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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 아리랑

박길룡

나는 어떤 이지적인 청년이 낭만적인 중년이 되거나, 궁극으로는 고전에 귀의하고 마는 과정을 자주 보았다. 그러나 김중업의 낭만성은 처음부터 소질素質(<필그림 홀>, 1956)이며, 중년의 생의生意(<서산부인과 병원>, 1965)를 세우며, 말년에 흥융興隆(<서울올림픽 평화의 문>, 1985)한다.

르 코르뷔지에의 이중성이 그랬듯이 김중업의 건축은 다분히 합목적적이거나, 충분히 낭만적이다. 김중업의 부산대학 본관은 이지적이지만 <UN군 기념묘지 정문>(1966)은 낭만 전통에서 추출된다. 김중업의 합리주의는 <삼일빌딩>(1969)을 내놓았고, 서정주의는 <서산부인과 병원>을 그려댔다. 그러니까 김중업의 낭만성은 줄곧 목적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김중업의 낭만 시대인 1960년대는 빈궁의 사회였으며, 쓰레기에 모더니즘이라는 꽃을 모종하던 시기였다. 그러기에 한국의 낭만은 사회적 의미가 서구와 다르다.

제3세계의 모더니즘이 그러하듯, 한국의 모더니즘은 세계에 편입하기 위한 티켓이었다. 이에 비해 낭만성은 스스로 여닫을 수 있는 개결開結의 수단이기도 하다. 낭만은 표준화되거나 세계화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한국적 모더니즘’의 특질이 그려진다. 한 작가에게서 또는 한 작품에서 다면성을 보는 것은 어느 시대에서나 흥미롭지만, 특히 변방의 근대주의에서는 새삼스러워진다. 김중업의 낭만성은 다분히 시적이거나, 관능적이면서, 전통과 접속한다. 김중업의 낭만성은 전통문예, 문학, 미술과 함께 익어왔다. 그는 전통문예 수집가였으며, 르 코르뷔지에 만큼 미술과 건축의 세계를 함께 가지며, 특히 문학적 소양을 앞세웠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이제 김중업의 낭만성을 공감하기 위해 <주한 프랑스 대사관>(1960)에 세 개의 시료를 꽂아본다. 이 건축을 낭만적으로 본다 하더라도 그 시선이 여러 줄기인 것은 그만큼 미학적 접점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한국전통조형의 대표적인 변형(데포르마시옹déformation)이다. 이러한 전통언어의 구체성은 이희태1와 비슷하지만, 소위 그 “시적 울림”2은 다르다. 다음으로, 낭만을 시적인 은유로 읽는 것이다. 그러한 문학적 낭만성은 동시대 한국에서 김중업만의 소질이기도 하다. 이상(李箱, 金海卿) 이후 시를 쓰는 건축가는 안병의 정도였는데 그 역시 김중업의 계보이다. 마지막으로 낭만을 음양 관계의 설화로 풀어보는 것이다. 이 역시 넓게는 한국의 전통 의식이기도 하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전경 / 사진 제공: 김중업박물관

전통의 낭만

김중업의 전통은 과거의 지시에 눈을 돌리지만, 데포르마시옹의 조형이다. 전통은 형태적 감수성이 앞서기 때문에 전통적이며 낭만적 시형식視形式이다. 김중업의 낭만성이 전통을 기재器材로 하는 것은 김수근이나 이타미 준의 수단과 닮았다. 그의 전통적 시형식은 단순히 미려한 것이 아니라, 세련된 감성으로 다듬어진다. 이 점은 이희태의 ‘솜씨’ 이상으로 보인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그 놀라운 감각은 한동안 ‘한국 근대건축 전통’의 정답으로 통했다. 그것은 김중업 자신의 복제와 추종들의 의사擬似를 통해 어떤 스타일이 되어 그 계보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시작하여 <경남문화센터>(장석웅, 1982), <인천 문예회관>(장석웅, 1994), 그리고 <광주 문예회관>(김상식, 1995)에 이른다.

한국의 전통건축은 기본적으로는 지붕‐기둥‐기단의 3부 형식이다. 기와지붕은 갓처럼 넓고 넉넉하기에 우리의 시각을 선점하는 요소이다. 여기에서 선, 면, 서까래, 추녀 등이 변형된다. 중요한 것은 이 지붕의 존재감인데, 지붕은 몸체에서 독립하는 부양을 시도한다. 기둥은 매시브한 지붕을 돋보이게 하는 지주이며 그 자신이 공간의 주역이다. 기단은 본래 보편적인 건축요소이지만, 대지와 건축의 관계를 정리한다. 그러나 이 전통방법의 전형성에 차츰 식상하며 1990년을 지나는데, 더군다나 문화센터라는 빌딩 타입에서 반복하여 나타나는 현상이 신기하였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도면: (위에서부터) 2층 평면도, 1층 평면도, 북측 입면도 / 사진 제공: 김중업박물관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모형 / 사진 제공: 김중업박물관

쌍의 비대칭 이원二元

한국 전통에서 한 쌍이란 대칭적 구조가 아니다. 둘이라 하더라도 마이너 하거나 메이저로 상대하며, 음과 양으로 보족補足적이다. 남과 여로 유별하지만 상호적이다. 이 대사관건축이 한 쌍의 자웅雌雄으로 보이는 것은 두 건물이 비대칭의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하나는 몸집이 좀 더 크고 하나는 좀 작거나, 하나는 볏肉冠이 크고 몸짓이 장려하며 다른 하나는 조금 마이너하다. 한 쌍의 장끼와 까투리 같다.

김중업은 넉넉한 대지에 전체규모가 크지 않는데도 건축을 두 덩이로 나누었다. 배치를 정면으로 하지만, 적당한 사각으로 틀어 두는 것이 김중업이 빚은 한 쌍의 자웅이다. 한 쌍이 이루는 절묘하게 비틀린 각도와 함께 경사 대지에서 앙각仰角을 달리하기에 입체 기하학적인 시각관계를 연출한다.

암컷이 앞에 있는 대사관 업무동이고, 뒤에 좀 더 큰 것이 대사관저이다. 남자의 모습이 더 거창한 것은 생물의 일반적인 양태이며 조선의 습속이기도 하다. 어미가 앞장서고 그 뒤를 뒷짐 진 아비가 걷는 모습이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지붕 / 사진 제공: 김중업박물관

문학적 낭만

프랑스 사람이 김중업의 <주한 프랑스 대사관>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내레이션은 한 편의 시를 읊는다.3

동네 한구석의 언덕의 비탈진 곳 이곳은 거주지입니다. 모양과 공간과 입체감이라는 섬세함의 공간입니다.
그 섬세함은 그 장소가 생기 있는 감각과 빛나는 표적들 꽃, 창문, 잎, 모자이크를 융단처럼 깔아놓은 것과 같지요.
더 이상 큰 벽이 공간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시선의 조각들 그 자체가 공간을 만듭니다.
시선은 이런 것들을 포함합니다.
정원은 무기질이고 식물성인 장식 융단입니다.
돌, 나무, 경사
공공장소는 즉흥적인 사건들의 연속이고 미묘하고 생기 있는 강렬한 빛 가운데로 초대받는 것입니다.
마치 시인이 오래된 기술을 잉태하면서 풍경이나 공연이 순수한 의미 작용 가운데에서 만들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낮으로 뒤덮고 없는 것으로 둘러싸는 어쩌면 장식하는 그렇게 형상들 꽃, 나무, 새들이 정화되도록 말입니다.

이 시적 설명은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에서 가져온 것이다. 영화는 김중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김중업의 낭만성에는 시적 감성이 흥건하다. (비록 그의 문학성이 얼마나 깊은 미학을 갖는지는 미뤄놓더라도) 줄곧 어떤 글을 써도 시적이다. 하기야 젊어서 그는 시인이 되고자 잠시 건축을 떠나기도 했다. 곧 건축으로 돌아왔지만, 와서 하는 말은 다음과 같았다. “시적 건축가가 되어 돌아왔다.”

아마 동시대에 김중업만한 문학적 감성을 가진 건축가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문학적 감수성이 좋은 건축가의 조건은 아니지만, 최소한 낭만적이고자 할 때 문학적 메타포의 능력은 중요하다.

건축의 낭만에 대하여

낭만이란 고전의 상대적인 미학으로서 격식을 벗고, 보편적 틀을 털고 난 다음에 누리는, 일종의 자유로운 스타일이다. 그러나 바로크의 극적인 효과와는 구분되며, 무엇인가를 설명하려는 상징주의도 아니다. 가끔 매너리즘처럼 과잉된 몸짓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원칙을 타고 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낭만은 ‘가장 인간적인 표현’이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인간 적합의 합목적성에서 거두었지만, “감성은 이성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4

낭만은 이지理智의 건너에 있어 논리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대상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입도는 즉각 알아차릴 수 있다. 그것은 그냥 아름다워서도 안 되고, 서정과 시적 풍치에 이르러서야 로맨틱하다. 그것은 심미적 원리로 진동하지는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건축을 예술로 말하게 하는 영역이다. 다시 말해 건축을 사회적 시스템이라든가, 기능의 귀납적 결과에서 벗어나게 한다. 김중업이 그 경계에서 말한다. “어찌 시적이지 아니할 수 있는가.”

김중업의 낭만성은 후기에 들수록 깊어진다. 그래서 <바다호텔>(1980)이나 <민족대성전>(1980)과 같은 초거대 프로젝트에서도 낭만을 깔고 그린다. 그리할 수 없어도 (실제로도 결국 그리할 수 없게 되었지만) 건축은 예술이며 낭만이기 때문이다.5


박길룡

국민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로 한국건축의 정통한 이론가이자 비평가로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학자이다. 그의 대표적 저서로는 『한국현대건축의 유전자』(공간사, 2005), 『건축이라는 우리들의 사실』(발언, 2001) 등이 있다.

김중업 아리랑

분량3977자 / 10분 / 도판 4장

발행일2014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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