 미디어나 인터넷 안에서의 가상구조 같은 여러 전환점이 요즘에 보이는 것 같거든요. 건축이 다루는 물성을 떠났을 때 어떻게 건축가의 시각이 전달될 것인가 하는 지점도 제가 기대하는 것 중의 하나고요.

정다은 건축적이되, 비건축적인 이런 걸 말씀하시는 거죠?

심소미 네. 오히려 더욱 건축적일 수 있어요. 건축의 물성이 없어도 가능해요. 아카이브 경우만 보아도 건축과 미술은 다르고, 물리적 자료만이 아카이브는 아니잖아요. 상상력이 만들어낸 비물질적인 공간도 건축 아카이브로 풀어낼지 고민하는 것도 흥미롭지요.

이성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0주년으로 정다영 학예사가 기획한 «공간 변형 프로젝트: 상상의 항해» 전을 온라인 전시로 함께 만들면서, 건축이 가진 상상력이나 아이디어를 모으고 그것을 공유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은 의미가 있었어요. 그 작품들은 건축에 대한 비물질적인 아카이브가 되겠죠. 한국 근현대건축에 대한 기록 수집이 부족한 상황에서 큐레이터는 전시를 통해 좋은 작업을 생산하는 게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다영 ‘상상의 항해’ 전시는 아직 진행 중이라 끝난 후에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겠지만, 일단 건축이라는 매체의 온라인 전시 가능성을 본 것 같아요. 그런데 소위 비물질적인 전시를 위해서는 기획자의 책무도 그만큼 중요하기에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해당 작가(건축가)에게 이미지를 받기 위해 그 단서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지침서 형식의 사전자료를 70페이지 가량 만들었거든요. 건축가는 공모전 등을 통해 아이디어 제안에 익숙하지만, 이를 기획전시라는 다른 판에서 원하는 기획의도를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요. 전시마다 우리가 제대로 된 건축을 보여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주로 문화적 맥락에서 건축을 바라보았지, 건축 본연의 물성, 구조, 기술을 드러낸 전시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아마 예산도 엄청나게 들겠고요. 우리는 아직 문화와 시각예술계에서의 건축만 다루고 나머지 반쪽은 미천한 것 같아요. 건축계 내부에서 건축을 산업에서 분리해 문화를 강조하는 것과는 사실 대조적이에요. 저는 그 둘의 균형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다은 우리 건축의 구조가 라멘구조에 머물러 있다 해도, 그 한계를 드러내는 전시를 기획하면 좋겠어요.

건축전시 수사의 오래된 미래

정다영 김정수 건축가가 설계한 카톨릭회관의 커튼월이 모두 손으로 만든 것이라며, 마치 전설로 전해질 뿐 직접 본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실제 전설적인 구조사들이 있지만 그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시나 출판과 같은 장에는 빠져 있어요. 건축가 입장에서, 특히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한국 건축계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가장 도전적인 과제는 구조와 재료를 어떻게 개척하느냐가 핵심일 텐데요, 그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지는 않습니다.

박성태 그러므로 국내 상황과 맥락화가 중요해요. 당시의 산업 상황과 같은 것이요. 서양에서는 충분히 구현 가능했지만 우리는 할 수 없었던 상황과 그 안에서 발견하는 우리의 방법이요. 그런데 너무 단순화하면 흥미 있는 전시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우리 이렇게 어렵게 살았어요’, ‘힘들게 이 건물을 만들었어요’ 이상의 뭔가를 끌어내야 하거든요. 일반인도 공감할 수 있는 것 말이죠. 

심소미 말씀 들어보니까 미술도 마찬가지 잖아요. 2000년 넘어서 현대미술에서 신경 쓰는 지점 중 하나가, 그간 동시대 미술이 글로벌화 되며 간과했던 부분들이에요. 지금의 한국미술은 60, 70년대와 어떠한 영향 관계 속에서 계보를 형성했는지 집중하고 있어요. 그것은 미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건축은 경제적인 여건과도 밀접하므로 총체적인 사회 환경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건물 내 여러 요소의 현재 상황과 과거와의 맥락, 이것을 유기적으로 구축하지 않으면 그다음을 가늠하는 방향은 추상적이게 되지 않을까요? 급진이 되든 퇴보가 되든 지금 고민하는 이런 부분들은 매우 필요한 것 같아요.

정다은 그런데 60, 70년대는 시대 상황이 건축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편이에요. 요즘 70년대의 건축 잡지를 다시 훑어보는 중인데 옛날이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건축에서 오가는 이야기의 구조는 지금과 비슷해요. 과거를 바라보는 것 자체에 이미 동시대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게 돼요. 세대마다 건축언어가 돌아가는 리듬이나 패턴이 비슷하기도 하고요. 건축전시를 하려면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 근거 자료가 많아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해왔기 때문에 그동안 자료를 만들 틈도 없었고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못 했죠. 그저 더 좋아 보이는 건축으로 달려오기만 했어요. 예를 들면, 가톨릭회관 커튼월의 프레임을 손으로 접어야 했던 이유가 중요한 것처럼, 알려지지 않은 벽돌 건물들이 왜 그렇게 구축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중요해요. 그런데 지금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선은 60, 70년대 건물의 아름다움 자체를 한번 전시하고 나면, 뒷이야기들을 알려줄 사람이 나타날 것 같아요. 전시가 지난 시대의 건축에 대한 마무리가 아니라 리서치의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경희 그리고 건축언어는 너무 어려워요. 제가 5년 넘게 재단에서 일하며 건축언어를 접하는데도 여전히 어렵거든요. 좀 쉬워질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건축 관련 매체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 게 건축전시이니 전시가 ‘구글번역기’와 같은 역할을 하면 좋겠고, 또 실제로 하는 것으로도 보여요. 주변에서 제게 리뷰를 가장 많이 해주시는 것도 «건축신문»보다 오히려 전시거든요. 아주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왔을 때 다각적으로 이해를 돕거나, 아니면 해당 이슈에 대해 최소한의 존재 여부를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다은 동감합니다!

이성민 저는 전시를 통해 건축의 변명을 들려주거나 환상을 보여주기보다는, 현재 건축과 환경을 환기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해석하는 지점들을 만들고 싶어요. ‘다양한 층위의 사람을 건축과 환경에 대한 토론으로 어떻게 하면 끌어낼 수 있을까’는 모두가 고민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앞서 박성태 편집인 말씀처럼 맥락화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 맥락은 결과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진 않지만, 해석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정다영 작년에 «아키토피아의 실험»전에서 가장 큰 수확은 60, 70년대에 관공서가 발행한 보고서나 시청각 자료를 실견하고 조사했다는 점이에요. 전시에 출품된 세운상가 청사진은 안창모 교수님 연구진이 발견한 건데 서울시청에 계속 보관되었지만 한 번도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놀이터가 있는 세운상가의 멋진 도면들이 전시를 통해 공개된 거죠. 사실 그런 보고서와 시청각 자료들만 제대로 목록화하고 공개해도 멋진 전시가 나올 수 있는데, 실상 대부분 해체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세종시에 건축도시박물관이 만들어지면, 과거의 모든 공공기관 건립지도 모으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건축가들이 개별적으로 참여한 공모전 설계설명서와 같은 문서들만 수집해도 충분히 해당 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성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작년에 오픈했고, 2017년에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도 열리죠. 그런데 무엇을 전시해야 하나,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있는 것 같습니다.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한데 그 계획조차 단기간에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캐나다 건축센터(CCA)와 뉴욕현대미술관을 답사하고 리서치할 기회가 있었는데, 두 기관 모두 5년, 10년, 20년 단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더군요. 우리의 건축이나 환경이 단시간에 완성된 것이 아니듯, 주제에 대한 논의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린 연구를 기반으로 진행해야 하겠죠.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거나 유머가 있는 전시도 정말 좋지만요. 기관의 운영이나 역할은 또 다른 의미인 것 같습니다. 전시를 완성된 결과물로 보지 않는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전시라는 게 그 과정을 공유하는 것도 방법론 중 하나였어요. 그를 통해서 피드백을 받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죠.

정다은 앞서 말씀드린 60, 70년대 자료가 없다면, 시간을 조금 당겨서 예를 들면, 파주출판단지 같은 걸 하면 좋겠어요. 건축가가 마스터플랜을 하며 기획도 의도도 많았고요. 1997년 조성하고 2000년대 초반에 입주가 시작되었으니, 십 수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지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실제 거주하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통해, 건물이 어떻게 변하고 길은 또 어떻게 변했는지 미세한 관찰도 할 수 있는 거죠. 처음엔 멋있었는데 20년 지나니 촌스럽더라 혹은 그 반대더라 등. 파주출판단지, 헤이리, 여의도, 잠실 등을 이런 포맷으로 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시와 아카이빙 자료의 상보적 선순환

정다은 건축전시의 주목할 만한 강점이자 숙제는 전시를 해야 자료가 생성된다는 점이에요. 어쨌든 전시의 결과물이 다시 다른 주제의 맥락과 연결되는 자료로 전환되기도 하는 거죠. 판을 벌이는 게 건축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기회인 것 같아요. 예컨대 베니스비엔날레 자료들을 미술관이 기증받아서 아카이빙을 하고 있거든요. 이처럼 전시의 과정과 결과물들이 최종 수집이 되고 또 앞으로 대여가 되면서 순환 고리를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박성태 저희도 지원금을 받아서 전시하지만,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아요. 예를 들어, 시각예술은 이미 작가 리서치가 완료된 상태이지만, 건축전시는 주제에 맞게 건축가에게 완전 새로운 작업을 요청해야 하니 차이가 있어요. 이런 점을 고려해 지원 시스템이 좀 더 긴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좋겠어요. 저는 80년대 이후의 한국 건축에 관심이 많은데, 건축가 인터뷰며 건축물 촬영이나 모형제작도 다 새로 해야 하니 준비 기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심소미 건축뿐만 아니라 미술전시에도 예산 편성 발표가 항상 몇 달 전에 나와요. 크게 보면 건축전시도 시각예술 파트에서 활성화된 것이잖아요. 아직은 건축계 생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지금은 시작 단계라고 봐요.

정다영 정말 제도적 보안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건축 작업의 경우, 커미션도 미술계 문법을 따르면 잘 맞지 않아요. 작업의 문법과 결이 다르기 때문이죠.

이경희 제도적 결함의 원인을 역추적해보면 현 정부가 문화계에 던진 ‘융합’과 ‘창조’ 때문이거든요. 정부가 순수예술이 다른 분야와 접합하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최근 몇 년 건축도 시각예술 안에 큰 거부감 없이 유입된 것 같아요. 재단의 입장에서는 반길만한 일이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유입이 아니라, 시의성이 있고 금방 선보일 수 있다고 여겨 급한 전시의 대체물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아쉽기도 해요. 

정다영 올해 2월에 프랑크푸르트 건축박물관 공유주거 전시를 봤는데, 전시의 내용과 형식은 우리와 별다를 것이 없었어요. 그런데 작품 개요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잡지사 출신이다 보니 통상 잡지에 건축 개요를 쓸 때 위치, 면적, 용적률, 설계 기간, 완공 연도 등을 그냥 관습적으로 쓰거든요. 그런데 그 전시에서는 해당 대지를 어떻게 사게 되었는지, 누가 어떤 방식으로 기금을 모았는지, 건축주가 어떻게 건축가에게 작업을 의뢰했는지 등을 상세하게 표기했어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팩트fact에 해당하는 건축 개요를 쓸 때도 전시 주제에 맞춰 변주하는 섬세한 디테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경희 끝으로, 앞으로 해보고 싶은 건축전시 혹은 프로그램을 얘기하며 마무리해볼까요? 하고자 하시는 것이 그간의 빈 곳을 메우거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해요.

정다은 저는 비교적 자료가 많은 최근 건축에 대해 리뷰하는 전시가 있었으면 합니다. 1990년대 또는 2000년대 건축부터 15년 안팎의 시간 동안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요. 예를 들면 파주출판단지나 헤이리마을처럼 건축가가 주도적으로 마스터플랜에 참여했던 도시와 건축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반응해왔는지를 보면 도시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또는 더 먼 과거를 짐작할 수 있는 도구를 얻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건축을 좀 더 미시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건축적 요소가 시즌마다 있었고 이 요소들은 도시에서 어떻게 변형되어 전파하였고, 아니면 어떻게 사라졌는지. 이것을 아카이브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심소미 도시에 쌓인 지층들, 개중 쉽게 사라지고 방치되어 온 영역에 어떻게 예술이 개입하여 좀 더 삶의 진실과 다른 영역의 가능성을 발언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도시의 표면 너머를 침투하려면, 추상적인 공간이 아닌 현재의 도시 공간, 삶 속에서의 공간을 제대로 봐야 해요. 현재 진행 중인 «마이크로시티랩»과 같이, 도시계획에서 비켜나간, 이미 파괴되었거나 재개발이 예정된 곳을 주목해 경제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도시에서 쉽게 축출되는 틈의 장소에 예술이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이성민 ‘건축과 언어’를 주제로 전시해보고 싶은데요, 2014년에 «건축어바니즘: 서울/멜버른»이라는 전시에서 호주 건축가와 대화하면서, 한국 건축가가 수사적인 표현을 건축 소개에 많이 사용했던 것과 반해, 그들은 기능으로서의 건축을 이야기했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안양, 수원, 인천, 안산, 광주 등을 다니며 서울 이외의 도시들이 만들어진 과정과 주체를 되짚어 한국의 도시계획을 주제로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정다영 한국의 현대건축사를 인물과 사건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직은 더 필요한 것 같고, 그중 건축가 김중업을 제대로 한번 다뤄보고 싶어요. 단순히 건축의 영역에 한정시키지 않고 당대의 종합예술인으로서 면모를 부각시켜서요. 그와 동시에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건축사도 기술하고 싶습니다. 최근 ‘4·3그룹’ 구술집이 나오기도 했지만, 가깝게는 서울건축학교(SA) 혹은 민건협(민족건축인협의회)까지 소위 80년대 말 90년대 초 이후 우리나라 건축계의 흐름을 개인 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풀어보고 싶습니다.

매체로서의 건축전시

분량14,596자 / 30분 / 도판 2장

발행일2016년 11월 14일

유형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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