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가 없는 것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글쓰기
윤신영 × 이경희
분량11,803자 / 25분 / 도판 3장
발행일2015년 4월 22일
유형인터뷰
나 이외의 모든 것, 아니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소홀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회의감은, 사사롭다고 스쳐버린 것들이 품은 우주와 고유성에 놀라고 집착하는 것으로 전이된다. 한 젊은 과학기자는 ‘관계와 관계맺음’을 물음으로 생명의 존재 원인과 생태의 연결고리를 다양한 분야를 둘러 질문한다. 그것도 이제는 멸종된 편지의 형식으로. 우리나라에서 과학 전문기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또 그는 한때는 철학이었으나 지금은 과학으로 전문화된 분야의 눈으로 어떤 질문을 던질까. 이러한 물음으로 『과학동아』의 윤신영 편집장을 만났다.
윤신영 연세대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도시 공학과 생명 공학, 환경학을 공부했고, 『과학동아』에서 과학 애호가이자 기자로서 행복하게 일하는 중이다. 로드킬에 대한 어린이과학기사로 2009 년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과학언론상을 받았다. 『노벨도 깜짝 놀란 노벨상』, 『과학, 10월의 하늘을 날다』(공저), 『소셜 네트워크』 등 몇 권의 청소년 책을 쓰고 번역했다.
인터뷰어 이경희 본지 편집자
진화와 환경문제의 연결
이경희 도시공학과 생명공학을 공부하셨는데, 서로 매우 다른 듯하지만 유사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윤신영 도시공학과 생명공학은 각각이 도시와 생명, 하나는 큰 것을, 하나는 작은 것을 봐요. 도시 안에도 생명이 있으니까 언뜻 연결된다고 볼 수도 있고요. 바로 제가 그점에 주목해 대학원은 환경학을 택했어요. 환경은 두 개 모두를 아우를 수 있거든요. 도시 내에 사람이 살고 있으니 생태학도 공간에 대한 생물의 삶을 이야기하는 거니까, 둘을 엮을 수 있겠구나 했어요. 특히 환경은 과학분야 중 사회학과 접점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기대와 달리 분자생물학을 공부해야 해서 미시적인 것이 많았고, 오히려 생태학과 동물은 전혀 다루지 않았어요. 환경대학원에 가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분들을 만났지만, (기존의 데이터를) 체계화 시키는 방법론적 접근이었고, 졸업 후 일을 하면서 그제서야 구체적인 사례들을 접하게 됐죠.
이경희 그러한 관심을 표현하고 공부할 수 있는 채널이 책 출간이나 논문 등 여럿일 텐데, 과학기자를 택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윤신영 주변에 기자가 많았음에도, 글쓰기를 좋아했음에도, 기자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일도 하면서 쓰고 싶은 글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엔 후회도 많이 했어요. 기대와 달리 환경문제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비중이 낮은 거예요. 첨예한 문제제기보다 재미있게, 잘 알리는 게 우선이었어요. 시급한 환경문제도 산재해 있고,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동식물 문제도 있는데, 왜 내가 기초지식 알리기에 시간을 보내야 하나 싶어 조급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가는 것과 중요한 문제를 알리는 것, 이 둘을 동시에 해야하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이경희 기자 생활이 올해로 8년 째이고, 최근 편집장 직도 맡으셨는데, 초기 방황하셨던 때와 지금은 입장에 변화가 생기지 않았나요.
윤신영 입장이 바뀌었다기 보다는 정도의 차이인 것 같아요. 초기엔 과학을 비판과 윤리적 기준을 우선으로 대했어요. 환경문제를 자연착취 입장에 치우쳐 바라봤고, 또 날카로웠죠. 특히나 당시 4대강과 같은 거대사업이 한창이었고요. 그렇다고 지금은 관심이 덜 한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는 진화나 물리와 같은 정통 과학에도 관심이 커요. 환경학 외에도 관심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거죠. 하나의 이슈도 다양한 면에서 살펴보니까요. 최근 출간한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엠아이디, 2014)도 출판사에서는 환경문제에 집중하길 원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게 자칫 단조로울 수도 있고, 이미 공포감이나 혐오감으로 경각을 일깨우는 책은 많으니, 그보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읽히면서 접근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진화와 환경문제를 접목했어요. 지금의 환경문제가 진화의 연결선상에서도 설명할 수 있거든요.
이경희 ‘과학’도 ‘건축’ 만큼이나 일반인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분야입니다. 제 경우만 그런 것인지, 실제 거리감이 있다면 왜 그러한지,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상황도 궁금하고요.
윤신영 우리나라가 교육열이 높으니 과학을 교육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비중이 커서 다른 나라와의 비교가 어떨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과학 잡지 발행이 적은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예요. 영어권에 흥하는 것도 있어 각국에 번역판도 내지만 수요는 별로 없어요. 유럽에서는 영국, 독일, 프랑스는 많이 내고 잘 팔리는 편이고, 아시아권에서는 일본이 종수가 많은 편이고요. 한국은 교육에 초점을 둔 어린이 과학잡지들은 있지만, 성인과 어린이가 모두 볼 수 있는 과학잡지는 『과학동아』가 유일해요. 저희도 내부적으로 성인들도 볼 수 있는 품격 있고 수준 높은 잡지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서’는 지적 충족보다는 교육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수요는 여전히 중고생이 많습니다. 학생이 아닌 성인이 과학서를 읽는 것은 평범하지 않은 일로 보거든요. 우리와 다르게 영미권과 유럽은 과학을 진취적인 활동으로 봐 온 역사가 있어요. 또 부유한 사람이나 귀족이 과학을 했던 전통이 있어서 고급문화로 인식하고 있고, 관련 독서와 실험을 해보는 것에 거부감이 크지 않아요. 또 다른 경우, 한번은 스웨덴 과학잡지의 편집장이 왔는데, 그들은 한국의 젊은 학생들이 과학서를 보는 것을 신기해 해요. 그들에게 과학잡지는 은퇴한 노인이 보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거든요. 젊은 친구들이 안 본다고 걱정하면서 우리를 부러워해요. 물론 우리는 ‘입시’라는 특수한 경우를 가졌으니 표면적으로만 연령대 차이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오늘의 과학기자
이경희 그렇다면 처음 기자생활을 하셨던 8년 전과 지금의 독자들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윤신영 객관적인 변화를 말씀드리는 것은 어렵겠지만, 제가 느끼기엔 요즘 확실히 눈이 매서워졌고요, 과학에 대한 전문지식이 많아져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해요. 독자보다도 강연 현장에 가서 피부로 느끼는 것은, 생각보다 마니아층이 생겨났다는 거예요. 강연들이 느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그리고 저는 과학을 공부했지만 과학자는 아니잖아요. 중간 역할을 하는 과학 혹은 기자인데, 과학자들이 직접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데, 그런 분들이 특히 많이 생겼어요. 정재승 박사처럼 연구와 대중강연을 겸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전업으로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전문가들이 많아졌어요. 전체적으로 그런 분들이 독자의 지적 수준을 끌어올리고, 마니아층도 만들고요. 수준도 높아지고 규모도 커졌는데, 학생들이야 원래 많았지만 성인들의 수요가 특히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이경희 과학에 대한 글쓰기 측면에서 볼 때 과학자와 과학기자는 어떤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면에서 스스로의 글쓰기 방향도 염두에 두는 지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윤신영 제가 과학기자를 하기 전에는 과학자가 아닌 기자나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쓴 과학 글은 하나 거르고 건너뛴 느낌이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웃음) 그런데 막상 이 일을 하면서 장단점과 역할을 분명히 느껴요. 과학자 중에는 논문 발표 외에도, 중점 연구를 바탕으로 인접 분야를 갖고 깊이 있게 좋은 글을 쓰시는 분도 많거든요. 그럼에도 국내에는 여전히 전문분야를 찾을 수 없는 분야를 발굴해 끊임없이 물어가며 과학을 소개하는 과학기자의 역할이 필요해요. 그리고 지엽적인 문제이니 세부 분야 학문이 아니라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결방법을 전달하는 것은 과학기자가 과학자보다 좀 더 잘하지 않나 합니다.
이경희 ‘로드킬’에 대한 기사로 과학언론계에서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상도 받으셨는데, 같은 이유인가요? 이 기사에서 제가 인상을 크게 받은 이유는, 도로에 새나 고양이들이 죽은 걸 어렵지 않게 보면서 막연히 불쌍하고 안타깝다고 감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도로가 너무 많은 게 문제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매우 사람 중심인 거죠. 기사를 읽으면서 데이터에 기초한 전문 지식과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적절하게 안배되어 있고, 구체적인 대안도 소개하고 있어서 지금 읽으면서도 매우 유익했습니다. 1
윤신영 그 기사는 원래 제가 수습기간에 냈던 기획안이었어요. 처음 말씀드렸던 것처럼 환경에 대한 비판적 생각이 많을 때였고, 로드킬에 관심이 많던 차에 마침 관련 연구가 국내에서 나왔어요. 한참 전 어린이 팀에서 일할 때였는데 부편집장님이 그 기획안을 기억하고 커버스토리로 제안해주셔서 열심히 했어요. 당시 편집부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데 동물의 죽음이 너무 잔인하지 않겠냐고 우려했지만, 서정적으로 접근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자 했어요. 결과적으로 공포심을 부추기지 않고도 동물들의 외부조건에 의한 죽음과 문제를 공감할 수 있는 기사가 나왔고, 독자들도 응원해주시던 차에, 미국에서의 공모 소식에 막내인 제 것이 추천받은 거예요. 기대는 안 했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고, 미국에 가서 다른 나라의 과학자, 과학기자들을 만나 많은 걸 배우고 현황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경희 외국 과학기자들의 현황은 한국과 당시 많이 다르던가요?
윤신영 행사를 주최한 미국과학진흥협회는 전문 과학저널, 『사이언스』를 발행하는 비영리 협회예요. 그곳에서 1년에 한 번 여는 과학언론상 시상식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과학 시상식이죠. 참석자는 대부분이 미국 사람이었는데, 당시 미국은 이미 많은 출판사와 매체가 없어지면서 일자리를 잃은 여러 기자들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시기였어요. 프리랜서와 저널리스트에 대한 내용이 발표 주제가 될 만큼 화두일 정도였으니까요. 한국은 대부분 언론사에 소속되어야 기사를 쓸 수 있고 프리랜서 기자가 적었기 때문에, 당시만 해도 미국만의 사정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지금의 한국이 당시의 미국과 비슷한 여건이 된 것 같아요. 소속 보다 글쓰기 능력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된 거죠.
이경희 월간지에 기사를 쓰는 것 외에도 강연, 워크숍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과학기자로서의 활동의 범주는 어떻게 키울 수 있는 걸까요? 『사라져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에서도 동양고전, 철학, 인문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와의 접점을 시도하시고 있고요.
윤신영 분야로만 보면 원래 관심은 과학보다 문학이나 철학에 더 많았고요. 활동이라고 하면 소외지역에 좀 더 집중하는 거에요. 가령 <10월의 하늘>이라고 1년에 한 번 10월 마지막 토요일에 전국의 200여 명의 과학자와 과학기자들이 특정 소외지역에 한날 한시에 퍼져 강연을 했다가 다시 모이는, 플래시몹과도 같은 행사가 있어요. 저도 기획과 강연을 하며 벌써 6년째를 맞이하고 있거든요. 강연과 방송 등도 예전 보다는 적극 나서서 소통을 꾀하고 있고요.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이경희 ‘멸종’된 행동양식인 안부편지를 글의 형식으로 잡은 것이 독특합니다. 2
윤신영 요즘은 편지 거의 안 쓰죠. 편지체로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이 촌스러울지 모르지만, 지나가버린 행동양식, 스마트폰의 메신저나 SNS로 대체된 멸종된 대화양식은, 아무도 더 이상 키우지 않는 동물에서 비유적으로 가져온 것이에요.
이경희 출판사에서는 환경문제와 진화를 접목한 내용을 잘 받아들이셨나요?
윤신영 처음에는 뭐든 믿는다, 써달라, 하셨는데 샘플원고를 보시고는 “계속 이렇게 쓰는 건 아니시죠?” 하면서 반신반의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끝까지 이렇게 나갈 건데요” 했더니 의심의 눈초리를… (웃음) 그렇게 갸우뚱 하셨기에 전체 초고를 보내고 새로운 의견을 반영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좋았다 해서 바로 디자인에 들어갔어요. 다행히도 그런 전략이 좋았는지, 많은 분들이 편지의 형식이나 내용 서술에 좋은 반응을 보내주셨어요.
이경희 글들이 이미 다른 곳에 기고했던 것은 아니고, 책을 위해서 온전히 처음 쓰신 것인가요?
윤신영 네. 글은 거의 대부분 완전히 다시 쓴 거예요. 다만 기존에 했던 취재 내용을 적극 활용했지요. 한두 챕터만 기존 기사를 활용했는데, 그마저도 내용을 두 배 이상 보강해서 다시 썼습니다.
이경희 인간에서 박쥐, 박쥐에서 꿀벌, 꿀벌에서 호랑이 등으로 언뜻 보기에 이질적인 동물들이 서로 연결점을 가지고 안부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동물들의 네트워크는 인간과 어떤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나요?
윤신영 사람이 훨씬 넓은 것 같아요. 사람은 70억 명인데, 단일 종으로 70억의 개체가 있는 건데, 지구 역사상 전례가 없는 거에요. 곤충도 있을 순 있는데, 워낙 진화가 빨라서 종이 계속 달라지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커다란 동물이 혼자서 이렇게 많은 경우는 유일해요. (그나마 인류보다 개체 수가 많다고 추정되는 게 닭인데, 닭은 사육에 의해 많아진 것이니 상황이 다르고요). 사람 다음으로 많은 건 버팔로인데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어요. (1억 정도) 그리고 버팔로는 세렝기티만 왔다갔다 하는데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대륙과 대륙을 넘나들잖아요. 네트워크 자체가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복잡하죠. 크고 훨씬 많고 교류도 많다는 점이 특이한 상황이에요. 재미있는 것은 네트워크 이론에서도 전인류가 여섯 단계만 거쳐도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고 하잖아요. 이게 물리적으로도 증명이 되었다고 하거든요. 그럴 정도로 사람 간에 연결선이 많다는 거거든요.
이경희 여기서는 동물이 동물에게, 혹은 곤충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잖아요. 앞뒤로 연결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윤신영 다 나름의 이유가 있고 다르기도 해요. 장난스러운 것도 진지한 것도 있고요. 예를 들어, 박쥐는 꿀벌에게 편지를 쓰는데, 이 둘은 같은 생태계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에요. 박쥐 중에는 과일을 먹는 애들도 있어서 꿀벌과 같은 숲에 살아서 생태계를 공유하거든요. 고래와 돼지의 관계는 더 심오해요. 진화적으로 고래는 바다의 포유류이지만 5,500만 년 전에 바다로 돌아간 거예요. 원래 동물이 바다에 있다가 육지로 올라와서 양서류와 파충류로 번성했다가 포유류가 되었는데, 다시 바다로 돌아간 거거든요. 그렇다면 육지에 있었던 고래의 마지막 조상이 있었을 것 아니예요. 그 조상이 돼지와 친척이거든요. 또 다른 신기했던 게, 돌고래를 부르는 우리나라의 많은 단어 중에 ‘해저’(물돼지)라고 돼지를 일컫는 말이 있거든요. 우리 조상들이 진화론을 안 것도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바다의 고래와 육지의 돼지를 같이 놓고 보았는지 참 신기한 거죠. 그외에도 갇혀 사는 십자매, 야생의 비둘기도 보면, 비둘기는 자유롭게 살지만 천대받고 살죠.

마지막으로 네안데르탈인과 인류의 관계를 봤는데,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이긴 하지만 처음 인간에서 시작해 여러 동물들을 살펴보고 다시 인류로 마무리 한 이유가, 우리도 동물의 일부라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우리와 매우 닮았는데 조금 다른 인류가 등장했고 그들과 다르지 않고, 동물 구성원 중 하나라는 거죠.
이경희 청년기의 과학 공부가 해당 분야의 이해 폭을 넓히는 데 분명 도움은 되겠지만, 성인이 되면 과학은 한 때 열렬했던 입시라는 과거의 일일 뿐이고 일상에서는 다가가기 어려워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만물과 자연을 인간의 언어로 체계화하는 것인데도요. 책을 쓰면서 주요 독자로 삼은 이들은 누구였고, 가장 중요한 메시지로 잡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윤신영 예전에는 환경 보호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왜 지금 이런 모습인지’, 그리고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해요. 예전에는 과학이란 말이 없었을 뿐이지 똑같은 고민을 철학이 했거든요. 생물 진화, 우주, 지구과학과도 연결이 되고요. 이런 질문들은 오늘날 과학이란 이름으로 연구되고 있어요. 그런 관점에서 어떤 대상을 보고 만지고 실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과학은 물리적 실체가 없는 문제까지 다루는 것 같아요. 나와 연결된 어떤 지점이 분명히 있고, 그걸 알면 즐겁고 신기한 일이 많은데, 더 많은 분들이 느낄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더 맞추는 것 같아요. 환경 보호도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책도 생태에서 시작해 진화로 이야기를 마무리 한 이유는, 생태의 경우 계속 가지치기 하면서 새로운 생명의 등장으로 변하고 주워진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들이 남는 거거든요. 그런데 인류는 우리가 살겠다고 다른 이들에게 위해를 끼치고 있거든요. 그래서 큰 안목에서 우리가 왜 여기 왔는지, 어떤 가지치기로 이 자리에 왔으며, 이 넓은 생태계의 일부인지를 시간역사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이것도 다 과학이고요.
이경희 좀 엉뚱한 질문일지 모르겠는데요, 환경에 적응하기 보다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맞추려고 피해를 주는 유일한 생명체가 인간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야말로 외계인일 거라는 생각을 가끔 매우 진지하게 해요. 외계에서 왔는데 맞지 않는 지구에 어떻게든 적응을 해야하니 파괴를 서슴지 않는 건 아닌지.
윤신영 비유로서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죠. (웃음) 그리고 제가 제일 관심 있는 분야가 인류진화예요.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느냐예요. (유인원은 건너뛰고) 인류 역사를 7백만 년이라고 보고, 우리와 닮은 사촌 정도 되는 직계조상은 250만 년이거든요. 그중에서도 호모사피엔스는 15만년 밖에 안 돼요. 그런데 7백만 년이란 기간 중 인류의 예술행위라고 불리는 게 등장하는 시점이 있어요. 5만 년 전에 이전의 단순한 빗금이 마름모꼴로 변하면서 장식적인 모양으로 등장하거든요. 그게 이전에는 없어요. 동굴벽화 나올 때가 6만년에서 3만년 전이거든요. 정말 외계인이 그랬을 수도 있지만 (웃음) 전에 없던 행위가 분명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나타난 거거든요. 696만년 동안 없다가 갑자기 생긴 거예요. 그게 비유적으로 외계인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왜 하필 여기인가
이경희 이 책에서도 그렇지만 요즘의 환경을 다루는 글들은 문명의 이기로 인한 문제점을 고발하는 식으로 글이 귀결되는 것 같은데요, 그것 말고도 과학기자로서 알려야 되는 것들이 있을 텐데요. 환경 이외에 중심을 두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윤신영 넓게 보면 환경이지만, ‘어떻게 우리가 만들어졌나’, 예요. 이건 진화일 수도 물리일 수도 우주일 수도 있어요. 가령 ‘별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처럼요. ‘내가 여기 왜 있느냐’는 진화가 될 것이고, ‘왜 하필 여기인가’, 이것은 천문과 우주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우주도 처음에 태어난 시점이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 둘을 접목시키려는 것에 관심이 있고, 천문학자는 아니지만 우주의 역사에도 관심이 있고요.
이경희 가장 애착이 가는 친구는 누구인가요?
윤신영 박쥐예요. 이 책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고요. 많이 보강하기도 했지만, 예전 『과학동아』에 썼던 기사가 원형으로 곳곳에 남아 있고요. 당시에도 편지 형식으로 썼거든요. 사실 2인칭으로 쓴다는 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내가 전하는 거라 상당히 까다로워요. 그런데 기사로도 이 형식을 처음 시도했고, 이번 책 전체에도 적용해 보았어어요. 특히나 박쥐는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적으로 천대받아서 더 그런 것 같아요. 포유류 중 최약체거든요. 개체수는 참 많은데 밤에만 활동하고, 잘 보이지도 않고, 제일 작기도 하고요.

이경희 특히 본문 중 눈이 퉁퉁 불도록 우는 박쥐 이야기가 나옵니다. (웃음) 제 경우엔 너무 사랑스럽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의인화로 인한 오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과학을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고민 많이 하셨을 것 같거든요.
윤신영 실제로 서평에서도 내용을 지적하는 분은 없으셨는데, 이 형식과 구성을 가지고 좋다, 발랄하다, 기발하다 하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반면 말씀하신 의인화와 말투에 대한 간지러움을 말씀하신 분도 계세요. 짐작하건대 그런 분들이 적지는 않을 거예요. 동물에 따라 점잖은 친구, 감성적인 친구 등 다양하게 했고, 이미 기사로도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많진 않지만 그 때도 다큰 성인이 왜 그러냐며 문제삼은 분도 계셨어요. 하지만 ‘~했다’ 체가 넘쳐나니 하나 쯤은 이런 게 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이경희 어렵지 않게 쓰려 애썼기에 다가가는 데 장벽이 높지 않습니다. 그리고 글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미주로 보충설명을 하셨는데, 주석의 내용은 매우 친절한 한편, 학계에 있는 이에게도 유용할 만큼 전문적이고 시의성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본문과 주석의 밸런스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은 건 무엇인가요.
윤신영 저는 과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호기심을 갖고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썼어요. (오히려 학생들은 청소년물도 있고 매일 공부하기 때문에 더 많이 알고 있어요. 청소년 물도 다양해서 어렵지 않게 따라올 거고요.) 일반 성인들 중 과학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분들이 주요 대상이예요. 리뷰를 보면 어느 정도 잘 맞게 쓴 것 같고요.
이경희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으시단 말씀을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될까요?
윤신영 공동저자긴 한데 인류진화에 대한 정통 책을 상반기에 낼 예정이고, 또 다른 프로젝트로 노년기에 대한 과학책을 준비 중이에요. 평균수명과 함께 노년’기’도 길어지는데, 은퇴 후에 40, 50년이라는 긴 노년을 준비하지 못하거든요. 사람에게 높은 성과를 내던 때가 활기 면에서나 능률 면에서 젊은 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년은 쓸모가 없느냐, 아니거든요. 진화적으로도 이유가 있을 거고요. 지적능력이나 기억력이 젊은이들이 뛰어나다 해도, 분명 다른 측면에서 더 나은 부분이 있을 거거든요. 다만 민감한 소재이기도 하고 자칫 세대론으로 단선적으로 볼 수 있어 조심스럽게 준비 중이지만, 아까 물어보신 것처럼 이런 것은 과학자가 쓰기 어렵고 오히려 저와 같은 사람이 당장 정확하고 매듭을 짓는 답을 제시할 수는 없더라도, 체계적인 질문을 충분히 하고 같이 고민해볼 요소들을 던져 진지하게 파고들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현 시점에 내놓을 수 있는 것으로 정리해보고 싶어요.
이경희 원시부족에서는 족장이나 부족의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그야말로 ‘휴먼라이브러리’ 하나가 통으로 갑자기 없어지는 거였잖아요. 어른의 지혜도 큰 유산인데요.
윤신영 전통사회에서는 노년이 가진 지혜가 높게 평가 받았고 유지받았고 학문발전의 원동력이었거든요. 농경사회의 지혜가 노년이 전수해줬기 때문에 당장 먹고 사는 것도 그랬고요. 그런데 요즘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노년의 가치는 없어진 건가? 그러면 퇴장해야 하는가? 퇴장 후 40, 50년을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냥 조용히 있다가 가야하는 것인가? 싶은 거죠.
이경희 앞서 ‘내가 어디서 왔고 왜 여기에 있나’를 질문하셨는데, 한편에서는 ‘어떻게 가야하나’를 준비하고 계시네요.
윤신영 당연한 절차인지도 모르겠어요. 긴 안목을 가지고 인류학자와 준비하고 있어요.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글쓰기
분량11,803자 / 25분 / 도판 3장
발행일2015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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