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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도시재생과 제3섹터의 자산화 전략

최영숙

‘제3섹터the third sector’는 국가와 공공기관으로 대변되는 공적 영역과 민간자본으로 대변되는 사적 영역,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비영리 단체나 사회적기업을 칭한다.1 전 세계적으로 제3섹터의 등장과 부상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국가경영의 방식과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국가나 지방정부가 국민, 주민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 혜택을 대폭 삭감하는 대신, 사회경제적 문제가 심각한 지역 및 역량 있는 커뮤니티를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그러면서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다양하고 밀착된 방식으로 담아내고, 지역 단위의 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주체들을 중심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구도 형성이 가능했다. 이러한 분산정치의 패러다임은 지방정부 간, 커뮤니티 간의 경쟁을 부추기면서 사회정의에 입각한 배분을 이슈화하기도 했고 역량이 이미 마련된 소수에게 자원이 집중된다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작은 단위의 움직임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서서히 획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마을운동,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을 통해 시민 주도적 변화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제3섹터가 ‘도시재생’이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프레임에서 주요한 파트너 인자로 포지셔닝 되면서, 그들이 지속가능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줄 장기적 비전이나 법제는 미비한 상황이다. 각종 단발성의 지원제도에 의존하며 단기간에 사업을 수행하고 결과물을 내기에 급급한 것이 대부분의 현실이다. 본 글에서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영국의 도시재생 관련 사회적 기업들의 움직임 및 이들을 위한 정책적 지원제도들을 간략히 리뷰하고자 한다. 특히,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비빌기지’를 중심으로 최근 논의가 점화된 ‘자산화 전략’을 집중 조명한다.

제3섹터는 지리적 권역에 기반을 두어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으로 등록된 커뮤니티 기업을 지칭한다. 1977년 영국 환경부는 도시재생이 정부의 역할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민간영역, 교육기관이나 복지센터 같은 지역의 대표기관들, 커뮤니티 간의 밀착된 협력을 통해 가능하다는 도심정책 제안서를 발표했다. 당시 이 보고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정책적 지원체계로도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민 주도로 지역 기반의 협력에 근간한 도시재생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오월혁명 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믿었고 그 변화의 핵심이 공동체라고 확신했다. 국가가 더 이상 빈곤, 주택문제, 고용 등 도심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불신과 더불어 무자비한 개발사업에 의한 공동체 파괴를 묵도해 온 커뮤니티 리더들은 커뮤니티 소유의 공동자원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고 자산화 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국내에도 많이 소개된 런던 사우스뱅크 지역의 ‘코인스트리트 커뮤니티 빌더스(CSCB)’가 선구적 사례 중 하나이다. 1993년 이러한 기업들이 모여 ‘개발 트러스트 협회’를 조직해 지역 활동가들이 커뮤니티 기업을 설립하고 자산화 전략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해 왔고, 2011년 커뮤니티 기반의 도시재생을 추구하는 모든 사회적기업을 아우르는 중앙조직인 ‘로컬리티Locality’가 설립되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커뮤니티 기업의 자산화 전략이 제도를 통해 공식적으로 지원되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본격적인 계기는, 중앙정부가 2003년부터 지역정부 및 공공기관이 커뮤니티 기업에게 잉여자산을 시장가치 이하로 이전할 수 있도록 허가하기 시작하고 대규모의 지원금과 함께 커뮤니티 자산화를 지원하는 전담조직인 ‘자산 이전 부서Asset Transfer Unit’를 로컬리티 내에 조직하면서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제외한 영국권역) 지역의 경우, 2020년까지 공공자산의 일정 부분이 왕성한 활동을 펼쳐 온 커뮤니티 기업에게 소유 이전된다는 비전까지 발표했다. 이러한 정책적 대세는 제3섹터를 도시재생의 주요 핵심인자로 인정하는 것으로, 제3섹터가 도시계획 및 실행과정에 관여하여 의사결정력을 갖는 등 정치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젠트리피케이션의 여파가 심한 지역에서는 도시재생에 관여해 온 커뮤니티 기업들이 지방정부와 협력하여 민간자본 주도의 대규모 개발사업이 진행될 경우, 개발 부지의 일정 부분이 공공서비스나 저렴한 임대의 사무공간으로 구성되도록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를 법제화한 ‘섹션 106’ 조항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다. 이런 점에서, 정책적 기반을 통한 제3섹터의 자산화 전략은 단순히 지난 수십 년간 잘 해왔으니 더 잘할 수 있도록 재정적 안정화를 도와준다거나 땅따먹기 차원을 넘어, 정부마저 통제할 수 없는 다국적 시장주의를 견제할 지역 단위의 공공세력 배양 및 공동체 의식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의 독려를 의미한다. 한편으론, 관료주의 체제로 효율성과 유연성이 부족한 정부가 해결할 수 없는 도시문제를 열정에 가득찬 제3섹터에게 슬쩍 떠넘기는 셈이기도 하다.

아울러 반드시 짚고 넘어갈 점은, 자산화 전략을 도깨비방망이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책적 지원을 통해 자산 소유 이전에 성공한 이후에도 끝내 생존하지 못하는 커뮤니티 기업들이 허다한 영국의 실상은 이를 입증한다. 분산정치에 따라 국가와 정부의 책임을 일부 수행하면서 복잡거대한 도시재생 프레임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엮어내고, 더불어 제각기 다른 요구사항을 가진 커뮤니티들을 아우르는 사회적기업의 선행 요소는, ‘운영주체의 안착’과 ‘내적 역량강화’다. 길게는 5년까지 걸리는 자산화 전략추진 과정에서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들은 의외로 많다. 지역재생의 문맥 안에서 운영주체의 정체성이 뚜렷해야 하고, 지역 내 협력적 관계와 공공영역을 포함한 거버넌스가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지역 내 협력적 관계에 대한 포괄적 매핑은 커뮤니티 기업으로서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가장 주요한 핵심 요소이면서 시간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지난한 과정이다. 도시재생의 틀에서는 보통 주민모임, 상인을 비롯한 비즈니스 섹터 모임, 사회적기업이나 자원활동 조직 같은 비영리 기관, 교육 기관과 경찰서 등의 공공서비스 기관, 지방정부의 담당 공무원 등을 포함한다. 정체성과 실행 규모에 따라 협력적 관계의 설계가 달라질 수는 있다. ‘비빌기지’의 경우, 지리적 권역에 한정된 도시재생 어젠다가 아닌, 청년자립 및 제작문화와 생태주의에 입각한 도시재생을 지향하므로, 지역 내 협력 관계를 최소한의 플랫폼으로 유지하면서 오히려 지역을 뛰어넘어 어젠다 중심으로 협력관계를 추구하는 선구조직들을 별도의 거버넌스 주체들로 구성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거버넌스 내 두 레이어 간 시너지 발생이 가능할 수 있는 운영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거버넌스 구성 이후에는 포지셔닝과 안착을 위한 기초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초연구에는 지역의 현황 및 도시재생과 관련된 설문조사, 통계 자료 분석 및 거버넌스 구성원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도출된 비전, 도시재생 시나리오 등이 포함된다. 워크숍은 블록파티나, 제작워크숍, 소모임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 엄마들을 위해 아기를 돌보는 인력이 배치되거나, 도시공간에 대한 상상의 결이 다를 수 있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워크숍이 마련되기도 한다. 자산화 전략을 지원하는 정책이 발의될 경우, 이런 선행연구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도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튼튼한 초석작업을 거치지 않은 기업경영이 실패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초연구가 완료되면 그 결과를 토대로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과의 협력프로그램 및 지역 기반 서비스와 인프라의 개선 등을 제안하는 ‘커뮤니티기획안Community Plan’과 ‘실행기획안Delivery Plan’을 수립하는데, 보통 10년을 단위로 기획한다. 이 기획안의 한 항목으로 자산화 전략이 담길 수 있는데 타겟자산, 운영방식,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수익구조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특히, 수익구조의 지역환원 전략수립이 중요한데, 제3섹터 자산화 전략의 주요 기조가 ‘커뮤니티 소유’라는 점에서 이 전략이 투명하지 않을 경우 자산소유의 정당성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런던 해크니 지역의 도시재생에 깊게 관여해 온 사회적 협동조합인 ‘해크니 협동조합 개발회사’의 경우, 지역의 사회적기업들 및 소규모 비즈니스를 보호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그들에게 유리한 임대조건을 제공하는 대신, 각자의 전문분야에서의 지역 환원 전략과 실행안을 수립하도록 강력히 독려한다. 입주해 있는 소규모 훌라후프 제조회사가 여름 동안 매주 무료로 훌라후프 강습을 공공장소에서 주관하거나, 건축설계나 디자인 등 전문지식에 기반을 둔 기업들이 청년멘토링을 진행한다. 아울러 입주기업들을 한 데 엮는 소규모의 페스티벌을 연간 수차례 개최하면서 지역과의 접점을 유지한다.

도시재생과 관련한 제3섹터의 중앙조직, 로컬리티의 2011년 설문조사에 의하면, 423개의 가입기업 과반수 이상이 총 1,000억의 가치에 달하는 부동산 자산을 소유, 이를 통해 연간 약 500억의 수익을 창출하며 지역의 다양한 분야에 환원하고 있었다. 국내 제3섹터 기업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특히, 행정의 주체들이 수시로 바뀌어 장기적 비전의 정책 마련이 어려운 한국 상황에서 영국 내 제3섹터 지원정책과 제도들에 대한 제고는 실질적으로 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제3섹터가 도시재생의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기까지 30년의 세월을 거쳐 다양한 실험들이 이루어졌고, 그 실험들이 단순히 위로부터 시작된 지원시스템에 대한 반응이 아닌, 도시빈곤과 공동체 파괴를 고민해 온 커뮤니티 리더들을 중심으로 한 아래로부터의 지속적인 노력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화로놀이짱’을 시작으로 현재의 ‘비빌기지’까지, 전기도 없고 물도 안 나오는 흙밭 공터에서 컨테이너 하나둘씩 쌓으며 지난 7년간 우여곡절을 겪어 온 청년들의 현 상황은, 적절한 준비과정과 정책적 맥락이 삭제된 채 단순 ‘점유허가’나 자산화 전략을 통해 보상받듯이 해결될 것은 아니다. 그 7년간 축적된 역량 및 도시재생 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지역적, 정책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현재로써는 가장 시급하다. 이 합의 과정이 비생산적 설전이 아닌, 연루되는 관계들을 토대로 의미 있는 도시재생 거버넌스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합의가 결여된 질주는 불협화음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책임과 권한이 대외적으로 인정된 뒤에 땅이든 건물이든 무엇이든 주어야 받는 사람도 당당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울러 임대수익에 의존하여 다양한 지역사업들을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하는 영국의 제3섹터와 달리, ‘비빌기지’는 이미 도서관, 커뮤니티 주방, 제작공방 등 공공재를 구축해가는 상황이고 입주한 단체들이 세입자가 아닌 공동운영의 주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 자산운용 모델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당 정부조직들은 동일한 조건이 주어질 경우 과연 현재 ‘비빌기지’가 일궈온 성과들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자문해 보길 바란다. 왜 영국 정부가 도시재생 프레임에서 제3섹터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활용했는지를 본다면 자연스레 답이 나올 것이다.


최영숙

런던대학에서 지리학박사를 취득한 뒤, 런던 해크니 소재 창작집단인 ‘라라클랩톤RARA Clapton’을 공동운영하며 독립연구자이자 예술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영국의 도시재생과 제3섹터의 자산화 전략

분량5,556자 / 12분

발행일2016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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