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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관의 시대, 청년관의 질문

윤원화

2015년 젊은 작가에게 필요한 것 작가들에게 필요한 무대는 어떤 모습일까? 공공미술관의 한 모퉁이일까? 아니면 자유롭고 자립적인 공간일까? 특히 자신만의 작업실마저 갖지 못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습작과 실패작이 널려 있는 시행착오의 공간조차 없는 그들에게 필요한 전시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청년 작가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면 되는 것일까? 고독과 화해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한국 사회 속에서 청년 예술가들을 위한 활동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커먼센터 디렉터인 함영준과 시각문화 연구자 윤원화를 통해 들어본다. 

최근 현대자동차는 유니레버에 뒤이어 2015년부터 11년간 테이트모던 터바인홀 전시의 공식 후원사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2014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도 ‘현대차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한국 현대미술가의 개인전을 후원하고 있다. 과거에도 일부 기업가들이 미술품을 수집하고 미술관을 후원하며 심지어 직접 미술관을 설립했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취미 활동의 연장이었다. 반면 오늘날 기업들이 미술관을 후원하는 것은 국제적인 축구팀을 후원하는 것과 같은 전 지구적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이다.

과거의 미술관들은 상업 화랑들이 주도하는 미술시장과 적어도 명목상으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떤 절대적인 가치의 수호자를 자처했으며, 이러한 위상은 개인 컬렉터, 문화재단, 기업, 또는 정부가 사적 신뢰나 공적 책임에 따라 제공하는 무조건적인 지원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미술관의 개별적 규모와 전체적 총량이 급증한 현시점에서 미술관들은 점점 더 미디어 산업과 유사한 관계적 배치 속으로 말려들고 있다. 이제는 소규모 미술 공간들만 기금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대형 미술관들도 가시적인 성과를 창출하여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만 기금을 유치할 수 있고, 그런 기금이 있어야만 눈에 띄는 활동을 펼치면서 자신의 입지를 유지할 수 있는 끝없는 자기증명의 회로 속에서 돌아간다.


한국의 경우 이 같은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알렸던 것이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서울 한복판에 번듯한 국립미술관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개관할 때부터 있어왔지만, 정작 2009년에 서울관 건립 계획을 추동한 것은 그와는 조금 다른 논리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서울관 개관에 앞서 국립현대미술관을 특수법인으로 독립시킬 예정이었다. 이제는 미술관도 재정 자립도를 높이고 경영의 자율성을 확보하여 일국의 정부산하기관이 아니라 전 지구화된 문화 시장의 일원으로 활약해야 하며, 서울관은 이러한 혁신을 선도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플래그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1)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듯이 모든 것이 예정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 법인화 계획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서울관은 정규적인 운영 조직을 구성하지 못하고 과천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계약직 인력으로 간신히 구색만 맞춰 개관했다. 그러나 서울관을 해외 유명 미술가의 최신 전시부터 패션, 영화, 음악 같은 대중문화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특성화한다는 기본 방향은 변함없다.2) 그리고 이는 여전히 미술관이 적극적인 영리 활동과 기금 유치를 통해 재정을 확충하여, 문화적 수요와 공급의 시장에서 더욱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경영 혁신의 요구와 맞물려 있다.

여기서 후원 기업, 미술관, 관람객의 관계는 광고주, 텔레비전 방송국, 시청자의 관계와 유사해진다. 미술관들은 여러 미디어 채널들 중의 하나로서 적절한 미술가를 섭외하여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아니면 미술 외적인 소스를 미술 콘텐츠의 형태로 재가공하여 공급한다. 기업들은 유력한 미술관을 후원함으로써 잠재적 소비자들에게 양질의 무료 콘텐츠를 제공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높인다. 물론 서울관이 전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며, 서울관이 국립현대미술관 전부도 아니다. 그러나 서울관은 담론적 수준에서 명백히 새로운 미술관 모델을 전파했고, 미술이 존속하기 위해 변화해야 하는 보수적 혁신의 시대를 선도했다.


서울관이 착상되고 탄생하기까지 2009~2013년 사이의 시간은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서 시작되어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이 연간 천만 명을 돌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것은 구조조정의 시간이었고 또한 양극화의 시간이었다. 국내 미술시장이 위축되면서 상업 화랑들은 안전한 대형 작가들에 집중했고, 정부는 문화의 힘을 강조하는 만큼이나 문화의 성공을 요구했다. 조만간 문예진흥기금이 고갈된다는 소문이 떠도는 와중에도 젊은 미술가와 기획자들은 연말마다 기금을 따기 위해 기획서와 성과 보고서를 쓰기에 바빴지만, 전시를 만들고 생산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은 점점 더 협소해졌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젊은 미술 종사자들의 대응은 여태까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자신들의 활동을 노동력의 판매로 재개념화하여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2012년 노동절 총파업 퍼레이드에서 <상상력에 밥을>이라는 이름으로 미술-디자인 라운드테이블이 개최된 것이나, 이를 바탕으로 2013년 미술생산자 모임이 결성되어 미술가의 아티스트 피(전시 참가비) 문제를 공론화한 것, 2014년 미술가 홍태림이 《공장미술제》의 운영 방식을 문제 삼으면서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 개발을 추진한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젊은 미술가와 기획자들이 작게나마 활동공간을 스스로 확보하고, 전과 다른 새로운 조건에서 새롭게 태동하는 미술과 문화의 싹을 키워 보려고 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전시 공간으로는 2013년에 개관한 영등포 커먼센터와 통인동 시청각이 유명하지만, 재개발의 파도 속에서 임대료가 떨어진 틈새를 노리거나 일시적으로 생겨난 유휴 공간을 파고들어 잠시 생겨났다 사라지는 작업실과 전시 공간의 중간적 형태들은 그보다 훨씬 많다.3)

이들은 미술의 최전선을 점하기 이전에 ‘도시 활성화’의 최전선에 포박되어 있다. 이는 서울관이 미술을 선도하기 이전에 ‘탈산업 도시 서울’이라는 큰 그림에 붙들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2010년대 서울의 도시 활성화는 원래 주거지구였든 상업지구였든 공업지구였든 상관없이 결국은 유동인구의 증가와 투자자본의 유치를 통한 서비스업과 부동산업의 활성화로 수렴한다. 그리고 이렇게 활성화된 서울에서의 생활은 문화와 예술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의 생산과 소비에 의해 점거된다. 이러한 배치 속에서 과연 미술의 생산은 가능한가?


최근 SNS와 인터넷 웹사이트, 오프라인 모임과 미술 잡지들을 통해 확산된 ‘청년관’ 담론은 바로 이런 질문을 공론화한다. 청년관 담론은 지난해 12월 상봉동 교역소에서 열린 좌담회 <안녕 2014, 2015 안녕?>에서 사회를 맡은 미술평론가 임근준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 젊은 미술가와 기획자들이 직접 나서서 서울관에 전시 공간을 요구하고 더 나아가 국립현대미술관의 제도적 개혁을 주장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청년관’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젊은 세대도 서울관의 울타리 안에 넣어 달라고 탄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스스로 현재의 서울관이 구획해 놓은 미술의 질서를 넘어 새로운 미술관을 제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촉구한다.4)

청년관은 서울관에 결핍된 것을 가시화하는 비평적 거울이다. 서울관이 미술관을 고객의 불만과 만족 사이에서 움직이는 소비와 향유의 공간으로 규정한다면, 청년관은 거기서 배제된 생산적 논쟁과 경합의 장을 불러낸다. 현시점에서 서울관이 찬탄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서울관이 오로지 찬탄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서울관이 신진 미술가들의 장인 《젊은 모색》이나 《오픈 스튜디오》뿐만 아니라 중견 미술가들의 경연인 《올해의 작가상》도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관은 새로운 미술이 제안되고 모색되는 과정에 관객들을 참여시키는 대신에, 새로운 미술은 이제 더 이상 그런 골치 아픈 문제로 관객들을 괴롭히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싶어 한다. 그 속에서 미술은 세계를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관객의 눈앞에 새로운 시공간을 열어 보이는 것이라기보다는, 미술관의 거대한 공간에 특화된 스펙터클과 이벤트의 양식으로 학습된다.


진정한 미술은 미술관 바깥에서, 아마도 생의 한가운데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낭만적인 신화다. 현대 미술은 언제나 미술관의 질서를 창조적으로 해체하면서 성장했고, 세계의 모든 인공물들을 미술사적 유산으로 재해석하면서 자신의 지평을 넓혀 왔다. 청년관 담론은 바로 이러한 ‘상상의 미술관’을 활성화하면서 유례없는 학습과 실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대안공간이나 상업화랑이 새로운 미술 생산의 거점으로 작동했던 시대를 경험하지 못하고 곧바로 서울관의 시대에 진입한 가장 젊은 미술 전공자들이 청년관에 가장 열렬하게 호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미술을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 길 없는 소비의 대상으로 순환시키려는 시대의 흐름에 맞서 다시 미술이 생산될 수 있는 공간을 열고자 한다. 서울관이 황폐해진 서울을 가리는 ‘포촘킨 파사드’로 전락하고 젊은 미술이 임대료의 등고선을 따라 서울의 언저리를 떠돌며 소진되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는가? 이것이 청년관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1) 심상용, 「국립현대미술관 특수법인화를 정당화하는 담론들 다시 읽기」, 『현대미술학 논문집』 제16집, 2012, 121~169쪽 참조.

2) <손영옥 문화부장이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만나다>, 《국민일보》, 2014년 10월 10일자 참조.

3) 가장 최근에 떠오른 지역으로는 2014년 재개발이 확정된 세운상가 일대가 있다. <전자부품·비아그라 간판 사이 ‘예술’이 꽃피다>, 《한겨레》, 2014년 9월 11일자 참조.

4) 청년관 관련 논의는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웹사이트에서 현재진행형으로 기록되고 있다. savethemuseum.net, sns 아카이브는 savethemuseum.org 참조.

5) 이 개념에 관해서는 앙드레 말로, 『상상의 박물관』,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4) 참조. 6) 2015년 2월 14일 홍익대학교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 <다수의 발언자들> 속기록 참조. drive.google.com/file/d/0BxrvIFbgaLIsX3Uzd1ZiWmNtOWs


윤원화

서울에서 활동하는 번역가, 시각문화 연구자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예술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미디어, 문화, 사회의 복합적인 변화상에 관심을 가지고 『컨트롤 레벌루션』, 『청취의 과거』, 『광학적 미디어』 등을 번역했다. 2012년부터 미술과 시각문화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여 『퍼블릭 아트』, 『아트인컬처』, 『도미노』 등의 잡지에 기고하고 있다. 2014년 일민미술관에서 아카이브 전시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를 공동 기획했다. 현재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서울을 중심으로 나타난 비미술의 변화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서울관의 시대, 청년관의 질문

분량5,291자 / 10분

발행일2015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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