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기획자의 길
박성태
분량1,971자 / 5분
발행일2015년 4월 22일
유형서문
요즘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불려다니거나 불러 모으는 일이 잦아지고 작게 쪼개진 일들의 동시 진행이 하나의 이유다. 마감을 어기는 일이 잦고, 갈팡질팡하다 중요한 순간을 놓친다. 일이 틀어지면 조마조마해서 심장은 쪼그라들고 사정없이 바늘에 찔린 듯 아찔해지는 것은 보너스다. 그래서 새해 계획은 탄탄한 기획서를 쓰고, 그것을 바탕으로 착착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잘 짜여 있어 누구도 쉽게 반박할 수 없고, 결과가 명확해 관계자들의 순전한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해서 지난해 사업들을 잘 정리하고, 2월 안으로 올해 기획안을 완성해 3월부터는 사업들을 계획대로 진행하려고 거듭 다짐을 했다. 물론 이렇게 하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연초부터 전시와 출판 일의 방향이 바뀌고, 2월이 되어서도 포럼(프로젝트원, 토요집담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좌충우돌 사건사고가 연속되면서, 단단한 기획안은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다. 더구나 지난해부터 공들인 코-워킹 공간 프로젝트의 진척이 더뎌 아직 기획안을 붙들고 씨름 중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하지만 이것이 기획의 과정이라는 말 또한 맞다. 기획자의 일이란 생각의 편린들을 끄집어내고 그것이 공유할 가치가 있는지를 재는 것이니 시행착오와 실패도 기획의 과정일 수 있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리서치를 하고 파트너십을 맺고 처음 생각을 거듭 수정해가면서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도 기획의 묘미라고.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기획자는 사건의 본질을 간파해 자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모으고 정제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일을 벌이고 자신의 시간도 적절히 배분해 맞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건축신문》의 시작도 그랬다. 처음에는 무크지 형태의 잡지를 발간하려 했다. 『인문예술잡지 F』의 건축 버전 정도를 마음에 품고, 내부회의 리서치, 비용산정, 건축 저널리스트 및 이론가들과의 긴 토론을 거쳤다. 그리고 몇 달에 걸친 디자인 시안 작업과 수정, 그리고 다시 콘텐츠의 방향을 정하는 일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 시간을 거쳐 처음 생각과는 다른 지금의 《건축신문》이 세상에 나왔다. 정해진 예산과 요구되는 새로운 포맷에 가장 적절한 방안이라고 자평한다. 물론 시행착오와 그로 인한 혼란의 시간들은 지금 생각해도 조마조마하지만, 이렇게 《건축신문》이 지속해서 나오는 것은 그 과정을 집중해서 보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익기를 기다린다는 점에서 기획자는 농부와 비슷하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고 밭을 갈듯이 기획자도 매일 어떤 일을 오랫동안 묵묵히 수행한다. 농부가 절기에 따라 농사를 짓듯이 기획자도 때의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씨 뿌리고 수확하는 시기를 정확히 알고 놓치지 말아야 하듯이, 가까이 있는 것을 유심히 살펴 그 속에서 잡히는 것에 천착해 새로운 사회적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 품종을 바꿔보듯이, 반복되는 일에서 벗어나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시도도 해야 한다. 그러니 기획을 하나의 프로세스로 도식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기획안을 들고도 최선을 다해 하나하나 길을 열어가는 수밖에 없다. 정림건축문화재단이 하듯이 편집 기획이 포럼, 전시, 공간, 커뮤니티 기획으로 범위를 넓히는 일도 두려워 말아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기획자의 일이다.
이번 호 이슈는 <건축가의 일>이다. 소설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읽고 기획했다. 세상이 변하니 건축가의 일도 정체성도, 그리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변할 것이다. 청탁을 하며 여느 때보다 특히 조심스러웠던 이유는, 과연 원고지 몇십 매에 ‘건축가의 일?’란 질문에 답을 해달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자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 건축은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라서 생각해볼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고사하는 건축교육의 현장, 전 지구적 건축문화 논리의 변화, 건축시장의 급격한 위축 속에서 하나하나 새로운 문을 여는 선택의 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건축가나 기획자나 자신을 돌아보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문을 열 기획안을 내놓아야 할 때다.
박성태 본지 편집인
건축 기획자의 길
분량1,971자 / 5분
발행일2015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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