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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건축()이다.

조한

우연의 안내

건축은 나에게 있어 세상을 보는 눈이자 세상을 느끼는 몸이다. 그 나라의 언어를 조금씩 배워가며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처럼, 건축을 통해 조금씩 세상을 알아간다. 건물에 개구부가 뚫리는 방식을 보고 세계관의 변화를 감지하고, 부엌과 거실의 가구 배치를 통해 사회의 가치관을 읽어내고, 예측하지 못한 감동에서 세상의 원리를 느끼기도 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공간을 그려보기도 한다. 건축은 내게 철학이자 종교이며, 곧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참 우연이었다. 고3 때 나는 당시 최고의 인기 학과였던 전산과 (최근에는 컴퓨터학과, 컴퓨터공학과, 정보통신학과 등으로 불리는)를 지원할 생각이었다. 혼자서 컴퓨터 언어도 배워서 벽돌깨기 게임도 만들면서, 장차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날 부르시더니, 내가 평상시 그림 그리고 모형 만드는 것을 좋아하니 건축학과가 딱 맞을 것 같다고 하셨다. 딱히 유명한 건축가 한명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 말에 수긍하고 건축학과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대학은 천문학과를 지원했다. 건축학과 커트라인이 높다는 담임의 말에 바꾼 점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우주의 원리와 세상의 원리를 알고픈 나의 욕구가 작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운명인지, 천문학과는 떨어지고 결국 건축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세상의 원리, 건축

대학에 입학해서 우연히 한 선배의 꾐(?)으로 건축역사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다. 노르웨이 건축가이자 이론가인 크리스티안 노베르크-슐츠Christian Norberg- Schulz의 서양건축의 본질적 의미Meaning in Western Architecture(1975)를 중심으로 진행된 세미나는, 고대 이집트를 시작으로 그리스 로마, 중세, 그리고 근현대 건축까지 (서양)건축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 시간이었다. 단지 건축 역사를 공부하는 줄 알고 참여했던 그 세미나에서 나는 건축이 단지 예쁜 그림이나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우주와 세상의 원리를 담아내려는 끊임없는 시도였음을 알게 되었다. 건축에서 나만의 천문학을 만난 것이다. 그렇게 나는 건축을 통해 ‘세상의 원리’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노베르크-슐츠의 서양건축의 본질적 의미를 시작으로, 장소의 혼: 건축의 현상학을 위하여Genius Loci: Towards A Phenomenology of Architecture(1984)와 건축가 김준성의 <토네이도 하우스>(1993)를 통해 건축과 장소, 빛과 공간, 그 현상학적 세계에 빠져보고, 찰스 젱크스Charles Jencks의 기호, 상징, 건축Signs, Symbols, and Architecture(1980)을 읽으면서 한국 현대건축에서 도대체 기표와 기의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가 하면, 지크프리트 기디온Sigfried Giedion의 공간, 시간, 건축Space, Time, and Architecture(1969)을 통해 과학과 예술의 변증법적 관점에서 건축의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또한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의 건축공간과 노장사상The Tao of Architecture, Amos Ih Tiao Chang(1984)은 동양사상에서의 비움, 공간, 시간을 통해 건축 공간에 내재한 힘을 생각해보게 했고, 같은 저자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he Tao of Physics(1975)에서는 현대 과학과 동양사상의 만남에서 우주를 느낄 수 있었는가 하면, 스피노자Baruch Spinoza의 윤리학Ethics을 통해서는 수많은 공리axiom와 명제proposition를 따라가면서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미셀 푸코Michel Foucault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이성의 헤게모니’를 의심하게 만들면서 해체주의에 빠져들게 만들었고,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과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의 건축/철학적 실험들을 나의 3학년 작품인 <The Story of Cretan>과 졸업 작품 <The Trace of Ruins>에 담아내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그렇게 건축학과에서의 4년은, 건축을 통해 ‘세상의 원리’를 찾고, 그 원리를 어떻게 건축에 담아볼지, 내 평생의 과제를 부여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의 원리’에 대한 탐닉에서, ‘실존의 문제’에 대한 탐구로 서서히 옮겨간다.

새로운 감동-지식-생각의 원천

건축은 무엇인가? 건축을 의미하는 ‘architecture’는 그리스어 ‘Arche(ἀρχή)’와 ‘Tektonike’로 구성되어 있다. ‘Arche’가 근원 또는 원리를 의미한다면, ‘Tektonike’는 기술 또는 구축을 의미한다. ‘건축architecture’은 세상을 이루는 근원적인 원리를 물리적으로 드러내는 학문인 것이다. 건축가는 근원적인 원리를 탐구하는 사람이자, 그 원리를 물리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로, 태생적으로 철학자이자, 예술가이자, 기술/과학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건축이 예술인가 혹은 기술인가, 하는 논쟁을 벌이곤 하는데 그 논쟁에 ‘건축이 철학일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도 함께 던져 넣고 싶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공저한 철학은 무엇인가?What is Philosophy(1994)에서 철학은 개념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며, 과학은 기능(지식)을, 예술은 감각(감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철학과 과학과 예술은 리좀Rhyzome 관계를 통해 서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철학, 과학, 예술, 어느 영역 하나 더 중요한 것도, 덜 중요한 것도 없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젠만이나 추미와 같은 철학적인 건축가가 있는가 하면, 버크민스터 풀러와 같은 과학적인 건축가도 있고, 르코르뷔지에처럼 예술적인 건축가도 있다. 중요한 것은, 건축이 어떻게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게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느냐는 것이다.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Body without Organ’ 개념이 없었다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순수한 운동의 공간’으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고,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새하얀 DDP ‘둘레길’이 아니었다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세계 내의 존재Being-in-the-world’를 반증하는 경험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건축(이론)가 배형민의 『감각의 단면』이 아니었다면, 김수근의 옛 <공간사옥>을 ‘눈의 공간, 몸의 공간’으로 읽어낼 수 없었을 것이고, 건축가 조성룡의 <선유도 공원>과 <어린이 대공원 꿈마루> 그리고 건축가 이소진의 <윤동주 문학관>이 없었다면, 시간을 넘나드는 감각적 체험도, ‘기능이 소거된 공간/폐허’의 감동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건축가 최문규의 <쌈지길>이 아니었다면, 한국적 공간으로서 ‘길’을 깨닫지도 못했을 것이며, 건축(이론)가 박철수의 『아파트』와 박인수의 『아파트 한국사회』가 아니었다면, 우리 아파트의 극단적인 사유 공간과 익명의 공공 공간 사이에서 망각되고 축소되는 ‘사회적 공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

나에게 건축은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게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고민이자 실천이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글로, 때로는 벽돌로, 때로는 유리로… 각자만의 방식으로 감동을 갈구하고, 지식을 탐구하고, 생각을 확장한다. 우리는 건축( )이다.


조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하였고, 2009년 젊은 건축가상, 2010년 서울특별시 건축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생태/생성 건축철학 연구소 대표이자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로서, 건축/철학/영화/종교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간/공간’에 관한 다양한 실험/연구를 진행 중이다.

우리는 건축()이다.

분량3,847자 / 10분

발행일2015년 4월 22일

유형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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